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28화 (28/217)

# 28

8장 길드전(2)

“저보고 길드장을 맡아달라는 말씀입니까?”

설마 길드장을 맡아달라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정리되면서 레이스의 길드장을 맡았을 때 얻게 될 이득이 머릿속에 나열되었다.

‘레이스의 길드장이 되면 집행부 헌터들을 이용할 수 있다.’

지금도 집행부 헌터들이 소진과 동생들을 보호하고 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태민이 따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런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현준은 생각했다.

길드장이 된다면 본격적으로 내부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피어오른 불만을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네, 강현준 씨 말고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저는 외부인입니다.”

“길드장 직위를 이어받을 만한 다른 간부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최고 결정권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강현준 씨가 길드장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태민의 목소리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현준이 길드장을 맡으면 레이스가 발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태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길드장이 되면 집행부 헌터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이득이 있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했다.

“좋습니다. 길드에 대한 모든 자료를 오늘 저녁까지 준비해 오세요.”

현준은 이왕 길드장이 되기로 한 김에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 * *

“자료를 준비해 왔습니다.”

태민이 자료집 몇 개를 들고 왔다. 임시 사무실에 앉아 있던 현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받아 든 자료집을 열어 빠르게 검토했다.

“생각보다 길드 재정 상태는 좋네요?”

레이스는 브론즈 티어의 길드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 읽고 있는 자료가 사실이라면 자금 사정은 중상위권 정도에는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저희 길드의 유일한 자랑입니다.”

“그런데 정규 길드원의 수도 적고 집행부의 규모도 큰 편은 아니네요.”

“네. 애초에…… 저희 길드장님께서 마정석 정산을 유리하게 받기 위해 설립한 길드라서 집행부 자체가 만들어진 지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길드의 간부들은 소속된 길드의 티어에 따라 정산 비율이 올라간다.

또한 소속 길드원들이 길드 단위의 던전이나 레이드를 공략하고 마정석을 매각할 때마다 추가로 정산세를 받는다.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소규모 길드를 만드는 경우가 흔했다. 태민의 말을 들어보니 레이스 길드도 그런 경우인 듯했다.

“그렇군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런 경우 가장 먼저 규모가 큰 다른 길드의 흡수합병 대상이 되고는 했다. 레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방침을 바꾸겠습니다. 이제 레이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갑니다.”

“세력을 키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태민이 물었다. 현준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습격을 보면 아시겠지만, 에코의 계획이 방해받은 것 때문에 배후에 있는 놈들이 화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암살자를 보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에코의 배후가 우릴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세력을 키워야 합니다.”

“길드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어느새 현준에 대한 태민의 호칭이 ‘길드장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태민이 현준을 보며 질문했다. 현준이라는 뛰어난 헌터를 길드장에 앉히는 걸로 인해서 벌써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길드가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태민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에코를 흡수합병 하는 겁니다. 저는 에코에 이렇게 시비가 털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흡수합병을 위한 공식 길드전에는 정규 길드원 또한 참여가 가능하다.

집행부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에코의 정규 길드원 전력은 멀쩡하기 때문에 공식 길드전이라면 레이스가 에코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가능합니다. 공식 길드전의 룰은 알고 계시죠?”

“네, 비공식 길드전과는 다르게 대련 형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배하거나 임의로 교체 선언이 없으면 한사람이 계속 필드 위에서 다음 적을 상대할 수 있죠.”

“설마 길드장님께서는…….”

태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현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한 것이다.

“그 설마입니다. 저와 김태민 씨가 에코의 참가자 9명을 전부 쓰러뜨리는 겁니다.”

무식하지만 현재 전력이 부족한 레이스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승리 방법이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김태민 씨가 2명만 이겨준다면 나머지 7명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현준의 흔들림 없는 모습은 태민에게도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길드전이 시작되기 전에 저희 측 참가자 명단을 에코 쪽에 살짝 흘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당연하지만 명단은 태민을 제외하면 전원 C급 헌터로 구성될 예정이었고 거기에는 현준도 포함될 것이다.

대부분이 C급 헌터로 구성되어 있으면 에코 쪽에서도 과잉 전력을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 역시 집행부가 무너지면서 많은 헌터들이 이탈했기 때문에 길드전에 과잉 전력을 투입하는 것은 피하고 싶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건 모를 거다.’

C급이지만 A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헌터, 그게 바로 강현준이다.

에코 집행부가 그나마 정보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집행부는 그 특성상 단독 서버를 유지하거나 실물 문서로 자료를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무실이 불에 타고 관계자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그 정보가 다 날아갔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태민은 두뇌 회전이 빠른 편이었다. 그는 현준의 의도를 바로 눈치챘다.

“하지만 바로 길드전을 선포하기에는 명분이 없습니다.”

“김태민 씨. 집행부장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습격은 성공했다고 보십니까?”

