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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꼬리 자르기(2)
그날 인터뷰에서 소진이 보냈던 시선의 의미가 궁금했지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특수경찰국의 송태식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주형근이 집행관이라고 한 남자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교묘하게 흔적을 지우고 다녀서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해지는 태식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정의로운 대행자’라는 진명과 어울릴 정도로 그는 국가와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에 열심이었다.
“잘 되었네요.”
-좋지 않은 소식도 있습니다. 주형근과 주혜리가 감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켜 사망했습니다.
“이럴 수가…….”
충격받은 듯한 목소리. 하지만 그건 연기였다. 그는 지금 소름 끼칠 정도로 침착했다.
주혜리와 주형근에게 맹독 술식을 각인한 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후환을 남겨둘 생각은 없었다.
지금 현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통화 중인 태식은 알 길이 없었다.
-주의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태식이 말했다.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죠.”
양심에 찔릴 법도 하겠지만 현준은 태연하게 말했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당장 정밀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혈맹 집행관의 흔적을 찾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뒤를 쫓는 게 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준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질드레의 술식은 완벽해서 정밀 조사가 시작된다고 해도 들킬 일은 없었다.
그러나 특수경찰의 인력이 낭비되는 건 원치 않았다. 혈맹과 전 에코 길드의 배후, 그리고 전생들이 말한 ‘그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추격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실 인력난이 심하긴 합니다.
“그러면 더 집행관 추적에 집중해야죠.”
-강현준 씨가 하는 말씀이 다 옳습니다. 제가 잠시 흥분했나 봅니다.
“집행관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수원 지부로 가면 됩니까?”
-네, 저도 지금 이동하겠습니다.
현준은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차고로 내려갔다. 미리 연락을 받은 집행부 헌터가 차에 시동을 걸어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특수경찰국 수원 지부로.”
“알겠습니다.”
도로 사정이 좋은 덕분에 금방 도착했다.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특수경찰관 한 명이 현준의 차량을 발견하기 무섭게 달려와서는 문을 열었다.
“송태식 경무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생각보다 빠르다. 아무래도 헬기를 이용한 모양이다.
“안내 부탁할게요.”
“모시겠습니다.”
제한 구역으로 들어서자 복도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태식의 모습이 보였다.
특수경찰국의 다른 간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는 이내 다가오는 현준을 발견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저는 이만.”
현준이 다가가자 태식과 대화를 하고 있던 특수경찰 간부는 물러났다.
“오셨습니까?”
“여기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좀 그러네요.”
“회의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여긴 제한 구역이고 지금 그 회의실 주변은 통제되고 있으니, 보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비어 있는 회의실로 이동했다. 태식의 말대로 주변이 통제되고 있는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말해보시죠.”
회의실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현준이 물었다. 아무래도 배후, 그리고 전생들이 말한 ‘그들’과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급하게 물었던 것이다.
“자세한 정보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현재 서울 강남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어떤 활동을 말하는 겁니까?”
“헌터들과 접촉했습니다. 정황상 서울 쪽 길드 관계자들일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확증은 아닙니다.”
태식은 말을 마치며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특수경찰국의 정보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요? 접촉 대상인 길드 관계자들의 명단까지는 무리라도 최소한 소속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혹시 제가 너무 과대평가한 건가요?”
충분한 정보를 넘겨 주었음에도 특수경찰국 정보부가 생각보다 힘을 못 쓰니 답답했다.
특수경찰국은 국가 기관으로 자체 정보부를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는 국정원과 연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라니 실망이 컸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특수경찰이 부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 방해 공작이 있었고, 덕분에 정보수집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태식의 목소리가 떨렸다. 특수경찰국의 부패 때문에 모든 일이 원점으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었기에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곤란하네요.”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고 태식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짧은 고민 끝에 현준은 결국 자신이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가장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집행관의 사진 정도는 확보했겠죠?”
혹시 그것마저 없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태식이 품속에서 사진 1장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겁니까?”
“예, 저희가 확보한 사진 중에서 제일 상태가 좋은 겁니다.”
“이거면 되겠네요.”
어두웠지만 전신의 모습이 분명하고 얼굴도 구분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림자를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다른 건 필요 없는 겁니까?”
