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91화 (91/217)

# 91

26장 혈맹은 피를 원한다(3)

“한진우 다음으로 강하다는 게 진짜일까요?”

“한국에서 우릴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게 아닐까요?”

“S급에 오른지 얼마 안 된 병아리치고는 요구가 너무 심합니다.”

몇몇은 부정적인 의견을 말했다. 그들의 중심에는 방위성의 자위대 막료장들과 내각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있었다.

“강현준은 2차 각성자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은 통하지 않아요.”

“성장 속도만 보면 F급 헌터 출신으로 지금은 SS급에 오른 한진우보다 빠릅니다.”

“특수경찰국의 비호를 받는 것만 봐도 강현준한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다른 S급 헌터들은 반응도 안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당장 강현준의 요구를 받아들여야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당장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지금도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도쿄 인근의 자위대는 전멸했고 헌터들의 피해도 심각합니다. 저지선조차 구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레이드 상황국의 간부가 말했다. 그러자 방위성 소속의 낭인회 간부가 발끈하여 벌떡 일어났다.

“우리도 SS급 헌터가 있소!”

“스사노오는 외국에 있고 사토 료는 저희 측 지원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애초에 일본 정부와 사이가 최악이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와타나베 히카루는 회복계라서 충분한 호위 없이 보냈다가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S급 헌터가 포함된 나가노팀이 순식간에 전멸한 것만 봐도 적들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움직이는 게 어떻습니까?”

누군가 말했다.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몇몇은 의미를 알아듣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제어 술식이 미완성입니다. 출격시켰다가는 통제가 힘듭니다. 당장으로서는 한국의 도움을 받는 게 최선입니다.”

“이익! 자존심도 없습니까?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 일본은 제한적이지만 강현준이라는 개인의 통제를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육상자위대 막료장이 말했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총리가 입을 열었다.

“자존심을 지키다가 수백만 명이 죽을 수도 있네. 막료장은 그 무게를 견딜 수 있겠는가?”

막료장은 대답이 없었다.

“일본 정부는 지금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능력이 없네. 강현준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결정이 났다.

* * *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태식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S급 최상위에 해당하는 신호위 조성준과 흥위위이자 아수라 길드 부길드장 강진명이 있는데, 한진우 다음으로 강하다는 평가를 할 줄은 몰랐다.

최근 혈맹과 있었던 몇 번의 교전에서 태식이 볼 때 극적인 연출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던 게 좋은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내각부와 회의가 끝났습니다.

잠시 화면에서 모습을 감췄던 교섭 담당자가 5분 만에 나타났다. 처음 넘겨짚었던 것이지만 내각부와 회의가 이렇게 빨리 끝난 걸 보니 일본 측의 상황이 심각한 게 사실인 것 같았다.

-일본은 한국과 강현준 씨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내키지 않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준도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거침없이 밀어붙인 것이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계약서나 준비해 두시죠.”

그래도 현준은 스스로 양심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계약서가 작성될 때까지 한국에 있겠다는 개소리는 하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 일본 국적의 항공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따로 연락을 해두었으니, 그걸 타고 오시면 됩니다.

“항공기 더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추가 인원이 있습니까?

“제가 선발로 이동하고 후발로 제 길드에서 몇 명을 데려올 생각입니다.”

전권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도쿄의 상황을 통제하는 건 무리였다. 믿을 수 있고 유능한 부하들이 필요했다.

권한은 현 시간부터 발효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현준이 항공기를 준비하라고 하면 일본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항공기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통신이 종료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던 태식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강현준 씨. 정말 대단합니다. 설마 일본을 상대로 이 정도로 협상을 주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겠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여유롭게 협상을 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협상에 성공했으니 이제 뒷말이 나올 빌미를 제공하면 안 된다.

“인천 공항까지 이동할 헬기를 준비하겠습니다. 5분이면 됩니다.”

태식도 서둘렀다. 그의 말대로 5분 만에 헬기가 준비되었다.

현준이 헬기착륙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인천 공항까지 이동할 신형 고속 헬기가 프로펠러를 천천히 회전시키며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무사 귀환하십시오!”

태식과 선우는 수도 방어 때문에 일본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번 도쿄 공습으로 서울도 긴장 상태였다. 그래서 더더욱 귀중한 국가 전력을 해외로 보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마정석 기술을 사용한 신형 고속 헬기라서 인청 공항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인천 공항에서는 항공기가 이륙할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전용 활주로가 개방되었고 승무원들도 준비가 끝내고 대기 중이었다.

“이쪽입니다.”

헬기가 착륙하자 일본 쪽 항공사 직원이 대기 중인 항공기까지 함께 차를 타고 안내했다.

“하네다 공항 쪽 저지선이 무너졌습니다. 나리타 공항으로 이동한 뒤, 신형 고속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항공기 일등석에 탑승하자 승무원이 설명했다. 보통 공항에서 항공기가 이륙하려면 순번이 있지만, 일본 정부의 요청이 있었던 것인지 전용 활주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륙할 수 있었다.

“장비를 점검해도 되겠습니까?”

던전 공략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장비를 점검하는 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평소라면 그냥 했겠지만, 기내라는 특수한 장소였고 항공기는 처음 타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승무원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지옥참마도는 워낙 밀폐된 공간을 싫어해서 허리에 차고 있었지만 ‘공허의 방패’와 ‘도살자’ 단검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야 했다.

