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6화 (16/217)

# 16

5장 도와드릴까요?(2)

“으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파티장이 내 말을 듣지 않았어.’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보스방에 진입한 후 현준은 매복을 경고했지만, 파티장인 한석은 물론 다른 파티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석과 예슬이 현준을 높게 평가한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아직은 C급 헌터 수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다.

그 결과, 피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오빠! 전위가!”

무너졌다.

탱커 이진석이 무력화되고 장검을 든 헌터가 쓰러졌다. 이로써 전위는 그 역할을 상실했다.

‘매복은 그림자 무사 열둘.’

그림자 무사는 B급 정예에 해당하는 마수다. 그런 놈들이 열둘이나 기습을 걸어왔으니 파티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급 마법계 헌터인 한석이 없었으면 파티는 이미 전멸했으리라.

“크윽!”

한석의 원호에도 불구하고, 전위에서 홀로 버티던 이마저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이제 그림자 무사들의 시선은 한석과 현준, 그리고 예슬이 있는 후위로 향했다.

‘남은 숫자는 다섯.’

그나마 전위와 한석의 활약으로 일곱이 쓰러졌다. 하지만 상황이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후위의 전투력은 절망적이니까.

A급 헌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마법계. 한계가 분명하다. 예슬은 보조계 헌터라서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전투원은 현준뿐이다.

‘내가 캐리한다.’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지키지 못한 자, 단치히의 의지가 깃듭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한, 당신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과 동시에 전신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가, 강현준 씨!”

예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현준이 갑자기 총탄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죽…….”

한석의 경고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B급 정예 마수의 안면을 방패로 강타하는 C급 헌터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세, 세상에…….”

방패 치기와 동시에 검을 찔러 넣어 핵을 파괴하는 솜씨는 누가 봐도 C급 헌터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차 각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건 실전 경험의 문제인데…….’

현준에게 향하는 한석의 시선이 흔들렸다. 순식간에 그림자 무사 하나가 당했다.

다른 그림자 마수들은 현준이 위협적인 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남은 건 넷.’

일순간 거리를 좁혀 오는 그림자 무사를 보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카르타고의 가호는 없었지만, 스켈레톤 챔피언을 잡고 획득한 ‘원한이 깃든 방패’는 칠흑의 검격을 무리 없이 받아냈다.

“원호하겠습니다!”

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준이 어그로를 끌고 있는 덕분에 한석과 예슬의 주위가 비어 있었다.

“윈드 커터!”

황급히 완성한 공격 마법이 그림자 무사를 노렸다. 하지만 B급 정예 마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칠흑의 검이 바람의 칼날을 막아냈다.

하지만 뒤이은 현준의 검을 방어할 정도로 움직임이 빠르지는 않았다.

예슬이 빌려준 B급 무기가 핵을 파괴하자 마력으로 이루어진 그림자 무사의 신체가 허무하게 흩어졌다.

‘남은 건 셋.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A급 마법계 헌터의 원호가 있다고는 하지만 B급 정예 마수 셋을 상대로 ‘식은 죽 먹기’라는 표현을 쓸 C급 헌터는 없을 것이다.

그림자 무사 셋을 처리하는 데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보고 있던 한석이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공략은 끝난 게 아니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보스가 옵니다!”

어둠 속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보스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드시 지켜내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단치히라는 이름의 전생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현준은 방패를 들어 올린 채 마력을 끌어 올려 가호를 불렀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제는 오러 실드도 선명해졌다. 한석의 원호까지 있으니 해볼 만하다.

‘암흑 살수인가…….’

A급 중에서도 상위 등급으로 판정받는 마수다. 보스 보정까지 받을 테니,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콰앙!

“크윽!”

방패를 통해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평범한 C급 헌터였다면 방패를 들고 있는 왼손의 뼈가 다 박살 났을 정도의 일격. 하지만 현준은 버텨냈다.

“아, 암흑 살수의 일격을 버텨냈다고?”

