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31장 아수라(2)
“S급 최상위 던전의 생성을 확인했습니다.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조사관을 보내겠습니다.”
S급, 그것도 최상위의 던전이 서울에 생성된 건 오랜만이다. 던전 관리국의 조사과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S급 최상위의 던전이기 때문에 단독 조사는 무리이기 때문에 조사 3팀에서 8명의 인원을 편성하여 던전 조사를 실시했다.
“3팀의 조사조에서 긴급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연결할까요?”
지휘상황실에 모인 직원들은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연구부의 직원들도 몇 명 섞여 있었는데, 이는 S급 최상위 던전의 생성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사보고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지휘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진행 상황을 보고 받는 중이었다.
“긴급 연락?”
지휘상황실장의 표정이 굳었다. 던전 조사라고 해도 내부에 진입해서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위험한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긴급 연락 수단은 있어도 연결을 요청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연결하겠습니다.”
영상 통신이 연결되었다.
-조사 지휘를 맡은 조장, 3팀 소속 지성호입니다.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묻어 나왔다. 서두르는 듯한 그 모습에 지휘상황실을 지키고 있는 직원들은 무슨 일인가 싶은 마음에 호기심과 함께 긴장감을 키웠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지휘상황실장이 물었다. 긴급 연락을 받은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역시 적지 않게 당황했다.
-급히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식별 번호 23,142번 던전이 3일 전에 생성된 게 확실합니까?
“관측정보과의 관측 결과에 따르면 3일 전에 생성된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더 좋지 않군요. 지금 조사를 진행 중인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보고하도록.”
-이제 겨우 3일 전에 생성된 던전에서 ‘던전 아웃’의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성호의 보고를 실장은 쉽게 믿지 못했다. 던전 아웃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2주 이상 공략되지 않은 던전에서 발생한다.
일단 던전 아웃이 발생되면 내부의 마수들이 밖으로 뛰쳐나오기 때문에 던전 관리국에서는 장시간 클리어되지 않은 던전을 처리하기 위해 공략기동대를 운용했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다. 조사 과정 중에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닌가?”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조사 지휘를 맡은 성호는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재조사는 물론 정밀 조사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공략기동대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당장 언제 터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휘상황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S급 최상위 던전 아웃이 발생한다면 서울은 피바다가 될 것이다.
“알겠다. 확인 후, 다시 연락하겠다. 조사관은 남은 조사가 끝나는 대로 던전 관리국으로 귀환하라.”
-알겠습니다.
통신이 종료되었다. 마침 지휘상황실에 있던 공략기동대의 간부가 지휘상황실장에게 달려갔다.
“실장님. 던전 관리국의 공략기동대의 전력으로 S급 최상위 던전 공략은 무리입니다.”
“무장집행국의 지원이 있어도 힘들겠나?”
“힘듭니다. 외부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특수경찰국에 지원을 요청해봐야겠군.”
실장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특수경찰국에는 한국칠위의 S급 헌터가 2명이나 있었다. 그들의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기랄!”
특수경찰국과 10분간의 통화를 끝낸 실장은 욕설과 함께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들이 자랑하는 S급 헌터, 이선우와 송태식은 지금 극비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비싼 돈을 주고 외부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인명이 걸린 문제인데……. 돈이 문제냐…….”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수라 길드에 연락할 수밖에 없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후우!”
또 10분간의 통화가 끝나고 실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혀, 협력 못 하겠다고 합니까?”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던전 관리국에서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수라 길드는 거대한 세력이었기 때문에 거부하면 머리 아파진다.
“거부는 안 했는데, 조건을 달았어.”
“그거야 흔히 있는 일 아닙니까?”
“근데 조금 복잡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슨 조건이길래…….”
부하 직원의 물음에 실장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레이스 길드가 협력하면 기꺼이 지원해주겠다고 하는군. 졸지에 길드 2개를 부르게 생겼어.”
그 속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의 파편을 실장은 알지 못했다.
* * *
“던전 관리국에서 그런 요청이 있었다는 말이죠?”
칵테일 잔을 집어 들며 현준이 물었다. 그의 앞에 시립해 있던 부길드장, 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아수라 길드도 동행하기로 했으니 던전 안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확률도 높습니다.”
“그렇다면 제안을 받아들이죠.”
“괜찮겠습니까? 상대는 아수라 길드입니다. 개인적인 루트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저쪽에서는 한진우와 강진면이 나선다고 합니다”
태민은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얕보고 도발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걱정이었다. 대한민국 1위의 아수라 길드와 한국칠위의 2명을 상대해야 하니 당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부길드장의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준은 진심으로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더 가야죠. 지금 상황에서 아수라 길드에 공식 길드전을 걸기는 힘들 겁니다. 그러면 비공식으로 전면전이 발생할 건데, 설마 아수라 길드 전체를 저희가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건 아니겠죠?”
냉정하게 말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레이스 길드는 갓 플래티넘 티어에 오른 길드로, 대한민국 1위의 아수라 길드와 비교하면 전력 차이가 심했다.
얼마 전에 현준이 세계적인 기관의 위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수라 길드와 혈맹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
“힘들 겁니다.”