갑자기 커다란 방패와 단검을 꺼내면 다들 놀랄 수도 있으니 양해를 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문제없습니다. 강현준 헌터님의 편의를 최대한 봐 드리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승무원 중 직위가 가장 높아 보이는 여성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현준은 아공간 주머니를 열고 공허의 방패와 도살자 단검을 꺼내서 점검을 시작했다.

주 장비의 점검이 끝나고 등급이 낮은 투척용 단검들과 다용도로 사용될 로프와 연막탄과 같은 잡다한 장비들의 점검까지 끝내자 승무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곧 착륙하겠습니다. 헌터님.”

“알겠습니다.”

착륙과 동시에 차를 타고 헬기착륙장으로 향했다. 통역사를 포함해 일본 정부와 자위대에서 보낸 수행원들이 헬기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현준은 그들과 함께 신형 고속 헬기에 탑승했다. 새로 형성된 전방지휘소로 이동하면서 동승한 수행원들로부터 도쿄의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공습 이후 1시간 만에 자위대의 방공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6시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일본 레이드 상황국에서 관제하는 던전 레이드 요격 시스템, 이지스가 무력화되었습니다.”

‘이지스’는 일본 레이드 상황국에서 던전 아웃이나 레이드 상황으로부터 도쿄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요격 시스템이다.

한국에서도 ‘신기전’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시스템이 있다.

“‘이지스’는 완전히 무력화된 겁니까?”

현준이 물었다. 이지스가 발동되면 도쿄와 그 인근에 대기 중인 자위대 병력과 특구 길드들에서 헌터 병력이 차출되어 권역 방어에 나선다.

던전 레이드 요격 시스템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건 지역 안에서 헌터 병력과 자위대의 작전을 통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의미했다.

“네,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도쿄 지역 절반이 국적불명의 적에게 넘어갔습니다. 현재는 외곽에 새로운 저지선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이지스 시스템의 붕괴로 도쿄 안에서는 조직적인 방어 행동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헌터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도쿄 인근의 6개 길드에서 300명을 뽑아서 공격대를 편성했습니다. C급 50명에 B급 220명, 그리고 A급 30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30분 안에 비슷한 규모의 공격대 하나를 더 편성할 수 있습니다.”

상황관은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현준은 달랐다. 그는 편성된, 그리고 곧 편성될 공격대 규모를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6시간 만에 이지스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도쿄 절반이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고작 6백 명 정도 되는 헌터들로 탈환을 꾀한다고요? 조금 힘들지 않겠습니까? 낭인회랑 다른 정예 헌터 병력은 다 어디 간 겁니까?”

현준이 날카롭게 물었다. 상황관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낭인회의 선발이 몰살 당한 직후, 이지스 시스템에 따라, 도쿄 방어를 위해 2차 투입되었다가 대부분이 전멸했습니다. S급 헌터도 6명을 잃었습니다.”

“피해가 심각하네요.”

“그, 그래도 적의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확인 비행물체에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상륙한 적의 병력의 상당수를 처치했습니다.”

“지금 당장 탈환해야 하는 곳이 어딥니까?”

현준의 물음에 상황관은 지도를 펼쳤다. 고속 헬기였지만 신형이라서 흔들림이 많이 없었고 같이 지도를 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현재 효율적인 방어 및 탈환을 위해 도쿄를 12개의 전술 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네다 공항이 있는 12번 구역과 지하 대피소가 밀집해 있는 11번 구역을 최우선적으로 탈환해야 합니다.”

공항이 확보되면 군용 수송기를 이용해 대규모 병력을 순식간에 도쿄 중심으로 투입할 수 있다.

일본도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12번 구역을 최우선 탈환 목표로 삼은 것이다.

“낭인회는 얼마나 있습니까?”

현준이 물었다. 낭인회가 일본 정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헌터 전력 중에서 가장 정예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그, 그게…….”

상황관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왜요? 한국인의 지시는 따르기 싫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동원은 힘들 것 같습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어리석은 판단이다. 낭인회가 침묵한다면 현준이 활약하면 된다. 그가 도쿄를 수복할 때 낭인회가 계속해서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뉴스거리가 된다.

반대의 경우라도 낭인회가 지시를 불이행하여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위임 받은 전권을 사용하여 무너뜨리면 되는 것이다.

“모든 병력을 11번 구역으로 보내세요. 탈환전을 시작합니다.”

“네? 하지만 최우선 목표는 12번 구역입니다. 12번 구역에는 누가 갑니까?”

“지금 전권을 가진 제 지시를 불이행하겠다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지금 전달하겠습니다.”

상황관이 통신 장비를 이용해 전방지휘소에 현준의 지시를 전달했다. 그 모습을 보는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수천 명의 병력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움직인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주인. 입이 귀에 걸렸네.

지옥참마도가 한마디 했다. 현준은 언제나처럼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조종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헬기 돌리세요.”

“네, 네?”

조종사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당황한 듯한 그의 목소리가 쓰고 있는 헤드폰에서 흘러 나왔다.

“이 헬기는 하네다 공항으로 갑니다.”

이윽고 현준의 시선이 상황관에게 향했다.

“12번 구역에는 누가 가냐고 물었죠? 거긴 제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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