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4장 던전 아웃은 처음이지?(1)
“끄아아악!”
2열에 있던 C급 전투계 헌터도 오크들의 협공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제 오크들의 시선은 현준에게로 향했다.
“가, 강현준 씨…….”
“당황하지 말고 버프나 걸어주세요. 제일 좋은 걸로.”
예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현준은 침착했다.
그는 광전사 둘이 포함된 13마리의 오크 무리를 향해 검을 겨누며, 예슬에게 버프를 요청했다.
“블레스……!”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마력이 몸에 닿았다. 현준은 곧바로 신체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블레스의 효과로 육체가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력의 회복 속도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버프 효과가 상당히 좋은데?’
생각은 길지 않았다. 오크 광전사가 어느새 코앞까지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휙.
날렵하게 휘둘러진 검이 오크 광전사의 목을 베었다. 목이 베인 오크 광전사는 피분수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다른 오크 광전사도 현준의 방패 치기에 당해 멀리 날아갔다. 못해도 전신의 뼈가 박살 났을 것이다.
“세, 세상에…….”
뒤에서 현준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버프를 유지하고 있던 예슬은 경악 섞인 감탄을 쏟아냈다.
보조계라고는 하지만 그녀도 동급의 헌터였다. 그런데 방금 전 현준의 움직임은 그녀의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절반 이상의 오크들이 죽었다. 그 모습을 본 예슬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순간이었다.
“크아아악!”
그녀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 오크 둘이 커다란 도끼로 짐꾼의 팔과 다리를 조각냈다. 그리고 이어서 예슬을 노렸다.
그녀는 들고 있던 소검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보조계 헌터의 전투력은 동급의 마수 2마리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들고 있던 소검은 오크가 휘두른 도끼와 부딪친 순간 저 멀리 날아갔다.
눈앞에는 오크 두 마리가 있었고 손에 쥔 무기는 없었다. 그녀는 최후를 직감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케엑!”
‘퍽!’ 하는 둔탁한 소음이 터져 나오더니 오크 하나가 힘없이 쓰러졌다.
“아……?”
눈물이 터져 나오려던 게 멈췄다. 쓰러진 오크의 미간에는 단검이 꽂혀 있었고 어느새 현준이 그녀를 노리는 오크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버프, 계속 유지하세요.”
“네? 네!”
마력 공급이 끊기면 버프가 해제된다. 극도의 긴장 탓인지 아슬아슬하게 마력 공급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예슬은 서둘러 두 손을 뻗으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버프가 다시 살아났다.
이어서 현준이 내찌른 검이 오크의 심장을 관통했다. 오크가 힘없이 쓰러졌다.
오크를 쓰러뜨린 현준은 고개를 돌려 예슬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주저앉은 채 힘겹게 떨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현준이 물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아…… 고마워요.”
예슬은 현준이 내민 손을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죽음의 공포에서 막 벗어난 참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요? 문은 안 잠겨 있으니까,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
“계속 진행해요. 강현준 씨한테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요.”
던전 공략을 포기하면 여러 패널티를 받는다.
“이제 보스방도 얼마 안 남았고…… 아깝잖아요?”
“제대로 된 전투 인원은 저밖에 없습니다.”
현준이 말했다. 생존자는 2명이지만 예슬은 보조계 헌터라서 이곳에서 간신히 자기 한 몸을 지키는 게 고작이었다.
“강현준 씨라면 여기 보스 정도는 혼자서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C급 던전의 보스라면 기껏해야 B급 마수가 등장할 것이다. B급 마수 하나 정도라면 현준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마수였다.
그는 A급 최하위 등급의 마수인 스켈레톤 챔피언을 상대로도 승리를 쟁취한 뛰어난 헌터였다.
“그럼 진행할게요. 파티장은 제가 맡겠습니다.”
“좋아요.”
사실 현준도 던전 공략을 중도 포기해서 낙오자가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스방으로 향하는 듯한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이제 보스방이네요.”
“버프만 유지해 주시면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현준이 말했다. 사실 버프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보스 보정이 있다고는 해도 B급 마수 정도는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버프는 걱정하지 마세요.”
예슬이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윽고 철문이 열리고 드론이 먼저 날아 들어가서 어둠을 밝혔다. 그러자 보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크 주술사……!’
B급에 해당되는 마수였다. 현준은 방패를 들어 올려 몸을 가렸다.
오크 주술사는 두 사람의 기척을 읽기 무섭게 사람 머리통만 한 불덩이를 여러 개 소환하여 날려 보냈다.
콰앙!
방패와 불덩이가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예전에 쓰던 낡은 방패였다면 단번에 박살 났을 것이다.
그 정도로 충격이 강했지만, 다행히 ‘원한이 깃든 방패’는 버텨주었다.
“블레스!”
예슬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버프가 발현되었다.
‘좋아!’
몸이 가벼워졌다. 현준은 오크 주술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염구가 그를 노렸지만 현란한 방패술로 모두 막아냈다.
‘빠, 빨라……!’
예슬이 두 눈을 한 차례 감았다가 떴을 땐 이미 현준의 검이 오크 주술사의 목에 꽂혀 있었다.
