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18장 검은 의도(4)
“으아아악!”
“커헉!”
“끄으윽!”
순식간에 5명이 당했다. 이제 조장과 그녀를 보조하는 헌터 1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거 진짜 S급 헌터 아닙니까?”
양손에 든 소검 두 자루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조장 또한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경박한 행동과는 달리 그녀에게 몰려드는 마력의 양이 많았다.
“인페르노!”
고위 마법이다. 시동어로 캐스팅을 끝맺기 무섭게 하늘에서 말 그대로, 불지옥이 떨어져 내렸다.
강력한 마력의 유동에 한석은 방어 마법을 강화했다.
곧 창과 방패가 맞붙었지만 방패가 뚫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돌로 인해 용암 줄기와 화염 파편이 사방에 튀었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목숨을 걸고 구경하던 이들이 휩쓸렸다. 하지만 조장과 복면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버틸 만합니까?”
“아슬아슬합니다. 솔직히 고위 마법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직접 움직여야겠네요.”
집중되는 마법 포화에 시야가 가려졌지만 이기어검을 펼치고 있던 단검이 마력에 의한 뭔가에 붙잡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느껴졌다. 현준은 땅을 박차고 한석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쌍검을 든 남자가 땅을 박차고 위로 솟구쳤다. 허공에서 쌍검이 현란하게 휘둘러지면서 현준의 목과 다리를 동시에 노렸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시든밀러와 카르타고의 가호가 발현되었다. 검과 방패가 복면인의 쌍검을 튕겨냈다.
“크윽!”
복면인이 신음을 흘렸다. 그가 쌍검을 회수하기 전에 현준이 내찌른 검이 심장에 꽂힌 것이었다.
B급 헌터 실력인 복면인으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입 밖으로 피를 쏟아내는 복면인의 몸에서 검을 뽑아낸 현준은 즉시, 회전력을 실어 조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시, 실드!”
조장은 황급히 실드를 펼쳤지만.
“뒤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실드의 방어가 닿지 않는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조장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고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흉부를 관통한 직후였다.
“커, 커헉…….”
조장이 붉은 피를 토해냈다.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반격 하려고 했지만 여력이 되지 않았다.
과다 출혈과 함께 전신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손을 들어 올리기도 힘들었다.
현준이 검을 뽑아낸 순간,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오면서 그녀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졌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이번에는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네요.”
황급히 달려온 한석을 보며 현준이 말했다. 보는 눈도 많았고 사이렌 소리도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특수경찰국의 순찰차 2대와 장갑차 1대가 가까이 접근해오는 중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정차한 2대의 순찰차에서 특수경찰관 4명이 내려서 기관단총과 권총을 겨눴고 장갑차에서 검으로 무장한 헌터 2명이 내렸고 기관총 사수도 현준과 한석을 주시했다.
아직 현준이 신원을 밝히지 않아서 용의자로 간주하고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무기를 버려!”
“지금 S급 헌터인 우리 형님을 용의자로 간주하는 겁니까?”
움찔! 한석의 말에 현준을 겨누고 있던 총구가 흔들렸다.
“S급 헌터라고?”
“조장님.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특수경찰들이 동요했다. 새삼스럽지만 대한민국에서 S급 헌터가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곧 조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굳은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직위와 이름을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헌터 자격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경계를 거두지는 않았지만 정중한 태도였다. 그는 S급 헌터와 감정이 상해서 좋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죠. 지금 보여줄게요.”
헌터에게 자격증은 신분증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휴대가 필수였다.
현준은 오해를 받지 않게 천천히 품속에서 S급 헌터 자격증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조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지, 진짜 S급 헌터…….”
“목격자들 진술을 확보하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공격 받았습니다. 이걸 인지하고 조사를 받았으면 합니다.”
현준이 차분하게 말하자 조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서까지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사소한 배려였지만 덕분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진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조사실에 앉게 되었지만 정중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현준과 한석, 두 사람은 겪은 일을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으셨다는 건가요?”
“예. 제가 마력의 존재를 감지한 순간 저쪽에서 공격해 왔습니다.”
현준은 정체불명의 괴인과 마주했던 순간과 사건의 발단을 자세하게 진술했다.
진술 조사를 담당한 특수경찰관은 현준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은 키보드를 바쁘게 두드리고 있었다.
“이유는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죠?”
