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14장 권모술수의 달인(1)
더러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안데르센이 먼저 선공을 시작하면서 신호탄을 쏘았다.
선공을 취했으니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승기를 잡은 쪽은 레이스였고 안데르센의 피해는 심각했다.
“레이스가 정규 길드원 4명과 비정규 길드원 6명을 잃는 동안 저희는 집행부 소속 20명을 잃었습니다. 그중에서 조장급이 5명이고 팀장급이 2명입니다.”
“미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비서의 보고에 안데르센 길드장 안성진은 욕설과 함께 헛웃음을 흘렸다.
“증거는……?”
집행부가 임무에 성공하고 이탈했다는 건 증거 인멸까지 끝냈다는 걸 의미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증거가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특수 경찰국에서도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증거 인멸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사신의 가호’를 사용해서 증거를 지웠으니 특수 경찰국에서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틀 만에 길드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집행부에서 20명이나 당할 수 있는 게인가? 심지어 조장 이상의 간부가 7명이나 섞여 있다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다들 입이 있으면 어서 말을 해보게.”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길드 간부들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집행부장 이규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피가 나올 정도로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어제 집행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감지하고 공격적인 대응을 시작한다는 보고를 들은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가? 집행부장은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보게.”
“죄송합니다. 공격에 대응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적의 은신 기술이 너무 완벽해서 저희 수준으로는 반격은커녕 역탐지도 불가능했습니다.”
아직 동조율이 높지 않아서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차원을 ‘배후’에서 조종한 하사신의 힘이었다.
고작 C급이나 B급에 불과한 헌터들이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사신의 가호’를 사용하는 강현준이라는 이름의 포식자 앞에서 그들은 사냥감의 처지에 있었다.
“오늘 새벽에 박용규 팀장이 집행부 소속의 B급 헌터 3명이랑 함정을 파고 반격을 노렸지만, 오히려 당했습니다. 현장에 있다가 목숨을 건진 헌터의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기습당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박용규 팀장을 포함한 모두가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규환이 말했다.
“박용규 팀장은 A급 헌터 아닌가? A급 헌터 1명과 B급 헌터 2명이 몇 초 만에 시체가 되었다고?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성진은 터져 나오려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박용규 팀장의 직속 부하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닙니다. 제가 부하를 보내서 현장을 조사했는데, 동행했던 헌터들은 물론이고 A급인 박용규 팀장조차 저항하지 못하고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는 걸 묻고 있는 것이야! 레이스는…… 브론즈 티어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길드장이 2차 각성자입니다. 게다가 들려오는 정보에 의하면 2차 각성자가 한 명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쾅!
화를 참지 못한 성진이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마법계라고는 하지만 A급 헌터의 힘이 실려 있었던 탓에 목제 탁자는 처참하게 박살 나고 말았다.
“그놈의 2차 각성자 타령 좀 그만하게! 지금 우리가 공격받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걸 왜 모르는가!”
“길드장님. 침착하셔야 합니다.”
성진이 막무가내로 떼를 쓰듯이 화를 냈지만, 규환은 차분하게 그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성진이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익숙했다.
“지금 A급 헌터 1명과 B급 헌터 2명이 일격에 무력하게 죽은 정황이 있습니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아십니까?”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를 식히기 위해 불규칙적으로 거친 숨결을 내뱉었다. 규환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최악의 경우 S급 이상, 적어도 중견 이상의 A급 헌터가 개입했다는 걸 뜻합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지금까지 저희 안데르센은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길드장 안성진이 다혈질에다가 생각이 짧았지만 중견 기업의 후원으로 시작한 길드답게 재정 상태가 좋았다.
집행부장 이규환의 수완 또한 좋아서 그의 합류 이후 집행부 무력도 동급 길드보다 수준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불만이 줄어들면서 내부 결속력도 좋아졌다.
규환이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진에게 불만을 가졌던 집행부 헌터들이 많았었다.
“지금까지 분쟁이 있었던 길드는 모두 저희보다 약했습니다. 하지만 길드장님…….”
규환이 잠시 말을 멈췄다. 다른 간부들은 물론이고 성진조차도 입을 다물고 규환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이번 사냥에서 포식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 * *
현준의 집요한 사냥은 계속되었고 성진과 안데르센의 길드 집행부 헌터들의 멘탈은 빠르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레이스의 길드원들을 사냥하기 위해 집행부 헌터들을 보낼 때마다 절반 이상이 죽어서 돌아오다 보니 공포 분위기에 물든 곳은 레이스가 아니라 안데르센의 길드 집행부가 되었다.
“24시간 동안 집행부 소속의 헌터 9명이 더 죽었어요, 길드장님. 이대로는 힘들어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죠.”
