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02화 (102/217)

# 102

29장 공공의 적(3)

한국칠위, 특무위의 칭호를 수여 받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쪽에 줄을 대려는 정부나 대기업의 고위층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횟수가 확연하게 늘었다.

물론 현준은 정치인들과 엮이면 귀찮아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모든 제안을 거절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그런 행동이 오히려 그의 몸값을 올리고 있었다.

“잠깐만요. 검토해야 할 서류가 왜 이렇게 많아요?”

일주일의 휴식 후, 길드 사무소에 출근한 현준은 책상 앞에 산처럼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소진은 악마 같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놀라면 어쩌니…… 이메일로 전송한 것도 있어.”

메일함을 열기 두려워졌다. 하지만 열어야만 했고 클릭 몇 번으로 전자메일함을 열었을 때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제가 일주일 동안 놀아서 이 지경이 된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 김태민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길드장 검토 없이 부길드장 재량으로 해결하라고 지시를 내려뒀었다.

현대의 충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충성심 가득한 태민이 지시를 어겼을 리는 없다.

“그건 아니야. 우리 길드의 유명한 ‘누구’ 덕분에 신규 길드원이 많이 늘었는데, 관리 부서 인원이랑 간부들은 그대로잖아. 난리가 난 거지.”

높은 등급의 헌터는 그저 가만히 존재하고만 있어도 길드에 큰 홍보 효과를 가져다준다.

한진우의 경우에도 그가 아수라 길드에 가입하여 집행부장을 맡기 무섭게 길드 가입신청서가 폭주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관리 인력이 부족한 거죠?”

“간부도 부족해.”

“그럼 이번에 확충해야겠네요.”

결정에 망설임은 없었다. 현준의 활약과 소진과 태민의 적절한 관리 덕분에 길드 재정은 여유로운 수준을 넘어서 넘치고 있었다.

간부와 중간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은 고급 인력이었지만 얼마든지 뽑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응. 그게 좋을 것 같아. 난 일이 많아서 먼저 가볼게.”

소진은 비서실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이윽고 문을 열면서 그녀는 현준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환한 미소를 보였다.

“승급 축하해. 그리고…….”

“누나?”

“아무것도 아냐.”

소진은 고개를 저으며 길드장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는 말을 끝끝내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삼킨 채.

“길드장님. 김태민입니다.”

닫히려는 문이 다시 열리더니 차분한 표정의 태민이 걸어 들어왔다.

“설마 서류 폭탄이 더 남아 있는 겁니까?”

현준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묻어 나왔다. 고위 던전 공략과는 다른 느낌의 공포였다.

“아쉽지만 검토해야 할 서류는 그게 끝입니다.”

태민이 말했다. 현준은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태민은 현준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는 것인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서류 검토를 요청하는 것보다는 구두로 전달하고 지시받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아서요.”

“급한 일이에요?”

“네, 급한 일로 분류할 만한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 급한 일로 분류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자.

“설마…….”

“예, 그 설마가 맞습니다. 급격하게 불어난 정규 길드원들 때문에 길드 사무소가 포화 직전입니다. 이 보고서를 읽어보시면 더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현준은 태민에게서 건네받은 보고서로 시선을 옮겼다.

“이건 길드 사무소가 터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인데요?”

레이스 길드는 이전부터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해나가고 있었다.

옆 건물을 사서 지하를 연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길드 사무소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길드장인 현준이 SS급 헌터로 승급하면서 신규 길드원들이 몰리니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너무 많이 받은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철저하게 엄선한 인원들만 승인했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길드에 해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태민이 고개를 숙였다. 충심으로 벌인 일이고 길드 사무소가 포화 상태가 된 걸 제외하면 해악이 된 일도 없으니 한마디 하려다가 짧은 한숨을 내뱉는 것으로 대신했다.

“일단 길드 사무소를 확장해야 할 것 같은데…….”

이왕이면 확장하는 김에 제대로 된 헬기착륙장도 만들고 여러 설비를 갖추고 싶었다.

“어디 경기도 쪽에 괜찮은 부지 없습니까?”

“수원을 벗어나면 특구도 재지정됩니다.”

특구 담당 길드는 해당 지역에 길드 사무소나 지부를 두고 있는 경우에만 지정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부보다는 본부를 두고 있는 게 우선권을 선정할 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부를 둘 수 있는 건 플래티넘 티어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레이스 길드는 해당 사항 없음이다.

“수원에는 괜찮은 땅 없죠?”

현준의 질문에 태민은 들고 있던 태블릿 PC로 간단한 정보를 검색하고서 고개를 들었다.

“전부 개발 제한 구역이거나 저희 인원을 수용할 정도의 건물은 없습니다.”

“플래티넘 티어가 아니라서 지부를 둘 수는 없는데…….”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해봤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는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부길드장.”

목소리에서 생기가 넘쳤다.

“청와대 비서실장 전화번호 알고 있죠?”

“예, 물론입니다.”

