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32화 (32/217)

# 32

9장 초신성(2)

“가, 간부 직위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태민의 무표정이 흔들렸다.

대기업 직속 길드의 간부는 대우도 좋고 권력과도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헌터라면 모두가 바라는 위치였다.

그래서 태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현준이 제일 그룹의 직속 길드로 들어간다면 이제 간신히 회복을 시작한 레이스 길드는 희망을 잃게 되는 셈이다.

-절대 황제, 로마노프가 당신에게 제안을 거절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지엄한 황제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의 가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가 짧은 순간 이어진 고민을 한번에 정리했다.

“거절하겠습니다.”

망설임은 없었다.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강력한 전생의 가호를 두고 저울질할 정도는 아니다.

당연히 승낙을 예상하고 있던 진아와 석현은 적잖이 놀란 것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 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간단하지만 분명한 이유였다.

대기업 직속 길드의 간부가 된다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게 되겠지만 전생의 가호를 하나라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현준도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정말 그 이유 때문입니까?”

“길드장 직위를 제안하신다면 받아들일 생각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높게 생각하시고 계신 것 같네요.”

진아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현준이 2차 각성자일 확률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곧 설립될 제일 그룹 직속 길드의 수장을 맡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기업 직속 길드장은 단순히 뛰어난 무력만으로 오를 수 있는 직위가 아니다.

권력과 가까워야 하며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다.

만약 무력만으로 오르려면 다른 후보들을 일방적으로 ‘압도’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지금은 제 가치가 낮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오늘과 내일은 다를 겁니다.”

튜브에 동영상이 업로드되면 많은 게 변할 것이다.

“꽤 자신만만하네요. 믿고 있는 거라도 있나 봐요?”

“네.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이진아 씨도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저희는 바빠서 이만.”

현준은 말을 끝마치며 태민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옆으로 비켜서는 석현을 지나쳐 주차된 차로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보며 진아가 입을 열었다.

“다른 길드에서는 저처럼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거예요.”

진아는 ‘지금 가면 후회한다’라는 흔한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현준이 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시 찾아오는 쪽은 제가 아니라, 이진아 씨가 될 겁니다.”

하지만 현준은 짧은 대답을 위해 잠시 멈춰 섰을 뿐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걸음을 뗀다.

어느새 주차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대기 중이던 차량을 타고 콜로세움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조용히 응시하던 진아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돌아가죠.”

“괜찮겠습니까? 아가씨. 강현준 헌터를 반드시 포섭해야 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석현은 현준의 확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진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가능하면 확보하는 게 좋긴 하지만, 무리한 요구를 하니까…… 어쩔 수 없죠. 2차 각성자가 최소 S급으로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바꿔 말하면 S급에서 멈출 수도 있다는 거예요. 고작 S급 헌터한테 제일 그룹의 직속 길드장을 맡길 수는 없죠.”

그녀의 기준은 명확했다. 최소 S급으로 성장할 인재를 놓친 게 아쉽기는 하지만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 * *

던전 관리국 헌터과 2팀의 박경호 대리는 퇴근 후,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스마트폰으로 ‘튜브’를 켰다.

침대에 누워서 튜브에 올라온 헌터들의 동영상을 시청하는 건 일종의 직업병이기도 했지만, 그의 취미 생활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올라온 지 1시간이 안 된 동영상인데, 핫이슈라고?’

튜브 메인에는 실시간으로 조회수를 많이 받는 핫이슈 동영상이 올라온다. 경호도 매일 핫이슈 배너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다.

오늘도 튜브를 켜자마자 핫이슈 배너부터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새로운 동영상이 ‘핫이슈’ 배너에 소개되고 있었다.

‘폭풍의 드레이크가 SS급 레이드를 단독 공략하는 직캠이 2시간 만에 핫이슈였을 텐데…….’

그게 지금까지 핫이슈 최고 기록이었다. 튜브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기까지 했으니 최단 기록이 확실하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동영상은 업로드된 지 약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쉽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곧 놀랍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미칠 듯한 호기심이 그의 뇌를 지배했다.

[C급 헌터 포텐 폭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어그로 끄는 제목이었지만 경호는 홀린 사람처럼 이끌리듯 동영상을 재생했다.

“세상에…….”

1분이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다. 하지만 강렬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과정은 카메라가 좇지 못했지만, 결과는 분명하게 담아냈다.

엉망이 된 몸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B급 헌터의 모습은 C급 헌터의 소행이라고 보기에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결과로 볼 때 공식적으로 C급 판정을 받은 헌터가 B급 헌터를 일순간에 ‘압도’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이게 C급 헌터라고……?”

너무 놀란 나머지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C급 헌터라고 하기에는 동작이 B급 헌터가 제압당하는 게 너무 순식간이었다.

‘이 정도면 최소 A급이다…….’

