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3화 (13/217)
  • # 13

    4장 던전 아웃은 처음이지?(2)

    구경꾼들이 있었다.

    어디서부터 던전 아웃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마수는 방금 전의 오크 주술사 하나가 전부였다.

    도망치는 것보다는 구경과 동영상 촬영을 선택한 바보들이 많았다.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았어…….”

    누군가의 말에 현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일반인의 눈으로 ‘제대로 된’ 헌터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현준은 C급 헌터 중에서도 빠른 편이었다.

    현준은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오크 주술사의 시체가 사라지고 남은 마정석을 신기하다는 듯 관찰하고 있었다.

    “던전 아웃이 발생한 것 같으니까, 도망치세요.”

    몇 명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은 구경꾼 모드를 관두지 않았다.

    던전 아웃이 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현준은 더 이상 시민들에게 도망치라고 말하지 않았다.

    피난 영역은 그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정도 말했으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이었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고작 마수 한 마리만 도심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 던전 아웃이 발생한 게 맞는다면 곧 수십 마리가 쏟아져 나올 게 분명했다.

    “꺄아아악!”

    다수의 마력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예상대로 근처에 던전 입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지하상가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구경꾼들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를 피했다.

    ‘던전 입구가 지하상가와 연결되어 있는 건가?’

    흔치 않은 경우였지만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 인명 피해가 심각해진다는 것을 지나가다 뉴스에서 본 것 같았다.

    ‘일이 꼬였네.’

    눈살을 찌푸렸다. 던전 아웃이나 레이드가 발생하면 인근에 있는 헌터들은 자유의 몸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을 해야만 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개입해야 한다면…….

    ‘영웅이 된다.’

    현준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창과 방패를 든 채 지하상가를 향해 몸을 던졌다.

    평일에도 사람이 많은 지하상가였다. 던전 아웃이 발생했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질서 있게 침묵을 지켜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현준은 지하상가에 감도는 불길한 분위기를 읽었다. 어떤 장소에 모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지하상가에는 이용자들을 모두 수용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의심스러운 시선을 흘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근처에서 사악한 음모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사신의 가호가 발동했다.

    ‘음모라고?’

    던전 아웃을 고의로 발생시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길드 집행부 간의 칼부림이 있을 때 던전 아웃을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현준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엮이지만 않으면 상관없는 남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간혹 마수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던전 아웃이라고 하기에는 적은 규모였다.

    “진압팀이 올 때가 되었는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지하상가로 진입한 지 30분이 지났다. 던전 관리국의 진압팀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소식이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하사신의 가호가 경고했듯 심상치 않은 음모에 엮인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젠장…….”

    모퉁이를 돌기 무섭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진한 피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싶었는데, 바로 앞의 카페에 시체가 가득 했다.

    일부러 치워 놓은 듯 질질 끌린 흔적이 있었다.

    ‘사람이 했다.’

    현준은 확신했다. 마수가 시체를 옮겼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체를 살폈다.

    ‘확실해.’

    하사신의 가호로 각인된 암살자의 지식은 마수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현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예민해진 감각이 기척을 잡아냈다.

    “허억, 헉!”

    거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벽에 바짝 붙어서 방패로 몸을 가린 채 타이밍을 맞춰 검을 들어 올렸다.

    칼날이 정장을 입은 남성의 목에 닿았다. 딱 그 정도, 목에 닿는 순간 그의 몸이 멈췄다.

    ‘헌터다.’

    일반인의 반사 신경이 아니었다. 현준은 눈동자를 움직여 남자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지금 보니 그는 피투성이였고 단검을 들고 있었다.

    “헌터군요. 등급은 모르겠지만 도망치는 게 좋을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양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표현했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사신의 가호가 경고했다.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수가 조금 많았다.

    “친구들입니까?”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목을 겨누고 있는 검을 거두기 무섭게 지하상가의 통로 좌우에서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기에도 불법적인 일을 할 것처럼 생겼다.

