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세기 천마실록-12화 (13/29)

제 12화

작은 협객

은하수가 눈처럼 느릿하게 떨어지는 밤중. 무진은 멀리서 느껴지는 기척에 눈을 떴다. 어지간한 기척으로는 절세고수의 신경을 긁어놓지 못한다.

그들이 품은 마음이 날카로운 비수라는 뜻이다. 사람 여럿을 찔러 죽이기에 충분했다.

무진이 강화된 청력으로 공기가 작게 요동치는 흔적을 잡아냈다.

"여기에 놈들이 있는게 맞겠지?"

"맞아. 정보는 정확하다."

"드디어 일가의 원한을 갚겠군."

"개 같은 새끼들. 지옥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해 주마."

검은 옷을 입은 검은 머리 짐승들. 그 속내조차 시커멓기 그지없다. 그러나 놈들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자신이라면 모르겠으나, 여기 있는 나머지는 암습을 전제한다면 모두 속수무책으로 당할 터. 아니지. 그들의 살심을 읽어낸 사람이 한명 더 있었다.

천유월. 곤륜의 제자가 어느샌가 보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뒤로 몰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놈을 죽이면 나머지는 어찌해야 하나."

"뭘 어쩌겠어. 전부 묻어야지."

개중 한 명이 태연한 말투로 멸구(滅口)를 입에 올린다.

"묻어? 아무도 모를텐데 그냥 가도 상관없지 않은가?"

"저 많은 놈들중에 딱 둘만 죽어 봐. 곧바로 우리가 지목당할 거다. 전부 죽이고 사고로 위장하는 편이 나아."

"그렇구만."

"그리고 저 놈들도 결국 물건을 옮기는데 협조한 이들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괘씸하군."

"맞네. 전부 죽여버리지."

놈들이 일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사박ㅡ!

수풀 사이에서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복면을 쓴 남자는 순간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 사이로 사라지는 사람의 형체. 달빛 사이를 지난 흔적이 선명하다.

깨있는 놈이 있었다.

밤중에 오줌보를 참지 못한 놈일까. 혹시 대화를 들었을까. 마음이 심란해졌다. 옆에 있는 동료도 그것을 눈치챈 듯하다.

톡톡.

남자가 동료의 몸을 두드렸다.

"이봐. 뒤에 누군가 있다."

복면 사이의 눈알이 데구르르 굴러간다. 무공을 익힌 무인의 감각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다. 전설 속의 이형환위(移形換位)가 아니고서야.

스르릉ㅡ.

검이 달빛을 받아 빛난다. 그들은 그것을 제 몸 뒤로 숨겨 역수로 쥐었다. 흉악한 날붙이가 밤하늘의 눈을 피해 숨어들었다.

그 상태로 살금 살금. 놈들은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뒤로 따라붙은 무진은 유월이 그들을 유인하는 중이라고 느꼈다.

유월의 뒤까지 접근한 놈들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그 안에 담긴 속뜻은 명확하다.

죽여라.

그 순간, 유월의 신형이 가속해 나무 사이를 가로질렀다.

파바박ㅡ!

"잡아!"

날숨 섞인 외침이 터져나온 직후 이어지는 추격. 순식간에 나뭇가지 위로 올라탄 놈들이 유월의 뒤를 바짝 쫓았다.

소리는 숲의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진다. 잠든 목표와 멀어지자 그들의 움직임에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파슥ㅡ.

검을 휘둘러 풀을 헤쳐나가고. 우지끈대며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를 뒤로하며. 흙이 발짓에 채이는 소리도 개의치 않는다.

단 한 명의 목격자가 명운을 가르는 법.

그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인영을 추격한다. 거기다 산을 타는데 익숙해 보였다. 놈들에게 유리한 전장이란 뜻이다.

추격전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유월이 숲 한가운데 드러난 공터에서 멈춰섰기 때문이다.

적에게 유리한 지형을 피하는 것.

마적을 상대한 경험에서 배운 지혜였다.

저벅, 저벅.

여섯의 무인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새 대형을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여섯 방향에서 그녀를 감싸는 형태였다.

"최대한 빨리 죽여 없애. 현장을 꾸미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알겠다."

놈들이 검을 빼 들고는 유월을 향해 겨눴다.

