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5화 (15/217)

# 15

5장 도와드릴까요?(1)

[정규 공략팀: 에이스]

예슬에게 받았던 것이다. 에이스라면 국내 정규 공략팀 중에서도 유명한 편이었다.

임시 팀원으로 던전 공략 한 번 정도는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정식으로 어딘가에 소속될 생각은 없었다.

-여보세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성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다행히 던전 안은 아닌 모양이다.

“최예슬 씨?”

-혹시 강현준 씨?

고민 없이 바로 현준의 이름이 나왔다. 이것만 봐도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 정도였나?’

정규 공략팀에서 연락을 기다린다? 헌터로서의 자질을 증명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네, 제가 강현준입니다.”

-아! 반가워요!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혹시 일주일 안에 던전 공략 일정이 있습니까? C급 던전 매칭이 밀렸더라고요.”

-일정이 하나 있긴 해요. B급 정예 던전인데, 괜찮겠어요?

예슬은 거절하지 않았다. 이미 팀장이자 예슬의 오빠인 A급 마법계 헌터, 최한석이 그녀로부터 현준에 대해 보고를 받고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관없습니다.”

B급 정예 던전이면 난이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99만 전생의 가호가 있는 한 두려운 건 없었다. 대답하는 현준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좋아요, 일단 우리 만나죠. 지금 어디세요?

“던전 관리국 본부 건물입니다.”

-지금 제가 갈게요. 30분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하고 있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전화 통화가 끝났다. 예고했던 대로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2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카페 바로 앞에 비싸 보이는 외제 차 한 대가 멈췄다. 왠지 저 외제 차에 예슬이 타고 있을 것 같다고 현준은 생각했다.

‘예상대로네.’

운전석에서 예슬이 내리고 있었다. C급 보조계 헌터가 저렇게 비싸 보이는 외제 차를 몰고 다닌다고? 생각보다 정규 공략팀의 수입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들은 게 있으니까, 대충은 알지.’

현준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문이 열리고 예슬이 걸어 들어왔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여 카페 안을 스캔했다.

그녀는 곧 현준을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와 앞자리에 앉았다.

“반가워요. 강현준 씨. 오랜만이네요?”

“네. 잘 지내셨죠?”

예슬이 먼저 반갑게 악수를 청했고 현준도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응했다.

에이스 같은 경우에는 대한민국에서 꽤 영향력 있는 정규 공략팀이었기 때문에 간부인 최예슬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 이득을 많이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저희 정규 공략팀에 들어오고 싶으시다고요?”

아니, 이 여자가? 어디서 쇠사슬을 채우려고 해?

“아뇨, 저는 일주일 안에 던전 공략 일정이 있다면 거기에 끼고 싶다고만 했습니다.”

말은 똑바로 하자.

“아, 죄송해요. 제가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나 봐요.”

“그럴 수도 있죠.”

현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은근슬쩍 정식 팀원으로 받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쉽게 당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저희도 이번에 갑작스러운 결원이 발생해서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제가 오빠한테 따로 말을 하겠지만 아마 합류에는 별문제 없을 거예요.”

한석은 예슬의 친오빠였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임시 팀원이 되려면 계약서는 작성해 주셔야 해요. 한번 읽어보세요.”

예슬이 건넨 계약서를 받고는 천천히 읽었다. 주로 정산금 분배 문제에 대한 내용이었고 문제 되는 조항은 없었다.

“사인할게요.”

“결정이 빠르시네요.”

“원래 이런 건 빠른 게 좋죠.”

사인이 끝났다.

“좋습니다. 출발은 언제입니까?”

“내일이요.”

예상보다 더 빨랐다.

* * *

시간이 되었다. 현준은 아공간 주머니에 검과 방패를 집어넣고 낡은 검은색 가죽 외투를 걸쳤다. 집결 장소까지 이동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예슬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주는 게 이상할 법도 했지만,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내 가치를 알아준 거지.’

던전 레이드 시대에서 상위 헌터는 곧 권력이었다. 굳이 휘하에 두지 않고 측근에 붙어 있기만 해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괜히 권력가들이 상위 헌터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원룸에서 나와 10분 정도 기다리니, 어제 보았던 외제 차가 현준의 앞에 정차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날씨 좋네요.”

차에서 내린 예슬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일찍 다니는 게 습관이 되어서요.”

예슬은 미소와 함께 조수석 문을 열었다. 현준이 탑승을 끝내자 차량이 출발했다.

집결 장소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예슬이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줘서 심심하지도 않았고 여러 배려 덕분에 불편하지도 않았다.

“여기에요.”

차트를 들고 있는 던전 관리국 직원이 보였고 그 옆으로 4명의 헌터가 있었다.

