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9화 (19/217)
  • # 19

    5장 도와드릴까요?(5)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력을 끌어 올리자 두 개의 가호가 발현되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마력연공법을 수련해서 그런지 오러가 눈에 띄게 선명해졌다.

    “미친! 오러 사용자라고?”

    리더는 경악했다. 그는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오러의 색과 느껴지는 마력으로 볼 때 B급 헌터인 나보다도 수준이 높은 오러 사용자다.’

    거리를 벌리는 5초간이었지만 리더는 현준의 오러 경지가 자신보다 높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수신호를 보내서 부하를 호출했다.

    C급 헌터 1명이 합류했다. 마법계 헌터인 모양인지 두 손을 들어 올리자 다량의 마력이 집중되는 게 보였다.

    “파이어볼!”

    머리통만 한 화염구가 현준을 노렸다. 하위 마법이지만 정통으로 맞는다면 지금의 현준은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안 맞으면 돼.’

    방패를 들어 올려 방어했다. 완벽한 방어였다. 파이어볼과의 충돌 충격도 오러 실드가 대부분 흡수했다.

    ‘노림수는 이게 아니다!’

    전생들과의 실전 경험이 위험을 경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파이어볼은 단순한 눈속임. 진짜는 배후에서의 기습이다. 몸을 반전하면서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서로 충돌하면서 사방에 마력 파편을 흩뿌렸다. 현준은 차분하면서도 힘차게 검술을 펼쳐서 리더를 몰아붙였다.

    ‘내, 내가 이 정도로 밀리다니……!’

    리더는 경악했다. 브론즈 티어에서도 더럽기로 유명한 에코 길드의 집행부로 활동하면서 실전 경험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의 헌터를 상대해 보니 자신은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파이어볼!”

    시동어와 함께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현준은 리더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계 헌터는 자신의 공격 마법을 쉽게 방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옆으로 비켜나면서 방패로 부드럽게 파이어볼을 흘려내는 모습은 적이 아니라면 감탄사를 뱉어낼 정도로 완벽했다.

    “항복해라. 네가 졌다.”

    리더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

    전장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소란스러움이 가라앉고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불길한 마음에 빠르게 시선을 흩뿌렸다. 태민을 포함한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이 모두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4명은 숨통이 완전히 끊어진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에코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은 고작 3명이 쓰러져 있을 뿐이다.

    ‘주변을 너무 방치했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처음부터 전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항복해라. 살려줄 수도 있다.”

    리더가 말했다. 달콤한 유혹이다. 살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으로 카르타고와 하사신, 그리고 시든밀러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잠깐이나마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지만 곧 연기처럼 흩어지고 냉정한 사고가 깨어났다.

    ‘살려줄 수도 있다고? 확실하게 보장하는 게 아니잖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에 리더가 있었다.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검을 들어 올린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시선은 흔들림 없었으며, 들어 올린 검은 싸울 의지를 나타냈다. 그 모습을 본 리더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공격 신호다.

    “파이어볼!”

    육감이 사방에서 들어오는 위험을 경고했다.

    현준은 마력을 끌어 올려 가호를 유지하며 최선을 다해 저항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신에 상처가 늘어갔다.

    흘린 피가 작은 웅덩이를 만들 정도였다.

    “저 새끼 지쳤어!”

    “계속 공격해!”

    에코 길드 집행부 헌터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아!”

    휘둘러진 검이 헌터의 목을 베었다.

    “끄르르륵!”

    이걸로 3명째 죽였다. 하지만 B급 헌터가 4명이나 남아 있었다. 수가 너무 많았다.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침묵했다.

    “하사신!”

    하사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시든밀러어어어!”

    시든밀러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새끼 뭐라는 겁니까?”

    “나도 몰라. 미친 것 같은데?”

    대신 들려온 것은 비아냥.

    “도와줄 사람은 없다. 괜히 여기를 비공식 길드전의 장소로 정한 게 아니거든.”

    리더의 말에 현준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카르타고와 하사신, 그리고 시든밀러조차 응답하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단치히의 이름까지 속삭이듯 불러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리퍼!”

    그 이름을 부른 순간 내면에 잠들어 있던 위험한 무언가가 눈을 떴다.

    -살육의 피가 잠들어 있던 리퍼의 살의를 깨웠습니다. 치명적인 살기의 일부가 해방됩니다.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이었다.

    쿠웅!

    뭔가가 방출되었다. 하지만 마력은 아니었다. 그것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크윽!”

    “허, 허억!”

    현준을 포위하고 있던 에코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이 큰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렸다. 외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내상인가?’

    생각은 길지 않았다. 절호의 기회다. 가장 가까운 헌터를 향해 거리를 좁히며 검을 내찔렀다.

    “커, 커헉!”

    살기에 짓눌려 있던 B급 헌터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 하고 검에 심장을 관통당했다.

    그가 바닥에 쓰러진 뒤에서야 다들 간신히 신체의 자유를 회수했지만 이미 현준은 다른 헌터의 배후로 이동한 뒤였다.

    -달콤한 피의 냄새가 리퍼를 흥분시킵니다. 깨어난 본능은 잠시나마 당신을 살육에 특화된 학살자로 만듭니다.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의 헌터의 등에 붉은 점이 여러 개 보였다.

    현준이 그 붉은 점이 ‘약점’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등의 중앙에 위치한 붉은 점에 검을 꽂아 넣었다.

