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94화 (94/217)

# 94

27장 척살(3)

하네다 공항의 방어선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혈맹원들의 화력 공격이 공항 전체에 전개되기 시작했다.

“하네다 공항 대피소가 무전망 내의 모든 병력에게 알린다. 현재 국적불명의 적에게 공격받고 있다. 자력으로 방어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없다. 즉시 지원을 요청한다. 오버.”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통신관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묻어 나왔다.

“하네다 공항 대피소가 공격받고 있다. 반복한다. 적 장갑차량과 헌터 전력의 공격을 받고 있다. 무전망 내의 모든 병력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벌써 장갑차량의 절반을 잃었다. 항공 및 화력 지원이 간절하다.”

-여기는 남부 방어선. 병력의 70%를 잃었다. 적의 집중 공력을 받고 있다. 화력 지원이 없으면 남부 방어선은 끝장이다.

지원을 요청했지만 기대했던 응답은 없고 남부 방어선에서만 심각한 피해 상황을 보고할 뿐이었다.

-여기는 북부 방어선. 헌터로 구성된 적의 항공 전력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시민들의 대피로가 차단되었다. 반복한다. 대피로가 차단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민들의 대피마저 막혔다.

-여기는 남부 방어선. 적의 폭격으로 모든 화력을 상실했다. 적이 빠르게 접근 중이며 우리는 적을 저지할 수단이 없다.

“공항으로 후퇴해서 예비대와 합류하라.”

-남부 방어선은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모든 화력과 방어 능력을 상실했다.

남부 방어선과의 교신이 끊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성과 함께 공항 대피소가 크게 흔들렸다.

“적이 내부로 들어왔다!”

“쏴라! 저지해! 헌터님들을 엄호해라!”

“꺄아아아악!”

다급한 상황의 발생과 함께 총성, 그리고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통신관은 다시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적 보병이 내부로 침입했다! 시민들을 잃고 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응답해 달라! 하네다 공항 대피소는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반응은 없었다. 절망감에 무전기를 놓았다. 그 순간이었다.

-S급 헌터가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이었다.

* * *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혈맹원들이다.

-크하하하하! 피다!

환호가 터져 나왔다. 지옥참마도였다.

“도, 도망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적이다!”

교전 시작 3분 만에 혈맹원들은 도망치기 위해 퇴로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현준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등을 보이는 적들부터 이기어검으로 처리했다.

“커, 커헉!”

“끄르르륵!”

지옥참마도를 휘두를 때마다 혈맹원들이 낙엽처럼 무력하게 쓰러졌다. 그들이 전멸하기까지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전투가 끝나고 시체들의 산 위에 서 있는 현준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에는 공포와 안도, 그리고 경외의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한국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습니까?”

현준이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결국, 그는 무전기를 꺼내서 통역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모두 강현준 통제관님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꼭 좀 전해달라고 하는군요.

통역으로 굳이 전달하지 않아도 그들이 생명을 구해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대부분 고개를 숙이거나 고맙다고 연신 외치고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몇 명은 큰절을 하기도 했다.

-곧 수송 부대가 도착할 겁니다.

“난 뭐 타고 귀환합니까? 헬기였으면 좋겠는데…….”

신속하게 전방지휘소에 도착하여 상황을 통제하려면 차량보다는 헬기로 이동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강현준 통제관님을 위한 신형 고속 헬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형 고속 헬기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이런 게 대접받는다는 것 아닐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전을 종료하고 현준은 활주로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면 눈이 마주칠 것 같았다.

“지옥참마도야. 누가 날 훔쳐보는 것 같은데 누군지 말해주겠니?”

-어둠의 진안으로 대상을 확인했다. 아까 주인이 구해줬고 따라온 그 헌터다.

“마츠다구나. 고마워.”

지옥참마도가 에고 소드인 게 평소에는 시끄럽고 불편했지만 이럴 때는 참으로 유용했다.

마츠다는 원래 수송 부대와 함께 남부 저지선 쪽으로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공항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명분으로 따라왔었다.

마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별 도움도 되지 않았고 감시역이 붙은 것 같아서 마음만 편치 않았다.

“갔군.”

5분 정도 주변을 서성이던 기척이 사라졌다. 현준은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내 대지를 울릴 정도가 되었다.

“강현준 통제관님! 전방지휘소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헬기가 착륙하고 자위대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전방지휘소에서 현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국어 사용자를 보낸 모양이다.

현준이 탑승하자 헬기는 이륙하여 전방지휘소로 향했다.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격전지를 우회할 수밖에 없어서 거리에 비해 이동 시간이 길었다.

이동 중에 측면의 창문을 통해 도쿄의 상황을 볼 수 있었는데 반 이상이 불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엉망이었다.

“강현준 통제관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적의 병력이 분산되어서 도쿄의 남은 절반이라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의 전 국민이 통제관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찬사가 쏟아지자 마음이 불편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간을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만해…… 그런 칭찬은 필요 없다고…….’

딱히 기쁘지도 않았다. 현재 일본과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였으니까.

“총리님께서도 조금 전에 기자회견을 열어서 강현준 통제관님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셨습니다.

말리지 않으니까 계속 이어졌다.

