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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전생이 날 도와줘-3화 (3/217)
  • # 3

    1장 전생을 깨닫고 강해지다(3)

    날카로운 말투로 쏘아붙이는 그녀는 혜진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귀던 사이였지만, 오늘은 현준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살가웠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 나 스토킹해?”

    현준은 할 말을 잃었다. 혜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옆에서 잡담을 하고 있던 헌터 한 명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혜진아, 왜 그래? 아는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상철 오빠. 그냥 좀 짜증 나는 사람이에요.”

    다가온 헌터를 보며 아양을 떠는 혜진의 모습에 현준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냥 좀 짜증 나는 사람이라고? 할 말을 잃은 것을 넘어서,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그래, 구질구질한 과거 따위는 지워버리겠다는 것이겠지.

    현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는 것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그나마 남아 있던 혜진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

    이미 예전부터 그냐의 마음은 떠나 있었던 것 같다.

    “그거 뭐냐? 짐꾼이 방패 들고 온 거야?”

    혜진을 달래던 상철의 시선이 현준이 들고 있는 방패로 향했다. 그러고는 대뜸 반말을 내뱉었다.

    “네. 방패입니다. 짐꾼도 장비를 챙겨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이가 없네. 너 짐꾼 처음이냐? 그런 무거운 방패를 들고 오면 마정석 가방은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 그래? 처음이라도 생각이 없다고 티 내고 다니는 건 자제하자…….”

    상철은 대놓고 현준을 무시했다. 던전 레이드 시대가 찾아오고 F급 헌터들의 무능함이 증명된 이 세계에서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바보 같은 새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혜진도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은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가 보이는 태도가 아니었다.

    ‘서로 사랑했다는 건 착각이었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서 가슴 속에서 답답함을 이끌어 냈다.

    “너 지금, F급 헌터 주제에 내 말 무시하냐?”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본의 아니게 상철의 말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꿈속이었지만 셀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 탓에 지금 그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그 짜증 섞인 시선은 고스란히 상철에게 향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졸지에 상철에게 도전적인 시선을 보내고 말았다. 다혈질인 상철이 그것을 그냥 보고 넘길 리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헌터계에서 벌레로 취급받는 F급이었다. 손이 먼저 나갔다. 무기를 들지 않았지만 F급 헌터에게는 치명적인 주먹질이 현준의 안면을 노렸다.

    ‘보인다!’

    카르타고의 창에 수천 번 꼬챙이가 되었던 꿈속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상철의 주먹이 어디를 노리는지 알 것 같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잠깐이지만 궤적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철의 주먹은 현준의 왼쪽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뒤였다.

    뺨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오빠! 놀랐잖아요! ‘여기서’ 죽이면 귀찮아져요!”

    어이가 없었다. 던전에서는 죽여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죽인다.’

    싸늘한 살기가 현준의 눈에 깃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그렇지? 나도 그래서 위협만 한 거였어.”

    혜진의 질책에 상철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현준에게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피한 거지……?’

    욱하는 마음에 전력으로 내지른 일격이었다.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F급 헌터가 이걸 피했다고……?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상철은 할 말을 잃었다.

    “집결하세요. 10분만 있다가 공략 시작합니다.”

    던전 입구 쪽에서 파티장 안성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준은 뺨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모이셨죠? 인원 체크합니다. 짐꾼 2명에 공략 파티원 6명……. 전부 모였네요.”

    성수는 모인 헌터들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했다. 전원이 모인 것을 확인한 그는 대기하고 있던 던전 관리국 직원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던전 게이트를 개방하겠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이동합니다. 선두 탱킹은 상철 씨가 맡아주시고 2선 딜러는 제가 맡겠습니다. 남은 분들은 미리 알려드린 대로 행동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성수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진형이 구성되었다. 짐꾼들의 위치는 파티에 1명밖에 없는 마법계 헌터의 주변이었다.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기습에 당했을 때 마법계 헌터 대신 장렬하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치였다.

    “던전입니다.”

