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27장 척살(4)
“사람을 미사일에 넣고 쏜다고요?”
“일반인이 아니라 헌터를 넣고 쏘는 겁니다.”
깜짝 놀라 되묻는 기술관을 보며 태민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에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기술관의 모습에 현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헌터님들을 미사일에 넣고 쏜다고요? 가능할까요?”
“B급 이상의 헌터라면 충돌했을 때의 충격을 견딜 수 있을 겁니다. 비행체를 파괴하려면 내부에 침투해야 하는데, 이 방법밖에 없어요.”
기술관이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지만, 태민의 생각은 흔들림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헌터들을 미사일에 태워서 쏘아버리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알겠습니다. 개조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인력과 마법을 동원하면 6시간이면 중 미사일 50개 정도를 개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기술관은 걱정하는 걸 포기했다. 상대방이 통제관의 오른팔이니 자신의 고집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만들어주세요.”
현준이 말했다. 현재 그는 공습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통제관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자원의 흐름을 조정할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술관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고 현준은 약속을 지켰다.
각 담당자에게 인력과 마법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전달했고 덕분에 기술부에서는 6시간이 아니라 5시간 만에 60개의 중 미사일을 헌터가 탑재될 수 있게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인원 편성을 어떻게 하지…….”
임시 집무실로 돌아온 현준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현 상황에서 적의 거점이나 다름없는 비행체 내부로 침투하는 일이었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래서 길드원들을 동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원 편성에 대한 권한을 일본 쪽에 넘기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본 쪽에서 요청이 있기도 했었다.
“낭인회로 가득 채우지 않을까요?”
“그럴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이렇게 소수 인원을 뽑을 때는 여러 조건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일본의 헌터 자원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조금 꺼림칙하긴 하지만 이 부분은 일본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낭인회가 극우 세력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인입니다. 도쿄 방어를 위한 작전에서 길드장님을 방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소수 인원이 동원되는 작전에서는 개개인의 무력도 중요하지만 서로 호흡이 맞아야만 한다.
개인행동만 한다면 정예들이 모여도 전력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태민이 우려하는 건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건 일반적인 경우를 이야기 한 겁니다.”
“예외도 있습니까?”
“늘 변수는 있죠. 이번에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낭인회를 경계해야겠군요.”
“예, 하지만 작전 성공을 위해서는 임시로 일본에 편성 권한을 넘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임시 부관한테 연락해서 이 내용을 전달해야겠네요.”
대규모 인원이라면 모를까 소규모 인원 운용에서는 일본 측에 편성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걸 현준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원이 낭인회로 편성될 게 뻔한 상황이라 찝찝할 수도 있겠지만 현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허튼짓을 하면 다 죽여 버리면 된다.’
작전에 동원될 낭인회의 헌터들이 모두 자신을 적대하더라도 전부 죽여 버릴 자신이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무전기를 통해 임시 부관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시간 안에 해결하세요.”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상급자가 좋은 이유가 이런 것이다. 대놓고 재촉을 할 수 있으니까.
“1시간이면 촉박하지 않을까요.”
통신이 종료되고 현준이 무전기를 내려놓자 태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게으름 피우지만 않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적당히 촉박하게 시간을 주는 게 허튼 생각을 하기 힘들 겁니다.”
“역시 길드장님이십니다. 제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태민이 감탄했다.
“이걸로 1시간의 여유가 생겼네요. 커피나 한잔할까요?”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길드장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밀린 업무가 있습니다.”
“길드 업무를 여기까지 가져왔어요?”
현준은 경악했다. 잠시나마 해방되었다고 생각한 자신이 어리석다고 느껴졌다.
-크큭. 이것이 업보라는 것이다.
지옥참마도도 소리 죽여 웃었다.
“처리하기 편하시라고 태블릿 PC에 저장해서 왔습니다.”
용의주도한 태민의 모습에 현준은 혀를 내둘렀다. 그에게는 업무 추적자라는 새로운 진명이 붙어도 어울릴 것 같았다.
세계 어디로 도망쳐도 업무가 밀리면 ‘네놈을 추격해 주마’라고 말하며 쫓아올 것만 같았다.
밀린 업무가 많다면서 겁을 줬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아서 30분 만에 끝났다.
그리고 태민과 커피를 마시면서 30분 정도를 더 기다리자 무전기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관실입니다. 침투 인원 편성이 끝났습니다. 지금 팩스로 보내드리겠습니다.
1분의 지각도 없었다. 일 처리가 빨라서 좋다. 통신이 종료되기 무섭게 팩스가 도착했다.
태민이 들고 와서 건네왔지만,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부길드장이 검토해주세요.”
현준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상황 분석을 위해 방대한 양의 자료를 검토한 태민이 편성 인원을 확인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인했습니다. 전부 낭인회 소속이네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현준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S급 헌터 4명에 A급 40명. 그리고 B급 16명입니다. 전원 A급 이상으로 편성하는 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B급 이상의 헌터라면 어느 집단이든 ‘주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고 A급 이상이라면 정예에 해당했다.
지상은 여전히 전투 중이었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정예 병력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 측에서도 전원 A급으로 편성하고 싶었을 테지만 B급이 다수 섞인 걸로 보아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부 발사대 앞에 소집하라고 전하세요. 저도 지금 갑니다.”