현준은 오크 주술사의 몸에서 마정석을 뽑아낸 뒤, 가방에 담았다.
“저, 정말 대단해요…… 보스 보정을 받은 B급 마수를 일격에 처치하시다니…….”
“별거 아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보스의 시체가 사라지면서 벽 쪽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던전의 출입구로 돌아갈 수 있는 워프 게이트였다.
“갈까요?”
예슬이 물었다. 그녀의 입가에서 희미한 미소를 엿볼 수 있었다. 살아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었다.
현준은 대답 대신 먼저 워프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워프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 어느새 출입구의 계단에 서 있었다.
뒤이어 빛이 터져 나오더니 예슬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던전 공략이 끝났다.
그들은 곧바로 던전 관리국으로 향했다. 예슬이 차를 가지고 있어서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꽤 비싸 보이는 외제 차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산이 끝났다. 총 정산금은 2천만 원으로 절반으로 나눠야 하지만 예슬은 자신은 한 게 없다면서 현준에게 1천 5백만 원을 넘겼다.
생환 조사도 끝나고 파티 해산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자, 잠깐만요! 이거 받아주세요.”
예슬이 달려와서 명함 한 장을 건넸다. 그러고는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꼭! 연락 주세요!”
현준은 예슬에게서 받은 명함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규 공략팀 : 에이스.]
헌터계에서는 꽤 유명한 정규 공략팀의 연락처가 적혀 있는 명함이었다.
* * *
던전을 공략하는 일은 많은 피로를 동반한다. 그래서 많은 헌터들은 하나의 던전을 클리어하면 일정한 휴식기를 가지는 게 보통이었다.
현준 같은 경우에도 최근 거의 연속으로 던전을 공략했기 때문에 4일이라는 짧은 휴식을 가지게 되었다.
휴식하는 동안 카르타고와 한 차례 더 수련이 있었다.
창에 찔리는 횟수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강해질수록 수련의 강도도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몇 번이나 창에 관통당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이번에도 대련이었다. 카르타고가 끝을 선언하자 수련의 꿈에서 깨어났다.
“후우!”
원룸의 익숙한 천장이 현준을 반겼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즉석식품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 뒤, 던전 관리국으로 향했다. 4일 정도 쉬었으니, 슬슬 일할 때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헌터님,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자격증을 건네자 사무원이 방긋 웃으며 응대했다. C급 헌터부터는 실질적인 던전 공략원으로 인정받는다. 어딜 가도 대우를 받는다는 말이었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C급 던전 매칭을 신청합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사무원이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다.
“마침 결원이 생긴 파티가 하나 있는데, 혹시 참여할 의향 있으신가요?”
파티원 한 명 또는 다수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매칭을 취소하고 이탈한 경우인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에도 패널티가 부과된다.
“몇 시간 남았습니까?”
현준이 물었다. 이런 경우 당일 일정인 경우가 많았다.
“4시간 남았습니다.”
“갈게요. 신청해 주세요.”
“신청 완료되었습니다. 헌터님의 스마트폰으로 집결 장소와 정확한 시간이 메시지로 안내될 겁니다.”
용무가 끝나고 던전 관리국을 나오기 무섭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현준은 먼저 장소부터 확인했다.
‘택시 타고 30분 정도 걸리려나……?’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그는 원룸으로 돌아가 장비를 챙긴 뒤, 택시를 타고 집결 장소로 향했다.
현준은 뒷좌석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슬슬 집결 장소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은 순간이었다.
‘뭔가 온다!’
마력을 품은 무언가가 날아온다. 생각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현준은 검과 방패를 들고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 직후, 어디선가 날아온 화염구가 운전석 안으로 날아들었다.
콰앙!
짧은 폭발음과 함께 운전석이 불바다가 되었다.
운전사가 인사불성이 되자 택시는 그대로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그 안에 계속 있었다면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
“오크 주술사?”
고개를 드니, 마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결코 도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레이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인데.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상치 못한 던전 아웃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현준은 오크 주술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쿠워어어어!”
오크 주술사가 괴성을 내지르며 스태프를 흔들자 어린애 머리통만 한 화염구 3개가 생성되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가호가 시작되었고 오러가 방패를 강화했다. 화염구가 오러 실드를 강타했다.
방패를 통해 충격이 전해졌지만, 현준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오크 주술사의 코앞까지 접근한 그는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큭!”
들어 올린 왼팔이 검을 막아냈다. B급 마수의 팔을 절단하기에는 검에 실린 힘이 부족했다.
‘오러 블레이드만 있었어도!’
B급 마수의 팔 정도는 쉽게 절단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없으니 지금 당장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오크 주술사는 왼팔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다른 손으로 스태프를 흔들어 화염구를 생성하여 반격했다.
콰앙!
화염구가 방패를 타격하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적지 않은 충격이 전달되었지만, 현준의 자세는 흔들림이 없었다.
카르타고의 가호로 인해 삽입된 숙련된 방패술의 기억 덕분이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일순간 거리를 좁히며 방패를 휘둘렀다. 오러로 강화된 방패는 오크 주술사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바, 방금 봤어?”
“B급 마수 머리통이 한 방에 박살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