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3장 죽고 싶으면 와라(3)
에코 길드 사무소, 그 안에서도 집행부 사무실로 한 장의 보고서가 도착했다. B급 헌터이자 집행부원인 주형석이 보고서를 확인했다.
보고서에 적힌 글귀를 한 줄 읽을 때마다 그의 표정이 빠르게 어두워져갔다.
“형님. 얼마 전에 C급 정예 던전에서 생환한 강현준을 잡아 오라고 우리 애들 2명을 보냈던 거 기억하십니까?”
형석의 물음에 다른 업무에 집중하고 있던 집행부장, 정성민이 고개를 들었다.
“B급 1명, C급 1명을 보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이렇게 소식이 늦어?”
“방금 전에 관련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 말해 봐.”
성민의 눈이 반짝였다.
당연히 그 보고는 임무를 성공한 것과 관련한 것이며, 집행부의 헌터들이 현준을 제압해서 여기로 데려오는 중일 것이라 생각했기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저희 쪽에서 보낸 애들, 둘 다 죽었습니다.”
“둘 다?”
형석의 보고에 성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인전 경험이 풍부한 2명의 집행부 헌터가 갓 C급이 된 강현준에게 당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네. 방금 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희 쪽에서 시체의 확인도 끝났다고 합니다.”
형석이 쐐기를 박았다.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새로 팀을 편성해서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B급 헌터 2명에 C급 몇 명을 섞어 보내면……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깐만. 일단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우리 애들을 2명이나 죽일 정도면 C급 정예 던전에서 혼자 생환한 게 운 때문이 아닐지도 몰라.”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형석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형석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2차 각성의 가능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하지만, 그렇다면 더 빨리 짓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묻어나왔다. 2차 각성자의 성장 속도가 괴물처럼 빠르다는 것 정도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방치한다는 게 아니야. 신중하게 행동하자는 거지. 지금 진행 중인 일 끝나면 B급 헌터 몇 명이나 움직일 수 있어?”
성민이 물었다. 그는 지금 다른 길드의 집행부를 상대하느라 움직일 수 없었다.
‘영국에서 건너온 아이템을 다른 길드에 뺏기지만 않았어도…….’
그는 조용히 생각했다.
“못해도 4명은 동원할 수 있습니다. C급은 더 많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이왕 이렇게 된 거, 집행부의 전력을 다해서 짓밟는다.”
성민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묻어나왔다.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이 느껴졌다.
* * *
C급 마수, 오크 광전사가 휘두른 창이 현준의 방패를 타격했다.
콰앙!
굉음이 터져 나왔지만, 현준의 자세는 흔들림 없었다. 오히려 오크 광전사가 반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빈틈!’
놓치지 않았다. 힘차게 내찌른 검이 단번에 오크 광전사의 목을 관통했다.
“끄르르륵!”
기묘한 소리와 함께 오크 광전사가 힘없이 쓰러졌다.
“정말 대단하세요. 제가 나설 틈이 없을 정도네요.”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은 파티장을 맡고 있는 B급 헌터, 박세준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현준이 마수의 공격을 받아내는 동안 그가 결정타를 날려야 했다.
하지만 현준이 모든 마수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과 동시에 반격으로 숨통을 끊어 놓으니 전열에서 마수가 순식간에 전멸해 버리는 기형적인 공략 구조가 되어 버렸다.
“다음부터는 제 몫도 조금은 남겨주세요. 아셨죠?”
방금 전의 순수한 감탄과는 달리 이번에는 세준의 목소리에서 가시가 느껴졌다.
거듭 활약을 펼치고 있는 현준이 나중에 정산금을 더 요구할지도 모른다고 지레짐작하고 행동하는 거였다.
“노력해 보죠.”
“꼭 좀 부탁합니다!”
세준이 과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그 뒤로 나타난 오크 6마리를 처치하고 30분 정도 걷자 두꺼운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30분만 쉬었다가 이동하겠습니다.”
세준은 휴식을 선언하고는 짐꾼이 루팅한 마정석을 확인했다. 꼼꼼한 성격인 것 같았다.
그동안 현준은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는 주머니에서 육포 조각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육포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식량을 챙기지 못했다.
“이거 마셔요.”