태민이 대답했다. 대한민국의 두 번째 SS급 헌터가 된 현준과 인연을 만들려는 고위층 인사들이 많았는데, 청와대 비서실장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마 청와대 비서실장의 개인 의사보다는 그 위의 명령이 작용했을 것이다.

“연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청와대 비서실장의 전화번호를 누른 뒤, 현준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는 태민. 충직한 오른팔의 행동에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받아 귓가로 가져갔다.

-청와대 비서실장, 안호영입니다.

“레이스 길드장 강현준입니다.”

-가, 강현준 헌터님?

당황한 목소리였다. 하긴, 레이스의 부길드장의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니 예상치 못한 상대의 등장에 당황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잠깐 통화 가능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강현준 헌터님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는데……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 번째 SS급 헌터인 한진우는 국가와 일을 하는 것보다는 사욕을 찾아 아수라 길드로 들어가 집행부장이 되었다.

그에 비해 현준은 SS급 승급 이후로는 행적이 없지만, 그전에는 특수경찰국과의 합동 작전도 하는 등 국가에 우호적인 행적을 보였다.

‘강현준 헌터를 반드시 국가 전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 안호영의 속마음이었다.

“수원 권선구에 개발 제한 구역 하나 큰 거 있죠?”

태민의 태블릿 PC로 검색을 해보니까 개발 제한 구역 중에서도 축구경기장 하나 크기의 ‘적당한’ 것이 보였다.

-예…… 아마 있을 겁니다.

“그 땅이 필요합니다. 개발 제한 해제 가능합니까?”

-어차피 해제할 예정이었습니다. 지금 정보 통제 기간이었죠.

다행이었다. 어차피 해제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만 봐도 비싸게 협상할 의사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만약 값을 올릴 생각이었다면 그 사실을 숨기고 협상에 임했을 것이다.

-바로 풀어드리겠습니다. 마침 토지 소유주가 매각할 의사가 있다고 하니까, 지금 매입하시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강현준 헌터님의 뒤에는 저희 대한민국 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 주십시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전화통화가 끝나고 현준은 태민에게 권선구의 개발 제한 구역을 매입하라고 지시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민이 움직이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축구경기장 하나 크기의 넓은 부지를 매입한 현준은 개발 제한이 풀리기 무섭게 국내에서 유명한 건설 업체들을 불러 모았다.

“90% 정도를 길드용 부지로 사용할 겁니다. 그리고 남은 10%를 제 개인 저택 건설에 사용할 예정입니다.”

공사 시작 전에 계획을 짜기 위한 브리핑에서 현준은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 넓은 부지의 9할을 길드 전용으로 쓴다고요?”

조금 놀란 듯한 가늘고 여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국내에서도 헌터들로 구성되어서 유명한 건설 업체 ‘해머’의 대표이자 S급 마법계 헌터인 오한서였다.

“이 정도면 일산에 있는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보다 2배는 더 큰 것 같은데요? 너무 과잉 아닌가요?”

“아뇨. 전혀 과잉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잠시 저희 길드 성장 속도를 확인하고 오시죠. 저는 여러 번 공사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요.”

현준의 말에 한서는 레이스 길드의 성장이 기록된 서류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계속하겠습니다.”

일격에 한서를 제압한 현준은 브리핑룸에 모인 건설 업체 대표들을 한 차례 훑으며 입을 열었다.

“이 길드 사무소 단지는 하나의 군사 요새급의 방어 능력을 지녔으면 합니다. 돈은 얼마가 들든지 상관없습니다. 헌터들로 구성된 군대가 공격해 와도 방어할 수 있게 설계하세요.”

누군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보안 및 능동 방어 시설 전문가입니다. 이 넓은 지역에 원하시는 수준의 방어 시설을 다 갖추려면 공사 비용이 수천억 규모가 될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상남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공사 구역을 9개로 나눌게요.”

한서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9개로 나누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저희 업체는 여기를 맡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쪽을 맡겠습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전문가들답게 진행속도가 빨랐다.

“설계도 작성이 끝났습니다.”

마법계 헌터의 등장으로 던전 레이드 시대 이전과는 공사 속도가 몇 배로 빨라졌는데, 설계도 작성도 술식의 힘을 빌리면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었다.

“공사 기간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십니까?”

‘해머’의 간부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준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날짜를 확인했다.

“지금이 11월이니까 내년 중에 최대한 빨리 완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최우선으로 건설해야 할 건 길드용 건물이고 방어 시설은 조금 여유롭게 건설해도 됩니다.”

“네. 확인. 본사의 마법계와 보조계 헌터들을 총동원할게요.”

한서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길드 재정을 사용하지 않고 사비로 공사를 진행해도 될 정도로 돈이 많았다.

던전 레이드 시대가 찾아오고 마법계 헌터들이 등장하면서 돈만 충분히 쓴다면 당장 한 달 만에 웬만한 대규모 공사를 완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돈만 있으면 돼.’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돈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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