허나 무진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경지는 죄다 삼류. 혹은 그 이하였다. 유월의 실력은 자그마치 이류에 달했으니 어지간해선 질 수 없을 터.

십 대에 무공에 입문한 삼대제자가 꼬박 십 년을 수련에만 매진해 얻는 경지가 삼류다. 그러고도 또다시 십 년을 지내야 겨우 이류의 경지에 들어간다.

그녀의 나이는 겨우 이십대 초반. 못해도 십 년 만큼의 재능이 있었다. 절정의 벽을 노려볼 수도 있는 재목이란 뜻이다.

후웅ㅡ!

그녀는 사방에서 뻗어지는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적들은 연계 동작마저 익숙치 않았는지 자꾸만 서로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실수를 연발했다.

유월은 그 틈을 노려 날카로운 검격을 찔러 넣는다. 예리한 기운을 머금은 칼 끝이 다리의 질긴 힘줄을 잘라 놓는다. 한 명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순간 그녀의 뒤에서 월광을 받은 검날이 번뜩인다. 한 명이 줄어드니 되려 연계가 날카로워지는 기현상. 간신히 피한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구리 사이로 검을 찔렀다.

남은건 세 명.

그러나 멀리서 지켜보던 무진은 기이함을 느끼고는 유월의 몸짓을 살폈다.

'이상하군.'

제 성격을 고스란이 녹인 듯한 나긋한 칼질. 살기가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도가의 정석과도 같은 초식.

쓰러진 이들은 신음할지언정 목숨이 위태롭진 않았다. 평생을 불구로 살아갈 정도는 되겠지만 죽이기엔 턱없이 모자른 손속이다.

무진이 작게 뇌까렸다. 멍청한 것. 알량한 협행 따위 버리라 하였거늘.

상대에게 유리한 공간을 피하는 것으로 보아 성장했다고 느껴졌는데, 유약한 성격만큼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사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흑도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사지 근맥이 잘려도 입에 흙을 머금고 기회를 노리는 것이 흑도들이다.

그런 이들을 상대로 저리 가벼운 손속을 쓰다니.

결국 사단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철컹ㅡ.

무인 중 하나가 제 팔에 칭칭 감긴 쇠사슬을 풀어 헤쳤다. 길게 늘어진 철편(鐵鞭)이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댄다. 무진의 눈이 커졌다.

검을 다룰 때와 달리, 쇠사슬을 손에 쥐니 오히려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닐 터. 처음 든 무기는 위장이었던 셈이다.

촤르르르ㅡ!

채찍이 뻗어짐과 동시에, 근맥을 잘라 불구로 만들었을 이들이 고개를 번뜩 들었다. 광기에 찬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났다.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 입에는 죽통을 가공해 만든 대롱이 물려져 있었다. 투웃! 공기를 내뱉는 답답한 소리가 다발적으로 울린다.

그와 동시에 쏘아지는 독침들.

쐐애액….

눈앞에선 묵직한 철편이. 그리고 사방에선 날카로운 침이 그녀를 향해 쇄도한다.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어보이는 협공.

무림 초출에 이류라고는 하나 역시 곤륜의 제자. 빠르게 판단을 마친 유월은 검막을 펼쳐 날아오는 침을 쳐냈다.

암기들이 검면에 맞아 힘없이 나동그라진다. 그러나 그 사이 철편이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다급히 검을 들어 막아보지만.

쩌엉ㅡ!!

자세를 잡을 틈도 없이 무턱대고 막아서일까. 전해져 오는 충격이 거셌다. 검도 거의 부러지기 직전인듯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모양새였다.

"크읍…!"

시큰거리는 손목.

팍 일그러진 표정이 그녀가 느낀 고통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등 뒤에서 번뜩이는 칼날이 그녀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어떻게 할까.'

여기서 그녀를 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확실히 이런 곳에서 죽기엔 아까운 재목이다. 생각은 짧았고 동작은 신속했다.

무진은 어느새 옆에 있던 돌맹이를 주워 들고서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후웅ㅡ!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묵직한 돌덩이가 암습을 가하던 놈의 머리통을 후렸다. 뻐억! 후두부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놈이 눈을 까뒤집은 채로 거품을 물고.

뒤이어 돌덩이 하나가 더 날아들었다. 이번엔 철편을 휘두르는 놈을 향해서였다.