3명은 전투계인 듯 간단한 갑옷과 근접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1명은 녹색 로브를 입고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에이스의 팀장, A급 마법계 헌터 최한석.’

조사는 해뒀다. 유명한 공략팀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정보가 여과 없이 공개되어 있었다.

헌터 커뮤니티에서는 한석을 D급에서 시작하여 1년 만에 A급의 경지에 오른 천재라고 평가했다.

“강현준 씨? 예슬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에이스의 팀장을 맡고 있는 최한석이라고 합니다.”

한석이 먼저 다가왔다. 표정이 좋은 걸로 보아 예슬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 모양.

에이스의 팀장에게 고평가받아서 나쁠 건 없다. 현준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네. 반갑습니다. 강현준입니다. C급 헌터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저희 공략팀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진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30분 동안 진형과 팀 전술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최예슬의 호위…….’

옆에 A급 헌터인 최한석이 있으니 가장 안전한 위치라고 볼 수도 있다.

팀원들의 구성도 1군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정예들을 데려온 것 같으니 이건 에이스라는 정규 공략팀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한 자리인 것 같았다. 물론 어필하는 대상은.

‘나겠지.’

던전 관리국 내부에서만 떠돌던 소문이 한석의 귀에 들어간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에이스의 이런 적극적인 구애를 설명할 수 없다.

“이진석입니다.”

“강현준입니다.”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고 약 5분 동안 통성명 시간이 주어졌다.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준은 그들과 계속 함께할 생각이 지금은 없었고 한석과 예슬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도 현준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니꼽다는 시선이 섞여 있었지만, 현준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강현준 씨. 잠깐만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진형을 가다듬고 있을 때, 예슬이 현준을 불렀다. 호기심에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차의 트렁크에서 검을 한 자루 꺼내서 건넸다.

“이건……?”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검이었다. 현준이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그녀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빌려드리는 거예요. 지금 쓰고 계신 검은 B급 정예 던전에서 금방 부러질 거예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던전 게이트를 열겠습니다.”

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파티가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마력 반응 확인! 전투 준비하세요!”

입장과 동시에 격렬한 환영 인사가 시작되었다. 한석은 경고와 함께 마법을 캐스팅했고 전위의 탱커 이진석은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정령 계열인가……?’

어둠 속에서 선명한 불꽃 4개가 타오르고 있다. 충만한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정령 계열의 마수가 분명했다.

“갑니다. 윈드 커터.”

상위 마법, 윈드 커터. 바람의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일격에 불꽃 하나가 꺼졌다.

-크워어어!

공격을 받았다는 걸 인식한 마수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이 점차 선명해졌다. 굳이 드론이 조명을 비출 필요도 없었다.

‘불꽃 수호병…….’

정령 계열의 B급 마수다. 전신이 불타고 있기 때문에 전투계 헌터들이 까다로워하는 마수였다.

“윈드 커터.”

바람의 칼날이 불꽃 수호병 하나를 처참하게 찢어버렸다. 이제 둘 남았다.

“우오오오!”

콰앙!

진석이 휘두른 방패에 얻어맞은 불꽃 수호병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 틈에 다른 헌터가 파고들어서 ‘핵’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핵이 파괴된 불꽃 수호병은 전신이 무너져 내렸다. 남은 하나도 다른 헌터의 검에 쓰러졌다.

B급 마수들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모습은 에이스의 명성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어떻습니까?”

너도 에이스에 들어오면 우리처럼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현준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대단하시네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와 한 번이라도 공략을 함께한 헌터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합류 의사를 밝혔죠.”

한석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생각이 없는데.’

절대적인 이득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정규 공략팀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오늘 던전 공략을 함께하는 것도 필요에 의해서였다.

“강현준 씨도 저희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준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2차 각성의 가치를 모른다고 생각한 건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을 것이다. 지금 한석은 2차 각성이 유력한 현준을 싼값에 데려오려고 시도 중인 것이었다.

그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내 몸값은 내가 판단해.’

속으로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한석이 말했다. 파티는 공략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던전 깊은 곳으로 진행할수록 등장하는 마수의 수도 많아졌다.

“보스방입니다.”

눈앞에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한석의 말대로 보스방이 분명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현준은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았다. 그저 후위에서 파티원들이 싸우는 걸 구경하기만 했다.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한석과 예슬이 보스방 입구를 확인하는 동안 누군가 와서 물었다. 비꼬는 게 분명했다.

현준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네. 너무 편안한 여행이었습니다.”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얼굴에 철판을 까는 건 자신 있었다.

“문 연다!”

진석의 외침과 함께 보스방 출입문이 열렸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매복의 존재를 경고합니다. 숨은 칼날이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몸값을 올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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