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48화 (48/217)

# 48

13장 트러블 메이커(4)

“히든 던전에서 특별한 장비를 루팅했다는 헛소문 때문에 몇몇 길드들이 저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안데르센과 전쟁을 벌이려면 그들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태민이 차분하게 의견을 말했다.

그는 1시간 전에 종서와 함께 길드장 집무실에 찾아와 지금까지 안데르센과의 비공식 길드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특수 경찰국이 압박을 받는 것 같습니다. 길드장님 자택 마당에서 가져간 시체들의 신원을 조회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이건 ‘배후’ 쪽에서 압박을 넣고 있거나 집행부 헌터들 중에서도 정말 신원을 조회하기 힘든 이들을 골라서 보냈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지만 태민은 ‘배후’ 쪽에서 특수 경찰국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가설은 틀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특수 경찰국에 강력한 압박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적어도 고위 정치인이나 대기업 회장급의 인물이 개입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특수 경찰국의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현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안데르센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집행부 전력에서는 저희가 밀립니다. 자금이 확보되었다고는 하지만 최근 상황이 좋지 않아서 집행부 규모는 실질적으로 거의 확장되지 않았다고 보셔도 될 정도입니다. 그동안의 손실만 간신히 회복한 수준입니다.”

“그래도 손실을 빨리 회복했네요.”

“최나영의 비자금 덕분입니다. 길드장님께서 절반을 양도해 주신 덕분에 인원 손실 회복에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회의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특수 경찰국과 길드 총괄국의 행동 때문에 공식 길드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비공식 길드전밖에 길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병력 배치에 대해서…….”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태민이 집행부 명단을 꺼내며 입을 연 순간 종서가 스마트폰을 꺼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는 정보부장의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회의 중에도 스마트폰을 꺼둘 수 없었다. 태민은 물론이고 현준도 그 점을 이해했다.

“길드장님.”

종서는 1분 동안 스마트폰을 귓가에 대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더니 현준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골치 아픈 문제가 터진 것 같습니다.”

표정이 심각했다.

“무슨 일입니까?”

“저희 소속의 정규 길드원 3명과 비정규 길드원 1명이 간밤에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특수 경찰국에서 헌터 범죄로 인지하여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를 시작했습니다만, 남은 증거가 없다고 합니다.”

“잔인한 방법이라면…… 대체……?”

“팔과 다리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부에는 칼로 ‘경고’라는 단어를 새겨놓았습니다. 아무래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길드원 유입을 막으려는 걸로 보입니다.”

종서가 차분한 목소리로 끔찍한 내용을 보고했다. 현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범인은 안데르센의 길드 집행부가 분명했다.

보통 집행부는 임무 중에 증거를 남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심증만으로는 특수 경찰국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압력을 받는 상황이니 그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다.

“집행부장.”

화가 났지만, 표정 변화는 없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침착해야만 했다. 현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충직한 부하를 불렀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믿을 수 있으며, 때가 되면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수 있는 그런 충성스러운 부하 말이다.

“말씀하십시오.”

“안데르센 쪽에서 저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징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굳이 길드장님께서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습니다. 저와 집행부에서 ‘처리’하겠습니다.”

태민은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레이스의 길드 집행부는 안데르센의 길드 집행부를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기에는 아직 약했다.

“집행부 간부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하, 하지만…….”

“집행부에는 우리 길드원들의 보호를 부탁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민이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예전부터 ‘레이스’와 인연이 깊었던 그였기에 지금 현준의 지시에 감동한 모양이었다.

현준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시선은 종서에게 향했다.

“정보부장은 안데르센의 길드 집행부 소속 주요 간부들의 이름과 사진을 구해오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비자금을 풀어서 집행부와 정보부를 강화 중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3시간 안에 이름과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종서의 대답에 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사진과 이름만 있으면 그림자를 보내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보부장한테는 하나 더 지시할 게 있습니다.”

“정보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시를 내려주시지요.”

“여기가 어딘지 조사를 좀 해보세요.”

현준은 메모지에 주소를 적어주었다. 안데르센의 길드 집행부장 이규환에게 붙여둔 ‘그림자’가 물어온 주소였다.

“파주에서도 외곽이군요.”

“은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잘만 활용하면 이규환의 발목을 잡아둘 수도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로 움직이세요.”

지금도 안데르센은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현준의 지시에 태민과 종서는 집무실을 나오기 무섭게 행동에 나섰다.

각자 스마트폰으로 직속 부하들에게 연락하여 길드장의 말을 전달하고 임무를 수행할 것을 지시했다.

길드장 집무실에 홀로 남은 현준은 두 눈을 감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규환한테 붙여두었던 그림자에게 귀환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종서가 집무실에 다시 찾아왔다.

“요청하신 집행부 간부 명단입니다. 사진도 같이 들어 있습니다.”

