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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전생이 날 도와줘-6화 (6/217)
  • # 6

    2장 아직 부족하다, 더 강해져라(3)

    “그 말은…….”

    “상상에 맡기겠다. 일단은 이쪽으로 와라.”

    현준은 순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켜보고 있었다. 스켈레톤을 상대로 제법 잘 싸우더군.”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강자가 ‘인정’하고 칭찬해 주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 던전에서 살아나가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

    뒤늦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인제 와서 던전에서 쓸쓸히 죽는 건 원치 않았다. 살아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중요하나?”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세한 건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그 힘을 쓰게 될 날이 분명 올 거다. 알아들었으면 방패를 들어라.”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급하게 화제를 바꾸는 걸로 보아,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았다.

    그의 재촉에 현준은 차분하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랐다.

    처음 카르타고를 만났을 때 취했던 자세와 달리 지금 모습은 10년 이상 방패술만 훈련한 정예병과 같은 모습이었다.

    “좋은 자세다. 내가 전해준 기억이 훌륭하게 자리를 잡은 모양이군.”

    카르타고가 감탄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에서 흐뭇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수련을 시작하겠다. 소환.”

    “소, 소환이라고요?”

    카르타고의 입 밖으로 의외의 시동어가 튀어나왔다. 동시에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것을 뚫고 녹색 피부의 마수가 튀어나왔다.

    “트롤? 소환사였어요?”

    “우리 중에는 차원을 지배한 소환사도 있다. 그 녀석의 도움을 좀 받았지.”

    “그렇군요…….”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 녀석도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그 힘을 얻게 될 거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낯선 목소리가 ‘99만 전생’이라는 말을 꺼낸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카르타고처럼 강한 99만의 전생이 자신을 강해질 수 있게 도와준다는 말인가? 현준은 흥분으로 몸을 떨리는 걸 느꼈다.

    그들의 수련은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비록 한 번이었지만 카르타고와의 지독한 수련이 끝나고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이론부터 설명하지. ‘방패 치기’라고 들어봤나?”

    “네, 대충은 알고 있어요.”

    게임에서 본 적이 있었다.

    “방패는 훌륭한 공격 수단이 되기도 하지. 특히 오러 실드로 강화된 방패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훌륭한 둔기가 될 수 있다.”

    카르타고의 설명에 현준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여전히 트롤에게 향하고 있었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긴장하고 있군. 좋은 자세다.”

    카르타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내려준 가호로 인해 방패 치기에 대한 지식이 조금은 남아 있을 거다. 기억을 더듬어 봐라.”

    “생각났어요. 그런데 선명하지는 않아요.”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은 희미했다. 하지만 기초 방패술과 연관되어 있어서 그 동작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생각보다 기억을 흡수하는 속도가 빠르군. 이것 또한 훌륭한 재능이다.”

    카르타고가 손을 들어 올리자 트롤은 현준을 향해 창을 겨누며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긴장감 속에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지금부터 트롤이 너를 공격할 거다. 오직 방패 치기만으로 트롤을 격파해 봐라.”

    “진심이세요?”

    “안심해라. 여기서 심장이 찔리고 머리통이 박살 나도 죽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손에 든 건 방패밖에 없었다. 현준은 경악했다. 트롤은 재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격에 죽여야만 한다.

    그래서 날붙이가 효과적이었고 둔기로 상대하려면 머리통을 박살 내는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 녀석은 그냥 트롤이 아니라 광전사다.”

    트롤 광전사는 B급 정예에 해당하는 마수였다. 스켈레톤 나이트와 동급이었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세요.”

    현준은 방패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아직 F급 헌터였지만 과거와는 달랐다. 그래서 B급 마수를 상대로도 처참하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커헉!”

    B급 마수는 C급 마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시작과 동시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심장에 창이 꽂혔고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관통당했다.

    100번 정도 창에 꽂힌 뒤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후우!”

    현준은 차분하게 거리를 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창이나 검과 같은 무기가 없다는 게 큰 패널티였다. 오러 실드의 유지 시간은 아직 길지 않았고 방패 치기의 동작이 커서 명중시키지 못하면 쉽게 반격당했다.

    ‘이것도 경험인가……?’

    이렇게 수련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한숨만 나왔다. 아프고 짜증 났지만, 이 고생이 끝나면 얼마나 강해질지 기대되기에 그만둘 수 없었다.

    “와라!”

    “다시 간다.”

    카르타고가 지시를 내리자 트롤 광전사가 행동했다. 시야에는 희미한 잔상만 남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창이 복부를 꿰뚫은 뒤였다.

    “컥!”

    입 밖으로 붉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트롤 광전사는 단검을 뽑아서 현준을 목을 쳤다.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모든 것이 재생되었고 트롤 광전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250번째다. 아직인가?”

    카르타고가 재촉했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현준은 떨어진 방패를 집어 들었다. 이제 트롤 광전사의 움직임에 익숙해졌다. 반격의 때가 찾아왔다.

    “와라!”

    “다시 간다.”

    트롤 광전사가 날렵하게 움직였다. 여전히 빠른 속도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보인다!’

    움직임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여기다!’

