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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전생이 날 도와줘-97화 (97/217)

# 97

28장 더러운 자들(2)

현준은 비행체 안의 낭인회를 섬멸하는 일에 직접 나설 생각이 없었다.

전방지휘소와 통신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배신자로 몰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철저하게 뒤에서 검은 마정석으로 실험체들에게 지시만 내리면서 기다렸다.

“최하층에 낭인회의 헌터 10명 정도가 뭉쳐 있다. 20명 이상 집단을 형성해서 공격하라.”

검은 마정석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 실험체들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현준의 지시 사항은 정확히 전달되었다.

“이제 20명 정도 남았나…….”

생체 신호를 통해 위치를 추적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험체들에게 보다 전략적인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크큭. 그 모습은 마치 ‘흑막’과도 같군. 주인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낭인회 헌터들의 생체 신호를 나타내는 작은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슬슬 내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조금 전, 지시를 받은 실험체들이 최하층 쪽을 전멸시키면서 이제 낭인회 헌터들은 1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에 현준이 내렸던 지시대로 모두 뭉쳐 있었다. 그들의 처리는 실험체들에게 맡기고 비행체를 파괴해야 할 차례였다.

낭인회 척살에 집중하느라 비행체 내부 혈맹원들의 정리에 신경 쓰지 못했다. 현준은 바로 움직였다.

그래도 실험체들이 혈맹원들을 사살하긴 했는지 복도에 시체가 많이 보였다.

“함교나 기관실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함교가 전멸할 경우 지휘 계통이 마비되고 기관실이 피격당할 경우 비행 능력이 정지한다. 둘 다 비행함선에 있어서 중요한 곳이었다.

‘일단 마력 반응이 많은 곳으로 가보자.’

현준은 감각을 최대로 올려 마력을 탐색했다. 곧 그는 멀지 않은 곳에 다수의 마력 반응이 뭉쳐 있는 곳을 찾아냈다.

“함교인가……?”

마력 탐색을 방해하는 술식의 존재가 느껴졌다. 하지만 질드레의 가호를 받고 있는 현준은 가볍게 무시했다.

“함교나 기관실이다.”

목적지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확신할 수 있었다. 방어 시설의 수준도 그렇고 많은 수의 혈맹원들이 앞을 막아서고 결사의 항전을 펼쳤다.

-끄아아아악!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크리처를 이스텔의 불꽃으로 불태운 현준은 두꺼운 철문 앞에 도달했다.

“크크큭…… 고등 봉인 술식이 2중으로 각인되어 있다. 네놈은 절대 함교로 가지 못할 것이다…….”

쓰러져 있던 혈맹원이 힘겹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현준이 철문 앞에 서서 술식을 살피고 있는 게 문을 열 방법이 없어서 당황한 걸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역시 함교였구나.”

“커헉!”

대답할 가치가 없다. 허리띠에 걸려 있던 단검을 던져서 그의 숨통을 끊고서 현준은 철문의 2중 봉인 술식을 확인했다.

‘파괴가 가능하다.’

마력 소모가 많을 것 같았지만 다행히 검은 마정석의 제어 술식을 재설정할 때 소모된 마력은 지옥참마도의 흡혈 마력 회복 덕분에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술식 파괴를 위해 마력이 흘러 들어갔다. 2중 봉인 술식은 저항하려 했지만, 한때 진리에 닿았던 미치광이 마도학자, 질드레의 가호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철컥!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기 무섭게 현준은 함교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한줄기의 섬광으로 보일 정도다.

“이기어검.”

“끄아아악!”

“커헉!”

한쪽에서는 도살자 단검이 혼자 날아다니면서 혈맹원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고 다른 쪽에서는 현준이 지옥참마도를 들고 칼춤을 췄다.

“막아라! 일본 교구의 자랑인 공중항모의 함교를 이대로 적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집행관이 외치자 이 난리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기사 계급이 움직였다.

6명이었고 그들 중 절반은 개입과 동시에 ‘크리처’로 변형되었다.

“A급 다섯에 S급 하나.”

차가운 시선이 혈맹의 기사들을 훑었다.

“이스텔.”

-이스텔이 붉은 마법서를 펼칩니다. 일시적으로 화염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앞에 붉은 마법서가 생겨났고.

-이스텔이 가진 붉은 마법사의 권능을 행사합니다.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3배 강화합니다.

현준의 눈동자도 붉게 물들었다.

“파이어 브레스!”

입 밖으로 뜨거운 화염을 토해냈다. 동시에 마력을 일으켜 화염의 제어를 시도했다.

-이스텔의 가혹한 불꽃이 함께합니다. 화염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화염이 춤을 춘다. 그것은 거대한 용이 되어 혈맹의 기사들을 집어삼켰다.

“허억!”

“끄아아아악!”

“사, 살려…….”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기사 다섯이 불탔다. 다른 혈맹원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화염에 휩쓸려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고 이제 남은 이는 집행관과 크리처 형태로 변한 S급의 기사 하나뿐이다.

-술식 파괴와 화염 제어…… 특수 능력이 하나가 아니군? 그렇다면 한국의 초신성 강현준이 분명하군.

“내 이름이 여기까지 유명해졌을 줄은 몰랐네.”

-여기서 너를 죽이면 혈맹의 방해물이 하나 사라진다. 잘 가라.

크리처가 말했다. 그리고 눈앞에 어둠에 물들었다. 시야를 잃은 것이다.

