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5장 도와드릴까요?(4)
“따라 할 수 있겠나?”
검술 시연이 끝났다. 시든밀러가 물었다. 현준은 최후의 검성이 선보였던 검술을 차분하게 되새겼다.
천천히 보여준 덕분에 어느 정도 기억에 남은 것 같았다.
“네.”
대답과 함께 시든밀러가 선보였던 검술을 따라 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동작은 아니었지만 시든밀러가 보기에는 다른 것 같았다.
현준의 움직임을 살피는 그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국의 고등 검술을 한 번 보고 바로 따라 하다니, 내가 마력로를 뚫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재능이 있을 줄이야! 대단하군!’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과한 칭찬은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시든밀러가 호통치긴 했지만 사실 한 번 만에 제국 고등 검술을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현준에게 다가가 잘못된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다시 해봐라.”
현준이 검술을 펼쳤다. 그 모습을 본 시든밀러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훨씬 낫군. 훌륭하다.”
마음속으로는 극찬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현준이 오만해질까 싶은 마음에 간신히 참아냈다.
“이제 마력연공법과 함께 검술을 펼쳐 봐라.”
“알겠습니다.”
시든밀러의 말대로 마력연공법을 사용하면서 검술을 펼쳤다.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은지 현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검술과 마력연공법을 동시에 펼치려니까 집중력이 분산되었다. 그래서 좀처럼 어느 한쪽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집중하기 힘드나?”
“쉽지는 않네요.”
“그게 정상이다.”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고등 검술과 마력연공법을 동시에 행하는 건 뛰어난 기사들조차 힘들어하는 난이도 높은 수련법이었다.
“지금 네가 펼치는 검술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마력연공법을 통해 신체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분명히 생각해 두고 한다면 마음이 편할 거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든밀러의 말이 옳았다. 지금 눈앞에 적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마력연공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동작의 연속에 불과했다.
‘성급할 필요 없어.’
되새기면서 차분하게 검을 휘둘렀다. 오러를 머금은 칼날이 매끄럽게 휘둘러졌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동작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훌륭하군. 이 정도면 첫 번째 수업의 성취로 충분하다.”
“끝난 겁니까?”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모든 전생이 같은 방법으로 수련시키는 건 아닌 모양이다.
“아쉬운가? 미안하지만 내 방식은 하사신과는 달라서 말이지.”
시든밀러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아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변태는 아니라서요.”
창에 찔려 꼬챙이가 되는 건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감수하겠지만 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또 언제 만날 수 있습니까?”
“네가 준비가 된다면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다.”
“또 뵙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온 순간 다시 의식이 멀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전 9시였다.
“늦잠 잤네…….”
하품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검을 챙겼다. 원룸에서 나온 그가 향한 곳은 동네에 있는 작은 뒷산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산책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여기라면 마력연공법 검술 수련을 방해받지 않을 터였다.
뽑아 든 검에서 희미한 오러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누가 봐도 C급 헌터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현준은 차분하게 마력연공법을 운용하며 검술을 펼쳤다. 시든밀러가 가르쳐 준 검술 동작이었다. 느리지만 정확했다.
‘느껴진다.’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마력의 한계와 친화가 늘어나고 있다. 그 변화가 느껴졌다.
“후우!”
하지만 연공법을 하더라도 마력이 무한한 게 아니기 때문에 휴식은 필요했다. 현준은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아 김밥을 꺼내 먹었다.
‘약속한 날까지 얼마 안 남았어.’
비공식 길드전이 코앞이다.
‘계속 수련한다. 이거라면 더 강해질 수 있어.’
현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 * *
비공식 길드전 당일.
현준은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장 김태민의 연락을 받고 원룸 건물 1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앞에 검은 세단이 정차해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정장을 갖춰 입은 태민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조수석 문을 열며 현준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타시죠. 바로 ‘약속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조수석에 탑승하자 태민이 차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단이 출발하자 태민이 상황 설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30분 정도 걸립니다. 1차 집결 장소에서 저희 집행부 헌터 5명과 합류해서 장소로 이동할 겁니다.”
“우리 쪽 전력은 얼마나 됩니까?”
