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24화 (24/217)

# 24

7장 리퍼가 남긴 것(1)

대부분의 길드가 그렇듯 에코 길드 또한 도심에 길드 사무소를 두고 있다.

던전 레이드 시대가 찾아오면서 도심도 그렇게 안전하기만 한 곳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길드 사무소나 주요 관공서 주변에는 무장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에코 길드 사무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헌터와 무장 경비 등으로 구성된 병력이 언제나 길드 사무소 내부와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경비 임무를 맡은 헌터들은 집행부 소속이 아닌 정규 길드원들도 있었다.

“느낌이 안 좋아.”

“느낌이 좋은 날이 있기는 하냐?”

내부 경비를 맡은 집행부 헌터의 중얼거림을 들은 동료는 신경질적인 시선을 보내며 투덜거렸다.

“이번에는 확실해. 누가 길드 사무소에 침투했어.”

“길드 사무소에는 마법 결계가 가동 중일 텐데? 누가 침입했으면 바로 경보가 울렸을 거야.”

“내 마력이 경고하고 있어. 뭔가 일이 터진다.”

“마력이 아니라 중2병이겠지.”

그는 툭하고 더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동료의 목을 관통한 단검의 형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커, 커헉!”

목을 관통한 단검이 뽑혀 나오자 마법계 헌터는 붉은 피를 입 밖으로 왈칵 쏟아내며 힘없이 쓰러졌다.

“제기랄! 이 새끼의 예감이 맞을 줄이야!”

전투계 헌터가 황급히 장검을 뽑아 든 순간이었다. 아래에서 싸한 느낌이 들어서 시선을 내리니 폭포처럼 피를 쏟아내고 있는 복부가 보였다.

“어, 어느새…….”

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암습이다. 순식간에 급소를 세 곳이나 당했다.

‘서, 설마…… A급 헌터……?’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이마에 단검이 꽂혔기 때문이다.

집행부 소속의 헌터 2명을 순식간에 처리한 암살자는 어둠이 끝나는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그는 현준이었다.

‘이게 하사신의 가호인가? 생각보다 대단하네.’

어둠과 그림자만 있으면 헌터들은 물론이고 마법 결계조차 현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덕분에 외부를 지키는 경비나 헌터들과의 전투 한번 없이 길드 사무소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김태민의 정보에 의하면 야간에 길드 사무소 내부를 지키는 헌터들은 모두 집행부 소속…….’

집행부 소속이라면 망설임 없이 모두 죽여 버릴 수 있다.

-달콤한 피의 냄새가 리퍼를 흥분시킵니다. 깨어난 본능은 잠시나마 당신을 살육에 특화된 학살자로 만듭니다.

리퍼 역시도 흥분한 듯했다.

‘집행부는 다 죽인다.’

피 묻은 단검을 들어 올리며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후환을 남겨둘 생각은 없다.

집행부 헌터들을 전멸시키는 것으로 에코 길드의 팔과 다리를 끊고 눈과 귀를 막을 생각이다.

‘찾았다.’

전력 제어장치를 찾았다. 입가에 냉소를 머금은 채 전력 제어장치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회선을 다 절단하고 장치를 난도질했다.

‘어차피 기습 사실은 금방 들킨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드러내고 내게 유리한 어둠 속에서 전투를 진행하는 게 나아.’

에코 길드에서 사무소로 사용하는 5층 빌딩 전체가 정전되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담당 부서에 연락해서 알아봐.”

에코 길드원들은 단순한 정전으로 보고 느긋하게 행동했다.

설마 도심에 있는 길드 사무소를 누군가 대담하게 공격할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바로 경비업체나 특수 경찰을 호출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고 결국에는 재앙을 부르고 말았다.

“커헉!”

전력 시스템을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집행부 헌터가 짧은 비명과 함께 목에서 핏줄기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집행부 사무실이 얼마 남지 않았군.’

어둠 속에서 살기 가득한 눈동자를 빛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1층에서 봤던 건물 안내도에는 4층에 집행부 사무실이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지금 이곳은 3층이었다.

하나의 층계만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에 흥분되는 마음을 좀처럼 감출 수 없었다.

‘적어도 야간 대기조는 전부 죽인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집행부 전력을 모두 찾아내 전멸시키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하지만 야간 대기조 정도는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집행부는 특성상 밤에 대기하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그들만 모두 죽여도 에코 길드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집행부장이 있었으면 좋겠군.’

모든 일을 지시한 원흉을 처리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행운일 것이리라. 짧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 그는 4층에 도착했다.

현준이 4층의 층계를 넘은 순간이다. 집행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집행부장 정성민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야. 전력 장치 손보러 간 애가 왜 이렇게 안 와?”

성민이 부하 헌터를 보며 물었다. 전력 장치가 지하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건 이상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전력 장치 담당 근무자한테서 벌써 연락이 왔어야 하는 건데…….”

부하 헌터가 말끝을 흐렸다. 성민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총원 무장 상태를 갖추고 대기해!”

어느새 성민의 오른손에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검이 들려 있었다. 집행부 사무실에 있는 다른 헌터들 역시도 무기를 꺼냈다.

방어구를 꺼내서 챙겨 입을 시간은 없었지만 모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크억!”

“커헉!”

비명과 함께 2명이 풀썩 쓰러졌다.

마법계 헌터가 황급히 빛무리를 소환해 어둠을 밝혔지만, 눈에 보이는 건 쓰러진 2구의 시체와 혼란스러워하는 집행부 헌터들뿐이었다.

습격한 암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 파악해!”

“C급 헌터 2명이 당했습니다!”