"무슨…!"

한 눈에 봐도 기겁할 만한 속도로 날아드는 돌덩이. 기세 좋게 철편을 휘두르던 놈은 경악한 채로 사슬을 회수해 날아오는 그것을 막아내었다.

잘 받아내었음에도 팔뚝에 전해진 충격이 얼얼하다. 대체 누가 그런 공격을 가했단 말인가. 감히 상상할수 없는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쩌어억ㅡ!!

뒤이어 날아온 돌맹이가 또다시 팔뚝을 후려쳤다. 단 두 번의 충돌만에 근육은 철편을 쥘 힘조차 잃고 사정없이 떨린다.

무진이 벌어다 준 삼 초 가량의 틈. 유월은 재빠르게 검을 회수한 후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실로 본능적인 움직임이 검을 천천히 밀어냈고.

칼은 월광을 받아 한없이 미끄러지다 툭, 하고 살점에 닿았다. 그러고도 칼날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지른 살초였다. 운좋게도 제대로 된 유효타를 입히고 말았다.

죽였다는 소리.

"…어?"

목에서 튀어나온 걸죽한 액체. 녹슨 철의 냄새를 닮은 비릿함이 그녀의 손에 묻었다. 살인의 충격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강호를 살아간다면 반드시 찾아오는 그것은 마치 점지된 운명과 같아서.

사유가 어찌됐건, 참작 따위는 없다는 것처럼 판결을 내려버린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이라 해도 그렇다. 사람이 사람의 삶을 거뒀기에.

유월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죽었어?"

데구르르….

떨어져 나온 머리통이 바닥을 구른다. 남이 죽인 시체는 간혹 보았지만, 직접 죽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검면에 살결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끔찍했다. 그것이 아직 손아귀에 남아있는 듯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와중에 살아남은 하나는 이미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돌덩이를 하나 더 던져 놈을 제압한 무진이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깊게 눌러쓴 챙모자를 벗은 채로다.

동시에 기척을 느낀 그녀의 고개가 무진을 향해 돌았고. 유월은 그를 향해 곧장 경악하는 표정을 내비쳤다. 저자가 왜 여기에

"살인이 처음인가."

"마인…!"

"충격이 큰 모양이군."

"날 따라온 건가요?"

"그럴 리가. 우연이다. 그나저나 며칠 만에 보는군. 잘 지냈나?"

무진이 반가운 척 안부 인사를 건넨다. 물론 그것이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녀의 귀에 들릴리는 없었고.

유월은 횡설수설하며 무진에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첫 살인은 강호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누구던지 겪을 수밖에 없으니까.

간혹 정신이 너무 유약했던 나머지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금분세수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것이 말이 좋아 금분세수지, 심마에 빠져 평생을 폐인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심마에 빠지기엔 아까운 재목이다. 해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큰 충격을 끼얹어 버리면 그만.

"남은 이들이 많군. 전부 불구로만 만들어 놓았어. 죽이지 않을 셈인가?"

"당신, 소림승 서른을 죽인 마인이잖아."

대화가 의미 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무진이 보기에 그녀는 말한다고 해서 들어먹을 상태가 아니었다. 소 귀에 경읽기와 같은 격.

차라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빨랐다.

"그래. 마인이지. 그러니 이들을 죽이지 않겠다면 내가 대신 죽여주겠네. 어떤가. 부담을 덜어 주지."

무진은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흑도 무인에게 걸어가 발을 높게 들어올렸다. 내공 따위 운용하지 않아도 목을 밟아 부러뜨리는 일은 손쉽다. 지금의 몸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터.

반대로 말하자면, 유월이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막힐 동작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막았다.

무진이 유월을 향해 물었다.

"왜 막지?"

"…죽이지 마요."

"어째서?"

"죽이지 말아줘요."

무진은 그리 말하는 유월을 뿌리치며, 자신의 발치 아래에 있던 이를 내려다 보았다.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상태.

쩍쩍 갈라져 가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죽여… 줘…."

무진은 그가 아까 전, 일가의 원수를 입에 올렸던 이였음을 기억했다.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절망은 자신이 알던 복수귀의 울부짖음과 똑 닮았다.

무진이 그녀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죽여 달라는군. 어찌 할텐가."