전력 비교는 필수다.
“저를 포함해서 B급이 2명에 C급이 4명입니다.”
“에코 길드 쪽은요?”
“비공식 길드전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습니다.”
태민의 대답에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정보를 입수할 방법은 있었을 텐데요?”
“저희 길드의 정보부의 능력으로는 에코 길드의 정보를 빼오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동원할 수 있는 자금부터 차이가 나다 보니…….”
태민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길드의 무력한 모습을 설명하는 게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현준도 더 묻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에코 길드는 실버 티어 승급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규모가 크니, 레이스 길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전력을 동원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에코 길드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아서 견제를 계속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집행부 주력을 총동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은 인원을 동원할 것 같지는 않으니…… 긴장하셔야 될 겁니다.”
긴장 탓일까? 태민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준은 달랐다.
정면을 향하고 있는 시선은 흔들림 없었고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다. 덕분에 태민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1차 집결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무장하고 이동하시면 됩니다.”
태민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서 내린 현준은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무기와 방어구 등으로 무장한 헌터 5명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준도 장비를 꺼냈다. 예슬이 빌려준 B급 장검은 에이스에 반납한 뒤였기 때문에 훈련소에서 지급 받은 F급 장검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한이 깃든 방패’라는 이름을 가진 B급 방패를 집어 들었다.
“강현준 씨. 저희 측 장비를 사용하시겠습니까? E급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태민이 말했다. 다른 집행부 헌터 2명이 트럭에서 상자를 꺼내 와서 열었다. 안에는 낡은 가죽 갑옷 몇 벌이 들어 있었다.
“괜찮습니다. 남는 옷이나 하나 있으면 빌려주세요.”
입고 온 옷을 더럽히기는 싫었다. 장비가 D급 정도만 되어도 착용했을 것이다.
“정장이 한 벌 있습니다. 아마 사이즈도 맞을 것 같네요.”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현준이 정장으로 갈아입자 태민은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네. 슬슬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착용해 주십시오.”
태민이 뭔가를 건네주었다. 덮혀 있는 붉은 천을 치워보니 가면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레이스 길드의 다른 집행부 헌터들도 가면을 쓰는 중이었다. 태민도 마찬가지였다.
“재밌네요.”
솔직한 감상이었다. 가면 착용을 끝내고 약속 장소를 향해 태민을 따라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앞장서서 걸어가던 태민이 발걸음을 멈췄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매복의 존재를 경고합니다. 숨은 칼날이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사신의 가호가 매복의 존재를 경고했다.
“매복이 있네요.”
“그렇군요. 먼저 도착해 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전력을 살펴보고 있는 것 같군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김태민 씨.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목소리가 차갑다. 허공에 흩어지는 희미한 살기에 태민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하시지요.”
“시작은 언제입니까?”
전투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저희가 이 장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비공식 길드전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가, 강현준 씨?”
태민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현준의 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 있었다.
“선수 필승.”
팔을 휘둘러 단검을 투척했다.
“으아악!”
예상치 못한 기습. 나무 위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그의 가슴에는 현준이 단검이 꽂혀 있었다.
“일격에?”
“대단해!”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이 환호했다. 시작부터 적의 수를 하나 줄였으니 부담이 크게 줄었다.
“용병을 고용했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어둠 속에서 가면을 쓴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코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이 분명했다.
현준은 검을 뽑아 들고 방패로 몸을 가렸다. 동시에 그들의 숫자를 파악했다.
‘10명.’
이쪽은 현준 자신을 포함해서 7명이다. 숫자는 비슷했지만, 전력 차이는 큰 편이었다.
B급 헌터가 태민을 포함하여 2명에 불과한 레이스 길드와 달리 이곳에 있는 에코 길드의 B급 헌터는 최소 4명이었다.
“A급 헌터가 아니라면 소용없는 짓이다.
에코 길드 측의 리더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공격 신호였다. 집행부 헌터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공격!”
태민도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현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그의 상대는 에코 길드 측의 리더였다.
“압도적인 힘으로 박살 내주마.”
리더가 말했다. 검에서 희미한 오러 블레이드가 내뿜어졌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뒤로 물러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럼 나도 전력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