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29화 (29/217)

# 29

8장 길드전(3)

헌터들 간에도 커뮤니티가 있고 교류가 있다. 최근 그들 사이에서의 핫이슈는 레이스와 에코의 길드전이었다.

길드전은 흔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쉽게 묻힐 만한 것이지만 약한 길드가 전력이 우세한 길드를 향해 길드전을 선포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핫이슈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광장’이라고 불리는 헌터들 간의 휴게 공간에서도 B급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5층의 대형 게시판 앞과 카페 거리에서는 레이스와 에코에 관한 이야기가 가끔 나올 정도였다.

“요즘 에코가 입은 피해가 누적되었다고는 해도 실버 승급을 앞둔 길드인데…… 브론즈 최하위가 길드전을 선포하다니…… 레이스 길드장도 미쳤나 봐.”

“이번에 새로 들어온 C급 헌터 말이지? 소문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 F급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C급 찍었다고 하더라.”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현준의 승급을 그저 운이 좋았다고 근거 없이 추측했다.

현준에 대한 정보는 길드 관리국에서 잠깐 이슈였던 적도 있지만, 그 후로 공식적인 활약이 없어서 잠잠해진 상태였다.

“하여간, 운이 좋아서 승급한 주제에 자기 실력인 줄 아는 새끼들이 문제라니까.”

던전 관리국에서 심사 기준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기 때문에 가끔 벌어지는 이런 오해가 있었다.

헌터들의 질투와 시기심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다.

“재밌는 소문이네요.”

바로 옆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여성 헌터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머리카락에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였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그 누구의 시선도 감히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녀가 S급 마법계 헌터, 이진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경 쓰이십니까?”

그녀의 앞에 앉은 남자가 물었다. 그러자 진아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브론즈 티어 길드 중에서도 이슈가 된다길래, 조금 궁금했을 뿐이에요.”

“레이스 길드장, 강현준에 대한 호기심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솔직히 에코에는 관심이 없어요.”

남자의 물음에 진아가 대답했다. 에코는 실버 승급을 앞두고 있는 길드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레이스 길드장…… 원래 F급 헌터였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유일 생환 보너스로 C급 헌터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제 귀에 따로 들어온 정보가 몇 개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진아가 눈동자를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녀의 앞에 앉은 검은 정장의 남성은 여전히 사무적인 표정과 태도를 고수했다.

“던전 공략 중반부쯤에서 파티는 전멸했던 것 같습니다. 던전 관리국에서 나온 정보이니…… 출처와 신뢰도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세상에, 정말이에요?”

던전 중반부에 다른 파티원들이 이미 전멸한 상황이었다면 진아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현준이라는 F급 헌터가 혼자서 B급 던전을 공략하고 보스까지 쓰러뜨렸다는 말이 된다.

“2차 각성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던전 관리국의 헌터과 2팀장은 공략이 끝났을 당시 강현준의 부상 상태가 심각해서 2차 각성자라고 판단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래서 박석현 팀장님의 생각은?”

“현 C급 헌터 강현준은 2차 각성자일 확률이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고서는 저도 전달받은 것 같은데, 2차 각성자라고 하기에는 B급 던전에서 입은 부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던데요?”

그녀는 길드 설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슈가 된 몇몇 헌터들에 대한 정보를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준에 대한 것도 아주 조금은 알고 있었다.

“2차 각성자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정보도 많이 없지요. 지금까지 보고된 케이스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정보가 많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석현은 신중한 성격이었고 다행히 그것은 진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2팀장이 난리를 쳐서 당장 헌터과가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이쪽에 정보원을 두고 있는 길드 관계자 중에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2차 각성자가 아니라면요? 단순히 추측이 잘못된 거라면?”

“그래서 저는 이번 길드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명단에 강현준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의 실력을 길드전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길드전은 콜로세움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에 관전이 가능하다.

“확인이 끝나면 바로 움직여야겠네요.”

진아가 말했다. 석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야 합니다. 강현준의 존재가 아직 많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그에게 향하고 있는 시선은 한둘이 아닙니다. 확인이 끝내는 대로 바로 결판을 보셔야 합니다.”

강현준을 주목하는 이들이 적은 건 아니었다.

2차 각성자 확정이 되지는 않았더라도 F급 헌터가 B급 던전에서 유일 생환했다는 것만으로도 잠시 관심을 줄 가치는 충분했으니까.

대부분이 흥미를 잃고 시선을 거두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부는 현준이 2차 각성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요. 박 팀장님은 길드전이 끝나기 전에 강현준과 접촉할 방법을 미리 확보해 주세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석현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최근 며칠 동안 전생의 꿈을 꾸지 않았다. 그래서 조급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력연공법에 더욱 집중했다.

“후우!”

쉬지 않고 3시간 동안 마력을 담아 검을 휘두르다 보니 호흡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마력연공법만 파고든 덕분에 마력의 한계와 검술의 숙련도는 많이 늘었다.

