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화 (1/217)

# 1

1장 전생을 깨닫고 강해지다(1)

“네가 가져갈 정산금은 없으니까, 돌아가.”

“네?”

믿을 수 없었다. 나도 목숨을 걸고 던전을 공략했는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내 물음에 파티장을 맡았던 D급 헌터는 한심한 쓰레기를 보는 듯한, 역겨움을 간신히 참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칼빵만 맞고 피 줄줄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울기만 했잖아.”

“그래요. 우리가 던전을 공략할 동안 강현준 씨는 뭘 했죠?”

파티장의 여자친구로 보이는 보조계 헌터가 동조했다.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면서.

“하, 하지만…… 이건…… 불법이라고요!”

“그래서 어쩔 거야? 헌터 협회에 찌르려고? 우리 형이 거기 간부야. F급 헌터 주제에 나대지 마라.”

대답할 수 없었다. F급 헌터가 던전과 레이드가 등장한 이 미친 세상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은 없다. 더럽지만 그게 현실이다.

“네 상처 치료하는 데 쓴 약품값은 안 받을 테니까, 가라…….”

“수고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하나씩 하나씩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재능이 있지만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언젠가는 내 안의 잠재능력이 각성하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품고 있던 희망이 희미했다.

“술이나 마시자.”

혼잣말을 쏟아내는 것과 함께 편의점에서 술을 마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혀를 찰 정도였다.

술을 마시는 것 말고는 이 울분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소주 2병을 마시고 만취해선 의자에서 일어났다.

“헌터님. 전생이 많아 보이시네요.”

초라한 원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남자한테 붙잡혔다. 전생이 많아 보인다는 말에 흥미가 생겨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생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예요. 헌터님은 전생을 아주 많이 가지고 계시네요. 그것도 평범한 전생들이 아니에요. 모두 하나같이 최강의 이름을 가졌던…….”

“그만하자.”

불쾌한 기분에 반말이 튀어나왔다.

“믿기 힘들면 그냥 가세요. 어차피 제 역할은 여기서 끝났으니까.”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사라졌다. 난 붙잡지 않았다. 그저 취기에 몸을 맡긴 채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할 뿐이었다.

-당신은 전생의 존재를 깨달았습니다. 99만의 전생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귓가를 떠도는 한마디의 낯선 목소리를 외면하며, 그저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찾던 재능이 각성한 건 꿈에도 모른 채.

* * *

한적한 카페에 두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혜진아, 오늘은 던전 공략 일정이 없는 거야?”

불안한 표정의 남성, 현준이 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애써 외면했다. 불길한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길드 일정도 없어.”

혜진이 대답했다. 무능력한 F급 전투계 헌터인 현준과 달리 그녀에게는 소속된 길드도 있었다.

상위권 길드는 아니었지만, 현준과는 차원이 다른 위치에 있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구나. 오랜만에 얼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동안 우리 혜진이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었잖아.”

“일 없는 것보다는 낫지.”

“그건 그래.”

현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차가운 말이 마치 무능력한 자신의 상황을 비꼬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가슴이 아팠다.

“현준아. 우리 오늘로 만난 지 1년 되는 날인 거 알아?”

혜진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알고는 있었다. 준비할 수 있었던 게 없었을 뿐이다. 외면하고 싶어서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아…… 미안해…… 준비한 게…….”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었다.

F급 전투계 헌터의 벌이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인에 비해 수입이 극단적으로 적을 수도 있었다.

“괜찮아. 우리 이제 헤어질 거니까.”

“뭐?”

“나 남자 생겼어.”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준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혜진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런데 나는 더 이상 고생하고 싶은 생각 없어.”

“하, 하지만…….”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잘 들어. 1년 전이랑은 달라. 그땐 나도 F급이었지만 이제는 C급이야. 게다가 나는 보조계 헌터야. 준귀족이라고. 언제까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 수는 없잖아? 너도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지.”

1년 동안 사랑했던 여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냉정한 세상에 적응한 한 명의 ‘타인’만이 이곳에 있을 뿐이었다. 슬픔은 사라지고 분노가 피어올랐다.

“누구야? 그 새끼.”

목소리가 떨렸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가서 죽이려고? 포기해. 우리 길드 A급 헌터야. 너는 1초 만에 죽을걸? 헌터 세계의 정당방위 규칙은 너도 알고 있지? 죽으면 너만 손해야.”

혜진은 남은 아이스티를 모두 마셨다. 현준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혜진은 모든 일의 정리가 끝나서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현주의 심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강현준, 나 인제 간다?”

일어날 생각은 없었다. 대신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혜진은 카페 앞에 주차되어 있는 외제 차의 조수석에 탔다. 열린 창문으로 두 남녀가 미소 짓는 모습이 보였다. 현준은 이를 악물었다.

“힘들다.”

힘도 없고 돈도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당장 현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유일한 친구인 석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F급 던전 꽉 찼다.

전화를 받은 석규가 대뜸 말했다. 그는 던전 관리국의 직원이었다. 그래서 현준은 그에게 전화를 걸 때면 F급 던전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하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짐꾼 구하는 파티 있냐?”

현준이 물었다. 짐꾼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마정석 루팅과 운반만 맡아서 한다. 다만, 짐꾼을 구하는 파티는 대개 높은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기 때문에 그 위험 부담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현준은 짐꾼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짐꾼? 너, 무슨 일 있냐?

“돈이 필요해서.”

-C급 던전 공략 파티에서 짐꾼을 1명 구하기는 하는데……. 별로 질 좋은 애들은 아니야. 괜찮겠어?

석규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묻어 나왔다.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친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금만 제대로 해주면 돼.”

-그럼 일단 연결시켜 줄게. 내일 던전 관리국으로 나와.

“고맙다.”

-너랑 나랑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이 정도도 못 해주겠냐? 다녀와서 밥이나 사라. 보수는 넉넉히 줄 것 같으니까.

“그래.”

석규와의 통화가 끝났다. 현준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조금 전까지 혜진이 앉아 있었던 빈자리를 응시했다.

정말 많이 사랑했었다.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구차하게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집에 가자.”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빈손은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소주가 잔뜩 담긴 비닐봉지를들고 있었다.

그는 그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 * *

눈을 뜬 곳은 낯선 복도였다. 복도의 끝에는 평범한 철문이 있었다. 가끔 꾸던 꿈이었다. 언제나 문 앞을 서성이다가 깨고는 했지만, 오늘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저 문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현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궁금했다. 갑작스럽게 점화된 호기심은 그의 전신을 장악하고 뇌를 자극했다.

‘저 문을 열어보고 싶다!’

현준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철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코앞에 철문이 있었다. 다를 때였다면 무시하고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평소와 같은 두려움이 아닌 뭔가 강렬한 것에 이끌려 손잡이를 잡았고, 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을 머금은 ‘방’은 청소기처럼 현준을 빨아들였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방문은 닫혀 있었고 어둠도 천장의 빛 무리에 의해 사라진 뒤였다.

“무, 무슨…….”

혼란스러웠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넓은 석실의 중앙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환영한다. 강현준.”

현준의 시선을 느꼈을까? 남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곧은 시선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내 이름은 카르타고, 제국 북쪽을 지키는 정의로운 방패. 그리고…….”

카르타고는 바닥에 놓여 있는 방패와 창을 들어 올렸다.

“강현준, 너의 전생이다. 지금부터 널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첫 번째 전생과의 만남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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