“기척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집행부 헌터들이 보고했다. 집행부장이자 A급 헌터인 정성민조차 찰나의 순간 희미한 기척을 감지했을 뿐, 추적하는 데는 실패할 정도였다.

‘도대체 어디냐…….’

성민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현준은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법계 헌터가 조명을 소환했지만,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이다.

‘남은 숫자는 6명인가……?’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저놈이 집행부장인가……?’

성민에게 시선이 닿았다. 그에게서 다른 이들에 비해서 훨씬 많은 양의 마력과 절제된 살기가 느껴졌다.

‘마법계 헌터부터 처리한다.’

단검을 뽑았다. 동작이 클수록 은신이 풀릴 위험이 있지만, 곧바로 은신 상태로 돌아올 자신이 있었다.

하사신의 가호 덕분에 어둠의 장막에 숨는 기술의 숙련도는 최상에 가까울 정도였다.

휘익-

“커헉!”

목에 단검이 꽂혔다. 목에 단검이 꽂힌 헌터는 입 밖으로 피를 토해내며 힘없이 쓰러졌다.

B급 마법계 헌터만 되었어도 방어 마법으로 막을 수 있을 정도의 기습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수준은 그 정도로 높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습이다!”

“대형을 편성해!”

성민은 차분하게 지시를 내리며 사라진 마법 조명을 대신해 드론을 띄웠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들고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명.’

빛에 닿으면 은신이 풀린다. 가호와 함께 전해진 하사신의 지식과 기억에 섞여 있는 정보였다.

현준은 차분하게 빛을 피해 방진으로 접근해서 검을 휘둘렀다.

“커헉!”

“크악!”

2명이 더 당했다.

‘이제 3명 남았다.’

단검을 고쳐 잡았다.

“제, 제기랄!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부장님! 이거 A급 헌터인 것 같습니다!”

“닥치고 집중해! 이러다 다 죽는다!”

성민은 긴장감을 떨쳐내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냈다.

사실 A급 헌터인 그조차도 부하 헌터들이 쓰러질 때마다 잠깐씩 드러난 걸 제외하면 기척을 거의 읽지 못했다.

‘괴물이다…….’

긴장으로 인해 눈동자가 떨렸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A급? 아니야…… S급일지도 몰라…….’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남은 부하 2명이 소리 없이 쓰러졌다.

“제기랄!”

성민이 욕설과 함께 검을 휘두르자 붉은빛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벽과 바닥에 닿기 무섭게 뜨거운 화염이 피어올랐다. 부하들 때문에 쓰지 못한 광역 기술이었다.

“머리가 아주 안 돌아가는 건 아닌가 보네.”

집행부 사무실을 휩쓴 불꽃의 폭풍 때문에 어둠이 모두 녹아내리고 현준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성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강현준, 너였나?”

예상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안도했다는 느낌의 목소리였다.

은신과 암살에 능한 S급 헌터를 예상했지만 실상 모습을 드러낸 이는 C급 헌터였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었다.

“나를 알고 있나?”

“그래. 혜진이를 죽인 새끼잖아.”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혜진이가 바람을 피운 상대가 이 새끼인 모양이다.

“너라서 다행이군. 어디서 S급 은신 아이템을 얻은 것 같지만 이렇게 밝은 곳에서는 무용지물일 테니…… 이제 너는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성민의 태도에 현준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네.”

“뭐? 어이가 없는 건 나야. 뭘 믿고 이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뒷감당이 안 될 거다.”

성민이 검을 가볍게 흔들자 주변에 10여 개의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파이어볼보다는 작은,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였지만 꽤 위협적인 마력이 담겨 있다.

‘날 얕보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패서 참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간다.’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나며 살기를 흘린 순간. 어느새 현준은 단검을 버리고 양 손에 방패와 장검을 들고 있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달콤한 피의 냄새가 리퍼를 흥분시킵니다. 깨어난 본능은 잠시나마 당신을 살육에 특화된 학살자로 만듭니다.

마력을 운용하기 무섭게 3개의 가호가 연이어 발현되었다.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실드로 무장함과 동시에 현준의 눈에 성민의 방어가 취약한 부분과 급소가 붉게 물들어서 보였다.

“오, 오러 사용자라고? 말도 안 돼! 어떻게 C급 주제에!”

성민은 오러를 사용하는 현준을 보며 경악했다.

‘하긴 보고 받은 적이 없었을 테니까.’

보고를 할 만한 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니 현준이 오러 사용자라는 정보를 입수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놀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현준은 시계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공권력이 개입할 가능성이 컸다. 최대한 빨리 성민을 죽이고 현장을 떠나야 한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성민을 향해 방패를 들어 올린 채 화염을 뚫고 돌진했다.

“이런!”

성민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현준이 코앞까지 접근한 뒤였다.

성민은 붉게 타오르는 화염 속성의 오러를 머금은 검을 휘둘러서 현준의 방패를 타격했다.

콰앙!

화염과 오러가 충돌하면서 사방에 마력 파편이 튀었다.

“화염이여!”

성민이 외치자 부유하던 10여 개의 화염구들이 현준의 사각 지대를 노렸다. 방패와 검으로 화염구 세례를 막아냈지만 끝이 아니었다.

“잘 가라, 애송아.”

눈앞에서 휘몰아친 화염의 폭풍이 현준을 집어 삼켰다.

“이게 A급 헌터라는 거다.”

모든 것을 끝냈다고 생각한 성민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검을 집어넣었다.

“약해.”

“뭐, 뭐라고? 불가능해!”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성민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살기는 현준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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