    그는 전력을 다하여 오러 실드를 발동했다. 트롤 광전사가 너무 빨라서 카르타고의 가호를 부를 여유가 없었다.

    가호를 통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약한 오러 실드가 방패에 깃들었지만.

    ‘충분해!’

    트롤 광전사의 움직임을 예측하게 힘차게 방패를 휘둘렀다.

    콰앙!

    강화된 방패가 트롤 광전사의 몸을 강타하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단백질로 구성된 육체는 오러 실드의 강타를 버티지 못하고 처참하게 조각났다. 허리 위의 상체가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축하한다. 강현준. 이걸로 너는 더 강해졌다.”

    두려울 정도의 성장 속도였다.

    * * *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던전의 어두운 천장이었다. 꿈에서 깼지만, 카르타고의 가르침과 지식은 남아 있었다.

    현준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최고급 버프를 받은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꿈을 꾸기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자.”

    옆에 놓아두었던 방패와 검을 집어 들었다. F급 헌터 혼자서는 절대로 공략할 수 없는 C급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B급 정예 던전 안이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2기의 조명 드론이 어둠을 밝혔다. 현준은 위험이 의심 가는 곳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이동했다.

    쐐애애액!

    뭔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현준은 방패를 들어 올리며 카르타고의 가호를 호출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가호가 함께하는 한, 그 어떤 충격에도 방패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오러 실드가 낡은 방패를 강화했다.

    쾅!

    직격이었다. 하지만 투척된 창은 오러 실드를 꿰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충격으로 인해 주위의 돌바닥에서 흙먼지가 솟구쳤다.

    “크윽!”

    고속으로 날아온 창을 막아낸 탓에 현준은 얕은 신음을 흘렸지만, 방어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덜그럭!

    어둠 속에서 스켈레톤 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허한 눈구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녹색 안광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B급 정예 등급의 마수였지만 1기밖에 없었다. 현준은 자신감을 가지고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스켈레톤 나이트 또한 옆에 꽂아 둔 대검을 뽑아 들었다. 거리를 좁힐수록 거대한 대검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오러 실드는……?’

    사라졌다. 지금 방패의 상태로 볼 때 저 무지막지한 대검을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심지어 대검에는 희미하지만 오러까지 깃들어 있었다.

    ‘다, 다시 가호를…….’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이런, 마력이 부족하다.’

    가호는 마력이 소모되는 버프 계열의 마법이었다. 꿈속에서 수련을 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다룰 수 있는 마력은 적었다.

    다른 F급 헌터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양이었지만 가호를 여러 번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온다!’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스켈레톤 나이트의 대검이 현준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그는 꿈속에서의 수련으로 강해졌기 때문에 휘둘러진 대검을 여유롭게 피하고 스켈레톤 나이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앗!”

    방패 치기!

    콰앙!

    오러로 강화된 방패는 아니었지만, 스켈레톤 나이트의 갈비뼈 일부가 박살 나면서 ‘핵’이 훤히 드러났다. 현준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예전과는 달랐다. 빠르게 회수된 검이 ‘핵’을 노리고 내찔러졌다. 검에 관통된 ‘핵’이 부서지자 스켈레톤 나이트는 힘없이 무너졌다.

    “해치웠나?”

    그럴듯한 혼잣말을 내뱉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스켈레톤 나이트의 시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멸했다. 현준은 남겨진 마정석을 챙겼다.

    이게 다 돈이니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마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보스방일 것 같은데…….’

    확신은 없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잠시 쉬다가 가자.’

    마력이 얼마 없었다. B급 정예 던전이니 보스는 최소 B급 정예 마수, 운이 없다면 A급 최하위 등급의 마수가 출현할 가능성도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호를 최소 1번 정도는 발현할 수 있는 마력을 모아야 했다.

    그는 주변을 철저하게 정찰하여 안전을 확보한 뒤, 구석진 곳으로 이동하여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물과 육포를 섭취한 뒤, 잠시 눈을 붙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준은 문득 찾아온 불안감에 황급히 눈을 떴다.

    “허억!”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밝은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며 맴돌고 있는 조명 드론 2대만 있을 뿐이었다.

    “마력은…….”

    충분히 회복되었다.

    “가자.”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처럼 혼잣말을 내뱉고는 방패와 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통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쉬지 않고 1시간 정도를 걷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준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녹슨 쇳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자 드론이 내부로 조명을 비췄다.

    “스켈레톤…… 챔피언…….”

    넓은 공동의 끝을 원형 철 방패와 검으로 무장한 스켈레톤이 지키고 있었다. 다른 스켈레톤들에 비해 덩치가 컸다.

    현준은 그것이 A급 최하위 등급의 마수인 스켈레톤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운도 더럽게 없네.’

    B급 정예 마수 정도라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하위 등급이긴 하지만 A급 마수인 스켈레톤 챔피언이 튀어나올 줄이야…….

    “끝까지 간다.”

    다짐과 함께 방패를 들어 올렸다. A급 최하위의 마수라고 해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허리에서 끔찍한 통증이 몰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스켈레톤 챔피언은 뒤에 있었고 허리에서는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현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고통에는 익숙했다. 그는 말없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가호가 시작됐다. 현준의 눈동자에선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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