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5장 도와드릴까요?(3)
굳게 닫힌 철문에 각인된 글자는.
[최후의 검성]
기다리고 있던 검성님이시다. 현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희미한 조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든밀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검이 꽂혀 있는 제단이 중앙에 놓여 있었다. 제단이 있는 곳만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뭐지, 이건?”
저 검을 뽑으라는 건가? 아무래도 시든밀러는 영화 같은 연출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현준은 말없이 중앙의 제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제단에 도착하자 백색의 빛이 춤추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우우웅-
손을 뻗자 제단에 꽂혀 있는 검이 공명했다.
‘뽑으면 되는 건가?’
현준은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제단에서 검을 뽑아냈다. 마치 흙 속에 박혀 있던 것처럼 매끄럽게 뽑혀 나왔다.
스르릉-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날카로운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워…….”
백색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을 본 순간 처음 떠오른 생각을 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역시 나의 환생이야. 검을 볼 줄 아는군.”
시니컬한 목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는 철제 흉갑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나는 최후의 검성, 시든밀러다.”
“강현준입니다.”
통성명이 끝났다. 시든밀러는 현준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러 블레이드…… 쓸 수 있겠나?”
오러를 날카롭게 가공하여 검을 강화하는 것으로 일부 B급 헌터들이 다룰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A급 이상의 경지에 있는 자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오러 블레이드는 기본적으로 절삭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강철조차 쉽게 벨 수 있는 무서운 기술이다.
지금 시든밀러는 그런 엄청난 기술을 C급 헌터에 불과한 현준에게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내가 너의 몸에 강림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봐라. 나의 도움을 받았지만 너는 분명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했었다. 이 정도만 말해주면 충분할 것 같군.”
시든밀러의 말에 현준은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시든밀러가 강림한 순간 느껴졌던 충만한 마력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그 흐름을 기억해 내는 건 쉽지 않았다.
“쉽지 않나 보군.”
“솔직히 말해서 힘듭니다.”
“할 수 없군. 내가 조금 도와주겠다.”
어깨에 손이 닿는 게 느껴졌다.
“지금 네 몸에 마력을 주입할 거다.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면서 흐름을 기억해라.”
“자, 잠깐…… 크아악!”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마력이 주입되었다. 체내에 침범한 마력에 본능적으로 저항하자 전신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몸이 뒤틀릴 정도의 고통이었다.
“저항하지 말라니까!”
시든밀러는 짧은 호통과 함께 마력 주입을 멈췄다. 그러나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주입한 마력이 희미해질 때까지 현준은 몸을 마구 비틀며 괴로워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체내에 주입된 마력이 소멸하면서 고통이 사라지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력 충돌 현상이다. 현실이었다면 죽었을 거다.”
“어쩐지…… 죽을 정도로 아팠어요.”
현준은 힘겹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마력 충돌에 대해서는 기초 교육을 통해 배운 적이 있었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끝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현상이라고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경고했지 않았나? 저항하지 말라고.”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마력 충돌에 저항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S급 헌터 수준의 마력 제어 능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현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도 할 수 있다.”
“알겠어요.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100번이라도 상관없다.”
시든밀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들어간다.”
“예.”
대답하기 무섭게 체내로 시든밀러의 마력이 밀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저항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런 정밀한 마력 제어는 쉽지 않았다.
“크, 크윽!”
아니나 다를까 극심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입 밖으로 신음을 토해내며 쓰러지자 시든밀러는 한 발 뒤로 물러나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크으윽…….”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서야 마력이 진정되었다.
현준은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고통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아파서 죽을 것 같네요.”
“죽을 만큼 아파도, 여기서 죽지는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시든밀러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리고 시간도 아주 많지.”
수련의 방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다.
“한 번 더 부탁합니다.”
“좋은 자세다.”
다시 한번 마력 주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비명과 함께 쓰러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현준은 자신의 마력 컨트롤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을 깨달았다.
“한 번 더 부탁하겠습니다.”
“좋은 자세다. 계속 도전하는 게 중요하지.”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현준은 긴장한 얼굴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든밀러의 손이 어깨에 닿기 무섭게 체내로 다량의 마력이 흘러들어 왔다.
현준은 최선을 다해서 내부의 마력을 컨트롤했다.
저항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체내의 마력이 일제히 현준의 통제에 따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굉장하군. 카르타고와 하사신에게서 재능이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시든밀러는 현준의 빛나는 재능에 크게 감탄했다.
‘이번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들을 막는 것이!’
시든밀러의 두 눈이 반짝였다.
“날뛰던 마력이 얌전해졌군. 이제 내 마력의 이동에 집중해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현준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시든밀러의 마력에 집중했다.
“보인다! 보여!”
“느껴지나?”
감탄사를 토해내는 현준을 보며 시든밀러가 물었다. 목소리에서 놀랍다는 감정이 묻어나왔다.
이렇게 빨리 마력의 흐름을 느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정정해야겠군. 단언컨대, 이 재능은 99만 전생 중에서도 영웅급이다.’
눈부신 재능이었다.
“마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제대로 집중해서 느껴라.”
“제 마력로에 모이고 있습니다.”
각성을 마친 헌터라면 마력을 운용하여, 여러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마력로라는 기관이 생성된다.
현준은 시든밀러의 마력이 자신의 마력로를 에워싸고 빠르게 회전하는 것을 감지했다.
“마력의 이동 경로를 외워두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외웠습니다.”
계속된 반복 학습 덕분에 마력의 경로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쁘지 않군.”
시든밀러가 현준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방금 너는 마력연공법의 기초를 익혔다.”
“마력연공법이요?”
“그래. 내가 알려준 대로 마력을 운용하면 마력로가 강화될 거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로의 강화는 곧, 마력의 최대 용량의 증가를 의미했다.
“지금부터 내 검술의 일부를 전수할 생각이다. 마력연공법을 사용하면서 검술을 수련하면 숙련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력이 근육을 자극하면서 신체가 강화되는 효과가 있지. 당연하지만 내 검술과 마력연공법은 그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
이 세계에는 마력연공법이라는 수련법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현준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이런 훌륭한 수련법은 독점하는 게 좋다.
“공유할 생각은 없습니다. 남 좋은 일 할 필요가 있나요.”
“하사신 같은 말투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시든밀러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해 봐라. 지금은 가능할 거다.”
검을 들어 올려 시든밀러가 가르쳐 준 대로 마력을 주입했다. 희미하지만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와…….”
맨정신으로 처음 보는 영롱한 푸른 오러의 모습에 현준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 모습을 보며 시든밀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마력로는 엉망이었다.”
“네? 그게 무슨…….”
“제대로 된 효율을 발휘하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안심해라. 내가 길을 뚫어 뒀으니까.”
요약하자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 익힌 검술의 일부를 전수해 주겠다.”
검성의 검술이라니. 벌써부터 기대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앞서 설명했지만 마력연공법을 사용하면서 검술을 수련하면 마력 한도와 숙련도가 쉽게 오를 뿐만 아니라, 신체도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 꼭 두 가지를 병행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강자의 조언인 만큼 뼛속까지 새겨듣고 있었다.
“검술을 보여주겠다. 잘 봐 둬라.”
이윽고 시든밀러가 검술 동작을 선보였다. 화려한 듯하면서도 절제된 동작이었다.
현준은 관련 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검술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헌터 훈련소의 교관들이 선보였던 검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따라 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