“무, 무슨…….”

갑작스러운 이변에 현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야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사신이 선사한 ‘완전한 어둠’만큼은 아니었지만, 치명적인 암흑이다.

-이 기술은 한 달에 1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걸로 너를 제거할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겠지.

크리처는 들고 있는 단창의 끝을 현준에게 겨눴다. 하지만 현준의 시야는 여전히 암흑이었고

모든 감각 역시 침묵하고 있었다.

-유언은 듣지 않겠다.

크리처가 단창을 심장을 노리고 단창을 내찌르려는 순간이었다.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간섭합니다. 심장이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크리처의 단창이 조금 전까지 심장이 있었던 곳을 꿰뚫으면서 시야가 회복되었다.

-주인!

지옥참마도의 목소리도 들렸다. 현준은 단창을 쥐고 있는 크리처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큭! 이 미친놈은 심장도 없는 것인가!

크리처는 다른 손에 쥐고 있는 언월도로 오른팔을 잘라내는 것으로 현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재정비했다. 팔이 새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마력을 일으키자 곧바로 출혈이 멎고 상처도 빠르게 아물었다.

“나도 합세하겠다.”

집행관도 아공간 주머니에서 스태프를 꺼냈다. 그 역시 S급의 강자였다.

‘조금 방심했다. 지금부터 전력 전개한다.’

함교만 점령하면 끝이다. 아직 제어 중인 실험체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그들에게 잔챙이 제거를 맡기면 된다.

현준은 남은 마력을 모두 불태울 각오로 ‘전력 전개’를 결심했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듀렌달의 가호를 사용한 채 크리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윈드 커터!”

집행관은 시간을 벌기 위해 캐스팅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상위 마법’인 윈드 커터를 시전했지만.

“토, 통하지 않아?”

지옥참마도의 높은 마법 저항으로 무장한 현준에게 ‘상위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그를 노리고 날아든 바람의 칼날들은 모조리 가까운 거리에서 흩어져 소멸했다.

“서, 선임 기사는 어서 나를!”

외팔이 된 크리처가 언월도를 휘두르며 앞을 막아섰다. 이윽고 언월도와 지옥참마도가 충돌했다.

-마, 말도 안 돼!

짙은 청색의 오러 블레이드와 충돌한 순간 언월도에 깃든 검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처참하게 부서졌다.

청색의 오러 블레이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언원도의 칼날마저 자르고 들어가 크리처의 심장을 꿰뚫었다.

오른팔이 잘린 상태에서 언월도마저 잃었다. S급 수준의 무력을 지닌 크리처라고는 하지만 그 상태에서 일순간에 찔러 들어오는 지옥참마도를 막을 수단은 없었다.

-크윽!

심장이 파괴되자 크리처의 몸이 경직되었다. 현준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이기어검’으로 도살자 단검을 불러와 그의 목에 꽂아 넣었다.

목에 단검이 꽂히고 심장이 관통당한 크리처가 축 늘어지자 이어서 집행관을 향해 거리를 좁히며 지옥참마도를 휘둘렀다.

“시, 실드!”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듀렌달의 가호로 강화된 오러 블레이드에 종잇장처럼 찢겼다.

“이렇게 강하다니…….”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집행관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옥참마도가 집행관의 머리에 꽂히면서 그의 숨이 끊어졌다.

함교를 통제하고 있던 집행관이 쓰러지자 공중항모의 고도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현준은 두 눈을 반짝이며 통제단에 섰다.

-직접 조종할 생각?

지옥참마도가 물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술식은 간단해. 마력만 있으면 여기서 제어하는 건 어렵지 않아.”

전생의 방에서 수십 년 동안 술식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 통제단에 각인된 제어 술식을 해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부터 공중항모의 제어를 시작한다.”

통제단의 제어 술식에 마력을 주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중항모를 조종하는 메인 채널에 접속하는 데 성공했다.

거의 추락하고 있던 기체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전방지휘소, 들립니까?”

통신 채널을 열었다. 이번 작전의 총 책임자라서 전방지휘소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주파수를 알고 있었다.

“강현준입니다. 함교를 장악했습니다. 현재 공중항모를 통제하고 있는 상태이며, 내부의 적 90%를 섬멸했습니다.”

-세상에!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통신관의 감탄사 섞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환호가 이어졌다.

“공격 헬기와 요격기 편대를 귀환시키세요.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공중항모의 조종은 처음이었지만 술식의 보조 덕분에 착륙이 가능했다.

착륙이 끝나기 직전에 현준은 이번 전투에서 통제권을 얻은 실험체들을 후방 격납고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태민에게 연락하여 그들을 비밀리에 옮길 수송 차량의 지원을 지시했다.

태민은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해주었다. 공중항모에 대한 기밀 유지를 이유로 병력을 배치하여 외부 인원의 접근을 차단하고 현준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사용하여 레이스 길드에서 공중항모를 선행 조사하기 전까지 누구도 진입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여기는 일본의 땅이오!”

“왜 일본의 일에 한국인이 뭣대로 간섭하는 것입니까?”

“합동 조사는 모를까, 선행 조사는 용납할 수 없어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이렇게 다르다. 그들을 향해 태민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희 길드장님께서는 일본 정부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여러분들보다 높은 직위에 있다는 걸 의미하죠.”

태민은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곧 그는 차가운 시선을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추한 꼴 보이기 싫으면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겁니다.”

서슬 퍼런 협박에 반발하던 이들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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