‘혹시 이놈들이 귀화를 권유할 각은 재는 건 아니겠지?’

문득 든 생각이었다. 뛰어난 실력의 헌터를 자국으로 영입하기 위해 귀화를 권유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일본에는 절대로 안 간다. 이놈들아.’

직접적인 권유는 없었지만, 현준은 속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헬기는 전방지휘소의 상공에 진입했다.

“착륙하겠습니다.”

조종사의 목소리가 헤드폰에서 흘러나왔고 헬기가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이윽고 헬기가 안정적으로 착륙했다.

착륙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장이나 제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수행원으로 보이는 이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은 특유의 강한 바람 탓에 눈살을 찌푸린 채 헬기를 응시했다.

“일본 중앙성청의 각료와 관료들입니다. 강현준 통제관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행한 통역사가 설명했다. 현준은 대답 대신 측면 도어를 열고 가벼운 걸음으로 헬기에서 내렸다.

“맨 앞에 있는 분이 방위성 장관님이십니다.”

통역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일본인인 그에게는 중앙성청의 고위 간부가 부담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방위성 장관, 마에다입니다. 도쿄를 전멸 위기에서 구해주신 강현준 통제관께 일본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합니다.”

마에다는 정중하게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 상황 파악이 빠른 인물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스사노오가 외국에 있고 사토가 정부와의 관계 악화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현준이 없었다면 도쿄가 무너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S급 헌터들을 동원해도 막지 못한 재앙을 저지한 현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기도 했다.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이웃을 지나칠 수는 없더군요.”

현준은 가식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방위성 간부들의 옆에 기자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을 위한 ‘연출’이었다.

“저희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방위성 장관도 바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만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일본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한다는 말만 3번 들었고 나머지는 일본이 얼마나 헌터들에 대해 우호적인지 설명하는 게 대화의 주를 이뤘다.

‘귀화 권유를 위한 밑밥이지.’

뻔했다.

던전 레이드 시대의 시작과 함께 헌터들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강대국의 판단 척도는 보유 중인 S급 헌터의 숫자가 되었다.

특히 현준은 S급 헌터일 뿐만 아니라 2차 각성자이기도 했다. 현존하는 헌터 중에서 SS급이나 SSS급의 경지로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은 헌터이기도 했다.

“제 길드원들은 오고 있는 중입니까?”

현준은 전방지휘소 본부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임시 부관직을 맡은 한국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30분 후에 도착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좋습니다. 현 상황을 간단하게 보고해 주세요. 굳이 상황실까지 들어가고 싶지는 않네요.”

솔직히 말하면 귀찮았다. 상황실에 붙잡히면 시간을 얼마나 뺏길지 예상할 수 없었다.

“11번 구역과 12번 구역을 탈환했지만, 여전히 도쿄의 절반 정도를 적이 점령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적의 비행체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서 항공 지원이 쉽지 않습니다. 도쿄 탈환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비행체의 격추로 판단됩니다.”

깔끔한 요약이었다.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길드원들이 도착하면 회의를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부관의 말대로 정확히 30분 후, 길드원들과 진아가 도착했다. 그들은 현준이 사용하고 있는 임시 집무실로 우르르 몰려왔다.

“갑자기 일본에 있다길래, 놀랐잖아요.”

진아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현준이 말없이 일본 상황에 개입한 게 서운한 모양이었다.

“상황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지금이라도 불러줘서 고마워요.”

“예.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으니, 쉬고 있어요.”

현준의 말에 진아와 석현이 임시 집무실을 나섰다. 이윽고 현준의 시선은 구석에 서 있는 소진에게 향했다.

“누나…….”

“나한테는 설명 안 해도 돼. 끝까지 따라갈 테니까.”

언제나처럼 묻지도 않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소진의 모습에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중에 다시 부를게요.”

“응. 도움이 될 수 있다니까, 기뻐.”

소진은 환한 미소를 남기고는 휴식을 위해 임시 집무실에서 이탈했다. 그녀는 늘 현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2차 각성 이후 조금씩 도움이 되는 듯했는데 이렇게 직접 불러주기까지 하니까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가고 이제 임시 집무실에는 태민과 규환만이 남았다.

“일본 상황은 대충 전달받았습니다.”

부길드장이자 현준의 충직한 오른팔, 김태민이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현준은 레이스 길드의 두뇌인 그가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 전술을 짤 수 있도록 동행한 자위관에게 상황 설명을 지시했었다.

다행히 태민은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자위관으로부터 직접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비행체를 요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습 초기에 대응 내용을 봤습니다. 요격기 편대와 지대공 미사일이 통하지 않았다더군요.”

현준이 통제관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태민은 공습 초기 대응에 관련된 자료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것을 분석했다.

“헌터에 의한 내부 파괴 공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위험하지만 효과적이네요. 그런데 수송 헬기가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혈맹에서 공중항모 아카기라고 부르는 비행체에는 대공 방어 시스템도 장착되어 있었다. 출격한 요격기 편대가 아카기의 대공 방어에 모조리 격추당했었다.

“길드장님. 헌터들은 튼튼합니다. 미사일에 폭탄 대신 넣고 쏘면 됩니다.”

신기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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