현준이 자신 있게 확답하자 태식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방해 공작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특수경찰국 정보부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골드 티어로 승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길드의 정보부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준은 다시 한번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현준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태식의 목소리에서는 놀라움과 감탄이 묻어 나왔다.
“며칠 내로 연락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현준은 특수경찰국을 나와 자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재에 앉아서 마력을 일으켰다.
-하사신의 교활한 그림자가 당신의 적을 향해 손짓합니다. 충직한 어둠은 당신의 눈과 귀가 되어 줄 겁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솟구쳤다.
“가서 내 눈과 귀가 되어라.”
현준은 그림자를 향해 집행관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림자 분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는 녀석이군. 분명 좋은 녀석이겠지.
그리고 지옥참마도는 그림자 분신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 * *
며칠 동안 던전 공략은 소진과 한수 등의 길드원들에게 맡겨두고 그림자 분신이 가져오는 정보의 정리에 집중했다.
그 결과, 며칠 안에 경기도 외곽의 어느 동굴에서 비밀리에 회동을 가진다는 정보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3일 안에 회동이 있을 예정이라…….”
현준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정확한 장소의 언급은 없었지만, 집행관에게 그림자가 붙어 있으니 위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게다가 어두운 동굴 안에서는 은신과 관련된 하사신의 가호을 발현하기에 유리하다. 홈 경기를 치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꽤 쓸 만한 녀석이군. 역시 어둠의 동지답다.
지옥참마도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현준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태식에게 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송태식입니다.
짧은 통화 연결음 끝에 태식이 전화하기 바빴다.
“집행관이 혈맹의 조직원들을 소집했습니다. 3일 안에 회동이 있을 겁니다. 연관된 길드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고 혈맹의 간부 소수와 행동원들이 소집된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 정보부에서도 이 정도는 무리였는데…….
태식은 놀랍다는 감정을 좀처럼 감추지 못했다. 지금 상황으로만 봐도 현준의 정보력이 특수경찰국 정보부의 능력을 상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부 방해 공작이 있었다고 변명만 하기에는 현준이 가져온 정보가 너무 구체적이었다.
진위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태식은 현준이 불확실한 정보를 섣불리 말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이 정보가 정확하다면 강현준과 레이스 길드는 정말 무서운 이들이다. 태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믿을 만한 개인 정보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림자 분신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비장의 카드는 최대한 많이 숨겨 놓을수록 좋다.
-그러면 즉시 병력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가, 강현준 씨?
“정보를 수집할 때 내부에서 방해 공작이 있었다고 했죠? 그렇다면 특수경찰국 내에 혈맹의 끈이 있다는 건데…… 괜히 병력을 동원하면 저희가 움직인다는 정보가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부정할 수 없군요.
태식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특수경찰국이 부패되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특수경찰국에서 지원을 요청한 일에 강현준 씨를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좋네요. 진아 씨한테도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더 좋다.
-집결 장소를 알려주시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현준은 이어서 진아에게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갈게요.]
제일 그룹의 직속 길드 설립 문제로 바쁠 텐데도 불구하고 1분이 지나기 전에 답장이 왔다. 심지어 지금 바로 찾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길드 사무소입니다.]
현준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20분 안에 갈게요.]
거리가 꽤 있을 텐데 어떻게 10분 안에 온다는 거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진아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준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서 헬기를 타고 온 것이다. 얼마 전에 헬기장을 만들어두어서 다행이었다.
“현준 씨.”
집무실 문이 열리고 진아가 밝은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 혈맹의 일 때문에 불렀다는 현준의 설명을 듣고 잠시 시무룩해졌지만 이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불러줘서 고마워요.”
사적인 만남은 아니었지만, 현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아가 미소를 잃지 않게 해주었다.
그녀는 흔쾌히 협력을 약속하고 돌아갔다.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신호를 조용히 보냈지만, 현준은 그녀를 돌려보냈다.
-드디어 때가 왔는가?
3일째 되는 날, 그림자 분신은 집행관의 이동을 보고했고 현준도 즉시 행동에 나섰다.
지옥참마도는 다시 피를 맛볼 생각에 조금 흥분했는지 들뜬 목소리였다. 태식과 진아에게 연락을 해서 집결 장소를 알려주었다.
경기도 외곽의 이름 없는 작은 산에 대한민국의 S급 헌터 3명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