    “어디 집행부 소속이냐?”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질문을 던졌다. 길드 집행부 소속이 아니면 이런 일을 벌일 간 큰 놈들은 거의 없다.

    “그걸 우리가 말해줄 것 같…….”

    “에코 길드 소속 집행부입니다. 확실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눈앞에 보이는 집행부 헌터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복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을 읽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큰 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군. 곱게 보내주려고 했는데, 죽일 수밖에 없잖아?”

    거짓말이다.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을 것이다. 현준은 검을 들어 올렸다.

    “싸울 생각?”

    “그래. 니 새끼들이 떠드는 게 조금 거슬려서 말이야.”

    “입만 살아 있는 새끼가!”

    현준은 선공을 내줬다. 집행부 헌터는 앞에 셋, 뒤에 둘이었다. 하지만 모두 자신들의 조장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조장이 휘두르는 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깃들어 있었다.

    ‘오러 사용자인가?’

    눈앞의 집행부 헌터는 B급이다! A급은 확실히 아니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카르타고의 가호가 시작되었다. 헌터의 무기와 방어구에는 기본적으로 마력이 입혀지기 때문에 오러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같은 ‘오러’를 사용해야만 했다.

    “미친! 오러 실드라고?”

    조장이 휘두른 검이 방패를 강타했다. 오러 간의 충돌로 사방에 마력 파편이 튀었다.

    설마 현준이 오러 사용자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제기랄!”

    “늦어.”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현준이 조금 더 빨랐다. 그는 카르타고의 방패술을 사용해서 조장의 검을 흘렸다.

    단순히 흘릴 뿐만 아니라 중심을 흐트러뜨려 전투 자세가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실전 경험의 차이였다. 조장도 대인전 경험이 풍부했지만, 수천 번 이상의 실전을 겪은 현준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크아아악!”

    내찌른 검이 조장의 복부에 파고들었다.

    “조장님!”

    “이럴 수가!”

    다른 집행부 헌터들이 뒤늦게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이미 조장의 목은 차가운 바닥에 떨어져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최소 B급이다!”

    “협공이다! 협공!”

    집행부 헌터들이 움직였다.

    ‘B급 하나에 C급 셋인가?’

    현준은 하사신의 능력으로 그들의 수준을 가늠했다. 다행히 B급은 한 명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둘렀다.

    콰앙!

    방패 치기!

    “크아아악!”

    오러로 강화된 방패에 타격당한 집행부 헌터가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전신의 뼈가 박살 나면서 몸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괴, 괴물 같은…….”

    거리를 좁혀 오던 집행부 헌터가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선다. 좋은 먹잇감이다.

    현준은 차려 놓은 밥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에게 순식간에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커헉!”

    목을 그었다. 붉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집행부 헌터는 힘없이 비틀거리다가 목숨을 잃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협공을 펼쳤지만 현준을 상대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모두 시체가 되었다.

    전멸이었다.

    “이럴 수가…… 혹시 A급 헌터님이십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현준의 말에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니지요.”

    “일단 던전 아웃부터 해결하죠.”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에코 길드에서 방해 공작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지금쯤이면 해당 던전에 정규 공략팀이 도착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선은, 반갑습니다. 저는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장을 맡고 있는 김태민입니다. 헌터 등급은 B급입니다.”

    헌터 커뮤니티에서 레이스 길드에 대한 게시글을 읽은 기억이 있었다. 브론즈 티어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길드라는 것 같았다.

    “저는 C급 헌터 강현준입니다.”

    “반갑습니다. 강현준 씨.”

    C급 헌터라는 소개에 조금 놀라는 것 같았지만 이내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았다.

    “제 연락처입니다. 조만간 제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하겠습니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낯선 목소리가 방해했다.

    -피에 젖은 살인귀, 리퍼가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연이은 살인 행위에 감탄하여 눈을 떴습니다.그를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그는 당신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또 누군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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