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52화 (52/217)

# 52

14장 권모술수의 달인(4)

이규환과 함께 이탈한 헌터 36명은 레이스와의 분쟁에서 상당한 전력을 잃은 현 안데르센 길드 집행부에 그나마 남아 있던 주 병력이었다.

집행부 주력이 한 번에 빠져나가자 안데르센에 원한을 품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뭐? 안데르센 집행부 전력이 거의 남지 않았다고? 당장 집행부 보내!‘

“다 쓸어버려.”

레이스와의 분쟁에서 안데르센이 밀리는 모습을 보일 때부터 기회를 엿보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안데르센을 방어할 이들이 무너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휘하 집행부 헌터들을 보냈다.

안데르센 집행부의 대규모 이탈이 있고, 이틀째 되는 날 아침에 길드장 안성진이 자택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

자택 경호를 맡은 소수의 집행부 헌터들도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인지 무장 경비를 잔뜩 고용했지만, 그들이 살인 병기들로 구성된 집행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데르센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주요 간부들은 모두 살해당했고, 마지막까지 생존이 불분명했던 비서실장 유지아도 1시간 전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새로 선출된 중간 간부가 총괄국에 길드의 해체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태민이 보고했다.

규환이 집행부 헌터 36명과 함께 레이스로 넘어오고 3일이 지나기도 전에 실버 티어의 길드인 안데르센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수고했습니다.”

현준은 태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 규환이 잔뜩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갑자기 왜 말을 높이십니까.”

“이제 당신은 제 ‘아군’이 되었으니까요. 전 아무한테나 반말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말을 마치며 현준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규환 씨의 인사 발령 문제는 내일 처리하도록 하죠.”

최근 며칠간 안데르센 집행부의 전력 절반 이상을 혼자 사냥하느라 지쳐 있었다.

게다가 심리전까지 펼치느라 정신적으로도 피곤했다.

이제 승전했고 여유가 생겼으니 며칠 동안은 마음 편하게 쉬고 싶었다.

“푹 쉬십시오.”

“수고하세요.”

현준이 집무실을 떠났다.

태민은 규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깐 옥상에 가서 얘기 좀 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진중한 목소리였다. 이제 레이스에 몸을 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규환은 태민과 친해질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태민을 뒤따랐다.

두 사람이 옥상에 도착하자 바람을 쐬고 있던 길드 사무원 1명이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길드장님께선 좋은 분이십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태민의 말에 긍정하기는 힘들었지만, 말싸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규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레이스에 들어오셨으니…… 개인적인 감정은 잊어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데르센 집행부 전력의 절반 이상을 현준이 처리했지만, 4분의 1 정도는 태민과 종서가 처리했다.

규환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저도 바보는 아닙니다.”

규환은 부정하지 않았지만, 긍정하지도 않았다.

“제 부하들도 함께 넘어왔으니…… 개인적인 감정은 최대한 자제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설령 제가 놓치더라도 길드장님의 눈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겁니다.”

얼마 전, 태민은 현준이 안데르센 집행부의 일정과 간부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건 같은 실버 티어의 길드 정보부라고 해도 파악하기 힘든 정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개인 정보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길드장님은 생각보다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눈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뭐,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비밀리에 움직이던 안데르센 집행부의 간부들이 떼로 몰살당한 것만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올 겁니다.”

규환은 마른침을 삼켰다.

태민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단숨에 빨아들인 후, 담배 연기 섞인 한숨을 뱉어냈다.

“길드장님을 실망하게 하면 끝이 좋지 않을 겁니다. 길드장님께서 나서지 않더라도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태민이 떠난 뒤에도 그 말은 메아리처럼 규환의 주위를 맴돌았다.

옥상에서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온 태민은 차를 타고 근처의 작은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길드장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 * *

집으로 돌아온 현준은 지하실로 내려가서 차가운 바닥에 장비를 펼쳐놓고 점검했다.

일을 마무리하거나 일과를 끝내고 장비를 점검하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듯했다.

점검을 계속하던 그는 낯선 장비를 하나 발견했다.

피 묻은 둔기였다.

그는 3초간 기억을 더듬은 끝에 광전사를 상대하고 찾아낸 장비라는 걸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A급인 것 같은데…….”

현준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둔기를 살폈다.

그 순간이었다.

옆에 꺼내 놓았던 리퍼의 단검, ‘도살자’가 붉은빛을 내뿜었다.

-도살자가 피의 원한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작은 단검이 공명하듯 낮은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희미한 마력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마치 둔기를 향해 손짓하는 듯 일렁였다.

그 모습에서 현준은 한 가지 경우의 수를 추측하고는 두 장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

그의 두 눈이 빛났다. 둔기와 ‘도살자’의 거리를 가깝게 둔 순간이었다.

끼야아아아아아-

‘도살자’가 날카롭게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쏟아내며 둔기 내부에 고여 있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분이 지나지 않아서 둔기의 모든 마력을 ‘도살자’가 흡수했다.

“남은 마력은 F급 정도인가…….”

