# 107
31장 아수라(3)
“꺄아아아악!”
“딜러랑 힐러! 뒤로 가! 기습이다!”
아수라 길드 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고함이 들려왔다.
“우측에서 기습이다! 빨리 움직여!”
레이스 길드 공략팀장을 맡고 있는 백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우측을 향해 진형을 바꿨다.
현재 파티의 대부분은 집행부 소속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던전 경험은 길드 공략팀에 비해 부족했지만 대인전과 집단전에 능했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빨랐다.
“다른 곳에서도 기습이 있을 수 있다!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진형을 바꾼다! 3번 진형 실시!”
다시 진형이 바뀌었다.
“길드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수가 달려와 질문을 던졌다. 현준은 현재 레이스 길드의 최고 전력이었다. 그가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남은 길드원들의 배치가 결정될 것이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이미 아수라 길드 쪽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 것인지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전 아수라 길드 쪽으로 가겠습니다.”
아수라 길드와 가까이 있어야 변수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스 길드 진영에는 소진을 지키기 위해 태민을 배치했으니 기습이 있더라도 순식간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수라 길드가 30여 명. 우리가 20여 명…….’
던전의 크기가 대형이다. 50명 정도의 대인원이 입장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아수라 길드가 먼저 30여 명의 인원을 선점하는 바람에 현준은 20여 명 이상의 인원을 동원할 수 없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아수라 길드원들을 최대한 많이 소모시켜야 한다.’
현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아수라 길드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점을 응시하는 시선에서는 살기가 묻어 나왔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가호가 위험을 경고했다.
“여기도 놀고 있을 여유는 없다는 건가?”
지옥참마도와 공허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천장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검은 그림자 수십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와라!”
마력을 일으켰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옥참마도와 공허의 방패에 오러가 깃들었다. 성장이 계속되면서 오러는 더욱 선명하고 강력해졌다.
‘암흑 살수, A급 상위 마수.’
현준은 적의 수준을 되새기며 지옥참마도를 휘둘렀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온 암흑 살수 둘이 일격에 당했다.
“이스텔.”
적의 수가 많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이스텔이 붉은 마법서를 펼칩니다. 일시적으로 화염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스텔이 가진 붉은 마법사의 권능을 행사합니다.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3배 강화합니다.
광역 마법이다.
“간다.”
현준의 두 눈이 붉게 물들고 정면에는 화염에 휩싸인 마법서가 생성되었다.
“파이어 브레스.”
상위 마법이 완성되었다. 입에서 내뿜어져 나온 불꽃이 눈앞을 붉게 물들였다. 일반적인 파이어 브레스보다 3배 더 강력한 위력 앞에서 암흑 살수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마법계! 집중공격하세요!”
현준이 지시를 내리자 후위에 있던 마법계 헌터들이 일제히 공격 마법을 캐스팅했다. 완성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파이어 캐논!”
“라이트닝 스톰!”
“아이스 스트라이크!”
공격 마법이 비처럼 쏟아졌다. 암흑 살수들은 즉각 흩어졌지만, 대부분이 마법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소멸’했다.
정령체나 마력체 등의 성질을 가진 마수들은 시체가 빠르게 소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암흑 살수 전멸!”
누군가 외쳤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기습을 당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아수라 길드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준은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아수라 길드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저쪽도 전투가 끝났네.’
진형을 재정비하면서 드랍된 마정석을 루팅하고 있었다. 현준은 그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손이 남는 길드원들에게 루팅을 지시했다.
S급 던전에서는 일반적인 짐꾼의 출입이 제한되는 데다가 이번에는 특수한 경우라서 공략 가능한 인원으로 파티 구성원이 모두 채워져 있었다.
-주인. 살기가 느껴진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나도 알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수라 길드 진영에서 몇 명이 살기를 보내고 있었다.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살기를 감추기 위해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은연중 시선에 묻어나오는 살기를 모두 통제할 수는 없었다.
‘우릴 죽일 생각으로 가득해.’
살기를 흘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칼부림은 확정된 것 같은데 우리가 선공하면 안 되는 건가?
“여긴 대형 크기의 S급 최상위 던전이고 아직 중간 정도 왔을 뿐이야. 여기서 내부 인원끼리 소모전이 있으면 남은 곳을 공략하기 힘들어.”
지옥참마도의 물음에 현준은 모처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현준을 제외한 레이스 길드의 전력은 아수라 길드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투가 발생하면 많은 길드원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긴다고 해도 누더기 상태가 된 파티로 이 던전을 끝까지 공략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수라 길드는 다르지.’
막나가는 걸로 유명한 아수라 길드가 국가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당장이라도 레이스 길드를 공격하고 공략을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던전 아웃이 임박했다고는 하지만 결정에 영향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죽일 수만 있으면 과감히 던전 공략을 포기할 거다.’
그로 인해 무고한 서울 시민 수천이 죽는다고 해도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몰라…… 경계를 늦춰서는 안 돼.’
실제로 아수라 길드 진영에서는 지금도 희미한 살기가 느껴졌다. 숨기려고 노력해도 리퍼의 가호 덕분에 살기에 민감해진 현준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강현준이라고 했던가? 너무 긴장하고 있는 거 아니야?”
현준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한진우가 있었다. 그는 장검을 생수를 꺼내 마시고 있었다.
대형 크기의 S급 최상위 던전의 중간 지점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S급 최상위 던전은 공략 경험이 많지 않아서요. 적당히 긴장하고 있는 건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힘이 들어가 있잖아. 그러다 누구 하나 잡는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현준은 진우의 말에 대답하며 피식 웃었다.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좋은 거야.”