안데르센의 길드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유지아의 말에 규환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짜증 나는 년이…….’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아는 안데르센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고 길드장 안성진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녀가 미인계를 이용해 뒤에서 성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규환은 최근 1년 사이에 알게 되었다.
“지아도 그렇게 생각해?”
“예, 길드장님. 이대로 당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총력전으로 가야죠.”
“길드장님. 그리고 비서실장님. 지금 저희 길드 집행부 전력은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 레이스의 길드 집행부와 정면으로 붙으면 저희만 힘들어집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규환이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며 의견을 말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더 심각해질 것 같았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집행부장님.”
지아의 시선이 규환에게 향했다. 규환의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저 가증스러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날 정도였다.
“듣고 있습니다.”
“레이스의 길드 집행부를 상대하라는 말을 제가 방금 했었나요?”
“길드 집행부가 아니면 도대체 어디를…… 설마……?”
“맞아요. 레이스의 일반 길드원들을 향한 테러를 강화하세요. 지금까지 기록을 보니까 레이스 길드원 테러에 집행부 전력이 모두 동원되지 않았더라고요? 우리 더 잘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살짝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그 모습은 악마와도 같았다.
“테러를 지금 이상으로 과격하게 하면 특수 경찰국에서 움직일 겁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집행부의 일이죠? 우리 집행부장님은 무능하지 않을 거로 알았는데…… 아닌가요?”
비꼬는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집행부장. 자네가 힘 좀 써보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게나.”
성진은 규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집행부가 총력을 다해서 테러를 시작하면 레이스의 길드장 강현준이 겁을 먹고 물러나면서 결국에는 안데르센이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규환의 뒤에 있는 붙어 있는 그림자가 모든 대화 내용을 ‘강현준’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을.
* * *
“그렇다는 말이지……?”
현준은 규환에게 다시 붙여 둔 그림자를 통해 안데르센 간부진의 회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엿듣고 있었다.
레이스 길드원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테러를 벌이겠다는 망언을 전해 들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름 끼칠 정도로 침착했다.
‘이건 좋은 기회다.’
일반 길드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가 더욱 심각해진다면 특수 경찰국에서도 나선다.
그들은 ‘배후’의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상황이 심각해지고 논란이 된다면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던전 레이드 시대의 시작으로 치안이 악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아직’ 공권력의 숨통이 붙어 있다.
‘안데르센도 많이 급한가 보네.’
증거 인멸에 전문적인 집행부라고 해도 조급하게 움직이면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단 한 번의 실수는 그들을 파멸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집행부장.”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왼손에는 김태민과 전화가 연결된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스마트폰에서 태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데르센에서 우리 길드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 규모를 확대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집행부에서 대응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격 규모를 확대한다고요? 집행부만으로는 전부 대응하기 힘듭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공격 목표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완벽한 대응은 힘들었다.
“전부 대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건 우리가 노력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집행부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 거로 생각합니다.”
원천 차단이 힘들다면 이걸 기회로 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세요. 최대한 방어를 시도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특수 경찰국에도 연락해 두겠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그쪽에서 움직이면 좋고, 또 그러지 않더라도 일단 테러가 시작되면 책임을 전가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전화 통화가 끝났다. 태민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집행부 헌터들을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특수 경찰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들의 지원은 오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테러가 시작되었다.
“공격을 받았습니다. 정규 길드원 5명이 죽고 비정규 길드원 8명이 죽었습니다.”
길드장 집무실 문이 열리고 종서가 황급히 들어오면서 보고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컸기 때문에 현준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특수 경찰국에서 지원을 보내줬다면 이 정도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서 집행부장을 지원하세요. 특수 경찰국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현준은 종서가 나가기 무섭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누구야? 요즘 잘 나간다는 강현준이잖아?
익살스러운 말투의 주인공은 현준이 ‘관리국 꼰대’라고 부르는 친구 안석규였다.
“요즘 잘 지내지?”
-조사과 3팀으로 발령받았어. 많이 바쁘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어색하게 왜 그래? 그냥 말해. 우리 사이에 왜 그렇게 서론을 길게 잡고 있냐?
최근 정신이 없어서 오랜만에 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대해주는 친구의 태도에 현준은 고마움을 느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너, 메이저 신문사나 방송국에 아는 기자 있지?”
-몇 명 있긴 해.
석규의 대답에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예상대로였다.
직급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던전 관리국 직원이었기 때문에 아는 기자가 몇 명 정도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던전 레이드 시대의 시작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던전과 레이드에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기삿거리 하나 줄게. 특급이야.”
언론 역시 현대전에서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