“네. 그래도 두 번째 공격을 받은 이유는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진술 조사를 맡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였지만 현준이 S급 헌터라는 걸 상대방이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처음 공격해 왔던 사람들을 죽이고 습득한 게 있습니다. 2차 공격 때 복면을 쓴 사람들이 제게 물건을 내놓으라고 한 걸 보면 그것 때문인 것 같네요.”
“제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특수경찰관의 물음에 현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겁니다.”
“이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검은 마정석을 본 특수경찰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현준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게 뭔지 알고 있습니까?”
현준의 물음에 특수경찰관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상부에서 이런 외견을 한 마정석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라는 지시를 전달받았습니다. 지금 메시지를 보냈으니까 곧 담당 부서에서 올 겁니다.”
순식간에 메시지를 보내고 스마트폰을 다시 내려놓은 특수경찰관이었다. 그 빠른 손놀림에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스마트폰 중독이네.’
그리고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특수경찰서장의 배려로 휴게실에서 기다린 덕분에 피로는 크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특수경찰관이 고개를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조심스럽게 도착을 알렸다.
그의 뒤로 2명의 남녀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는데 한 명은 낯이 익었다.
“이진아 씨?”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진 갈색의 머리카락에 고양이 같은 인상을 한 그녀는 S급 마법계 헌터이자 제일 그룹의 차녀인 이진아였다.
“잘 지냈어요?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진아가 선명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현준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는 특수경찰 고위 간부들만 입는 제복을 입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단정한 용모였다.
자신에게 닿은 시선을 느낀 것인지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현준에게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특수경찰국 극비수사실장 송태식라고 해요. 반가워요.”
얼굴은 오늘 처음 보지만 인터넷에서 이름 정도는 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제일 강한 6명 중 한 명으로 마검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S급 최상위의 헌터였다.
“반갑습니다. 강현준입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진아 씨한테서요?”
“그렇다고 해두죠.”
태식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현준의 앞에 앉았다. 진아는 문 옆에 섰고 처음 두 사람의 도착을 알렸던 특수경찰은 눈치를 살피다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현준은 두 눈에 마력을 끌어 올려 두 사람의 진명을 살폈다.
[이진아 : 뒤틀린 애정의 의존자.]
[송태식 : 정의로운 대행자.]
태식의 진명은 예상했던 대로였지만 진아의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조금 싸늘하고 소름이 끼쳤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때였다. 태식이 입을 열었다.
“검은 마정석을 주웠다고요?”
“예. 그런데 괜찮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문 옆에 서 있는 진아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녀 또한 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특수경찰과 관계없는 사람이 들어도 되냐는 의미였다. 예상과는 달리 태식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진아 씨는 A급 헌터 시절부터 이 문제로 특수경찰국에 협력하고 있었으니 괜찮아요.”
그 말에 현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일이 진아가 A급 헌터였던 시절부터 계속 있었다는 말이 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A급 헌터였던 시기는 꽤 예전이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제일 그룹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건 제가 대답할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확실한 건 이진아 씨 본인이 돕고 싶어 했어요.”
태식은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개인 사정이라는 뜻이니 더 캐물을 생각도 없다.
현준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검은 마정석을 보여줄 수 있어요?”
본론이 빠르다. 그래서 좋았다.
“이겁니다.”
현준이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은 마정석을 꺼내서 태식과 진아에게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은 검은 마정석을 면밀히 살피더니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가짜는 아니네요. 얼마 전에 극비수사실에서 확보한 거랑 같아요.”
태식의 말에 진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옅은 살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어떤 분노의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새어 나온 걸로 보였다.
검은 마정석과 관련된 사연이 있긴 한 모양.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질문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강현준 씨.”
생각 회로를 마구 회전시키고 있을 때였다. 태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현준을 불렀다.
“특수경찰국 수원 지부로 동행해 주실 수 있어요?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여기서는 안 됩니까?”
“여기는 위험해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무장 병력이 있는 특수경찰서가 안전하지 않다면 대한민국에서 어디가 안전하다는 말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형님…….”
“아…… 죄송해요. 인사가 늦었네요.”
태식이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최한석입니다. 형님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죠. 하하하.”
한석의 말에 진아는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현준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다.
“송태식입니다. 아무튼,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해요. 이미 저쪽에 정보가 넘어갔을 거예요.”
태식이 호들갑을 떨었다. 검은 세단에 탑승하여 장갑차 3대의 호위를 받으며 도로로 진입할 때만 해도 현준은 태식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도로 한가운데서 로켓탄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