말을 마치며 진우는 빈 생수통을 찌그러뜨리고는 뒤로 던졌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쉴 건데 너흰 어떻게 할래?”
“저희도 쉬어야겠네요. 슬슬 휴식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중간 지점으로 추정되는 여기까지 오는 4시간 동안 겨우 1번을 쉬었을 뿐이었다. 던전을 공략할 때 강행군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레이스 길드는 단독 진영으로 전진할 용기가 없나 봐? 겁쟁이들이네.”
가벼운 도발. 넘어가 줄 생각은 없다. 현준은 진우의 말을 무시한 채 레이스 길드 진영으로 돌아왔다.
“집행부장.”
“예.”
인원을 점검하고 있던 규환이 달려왔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기척 감지 능력이 우수한 몇 명을 뽑아서 주변을 경계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규환은 즉시 5명을 뽑아서 주변을 경계하게 했다.
“이동하겠습니다!”
아수라 길드 진영이 먼저 움직였다. 공략팀장을 맡고 있는 한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희도 전진합니까?”
“당연하죠. 아수라 길드와 너무 떨어져도 곤란합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레이스 길드도 움직였다. 아수라 길드의 옆에서 10분 정도 빠르게 걷자 정면에서 다수의 마력이 감지되었다.
진우 역시 현준과 비슷한 순간에 마력을 탐색한 것인지 빠르게 검을 뽑아 들었다.
“온다.”
누군가 말했다. 떨리는 긴장 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서늘한 얼음 창 수십 개가 날아들었다.
“방어 마법!”
마법계 헌터들이 실드를 완성했지만 몇 개의 얼음 창은 실드를 뚫고 들어가 헌터들의 몸에 꽂혔다.
“크아아악!”
“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소진이 힐을 사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한 마법 군주다!”
이번에는 아수라 길드의 진영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현준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한 순간 한진우가 총탄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내가 처리한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섬광 그 자체가 되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혹한 마법 군주의 ‘핵’을 꿰뚫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사람의 형태로 돌아온 진우는 검을 휘둘러 혹한 마법 군주의 목을 깊이 베었다.
-끝났군.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혹한 마법 군주는 마정석을 남기고 소멸했다.
‘S급 마수를 일격에 처리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SS급 헌터라는 칭호가 허명은 아니었어.’
현준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아무래도 곧 있을 전투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길드장님.”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태민이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아수리 부길드장 강진명이 사라졌습니다.”
“뭐라고요?”
아수라 부길드장 강진명. 그는 ‘완전 은신’의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다.
방금 전에 모든 시선이 한진우에게 집중된 사이에 특수 능력을 사용하여 모습을 감춘 것 같았다.
‘모든 게 계획이었다는 말인가?’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곧 전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준비하세요.”
“부하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진짜다. 강진명이 모습을 감춘 시점에서 언제 어디서 선공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제기랄.’
하필이면 가장 주목해야 할 적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누나.”
현준은 부상자들에게 힐을 사용하고 있는 소진에게 다가갔다.
“얼마 안 남았어요.”
“응. 너무 무리하지 마.”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소진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부하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라는 내용의 전달을 끝낸 태민이 소진을 지키기 위해 옆에 섰다.
-오늘은 붉은 달이 뜨겠군.
평소였다면 가볍게 넘겼을 지옥참마도의 대사가 지금은 현준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레이스 길드장!”
한진우였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그는 현준을 향해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당장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기 때문에 현준은 그를 경계하면서 자연스레 지옥참마도의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워…… 살기가 너무 진한데?”
“용건이 뭡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져서 말이야.”
진우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흘러넘쳤다.
“너…… 눈치챘구나? 우리 부길드장이 숨은 거.”
그 순간.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방패를 들어 올렸다. 뭔가가 방패와 충돌했고 충격이 전달된 순간 눈앞에 강진명이 어둠을 벗고 나타났다.
“역시 그때 그건 우연이 아니었나?”
“부길드장! 잡고 있어!”
진우가 섬광이 되었다. 방패로 방어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어딜 도망가.”
진명이 놔주지 않았다.
“큭!”
섬광이 옆구리를 찢고 지나쳤다. 붉은 피가 튀었다. 배후에서 진우가 빛의 옷을 벗어 던졌다.
“아깝다. 심장을 노렸는데…….”
“힐!”
“아, 안 돼!”
지금 여기서 힐을 사용하면 진우와 진명의 타깃이 된다. 소진도 잘 알고 있지만, 현준의 부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힐을 사용했다.
A급 회복계의 힐이다.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호오?”
아니나 다를까 한진우의 시선이 소진에게 향했다. 교전이 시작되기 직전, 아수라 길드원들이 빠르게 다가오는 순간. 진우는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힐러부터 죽여야지.”
태민이 긴장한 표정으로 소진의 앞을 막아서고 진우가 다시 섬광이 되려는 찰나.
“너희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소름이 돋을 정도의 차가운 목소리. 바로 앞에 있던 강진명이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함정에 빠진 건 너희들이다.”
마력을 일으켰다.
“지금 여기서 절대 황제의 이름으로 명할 것이니!”
-로마노프의 강렬한 위엄이 주변을 압도합니다. 지엄한 황명이 함께하는 한, 당신은 군림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모두의 시선에 현준에게 집중되었다.
“친위대는 소집에 응하라!”
-로마노프가 황제의 이름으로 친위대를 소집합니다.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충신들을 불러올 차원 관문을 생성합니다.
그리고 군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