한석이 경악했다. 미안하지만 팔자 좋게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최한석 씨! 원호를! 최예슬 씨는 블레스를!”

“윈드 커터!”

“블레스!”

바람의 칼날이 암흑 살수를 노렸고 예슬은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헤이스트 버프를 해제하고 상위 등급의 종합 버프인 블레스를 시전했다.

현재 카르타고와 단치히의 가호가 유지 중이다.

거기에 예슬의 블레스까지 더해지자 몸이 가벼워지고 힘이 강해진 게 느껴지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윈드 커터!”

한석의 공격 마법이 암흑 살수를 향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아무리 A급 헌터라고 해도 상위 마법을 연속으로 캐스팅하는 건 마력의 부담이 상당한 일이었다.

현준이 얼핏 보기에도 한석은 지금 무리하고 있었다.

‘보스 보정까지 받은 A급 상위 마수가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예상 밖이다. A급 마수가 강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애초에 A급 마수를 상대해 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알고 있을 리가 없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단 한 번의 공방으로 암흑 살수의 압도적인 무력을 파악했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니까.’

전생이 함께하고 있다.

“윈, 윈드 커터!”

바람의 칼날이 쏟아졌다. 암흑 살수는 뒤로 빠르게 물러나는 것으로 완벽한 회피를 선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최한석은 이제 한계다. 그에게서 남은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암흑 살수랑 짧은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한석이 적절하게 공격 마법을 날려주지 않았다면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최예슬 씨. 버프는 얼마 동안 유지됩니까?”

중요한 문제다. 카르타고와 단치히의 가호가 있다고는 하지만 예슬의 블레스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고효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5분이 한계에요. 죄송해요.”

“5분이면 충분합니다.”

“예……?”

고개를 돌리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예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보스 보정을 받은 A급 상위 마수를 상대로 5분이면 충분하다고 하는 거야……? 아무리 2차 각성자라고는 하지만…….’

예슬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현준이 암흑 살수를 향해 총탄처럼 쏘아졌다.

그는 검을 휘두르는 대신 오러로 강화된 방패로 암흑 살수를 강타했다.

콰앙!

암흑 살수는 단검을 들어 올려 방어를 시도했지만, 방패에 실린 묵직한 충격을 모두 흘리지 못하고 자세가 무너졌다.

현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재빠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방패를 회수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방패 치기!

콰앙!

이번에는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암흑 살수가 크게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최한석 씨!”

빈틈이다! 하지만.

‘나는 공격력이 부족해.’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은 무리.

“으아아! 윈드 커터!”

바람의 칼날이 암흑 살수를 노렸다. 한석이 최후의 마력까지 남김없이 긁어모아 완성한 공격 마법인 것 같았다.

날아든 바람의 칼날이 암흑 살수의 상체를 조각냈다. 현준의 강력한 방패 치기의 여파로 자세가 무너진 탓에 방어하지 못한 모양.

조각난 상태로 힘없이 쓰러진 암흑 살수는 마정석을 남기고 소멸했다. 그 모습을 본 현준도 가호를 거두었다.

“이, 이겼다…….”

한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파티 절반, 아니, 주요 전투 전력의 3분의 2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B급 정예 던전의 보스를 공략한 것이다.

“이, 이게 2차 각성자…….”

한석은 여전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2차 각성자의 가치에 대해서 듣기만 했지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강현준 씨만 우리 팀에 들어온다면…….’

대한민국 정규 공략팀 부동의 랭킹 1위 ‘조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 으윽…….”

“아이고, 나 죽네…….”

파티원들의 신음이 한석의 잡념을 물리쳤다. 예슬이 황급히 비상약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입금은 천천히 해주세요.”

응급처치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먼저 원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금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5천만 원이라…… 생각보다 많네.’

활약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챙겨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6명이라는 파티원 수를 생각해 보면 많이 챙겨준 금액이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그는 꿈속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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