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72화 (72/217)
  • # 72

    21장 마도학자의 은신처(2)

    레이스 길드에서 확보한 S급 던전의 네임은 ‘마도학자의 은신처’로 마법계 함정과 술식으로 움직이는 파수병이 다수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최하위의 세부 난이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S급 던전이기 때문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현준은 레이스 길드 소속 외에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가장 먼저 한석을 불렀다.

    “한석 씨,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세한 사정을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현준이 물었다. 한석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참여하겠습니다.”

    S급 던전의 위험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짐꾼들조차 위험성 때문에 그나마 방어 수단이 있는 B급 헌터 이상부터 지원할 수 있고, 그마저도 생명 수당을 뿌리듯이 하지만 구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석은 현준을 믿었다.

    독점 레이드에서 보여줬던 믿음직한 모습과 괴인들의 습격에서 목숨을 구해준 그를 끝까지 따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믿어줘서 고마워요.”

    현준도 미소로 응답했다. 이제 다음 차례는 진아였다. 그녀를 끌어들이면 수행원인 석현까지 따라올 것이다.

    물론, 휘하의 헌터들을 더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저랑 박 팀장님만 가도 괜찮은 거예요?

    진아가 물었다. 그녀도 바로 합류를 결정했다. 이걸로 현준은 자신을 포함해 S급 헌터 2명과 A급 헌터 2명을 확보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태민에게는 S급 던전에 출입 가능한 짐꾼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백한수를 찾아갔다.

    “당연히 공략에 참여하겠습니다! 역시, 그때 길드장님을 따르기로 한 건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S급 던전을 확보했다는 설명에 한수는 눈물을 흘렸다. 간절히 바라온 게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망설임 없이 따라나설 것을 결의했다.

    한수의 참가가 결정되고 현준은 소진과 규환에게도 연락했다. 소진은 바로 답변을 했지만, 규환은 1시간 정도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따라나서겠다고 말했다.

    ‘S급 2명에 A급 5명인가…….’

    결코, 적은 전력은 아니었지만, S급 던전을 공략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인력을 부르고 싶었지만, 마땅한 이들이 없었다.

    “이대로 진행하면 피해가 클지도 모르겠는데…….”

    집무실에 앉아 고민하며 현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클리어할 자신은 있었지만, 공략 진행 중에 모두를 지켜낼 자신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지만 해결 방법은 나오지 않았고, 던전 일정은 점점 다가왔다. 꼼짝없이 이대로 공략 인원을 편성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현준은 잔혹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해결 방법을 떠올렸다.

    “부르셨습니까?”

    현준은 집행부장 김태민을 호출했다. 밑에 층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태민이 호출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던전 관리국에 이대로 명단 제출해주세요.”

    “길드장님. 이진아 씨와 박석현 씨가 빠져 있습니다. 계속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임시 명단을 건네받고서 한 차례 검토를 마친 태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문제없습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주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진아와 석현이 명단에 빠진 상태로 진행하라고 했지만, 태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현준이 하는 일이라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현준을 신뢰하고 있었다.

    ‘이제, 누군가 미끼를 물겠지.’

    던전 관리국 관계자들은 입이 무거운 편이 아니었다.

    레이스 길드에서 예상보다 적은 수의 공략 명단을 넘겼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고, 누군가 미끼를 물면 게임이 시작된다.

    최악의 경우 공략 당일까지 미끼를 물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현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의 존재를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미끼를 물었다.

    “던전 관리국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태민이 짧게 보고하고는 문을 열어둔 채 물러났다. 그러자 정장을 입은 남성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깔끔한 스타일에 안경까지 끼고 있어서 지적인 이미지였다.

    “던전 관리국 공략 사무과 2팀을 맡고 있는 박철민 팀장이라고 합니다.”

    “레이스 길드장 강현준입니다. 이쪽에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강현준 씨.”

    철민이 먼저 의자에 앉았다. 현준도 그의 앞에 앉았다.

    “후우…… 강현준 씨. 저희 던전 관리국 입장이 매우 곤란해졌습니다.”

    표정만 봐도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다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묻자 철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알고 계실 텐데요. 공략 명단이 생각보다 빈약해서 윗선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그 말씀은 위에서는 제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예, 지금 명단에 올린 인원만으로 공략을 진행할 경우, 클리어 확률이 상당히 낮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철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S급 헌터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돌려 말할 방법이 없었다.

    “어디서 나온 말입니까?”

    현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기분이 상한 건 아니었지만, 적절한 상황 연출의 일부였다.

    “던전 관리국의 특수 지원부에는 공략 분석과라는 부서가 있습니다. S급 이상의 던전이 발생했을 때 제출된 명단의 헌터들의 클리어 확률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곳이죠.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저희 입장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철민은 짧은 한숨과 함께 다시 말을 이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S급 던전 아웃 상황이 발생하면 그건 국가적인 재앙이라는 걸 강현준 씨도 아시잖아요.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신속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걸 위해서 사전 분석을 하는 거고요.”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개입하시겠다는 겁니까? 제가 정당한 방법으로 보증금 입찰을 해서 얻어낸 점유권에 대해서요?”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은 이 모든 판은 현준이 짜놓은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던전 관리국에서 눈치채지 못하고, 고기 방패를 몇 명 던져주면 모든 게 완벽했다.