둔기는 대부분의 마력을 잃고, F급 장비 수준의 마력만이 남아 있었다.

대신 B급 수준의 마력을 머금고 있었던 ‘도살자’가 이제는 A급 수준의 마력을 흘리고 있었다.

‘감정소에 가지고 가봐야겠네.’

예전에 ‘도살자’를 감정한 사람은 ‘성장형 장비’라고 말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A급 수준의 마력을 가지게 된 지금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감정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현준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자택을 나섰다.

감정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요즘에는 인터넷 검색이라는 훌륭한 수단이 있었으니까.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감정사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왔다.

“장비 감정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보여주시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도살자’ 단검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감정사의 마력이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오…… A급 장비? 이건 진귀하군요.”

감정사가 감탄사를 쏟아냈다.

A급 장비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사라고 해도 눈으로 직접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처음에 감정받았을 때는 B급이었는데…….’

현준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도살자’를 살폈다.

광전사를 죽이고 습득한 둔기형 A급 장비의 마력을 흡수하고 뭔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보니까 성장형 장비군요. 이건 흔하지 않은 타입입니다.”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그는 어디서 습득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게 감정사가 고객을 대하는 예의였기 때문이었다.

“여러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서에 정리해 드릴 테니…… 돌아가셔서 정독해 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감정서 작성은 금방 끝났다.

현준은 자택으로 돌아와서 감정서를 펼쳐놓고 읽기 시작했다.

이전의 감정서와 비교했을 때 ‘이기어검’이라는 기능이 추가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마력을 사용하여 단검을 허공에서 자유롭게 다루는 기술이었다.

현준은 감정서 정독을 끝내기 무섭게 바로 시험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이기어검.”

시동어를 말하며 마력을 불어넣자 도살자 단검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력으로 연결된 게 느껴졌다.

오러 블레이드를 부여하기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약 10분 동안 이기어검 기술을 시험한 현준은 마력 공급을 끊고 단검을 회수했다.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길드장님. 접니다.”

“들어와요.”

태민의 목소리였다.

들어와도 좋다고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태민이 걸어 들어왔다.

2층에는 소진과 동생들이 지내기 때문에 태민과 종서 등은 보고할 일이 있을 때 주로 외부를 통한 계단을 이용했다.

“안데르센에서 공략 예정이었던 A급 던전 일정 2개를 저희 쪽에서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공략만 끝내면 실버 티어 승격에 필요한 실적은 다 채우는 거죠.”

“네, 부족했던 클리어 실적을 확보하게 됩니다.”

A급 던전은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에 예약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데 마침 안데르센에 A급 던전 공략 일정이 있었다.

길드가 해체되면 예약이 풀리기 때문에 현준은 미리 태민에게 던전 관리국을 주시하고 있으라고 말해두었던 것이다.

‘집행부장이 일을 잘해줬어.’

2개 다 예약에 성공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태민이 예상외로 수완이 좋았다.

“공략팀장과 이야기해 봐야겠네요. 차를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지금 길드 사무소로 가야겠네요.”

이건 길드 공략팀을 이끄는 백한수와 이야기해야 할 문제였다.

현준은 태민과 함께 차를 타고 길드 사무소로 이동했다.

집무실에서는 이미 호출을 받고 달려온 한수가 있었다.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한수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현준은 그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태민은 다른 업무가 있어서 집무실을 떠났고 안에는 이제 두 사람만 남았다.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A급 던전의 공략 일정을 2개 잡아놨습니다.”

“예? 하나 예약하기도 힘들 텐데, 2개씩이나요.”

한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안데르센이 해체될 때 튕겨 나온 걸 가로챘습니다.”

“그래도 쉽지 않았을 텐데…… 역시 길드장님은 대단하십니다.”

“집행부장이 고생 좀 했습니다.”

현준이 말했다. 태민이 고생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길드장님께서 대단하신 건 맞습니다. 레이스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증표 아니겠습니까.”

흡수합병 이후, 현준의 활약으로 레이스는 눈부신 발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수는 그걸 다시 언급하면서 강조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A급 던전 두 곳…… 2주 간격인데 공략할 수 있겠습니까?”

“길드장님과 한소진 씨가 나서주신다면 1군을 움직인다는 가정하에 공략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2주 정도면 휴식 시간도 충분합니다.”

한수의 말에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공략 1팀에 공지 전달하고 준비하세요. 저도 소진이 누나한테 말해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수는 신속하게 행동했고, 공략 1팀이 움직였다.

그들 외에도 현준과 소진, 그리고 안데르센 집행부장이었던 A급 마법계 헌터 이규환까지 지원했다.

덕분에 2곳의 A급 던전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레이스는 실버 티어로 승격되었다.

“후우.”

승격 파티가 끝나고 자택으로 돌아온 현준은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그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압도적인 마력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99만 전생이 당신의 거침없는 행보와 빠른 성장에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부터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개입을 시작합니다. 긍정적인 변화를 얻겠지만 ‘그들’이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목소리와 함께 침실을 가득 채운 마력이 현준의 체내로 쏟아지듯 흘러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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