고개를 들자 누군가 물병을 내밀었다. 안경을 낀 포니테일의 여성, 통성명을 나눈 파티원이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현준이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눈살을 찌푸린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예슬이에요. 이름 정도는 기억해 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그녀가 C급 보조계 헌터라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현준은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물병을 입가로 가져갔다.
“정말 굉장했어요. 지금까지 동급의 마수를 상대로 강현준 씨처럼 잘 싸우는 헌터는 못 봤던 것 같아요.”
“칭찬 감사합니다.”
현준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물병을 돌려주었다. 예슬도 매력적인 눈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준이 던전 공략 재개를 선언했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10여 마리의 오크 무리가 파티원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창과 방패, 그리고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오크 한 마리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었다.
“모두 조심하세요. 궁수가 있습니다.”
궁수를 가장 먼저 발견한 현준은 원거리 공격의 위험을 경고했다.
“수도 적지 않네요. 버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민첩 계열로 부탁합니다.”
파티장인 세준이 오더를 내리자 예슬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헤이스트.”
짐꾼을 제외한 파티원들에게 헤이스트 버프가 깃들었다. 그와 동시에 오크들이 현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버프의 발현으로 인한 마력의 유동이 그들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온다!’
현준도 마력을 끌어 올려 가호를 불러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카르타고의 가호가 발동했다. 오러 실드가 방패에 깃들었다. 수련을 한 번 더 하고 와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오러가 선명해진 것 같았다.
“하앗!”
기합과 함께 휘두른 방패가 오크의 머리통을 타격했다.
콰앙!
오크의 머리통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뒤이어 화살이 날아왔지만 오러 실드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평소보다 몸이 가볍다.’
가호 덕분일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다 보니 어느새 활을 든 오크 한 마리만 남겨두고 모두 쓰러져 있었다.
‘C급 헌터의 버프가 이 정도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버프의 효율이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버프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할 경우의 수도 없었고 아직 전투가 끝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현준이 내찌른 검이 오크 궁수의 심장에 꽂히면서 전투가 끝났다.
짐꾼이 마정석 루팅을 시작한 것을 확인한 세준이 조용히 현준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제가 선두를 맡겠습니다. 불만 없죠?”
“탱킹이 가능하겠습니까?”
현준이 우려를 표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전 B급 헌터예요. 제가 다 해결할 겁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현준이 수긍하자 다른 헌터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세준은 단검 두 자루를 집어넣고 방패와 검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냈다. 선두, 탱커의 역할을 맡았다.
C급 전투계 헌터 한 명이 2열을 맡았고 현준은 예슬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이었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사신의 가호가 경고했다.
“매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탱킹합니다. 상관없어요.”
세준은 말을 듣지 않았다.
콰앙!
철문이 닫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려고 시도했지만 굳게 잠겨 있었다.
하사신의 가호는 계속해서 매복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세준은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전진했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매복에 대해 한 번 경고하는 것으로 의무는 다했다. 굳이 말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알아서 하겠지.’
이미 C급 정예 던전에서 홀로 생환한 경험이 있었다. 혼자 남게 되더라도 C급 던전의 보스 정도는 공략할 수 있다. 현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까 강현준 씨가 매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요?”
세준이 말했다.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현준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기척이 빠르게 접근해 오는 것을 느끼고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이, 이런!”
세준도 뒤늦게 기척을 읽고 암기를 뽑아 천장을 향해 던졌다.
“쿠웨에에엑!”
“캬아아아악!”
천장에 숨어 있던 오크 둘이 시체가 되어 떨어졌다. 그들의 목에는 세준이 던진 암기가 꽂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오크가 암기에 당한 것은 아니었다. 오크 광전사가 하나가 착지하면서 세준을 향해 세로로 대검을 그었다.
“커, 커헉!”
세준이 붉은 핏물과 함께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멀리서 보기에도 치명상을 입은 게 분명했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고 오크 광전사의 몸에 검을 꽂아 넣었다.
B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의 일격이 오크 광전사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장을 노렸지만, 왼쪽 팔뚝에 꽂히는 데 그쳤다.
“제, 제기랄! 크아악!”
그게 마지막이었다. 뒤이어 천장에서 떨어진 오크가 내찌른 창이 세준의 복부를 관통한 것이었다.
그는 욕설과 함께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치명상이 연이어 두 번이다. B급 헌터라고 해도 도저히 버틸 수 있는 부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