    “계약서를 보면 유사시에 저희 측에서 인원 충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건, 요청이지 강제가 아닙니다.”

    “강현준 씨…… 던전 아웃이 발생하면 또 수천 명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현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철민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순순히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던전 관리국의 사죄와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왕 이용하는 김에 단물을 쪽쪽 빨아 먹을 생각이다.

    “하아…… 원하시는 게 뭡니까? 저희가 어떻게 해야 추가 인원을 받아주실 겁니까?”

    “차후, 발생하는 S급 던전에 대한 우선권이요.”

    “불가능한 건 아니군요. 제 권한 밖의 일이지만 상부 승인이 있으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승인을 받아오세요.”

    “10분만 시간을 주시죠.”

    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철민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만에 통화를 끝내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허가받았습니다. 차후, 발생하는 S급 던전에 대한 우선권을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던전 관리국 측에서 제공하는 인원 충원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 * *

    “짜증 나!”

    플래티넘 티어 길드, 밤하늘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시연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짜증 섞인 울분을 토해냈다.

    S급 던전 경매장에서의 굴욕이 남아 있었다. 사실 현준은 입찰에 충실했고, 돈이 많을 뿐이었지만 시연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정보원들을 동원하여 조사를 시작했고, 현준이 점유권을 손에 넣었다는 정보를 어렵지 않게 입수할 수 있었다.

    “나한민!”

    “부르셨습니까?”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나한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연의 오른팔이자 밤하늘 길드의 집행부장이었다.

    “내가 시킨 거 어떻게 됐어?”

    시연의 물음에 한민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틀 전에 반반한 애를 4명 뽑아서 박철민 팀장한테 보냈습니다.”

    “결과는?”

    “4명이나 보내서 그런지 좋았나 봅니다. 던전 관리국 차원에서 레이스 길드를 압박해서 인원 충원에 대한 확답을 받아냈다고 하네요. 물론, 충원될 인원은 전원 저희 측 길드원으로 해준다고 합니다.”

    한민이 말했다. 시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몇 명이나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아?”

    “정확한 수는 아직 전달받지 못했지만, 많이는 못 데려갈 것 같습니다. 던전 관리국에서도 레이스 길드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생각해 줘야 하니까요.”

    “그깟, 실버 티어 길드 하나가 뭐라고…….”

    시연은 불평을 쏟아냈지만 머리로는 레이스 길드가 웬만한 골드 티어 길드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분했다. 초신성처럼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현준의 모습을 보기 싫었다.

    “인원 편성은 어떻게 할까요?”

    “집행부 소속 위주로 편성해.”

    “길드 공략팀 위주가 아니라요?”

    집행부 소속의 헌터들은 던전 공략보다는 대인전과 공작 활동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민은 시연의 지시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길드 공략팀 인원 위주로 편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나는 던전에서 ‘마수’만 잡을 생각이 없거든.”

    “레이스 길드도 사냥 대상입니까?”

    “당연하지, S급 던전은 루팅 되는 마정석만 팔아도 최소 수백억에서 정말 많으면 수천억이야. 이걸 레이스 길드랑 나눠 먹는다고? 나는 그럴 생각 없어.”

    시연의 눈동자에서 탐욕에 찌든 살기가 흘러나왔다.

    “던전 공략 중에 죽은 걸로 하면 돼. 조사과에서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한민이 너도 알잖아.”

    던전에서는 영상 및 녹음 장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안에서 누군가 죽는다면 목격자의 진술에 최대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사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이런 허점 때문에 던전 안에서 살인 행위가 많이 일어나는 편이었다.

    “그럼, 1군에서도 최정예로 편성하겠습니다.”

    “짐꾼들도 우리가 확보한다고 하고 집행부 소속으로 집어넣어.”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한민이 대답과 물러났고, 집무실에 홀로 남은 시연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

    고양된 목소리와 달리 눈동자는 차가웠다. 그리고 기대 속에서 며칠의 시간이 흘러 공략 일정 당일이 되었다.

    현준은 기존 명단에 편성된 인원에 진아와 석현을 추가한다고 던전 관리국에 불시 통보한 뒤, 던전 게이트로 향했다.

    “반가워요. 난 밤하늘 길드장 이시연이라고 해요.”

    “레이스 길드장 강현준입니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악수를 한 순간이었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사신이 경고했다. 현준은 즉시 눈동자에 마력을 끌어 올려 로마노프의 가호를 발동했다.

    -로마노프의 눈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절대적인 통찰을 담은 시선은 모든 존재를 꿰뚫어 봅니다.

    시연의 머리 위로 진명이 떠올랐다.

    [이시연 : 야망 있는 살인자.]

    진명을 확인한 순간 현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사신의 가호가 경고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녀가 데려온 인원은 짐꾼들조차 살기를 품고 있었다.

    나름대로 갈무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리퍼와 하사신의 전생을 가지고 있는 현준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다 죽일 생각이군.’

    S급 던전을 클리어할 경우의 보상을 생각해 보면 욕심을 내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한테 이빨을 드러냈다는 거지.’

    악수가 끝나고 손을 빼내며 현준은 생각했다.

    “잘 부탁할게요. 강현준 씨.”

    싱그러운 미소를 흘리며 시연은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현준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결국, 죽는 건 너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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