현준은 서둘러 장비를 점검했다. 아직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왠지 이번 공격에서는 ‘공허의 방패’를 쓸 일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에 특히 신경 써서 점검했다.
“차량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차를 타고 전방지휘소 후방에 위치한 미사일 발사대로 이동했다. 10대가 넘는 발사대에 60기의 미사일이 거치되어 있었고 낭인회의 헌터들이 그 앞에 모여 있었다.
현준의 시선이 그들을 훑었다. 익숙한 얼굴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바로 마츠다였다.
‘낭인회 소속인 걸 굳이 숨길 생각이 없는 건가?’
편성 인원은 대부분 지원자에서 뽑은 걸로 알고 있다. 명단에 포함된 이상 낭인회 소속이라는 걸 숨길 수 없다.
본인이 드러날 걸 알면서도 자원해서 따라붙은 게 수상했다.
‘나는 낭인회지만 극우파가 아니에요. 라고 연기하고 있는 건가?’
낭인회에도 극우파가 아닌 헌터가 있긴 하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마츠다는 그런 소수의 극우파가 아닌 헌터를 연기하여 접근한 뒤, 현준을 감시하려는 것 같았다.
현준이 그를 대할 때 크게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했기 때문에 그는 현준이 자신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따라붙어서 감시하려는 속셈이 뻔했다.
‘안 통한다. 이놈아.’
현준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는 ‘두 얼굴의 우월주의자’라는 마츠다의 이명을 봤기 때문에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뒤통수를 맞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다 모였습니까?”
동조율이 오르면서 질드레의 지식에서 통역 술식을 찾아냈지만, 일부러 일본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마츠다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츠다는 현준의 말을 전달하면서 동료들에게 현준에 대한 악의적이고 심한 욕설을 섞었다.
“마츠다. 괜찮은 거야?”
“응. 이 새끼, 일본어 전혀 몰라.”
낭인회의 동료가 조심스럽게 묻자 마츠다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에는 심심찮게 욕설이 섞여 나왔지만, 표정과 몸짓만큼은 진지해서 일본어를 모른다면 욕설을 가려내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 앞에서 대놓고 뒷담화를 많이 해본 솜씨였다.
‘계속 떠들어라. 곧 후회할 테니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굳이 먼저 도발하지 않더라도 비행체 내부에서 몇 명 정도는 쓱싹할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교전 중에 전사했다고 처리하면 된다. 목격자가 없으면 그건 곧 암살이다.
“공격 헬기와 전투기 편대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곁에서 다른 부대와 통신 중이던 부관이 한 걸음 다가와 보고했다.
공격 헬기와 전투기 편대가 동원되어서 양동 작전을 맡아주기로 했다.
적 비행체의 대공 방어 시스템이 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엄호가 없으면 고속 중 미사일로 날아간다고 해도 일부가 격추당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탑승하세요. 침투합니다.”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각자의 중 미사일에 탑승이 끝난 걸 확인한 지상 요원들이 녹색 깃발을 들어 올렸다.
“발사대에서 조준점을 통일하겠지만 정확히 어느 지점에 침투할지 예상하기 힘들다. 일단 침투에 성공하면 생체 신호기를 사용하여 다른 팀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집결하라.”
현준은 외투에 걸려 있는 무전기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 한국어였지만 마츠다가 알아서 비아냥 조금 섞은 다음에 전달할 것이다.
-여기는 AC-130 건쉽. 위치로 이동했습니다. 화력 지원 개시. 건즈, 건즈, 건즈.
지휘 주파수에서 주일 미군의 중무장 항공기가 위치로 이동하여 공격을 시작했다는 내용의 통신이 흘러들어 왔다.
내용을 확인한 현준은 다시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갔다.
“공격 헬기와 전투기 편대의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전투기 편대는 교전 중. 공격 헬기 편대는 이동 중입니다. 1분 이내 도착.
“좋습니다. 전탄 발사하세요.”
헌터들을 태운 중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왜 발사 안 합니까?”
현준의 중 미사일은 발사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급히 개조하느라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수리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곧 현준이 탄 중 미사일 또한 발사되었다. 이윽고 충돌하면서 엄청난 충격이 기체를 뒤흔들었다. 도어가 자동으로 열렸다.
“편안한 여행은 아니네.”
현준은 혼잣말을 내뱉으면서 중 미사일의 동체에서 내렸다. 주변에 적은 없었고 아군의 신호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일단 이동.”
현준은 지옥참마도를 뽑아 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검은 로브를 입은 혈맹원들이 나타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현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혈맹원 30명 정도를 죽였을까? 그는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문 앞에 도달했다.
“봉인 술식이 꽤 강력한데……? 도대체 뭐가 숨겨져 있길래.”
어쩌면 함선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준은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철문을 훑었다.
“그래도 내 앞에서는 ‘열려라, 참깨’다.”
마력을 일으켰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 보였다.
“마츠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사람이 들어 있는 백여 개의 실험관이 있는 이상한 공간, 그 중앙에 마츠다가 혈맹원들과 뭔가를 주고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