    “어, 어느새……! 크악!”

    일격이었다. 그는 배후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대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현준이 내찌른 검을 피하지 못했다.

    등을 통해 심장이 꿰뚫렸다. 그는 피를 쏟아내며 힘없이 쓰러졌다.

    ‘2명 남았다.’

    현준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리더와 그의 부하인 B급 헌터만 남았다. 둘만 처리하면 끝나는 것이다.

    “제, 제기랄!”

    리더가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B급 헌터 2명이 당했다. 욕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리더는 부하와 함께 공격을 퍼부었지만 현준의 방패에 계속해서 막히고 말았다.

    ‘무슨 놈의 방패술이……!’

    ‘도저히 빈틈이 보이지 않아.’

    리더와 B급 전투계 헌터는 경악했다.

    가호에 방패술에 대한 지식이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방패술의 최강이라고 불리는 카르타고에게 직접 배웠기 때문에 고작 B급 헌터 둘이서 뚫을 수 있을 만한 방어가 아니었다.

    “빈틈.”

    “크아악!”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내찔러진 검이 B급 헌터의 복부를 찔렀다. 일격에 급소를 관통당했지만 그는 초인 같은 정신력을 발휘하여 복부에 꽂혀 있는 검을 붙잡았다.

    “크, 크아아아아악!”

    오러 블레이드를 붙잡은 순간 끔찍한 고통과 함께 붉은 피가 사방에 튀었다.

    “팀장님! 어서!”

    리더, 팀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현준을 향해 장검을 휘두르며 거리를 좁혔다.

    공격 수단이 봉쇄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한 것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준의 모든 공격 수단이 봉쇄된 건 아니었다.

    콰앙!

    순식간에 휘둘러진 방패가 팀장의 안면을 타격하자 폭발음과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머리통이 처참한 몰골로 박살 났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통이 끊어졌다.

    “티, 팀장님!”

    최후의 수단을 믿고 필사의 각오를 펼쳤지만 무너지고 말았다. 현준의 검을 붙잡고 있는 헌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주형석 팀장님이 일격에 당했다고 말도 안 돼…….’

    믿기 힘들지만 현실이었다.

    ‘A급 헌터가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팀장님이 이렇게 쉽게 당할 리가 없어!’

    그는 현준이 A급 헌터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현준은 이제 C급 헌터가 된 병아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크, 크으윽…….”

    검을 뽑아 내려고 했지만 어림없었다. 현준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는 단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낑낑거리는 헌터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끄르르륵!”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헌터의 몸이 축 늘어졌다.

    ‘다 정리된 건가?’

    현준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를 제외한 전원이 쓰러져 있었다. 불규칙적인 호흡을 빼면 움직임도 없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목을 찌르면 돼.’

    핏물이 가득 묻어 있는 단검이 달빛을 받아 스산하게 빛났다.

    예전의 그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만 꿈속에서의 수련으로 감정이 마모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사신과 리퍼의 가호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지식과 함께 이념, 그리고 생각이 스며든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잔혹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망설이면 안 돼. 어차피 날 죽이려고 했던 새끼들이야.’

    손이 살짝 떨리는 듯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내고 마음을 다 잡았다.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킨 뒤, 쓰러져 있는 에코 길드 집행부 헌터들의 숨통을 모조리 끊어 놓았다.

    ‘이건 쓸 만하군.’

    리더의 몸에서 C급으로 보이는 장검을 집어 들었다. 상태가 괜찮아 보였기 때문에 직접 사용할 생각이다.

    ‘다 죽었군.’

    모두 죽었다. 손에 든 단검으로 모조리 죽였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그는 레이스 길드원들의 생존을 확인했다.

    모두 죽었다면 뒤처리가 조금 힘들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태민의 숨통이 붙어 있었다. 다른 이들은 숨을 쉬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크윽…… 다행히 치명상은 아닙니다.”

    현준은 신음을 흘리며 힘겹게 일어서는 태민을 부축했다. 태민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걱정하지 마세요. 끝났습니다.”

    “우리가…… 이긴 겁니까?”

    “네. 제가 다 처리했습니다.”

    “맙소사……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순수한 감탄사였다. 에코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에게 맞서기 위해 무기를 뽑아 든 아군이 허무하게 쓰러지는 게 태민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못해도 6명 이상이 남아 있었을 텐데…….’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 정도였다.

    ‘혼자서 6명 이상의 집행부 헌터들을 상대로 이겼다는 말인가…… 설마 했지만 강현준 씨가 이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한 건 강현준이라는 이름의 C급 헌터와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한 헌터는 곧 권력이었다. 태민은 그 중심부가 될지도 모르는 현준의 측근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뒤처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길드에는 이런 일을 맡아서 하는 인원을 데리고 있습니다.”

    태민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30분만 기다리면 올 겁니다. 그동안 저희는 생존자들을 확실하게 처리해두죠.”

    “제가 처리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원래는 제가 해야 할 일인데…… 이런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 두는 게 좋거든요.”

    태민의 말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혹시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강현준 씨가 위험해졌을 겁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 비공식 길드전의 세계였다.

    “비공식 길드전이 끝났으니, 보수를 바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일 처리가 빨랐다. 그래서 좋았다. 현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계좌를 적어주었다.

    “입금되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위험한 비공식 길드전이 아니라, 평범하게 던전을 공략하고 레이드에 참가하며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계좌를 확인했다.

    [입금 150,000,000원]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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