시든밀러가 가르쳐준 마력연공법은 파격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효율이 좋은 수련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생의 방에서 수련하는 게 더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부족해.’

휘둘러진 검이 허공을 갈랐다. C급 헌터라는 타이틀에는 과분할 정도로 빨랐지만 불만족스러웠다.

‘전생의 방에 가야 해…….’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생각했다. ‘그곳’에 가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갈망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준은 오늘도 자정이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현준아…….”

익숙한 기척에 기다리고 있던 소진이 달려 나왔지만, 그녀는 지친 현준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3층으로 올라온 그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노력을 했으니, 이제 전생들이 응답하기를 바랄 뿐이다.

두 눈을 감자 순식간에 의식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시 눈을 뜨자 무수히 많은 문이 줄지어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스스로 ‘전생의 홀’이라고 이름을 붙인, 99만의 전생의 방이 모여 있는 공간에 들어온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됐다!”

정면의 방문으로 시선이 향한다. 그곳에 적혀 있는 이명은.

“정의로운 방패…….”

카르타고가 응답한 것이다. 현준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켜지면서 모래가 깔린 넓은 수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에는 카르타고가 서 있었다. 여느 때처럼.

“왔나?”

“준비되었습니다.”

옆에 놓여 있는 방패와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현준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며 카르타고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강해질 준비가 되었군. 오늘은 네게 방패를 이용한 반격 기술을 가르쳐주겠다.”

“반격기 말입니까?”

“방패 치기와는 차원이 다를 거다.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래도 내가 있던 차원을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반격 계열의 기술이니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카르타고의 목소리에서 슬픔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단치히의 감정과 닮아 있었지만 길게 생각할 기회는 없었다. 카르타고가 강렬한 시선을 보내며 방패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설명하는 것보다 바로 보여주는 게 좋겠지!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펼쳐봐라!”

현준은 대답 대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들어 올린 검에 오러가 피어올랐다.

두 사람의 날카로운 시선이 서로에게 닿은 순간, 현준이 총탄처럼 카르타고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A급 헌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치명적인 움직임이었지만 카르타고는 차분하게 방패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콰앙!

카르타고의 방패와 현준의 검이 충돌하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강한 힘이 실려 있는 일격이었지만 카르타고는 미동조차 없었다.

“잘 봐둬라.”

무슨 뜻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였다. 카르타고의 오러 실드가 충격파를 토해냈다.

“크아악!”

단순한 마력의 파동이 아니었다. 그것을 이루는 건 날카로운 오러 파편이었다.

헌터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몸이 오러 파편의 폭풍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비명을 내지르며 멀찍이 날아간 현준은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이곳은 전생의 방.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고통은 여전히 느껴졌지만, 그것보다는 더 강한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는 희열이 현준을 흥분시켰다. 그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하!”

엄살 피울 생각은 없다. 곧바로 일어나 전투 자세를 취했다.

“제가 이제 뭘 하면 되겠습니까? 카르타고.”

“이 기술을 익히기 위한 동조 조건은 간단하다.”

현준은 카르타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카르타고는 방패를 집어 던지고 긴 창을 두 손으로 잡았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반격에 성공하는 거다.”

카르타고의 모습이 사라졌다. 기척을 감지했을 때 그는 이미 좌측에서 창을 내찌르고 있었다.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방패로 창을 막아냈다.

“큭!”

“조절했다고는 하지만 내 공격을 한번에 막았군! 칭찬할 만한 성장 속도다!”

그는 감탄하며 창을 회수하고는 이어서 2번째 일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반격은 쉽지 않을 거다!”

‘정의로운 방패’가 아니라 ‘창의 달인’이라는 이명이 어울릴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크악!”

조절한다고는 했지만, 카르타고는 ‘최강’의 자리에 올랐던 전생이다.

그가 펼치는 공격이 평범할 리가 없었다. 반격은커녕 방어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가 10번 창을 휘두르면 4번은 방어에 성공했지만, 6번은 창에 꿰뚫려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뒹굴어야만 했다.

“시간제한이 없다고 해서 안이하게 생각하지 마라! 실전과 같이 생각하고 전력을 다해라!”

카르타고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준은 대답 대신 옆에 떨어진 검과 방패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제는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고 체감상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까마득했다.

“포기할 생각이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현준을 보며 카르타고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마치 단검처럼 날아와 심장을 관통했고 현준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며 방패로 몸을 가린 채 검은 카르타고를 향해 겨눴다.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좋다! 나의 환생다운 모습이다!”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공방을 몇 번이나 주고받았을까?

“큭!”

카르타고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현준이 그가 내찌른 창을 방패로 막는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반격이 성공한 것인지 카르타고의 복부에 붉은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을 지켜보는 카르타고 또한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축하한다. 이걸로 조건은 완성되었다.”

최강의 반격을 익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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