“그러니까, 던전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태민은 여전히 걱정이 많은 듯했다. 이건 현준을 신뢰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적이 너무 거대했다. 현준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능합니다. 비장의 수가 있거든요.”
그것이다.
“그리고 부길드장도 어제 S급 최하위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로마노프의 가호 혜택을 받은 이는 당연히 태민이었다. S급 중견까지 노렸지만 아쉽게도 최하위에 그쳤다. 물론 그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겁니다.”
-로마노프의 강렬한 위엄이 주변을 압도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황제의 이름으로 승리를 약속했습니다. 신성한 약속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약간의 조미료를 뿌리자 태민의 눈빛이 변했다.
“길드장님을 믿겠습니다.”
“좋습니다. 던전 공략 인원을 전원 집행부의 정예들로 편성하세요.”
집행부 소속이라고는 해도 시간이 날 때마다 던전 공략에 참여하는 헌터들이었다.
게다가 S급 던전이니 A급 헌터 이상만 데려갈 수 있다. 그러니 기본적인 경험도 어느 정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지시를 내려두겠습니다. 한데, 아수라 길드만 전부 죽어서 나오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부길드장. 명심하세요. 진술할 목격자도 전부 죽여 버리면 되는 겁니다.”
그것이 암살이다.
* * *
던전 아웃의 징후가 포착된 S급 최상위 던전은 강서 쪽에 있었다. 공항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대피령이 떨어졌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와 던전 관리국에서는 아수라 길드와 레이스 길드를 믿었기에 대피령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군 병력을 배치하여 저지선을 형성했다.
“우리가 먼저 왔네.”
돌연변이 던전이라고 이름이 붙은 강서의 S급 최상위 던전 앞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현준과 소진을 포함한 레이스 길드원들이었다. 소진은 긴장감을 지우기 위해 애써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원래는 누나를 떼어 놓고 오려고 했지만…….’
소진은 길드장 비서실장이다. 숨기려고 노력해도 결국 일정 같은 건 그녀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수상한 흐름을 읽고 조사를 시작한 소진에게 최근 트러블이 있었던 아수라 길드와 함께 던전을 공략한다는 사실이 들킬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갈래.’
‘죽을 수도 있어요.’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억지는 아니었다. 2차 각성을 하면서 성기사의 힘을 가지게 된 그녀는 회복계이면서 전투가 가능했기 때문에 던전 안에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게다가 그녀는 최근 거의 쉬지 않고 던전을 공략한 탓에 경험도 풍부했다.
‘좋아요, 따라오세요.’
소진의 합류는 이틀 전 결정이 되었다.
‘누나는 A급 헌터에다가 2차 각성자니까 분명 도움이 되겠지.’
긴장한 기색을 지우려고 애쓰는 소진의 옆모습을 보며 현준은 생각했다. 그녀가 방해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다른 게 마음에 걸렸다.
‘소중한 사람을 잃기 싫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단치히의 가호는 더욱 강력해진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소진을 위험한 전장으로 내몰고 싶지는 않았다.
“부길드장. 누나를 잘 부탁합니다.”
결국 현준은 부길드장, 김태민에게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부하였다.
“한소진 씨를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길드장님께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그분을 지키겠습니다.”
믿음직스러웠다. 태민도 최하위라고는 하지만 S급 헌터였고 대인전 경험도 풍부했다.
“믿고 맡기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끝나고 현준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였다. 그리고 집결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었다. 그의 시선이 던전 관리국 직원에게 향했다.
“아수라 길드는 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태민이 약하게 항의했다. 직원에게 죄는 없지만, 이쪽이 화가 나 있다는 걸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늘 당하고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죄, 죄송합니다.”
“확인이라도 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직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태민은 대열로 복귀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불쾌감이 높은 고도에 진입했을 때, 아수라 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풍당당하게 등장하는 30여 명의 중앙에는 SS급 헌터 한진우와 ‘완전 은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수라 부길드장 강진명이 있었다.
그들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진한 살기를 흩뿌렸다. 처음부터 레이스 길드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긴장하지 마라. 우리한테는 길드장님이 계신다.”
규환이 말했다. 휘하 길드원들에게 한 말이겠지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투였다.
-하찮군. 슬슬 주인공이 나설 차례인 것 같은데?
“리퍼.”
허공에 손을 흔들며, 리퍼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가호를 완성했다.
-리퍼의 잔혹한 살의가 깨어납니다. 치명적인 살기의 일부가 해방됩니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본능적인 두려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순간 해방된 살기는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큭?”
잠깐이지만 한진우가 살기에서 밀렸다.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다른 아수라 길드원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강진명은 진우가 살기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걸 깨닫고는 굳은 얼굴로 현준을 응시했다.
‘SS급 헌터, 한진우가 살기에서 밀렸다고?’
얼굴이 일그러진 진우와 달리 현준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강현준…… 무서울 정도의 성장 속도다. 이번에 던전에서 죽이지 않으면 위험하겠어.’
한편, 진우의 진명을 확인한 현준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진우 : 타락한 구원자.]
그의 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