“저희 길드장님을 암살하고 집행부에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증거를 인멸하지 못했으니, 실패한 작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준의 신고로 특수 경찰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그들은 집행부 작전에서 꼭 필요한 증거인멸을 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증거를 바탕으로 먼저 클레임을 거세요. 특수 경찰에서 확보한 시체 중에 에코 집행부 소속이 1명 정도는 있을 겁니다. 거액의 손해배상 정도면 적당할 것 같네요.”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흡수합병을 조건으로 길드전을 걸면 되는 겁니다. 명분이 있고 증거가 확실하니 길드 총괄국에서도 길드전을 허가해 줄 겁니다.”

흡수합병을 진행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다행히 레이스의 재정 상태는 좋은 편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것 같다.

흡수합병 과정에서 에코 길드원들이 많이 이탈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다면 레이스는 실버 티어를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지금 바로 진행합니까?”

태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세요.”

작전이 시작되었다. 현준은 빠르게 절차를 밟아서 레이스의 정식 길드장이 되었고 태민은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길드 총괄국을 통해 정식으로 에코에 클레임을 걸었다.

클레임을 통해 요구한 피해 보상금은 에코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지만 그들의 잘못이 명백했기 때문에 길드 총괄국에서도 중간에 나서서 금액을 줄이지 않았다.

한편, 현준은 이사를 서둘렀다. 부동산 업자로부터 바로 입주가 가능하다는 확답을 들었으니, 더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가구를 고르는 일은 모두 소진에게 맡겼다. 덕분에 이사를 끝내고 3일 만에 텅 비어 있던 공간이 평범한 가정집 같은 모습을 갖췄다.

사정상 집들이는 하지 못했지만 대신 태민이 여러 선물을 사 들고 찾아왔다.

“와! 아저씨 왔다!”

동생들은 태민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긴, 올 때마다 과자나 장난감 같은 선물을 사 들고 오니, 싫어할 리가 없다.

10분간의 선물 증정이 끝나고 태민과 현준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에코에서 피해 보상을 거절했습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레이스에서 요구한 금액은 에코 정도의 길드라고 해도 심하게 부담될 정도였다.

애초에 그쪽에서 거절할 것을 노리고 요구한 클레임이었다.

“좋아요. 이제 계획대로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느새 현준의 충직한 부하가 되어 있었다.

* * *

에코 길드장 최나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레이스 길드장을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긴 했지만, 증거를 인멸하지 못한 탓에 특수 경찰국의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길드의 과격주의자들이 행동했다고 변명하여 몇 명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그나마 배후에 있는 ‘높으신 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진짜! 짜증 나!”

홧김에 던진 머그컵이 벽에 부딪혀 처참하게 박살 났다.

보조계이긴 하지만 그녀도 B급 헌터였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실린 힘은 일반인 수준이 아니었다.

집무실 구석에 있던 길드장 비서이자 B급 마법계 헌터인 이진규가 짧은 한숨과 함께 간단한 마법으로 깨진 머그컵 조각을 정리했다.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단 말해 봐.”

말하라고는 했지만 나영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진규는 여전히 차분한 얼굴이다.

길드장 비서로 적지 않은 시간을 근무하면서 그녀의 히스테리를 받아준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익숙했다.

“레이스에서 저희한테 길드전을 선포했습니다.”

“뭐? 총괄국에서 그걸 승인했다는 말이야?”

“증거가 너무 명백해서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나쁜 새끼들…… 우리 돈은 그렇게 처먹고 도움이 안 되네.”

나영이 불평했다. 그동안 길드 총괄국의 간부들에게 바친 뇌물이 아까웠다.

“레이스도 피해가 적지는 않을 텐데, 길드전을 걸어올 여력이 남아 있나 봐?”

“예전의 비공식 길드전에서 활약한 용병을 믿는 것 같습니다.”

“용병은 길드전 참가 못 하잖아.”

공식 길드전에 참가하려면 정식으로 길드에 소속되어 있어야만 했다.

“임시로 정규 길드원에 가입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그놈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 투자를 하는 거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A급 정도의 실력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공식 길드전에서 레이스가 승리한 것만 봐도 신빙성 없는 정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걱정 없네. A급 헌터를 용병으로 계속 운용할 정도로 레이스의 재정이 여유로운 건 아닐 텐데…… 그렇지?”

레이스의 재정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건 브론즈 티어 기준이다.

A급 헌터를 용병으로 장기간 운용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나영은 판단했다.

“명단은 확보했어?”

길드전에 참가하는 이들의 명단은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하면 확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특히 길드 간의 세력이 많이 차이가 날 경우 입수 난이도는 낮아진다.

“지금 확보하고 있습니다. 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진규는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B급 헌터가 1명 있고 나머지는 모두 C급이네요.”

“뭐야? 괜히 쫄았잖아.”

“굳이 던전 공략에 집중하고 있는 저희 측 A급 헌터를 동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에코에 유일하게 남은 A급 헌터인 백한수는 길드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던전 공략에 집중하고 있었다.

“B급 헌터 5명만 동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진규의 말에 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겼네.”

나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모든 것이 현준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