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1장 전생을 깨닫고 강해지다(2)
“전생이요?”
“그래.”
“그러니까 아저씨가 내 전생이라고요?”
쉽게 믿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전생이라니……. 어린 애를 상대로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현준을 보며 카르타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전투 자세를 갖췄다.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뾰족한 창끝으로 현준을 겨눴다. 스산한 살기가 흘러나와 어두운 공간을 장악했다.
“안 믿어도 상관없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어……?”
“10번쯤 꼬챙이가 되면 정신을 차리겠지.”
뒤에서 카르타고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흉부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래로 시선을 향하는 순간 끔찍한 고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크아아아악!”
가슴을 꿰뚫은 창대가 보였다.
“고작 한 번이다.”
카르타고는 능숙하게 창을 뽑았다. 현준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꾸, 꿈…… 아, 아파! 으으윽!”
꿈이 분명할 텐데, 고통은 선명했다. 현준은 고통스럽게 헐떡였다.
“엄살 부리지 마라, 상처는 회복되었다.”
카르타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통은 사라져 있었다. 현준은 가슴으로 손을 가져갔다. 구멍이 뚫려 있어야 할 곳은 멀쩡했다.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움직여진다?’
다리가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무섭게 그는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달려갔다. 꿈인지 뭔지 몰라도 이 미친 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도망치는 거냐?”
현준의 뒷모습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카르타고가 물었다. 현준은 대답 대신 문고리를 잡았다. 아픈 건 싫다.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네 전생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카르타고는 방패를 던졌다. 현준의 발밑에 방패가 떨어졌다.
“중요한 건 내가 널 강해지게 해줄 수 있다는 거다.”
그것은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은 말이었다. 문고리를 돌리려는 현준의 움직임이 멈췄다.
카르타고의 말이 현준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현준은 문고리를 돌렸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생각이냐. 오늘처럼 그렇게 평생 굴욕적인 삶을 살 생각인가? 너는 겁쟁이에다가 도망자냐? 부정할 생각이 없다면 문을 열고 나가라! 나도 그런 바보 같은 놈을 단련시켜줄 생각은 없다!”
현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붉은 핏줄기가 턱을 타고 흘렀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현준은 겁쟁이였고 도망자였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며 오늘 혜진과의 이별에서도 그랬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하지만!”
카르타고의 우렁찬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뒤흔들었다.
“지금부터라도 달라지고 싶다면 그 방패를 집어 들어라! ‘우리’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
“도와준다고……?”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그뿐이다. 밑바닥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헌터라는 이름 앞에 붙은 ‘F급’이라는 수식어는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꿈도 없이, 영원히.
짧은 고민, 몇 번이나 고개를 저으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 당장에라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에 손이 떨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리를 스치는 비참한 지난날의 기억들이 머리통을 두들겼다.
그래서 결정은? 그래,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
“저는 이제 도망치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행적을 부인하기라도 하듯 발악에 가깝게 소리쳤다. 왼손에는 언제 집어 들었는지 모를 방패가 들려 있었고 시선은 카르타고에게 향하고 있었다.
“좋다. 너는 이제 도망자도 아니고 겁쟁이도 아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환생’이다. 강현준.”
그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현준은 생각했지만, 그 사소한 행동이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란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다.
“지금부터 너를 단련시키겠다.”
카르타고는 현준을 향해 창을 겨눴다.
“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거다.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 너는 수천 번의 죽음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네……?”
“첫 번째 수업이다. 내 공격을 한 번이라도 좋으니, 무효로 만들어라. 피해도 좋고 그 방패로 방어해도 좋다.”
잔혹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크아아아악!”
100번째 창에 꿰뚫렸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고통이 느껴졌고 정신을 차리면 눈앞에 카르타고가 있었다.
“쿨럭!”
300번째 창에 꿰뚫렸다.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조금이지만 카르타고의 움직임이 보였다. 짧은 순간 잔상이 눈에 남았다.
“크윽!”
500번째 창에 꿰뚫렸다. 이제 고통에는 익숙해졌다. 동체 시력도 강화된 기분이었다. 희미하지만 카르타고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800번째 창에 꿰뚫렸다. 이제는 카르타고의 동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면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리게 되었다. 물론 그뿐이었다. 창에 꿰뚫린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크아악!”
1000번째 창이 복부를 꿰뚫은 순간부터, 더 이상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한 죽음을 경험한 탓일까? 현준은 정신력이 급격하게 마모되는 것을 느꼈다.
“컥!”
1,500번째 창이 머리통을 박살 냈다. 감정을 잃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정신이 망가졌다.
“너는 강해질 수 있다.”
지쳐서 쓰러지고 싶을 때마다 카르타고가 다독였다. 그는 훌륭한 교관이었다. 현준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방패를 들어 올렸다.
“슬슬 내가 움직이는 게 보이기 시작했을 거다.”
대답이 없다. 흐릿한 눈동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카르타고가 재차 묻자 현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점차 선명해졌다. 그럴 때마다 현준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첫 번째 수업이 끝날 때가 다가오는군.”
카르타고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다시 창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방어하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는 것을……!”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앞에 있었다. 현준은 황급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안 돼! 늦어!’
방어는 불가능. 그렇다면 공격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
기합과 함께 휘두른 방패가 카르타고의 창을 쳐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동선이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하하! 보였느냐?”
카르타고는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현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수업은 끝났다.”
“하지만 저는…….”
“너는 지금까지 2,450번 창에 관통당했다. 나는 24개의 기초 창술을 사용하여 공격했지.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카르타고는 창을 들어 올렸다.
“굳이 내가 설명해 줄 필요는 없겠지. 몸이 기억하고 있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카르타고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감히 장담하건대, 꿈에서 깨어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거다.”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 * *
“헉!”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현준은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좁은 원룸 안이었다. 바닥에는 빈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꿈을 꾼 건가……?’
카르타고가 내찌른 창에 꿰뚫린 느낌이 아직도 선명했다. 피를 쏟으며 몸을 꿈틀거리던 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 같았다.
단순한 꿈이었을까? 현준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카르타고는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했었지만 변한 건 없어 보였다. ‘역시 개꿈이었나?’ 하는 생각에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는 순간이었다. 옆에 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관리국 꼰대.]
안석규다. 현준은 스마트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으…… 석규냐…….”
여전히 전신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숙취가 아니었다. 혼탁하던 정신도 조금이나마 회복된 것 같았다. 이유나 원리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야, 너 술 마셨냐? 지금 일정 잡혔는데, 나올 수 있겠냐?
“가야지.”
-지금 나와.
“알았어.”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전화를 끊었다. 이윽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행히 그가 지내는 원룸에서 가까웠다. 그는 구석에 놓아둔 장비를 챙겼다. 검을 챙겨 들고 원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처음 헌터로 등록했을 때 지급받은 투박한 방패가 눈에 밟혔다.
“…… 모르겠다.”
결국, 방패도 챙겼다.
던전까지는 도보로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긴 끝에 던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곱 명이 모여 있었는데, 큰 가방을 메고 있는 한 명은 짐꾼인 것 같았다.
‘공략 파티원은 여섯 명 정도인가……?’
파티원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던 현준의 눈동자가 멈췄다. 그리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뺨에 닿는 시선을 느낀 것일까? 갈색 단발의 여성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