유월은 미동조차 없었다. 겨우 손을 올려 복면을 벗은 흑도는 숨을 한 차례 몰아쉬더니, 무진의 아래에서 조용히 외쳤다.

허파의 바람이 빠지는 소리만이 생생하다. 집중해서 들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상인 놈들… 아편… 가족이, 여보. 여보…."

죽어가는 이가 내뱉은 몇 가지 단어의 나열. 무진은 그것만으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덤으로 향신료 아래에 묻혀 있던 퀴퀴한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무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반려를 애타게 부르는 눈빛은, 전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운 사람의 손짓이 보이고 있을테지.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다리에 난 상처가 아슬아슬하게 동맥을 건드린 듯하다. 시간이 없었다. 무진은 칼을 쥔 유월의 고운 손을 조심스레 잡고는.

푸욱ㅡ.

찔렀다.

유월의 몸이 움찔 떨린다.

흑도의 몸이 잠시 파들파들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무진은 그녀를 강제로 데려가 쓰러져 있는 이들 모두에게 같은 행위를 반복하였다.

"은원이 얽혀 있었던 모양이야. 아쉽군."

무진은 그리 말하고는 유월의 표정을 들여다 보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듯 이리저리 요동치는 동공.

핏기가 싹 가신 채 달달 떨리는 척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게 어설픈 협행은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나. 응?"

"……"

"강호사에 얽힌 은원에 끼어들지 말라는 이유가 실감이 가나? 져야 할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자네는 이미 두 번이나 은원이 얽힌 일에 끼어들었군. 그중 하나는 내 일이고 말이야."

유월의 온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다. 살아있는 시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너무나도 처량한 듯해서 고개를 절로 돌아보게 만드는 몰꼴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악ㅡ!

무진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새하얗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대신 유월의 눈에는 총기가 조금은 돌아온 듯하다. 정신을 차렸다는 뜻일까.

"지금. 네가 끼어든 일이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되나?"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겨우 정리된 모양.

무진이 이어서 말했다.

"강호사의 은원에 끼어듦은, 네가 양쪽의 업을 모두 짊어진다는 것과 같다. 그것이 비로소 협(俠)이다. 네가 아직도 협객을 꿈꾼다면, 가서 마저 할 일을 해. 끼어든 대가를 치뤄."

"…뭘 하면 되죠?"

공허한 유월의 물음에 무진은 딱 잘라 말했다.

"단죄."

상단을 습격하려는 흑도들을 죽여 막아세웠으니, 이제는 마약상이 그들에게 저지른 업을 대신 청산해 줄 차례다.

무진의 앞에서, 강호에 첫 걸음을 내딛은 협객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또 한 명이 세상으로 나왔군.'

무진은 그녀의 뒤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웠다.

연기는 참 더럽게 썼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요, 문주님?"

"뭐긴 뭔가. 협객 나으리가 일을 낸 게지."

무진과 허유가 활활 불타는 상단의 행렬을 뒤로하고 걸었다. 조금만 맡아도 머리가 아찔해지는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오른다.

과연 몇 명분의 아편을 운반하고 있던 것일까. 뭐, 이제는 전부 부질없는 일이 되었지만서도.

협객이 상단의 책임자를 불구로 만들어 버린 후, 짐마차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무진은 그 안에서 산동으로 갈 예정이던 고급 시가 몇 갑만을 챙겨 나왔다.

후우우웅….

어느샌가 불어온 바람이 연기를 하늘 저 높은 곳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자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별 일 아니다. 강호에서 흔히 있는 일이지. 상행 한두개가 습격받아 망하는 경우는 잦지 않나?"

"널린 일이긴 합죠… 그런데 그걸 직접 보니 감회가 참 새롭습니다요."

"살면서 또 얼마나 겪어보겠나."

"문주님 곁에 있으면 지금보다 더한걸 계속 겪을것 같긴 한데 말입죠."

허유가 쏘아붙이는 말에 무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자네는 산동으로 어떻게 갈 지나 생각하는게 좋지 않겠나."

"아이고… 어떻게 가긴 뭘 어떻게 갑니까요. 죽어라 걸어야지요."

"그거 큰일났군."

무진과 허유의 그림자가 등 뒤로 번지는 화마를 뒤로한 채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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