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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전생이 날 도와줘-4화 (4/217)
  • # 4

    2장 아직 부족하다, 더 강해져라(1)

    헌터들이 파티장인 성수에게 모여들어 항의하는 투로 말했다. 마정석 루팅을 끝낸 현준은 시체를 수습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짐꾼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헌터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던전 관리국에서 사전 조사를 잘못한 것 같아요.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고는 하더군요.”

    성수가 말했다.

    “사전 조사가 잘못됐으면 제대로 된 난이도는 어느 정도일까요?”

    파티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수는 짧은 고민 끝에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심하게 어긋나는 경우는 진짜 드물다고 합니다. 아마 C급 정예 던전 정도일 거예요.”

    “C급 정예 던전이면 지금 전력으로 돌파가 가능할까요?”

    이번에는 혜진이 물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위 마수의 출현으로 그녀는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불가능하죠. 포기하고 돌아가야죠. 패널티가 있겠지만, 죽는 것보단 낫습니다.”

    성수가 말했다. 그 순간, 현준은 뇌리를 스치는 짧은 생각에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멈추고 출입문을 향해 달려갔다.

    “짐꾼! 뭐하냐!”

    상철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현준은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

    “내 말 무시하냐?”

    상관하지 않았다. 어느새 출입문에 도달했다. 현준은 잔뜩 굳은 얼굴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제발……!’

    덜컥!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겨 있었다.

    “잠겨 있어요…….”

    현준의 말에 헌터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예 던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성수가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형을 갖췄다. 그리고 던전 공략이 재개되었다.

    “진형을 바꾸겠습니다. 제가 탱커를 맡겠습니다.”

    “파티장님이? 괜찮겠어요?”

    상철이 물었다. 성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예 던전은 몇 번 공략해봤습니다. 제가 탱커를 맡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반대 의견은 없었다. 힐러가 없는 상황에서는 탱커의 부상 확률이 높기 때문에 상철도 조용히 자리를 바꿨다.

    “오빠, 무서워요.”

    “걱정 마. 내가 지켜줄게.”

    혜진은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상철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불쾌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현준은 몰랐지만, 혜진은 원래 점잖은 여자가 아니었다.

    던전에서는 도움을 받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타입이었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3시간이 지났다. D급 전투계 헌터가 한 명 더 목숨을 잃었다. 남은 공략 파티원은 성수와 상철, 혜진, 그리고 D급 마법계 헌터 한 명이 전부였다. 짐꾼 중에서는 현준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잠깐 휴식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공략을 이어왔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다. 성수의 말에 모두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하지만 휴식은 길지 않았다. 현준은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끼고 검을 뽑아 들었다.

    “기습입니다!”

    하늘에서 스켈레톤들이 쏟아졌다. 나이트는 달리 C급에 불과했지만,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벅찬 마수였다.

    “꺄아아악!”

    혜진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일반 스켈레톤들의 틈에 섞여 있던 ‘서전트’ 하나가 마법계 헌터의 심장에 검을 쑤셔 넣은 것이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피를 울컥 쏟아내며 몸을 부르르 떨다가 힘없이 고꾸라졌다.

    현준은 침착하게 방패를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스켈레톤 2기가 달라붙어서 검을 휘두르고 창을 내찔렀지만, 그는 귀신같은 방패술로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마, 말도 안 돼! F급 헌터가 C급 마수를 상대한다고?”

    혜진은 경악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이 던전은 뭔가 미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현준이 스켈레톤의 공격을 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반격하여 핵을 파괴한 것이었다.

    언데드 마수라도 핵이 박살 나면 동력원이 사라지기 때문에 쓰러지게 된다. 현준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 거짓말이야……. F급 헌터가…… 어떻게……?”

    혜진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그녀는 상철이 스켈레톤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현준을 향해 흔들리는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너,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뭐야? 뭐냐고!”

    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주위를 경계했다. 아직 스켈레톤들은 많았다. 상철과 성수가 수를 줄여 놓았지만 3기나 남아 있었다.

    “버프를……!”

    현준이 말했다. 버프가 있으면 더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혜진은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마구 저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를 뿐, 다른 이들에게도 제대로 된 버프를 걸어주지 않았다.

    덕분에 성수와 상철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둘 다 피투성이였고 성수는 왼팔이 없었다. 옆에 잘린 팔이 뒹굴고 있었다.

    “크악!”

    “이, 이제 싫어!”

    “오, 오빠! 나 지켜준다고 했잖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성수가 쓰러졌다. 상철은 도망을 선택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스켈레톤들이 투척한 창에 복부가 꿰뚫리고 심장이 찢겨 나갔다. 상철은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한 것인지 스켈레톤들은 녹색 안광을 빛내며 상철의 시체를 마구 찔러서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이제 살아 있는 자는 현준과 혜진이 전부였다. 스켈레톤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그들은 흩어져서 먼저 혜진을 노렸다. 현준은 긴장한 얼굴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사, 살려 줘!”

    혜진이 외쳤다. 현준은 그녀를 포위한 스켈레톤들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F급 헌터는 상대조차 할 수 없는 C급 마수가 분명했을 터였다.

    하지만 현준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으로 스켈레톤들의 공격을 방패로 흘리고 반격했다.

    ‘이, 이게 현준이라고?’

    혜진은 경악했다. 그녀가 알고 있던 현준이 아니었다. 포위를 형성했던 스켈레톤 3기를 처리한 현준은 혜진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따라와.”

    “으,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서가는 현준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렇게 내 방패가 되는 거야.’

    혜진은 속으로 싱글벙글했다. 이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관문에 도착할 때까지 현준은 말이 없었다.

    불안한 분위기를 읽은 혜진은 떨리는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혀, 현준아. 나 안 버릴 거지? 너 남자잖아……. 그렇지? 남자는 여자 버리는 거 아니잖아.”

    관문을 살피던 현준이 고개를 돌려 혜진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말을 끝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익숙한 그 미소에 혜진은 안심했다. 그러면서 현준의 팔을 슬며시 끌어안았다.

    ‘그래, 지금은 날 지켜줄 방패가 필요해.’

    사랑은 식었다. 단지, 희생양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병신 새끼……. 좋다고 실실 웃기는…….’

    혜진의 속마음이었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다.

    “열게.”

    “으, 응……. 조심해.”

    현준이 철문을 열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흔들리는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에는 붉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깊이는 알 수 없었지만, 수면이 구름다리와 상당히 가까웠다.

    “머, 먼저 건너…….”

    저기에 뭔가 있을 것 같다.

    불길함을 느낀 혜진이 현준을 구름다리 방향으로 슬며시 밀었다.

    하지만 현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칼날의 끝으로 다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먼저 건너가.”

    희생해 줄 생각? 그런 건 없다.

    ‘왜 그래야 하지?’

    지금까지 혜진이 한 행동을 보라, 인정에 호소하는 건 방금 전이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인연은 조금 전에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청산되었다.

    “아, 알았어……. 건널게.”

    다리의 중간 지점까지 걸어갔을까? 붉은 수면을 뚫고 솟구친 상어 한 마리가 그녀의 머리를 뜯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에는 못 구해주겠다.”

    답이 없다. 저건 즉사다.

    “잘 가.”

    혜진의 살점이 상어들에게 뜯어먹히는 동안 현준은 작별 인사와 함께 구름다리를 건너갔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끝을 선언하고 냉정하게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배후의 그림자, 하사신이 당신의 냉혹함과 사악한 계략에 감탄하여 찬사를 보냅니다. 이 음험한 암살자는 기회가 된다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할 겁니다.

    오해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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