종서가 가방에서 꺼낸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현준은 안에 들어 있는 서류를 꺼내 빠르게 훑었다.

요청했던 대로 사진과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다른 정보는 없었다.

집행부는 은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지만, 간부들은 보통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진과 이름을 확보하는 건 레이스의 길드 정보부 수준에서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수고했습니다. 이만 가보세요.”

현준은 종서가 집무실에서 나가기 무섭게 그림자를 소환했다.

새롭게 생성한 게 아니라, 규환에게 붙어 있다가 명령을 전달받고 귀환한 그림자였다. 현준은 사진을 한 장을 뽑아서 보여주었다.

“안데르센 길드 집행부 4팀장 임경준.”

나지막이 말하자 그림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한 남자가 다리 위에서 강가를 향해 시선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길드장님께서 직접 내린 지시가 확실합니까?”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강가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종서가 현준에게 준 명단에 있는 안데르센 길드 집행부 4팀장 임경준이었다.

“예. 길드장님께서 레이스 길드원 사냥을 지시한 게 확실합니다. 이미 저희 팀으로 사냥 명단이 넘어왔어요.”

경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몸 좀 풀 수 있겠네요. 킥킥.”

“그래 봤자 잔챙이 사냥이라서…… 준비 운동 거리도 안 될 겁니다.”

집행부 헌터가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경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인간 사냥’이라는 잔혹한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그저 ‘놀이’로 여기는 듯했다.

그들은 실버 티어에서도 중견급 길드였고 상대방은 브론즈 티어 길드에 불과했으니 자신들이 상위 포식자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벌써 한 명 죽였습니다. 오전 11시 즈음에요.”

“그 시간이면 지시가 도착한 직후일 텐데요? 바로 행동한 겁니까?”

제대로 된 지시가 전달된 시간이 오전 10시 정도였다.

11시에 하나를 사냥했다면 지시를 확인하기 무섭게 움직였다는 말이 된다.

경준은 부하의 행동력에 감탄하여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어지간히 굶주려 있었나 보군요?”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요즘 조용했잖습니까.”

길드에 대한 충성심이나 돈을 목적으로 집행부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살인을 좋아해서 소속을 원하는 경우도 적은 편은 아니었다.

길드에서 원하는 목표만 죽이면 뒤처리를 집행부에서 맡아주니까 살인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직장이었다.

“누구를 죽였습니까? 레이스 길드원인 건 당연히 아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D급 헌터였습니다. 20대 초반인 것 같았는데, 각성하고 얼마 되지 않은 병아리였습니다. 시체도 적당히 훼손해 두었으니 알려지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충분할 겁니다.”

“잘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당분간 재밌어지겠네요.”

경준은 말을 마치며 품속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켜려는 순간이었다.

“어……?”

라이터를 들고 있는 왼팔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고통이 찾아오려는 찰나에 경준은 그만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으, 으아아아악!”

왼쪽 다리가 사라졌다. 다리가 붙어 있었던 곳에서는 붉은 피를 울컥 쏟아냈다.

“티, 팀장님!”

집행부 헌터가 황급히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기를 꺼냈다. 날카로운 검이 달빛을 받아 스산하게 빛났다.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전혀 안심되지 않았다.

마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훑었지만,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악!”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나도 끼어줄래?”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이는 강현준이었다. ‘하사신의 가호’를 이용해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레, 레이스 길드장…… 강현준……?”

“으아아아아! 사, 살려줘!”

안데르센의 길드 집행부 헌터는 현준은 한눈에 알아보고 전의를 상실했다.

그는 C급 헌터였다. 2차 각성한 A급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경준이 B급 헌터였지만, 지금 그는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사, 살려…….”

“시끄러워.”

“커헉!”

무심하게 휘두른 검이 경준의 목을 깊게 베었다. 짧은 비명과 함께 경준의 숨이 끊어졌다.

그 모습을 본 집행부 헌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제, 제기랄! 누가 좀 도와줘!”

“미안하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어. 이 주변은 통제되고 있거든.”

“무, 무슨…….”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집행부 헌터를 보며 현준은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레이스의 길드 집행부가 힘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다리 하나 정도는 통제할 수 있어.”

집행부 헌터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현준은 일순간에 그의 앞으로 이동하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끄으으으!”

검을 들고 있는 집행부 헌터의 오른팔이 잘렸다. 현준이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그는 날렵하게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그의 왼손에는 방패 대신 작은 바늘이 들려 있었다. 그 모습에서 집행부 헌터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느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 길드원도 똑같이 말했겠지?”

한 걸음 거리를 좁혔다. 그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너는 죽였을 거고.”

짧은 도약. 어느새 현준은 그의 뒤를 장악했다.

“나도 똑같아.”

“큭!”

마력을 주입했다. 피어의 말대로 상처를 통하니 순식간이었다.

-피어와 위험한 협력을 시작합니다. 그와 함께하는 동안 고통은 당신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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