    계단이 끝나고 던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뭔가가 달랐다.

    “조명 드론 작동. 그리고 탱커, 앞으로.”

    “갑니다, 가요.”

    상철이 대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드론이 전방을 향해 조명을 비췄다.

    파티는 어둠을 뚫고 전진했다. 처음에는 마수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현준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 느낌은…….’

    카르타고의 창에 꿰뚫리기 직전에 느꼈던.

    ‘살기다.’

    어둠 속에서 녹색 안광이 번뜩였다. 현준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기회다!’

    복수와 증명의 시간이다.

    * * *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 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보았다. 녹색의 오러를 머금은 채 날아오는 하나의 창을!

    “온다!”

    “빨라!”

    “피해!”

    서로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헌터들. 방어 자세조차 완성하지 못한 그들의 뒤에서 현준은 이미 방패를 들어 올려 완벽한 방어를 준비했다.

    그의 방패에서 희미하지만 푸른빛의 오러가 깃들었다.

    “오, 오러 실드라고? 말도 안 돼!”

    누군가 경악을 담아 외쳤지만, 그 목소리는 녹색의 창이 내뿜는 미사일 같은 소음에 파묻혔다.

    ‘온다!’

    카르타고에게서 특별히 배운 것은 없었다. 투척된 창을 막는 방법, 안정적인 방패술과 관련된 정보가 어디선가 흘러들어 와 뇌에 각인되었다.

    현준은 본능에 가까운 지식에 충실했다.

    쾅!

    창과 방패가 충돌하면서 굉음이 터졌다. 천지를 뒤흔드는 충격이 후폭풍을 일으켰고 흙먼지가 일어났다.

    “크, 크윽!”

    “으악!”

    일시적으로 땅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D급 전투계 헌터 2명이 순간 비틀거렸다.

    “누가 맞았어?”

    파티장인 성수는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짐꾼 1명이 맞은 것 같습니다! 아마 죽었을 거예요!”

    “직격이었어요!”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의 충격을 몰고 온 창을 받아낸 현준은 정작 멀쩡했다.

    오러 실드가 박살 난 걸 빼면 피해는 없었다.

    “뭐, 뭐야?”

    “살아 있었다고?”

    “말도 안 돼!”

    모두가 경악했다.

    ‘돌아왔다…….’

    현준은 그들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호가 끝난 것인지 일순간 강화되었던 동체 시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잠시나마 뇌에 각인되었던 방패술과 관련된 지식도 극히 일부분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뭐였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들렸던 목소리는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혼란스러웠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스켈레톤 나이트다!”

    “왜 B급 정예 마수가 여기서 나와?”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컥!”

    스켈레톤 나이트는 탱커 역할을 맡은 상철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파티의 진형 깊숙이 침투하여 짧은 소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깃든 칼날이 D급 전투계 헌터 1명의 목을 깊이 베었다. 고통에 찬 신음성과 함께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깊숙이 파고 들어온 스켈레톤 나이트의 검에 현준과 함께 온 다른 짐꾼의 복부가 꿰뚫렸다.

    “진성아!”

    “탱커는 뭐합니까!”

    “망할 B급 정예 마수라고!”

    C급 던전에서는 보스방이 아니면 결코 출몰하지 않는 B급 정예 마수의 등장에 파티는 혼란에 빠졌다. B급부터는 헌터고, 마수고 초월의 영역이다.

    C급 전투계 헌터이자 파티장인 성수가 서둘러 스켈레톤 나이트를 상대했지만 밀리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파, 파이어볼!”

    하위 마법이 스켈레톤 나이트의 머리통에 작렬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 마법에 마수가 비틀거리자 성수는 뒤늦게 합류한 상철과 함께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다.

    “헤이스트!”

    혜진이 버프를 걸었다. 헌터들이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붓자 스켈레톤 나이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현준은 스켈레톤 나이트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달려가서 마정석을 루팅했다.

    “파티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C급 던전에서 B급 이상의 마수는 보스방에서만 출몰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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