B급 헌터라면 동급의 헌터를 저 정도로 ‘압도’하지 못한다. 경호는 동영상 속 인물이 최소 A급의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낯이 익은데……?’

한순간의 눈부신 섬광이 너무 강렬해서 눈치 못 챘지만 이제 보니 익숙한 얼굴이다. 경호는 재생을 멈추고 영상 속의 남자를 자세히 보았다.

“강현준?”

틀림없는 강현준의 얼굴이다. 그 익숙한 얼굴에 놀란 순간이었다. 상사인 헌터과 2팀장, 이상훈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네, 팀장님.”

퇴근했지만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동영상의 주인공이 강현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 어떤 형태로든, 던전 관리국에서 연락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쉬고 있는데 이렇게 연락이 오니 반갑지는 않았다.

-박경호 대리. 지금 당장 사무실로 와.

“예, 알겠습니다.”

전화 통화가 끝났다. 한숨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긴급 호출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헌터지원부서는 던전지원부서에 비해 긴급 호출이 적은 편이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로 되돌아갔다.

긴급 호출이었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2팀장인 상훈 외에 다른 팀원들도 모여 있었다.

‘미친…… 팀원 전부 호출한 거야?’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팀원들이 고개를 숙인 채 모여 있었다. 긴급 호출을 당한 탓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광경에 경호는 어이가 없었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서 분란을 만들지 않았다.

“박 대리, 왜 이렇게 늦었어?”

상훈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택시까지 탔지만, 잔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경호의 얼굴이 굳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그의 퇴근은 빠른 편이었다. 정상적이라면 지금이 퇴근 시간이었다.

아마 다른 팀원들은 하나둘씩 퇴근을 준비하다가 붙잡혔을 것이리라.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왔습니다.”

“그래. 박 대리도 왔으니까, 회의실로 가자고.”

어디서 깨지고 돌아온 것인지 상훈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그는 허공에 대고 거칠게 손을 휘저으며 먼저 회의실로 걸어갔다.

경호는 10명을 조금 넘는 팀원들과 함께 상훈을 뒤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모두가 착석하자 상훈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아무도 강현준에 대해서 나한테 보고하지 않은 거지?”

표정과 목소리로 볼 때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상사한테 제대로 깨진 모양이다.

경호는 예전에 강현준이 2차 각성자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상훈에게 보고한 적이 있었지만, 상훈은 그 사실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언급할 수도 있지만,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경호는 그냥 넘기기로 다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다는 억울함을 삼키는 게 나았다.

“죄송합니다.”

팀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 상황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제발 일 좀 똑바로 하란 말이야.”

상훈의 질책이 이어졌다. 팀원들은 크게 잘못한 점이 없었지만, 얌전히 듣고 있었다.

그게 지금 상황을 빨리 넘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경호 대리.”

“예, 팀장님.”

10분 동안의 긴 설교가 끝나고 화살의 끝이 향한 곳에는 경호가 있었다. 상훈의 갑작스러운 호명에 경호는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 강현준 헌터 만난 적 있지?”

“예. C급 헌터로 승급시킬 때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좋아. 다른 직원 보내는 것보다 네가 가는 게 좋겠다.”

상훈의 말에 다른 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폭탄 떠넘기기 수준이라서 경호는 한숨이 터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아야만 했다.

“네, 제가 가겠습니다.”

경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은 어디까지 허용됩니까?”

“마정석 정산 우대, 그리고 무장 집행국이나, 특수 경찰국의 간부 직위 제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대우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대우 수준이 중요했다. 대한민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는 국가 전속 헌터 대우 기준이 정리되어 있었다.

“6급 국가 전속 헌터 정도로.”

“팀장님! 6급은 B급 헌터 중에서도 중하위권을 대상으로 하기 적합한 대우 수준입니다!”

경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의 상사인 헌터과 2팀장 이상훈은 낙하산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심할 정도로 머리에 들어 있는 업계 지식이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 강현준 헌터는 누가 봐도 최소 A급입니다. 동영상이 튜브에서 핫이슈로 선정될 정도로 퍼졌으니 유력 길드들도 움직이고 있을 텐데, 6급 대우로는 부족합니다. 최소 4급 이상의 대우와 전용 특혜를 줘야만 합니다!”

“4급 제안하려면 과장님한테 보고하고 승인받아야 하는데…… 나 방금 깨지고 와서 그 인간 얼굴 또 보기 싫거든? 알아서 처리하고 와라.”

큰마음 먹고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상훈의 대답을 들은 경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낙하산이라서 그런지 애초에 제대로 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팀장님. 강현준 헌터는 2차 각성자가 확실…….”

“내가 싫다고 했지? 알아서 처리하라고!”

다시 한번 의견을 말했지만 돌아온 건 쓴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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