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90
수현은 어머니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인데 이렇게 보자고 한 거니?”
그의 어머니가 약간의 걱정과 불편함이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수현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핸드폰은 언제 바꿨어?”
그의 어머니가 재빨리 물었다.
“이번에요. 그것 말고 부탁드릴게 있어요.”
수현이 다시한 번 말했다.
“그래, 무슨 부탁?”
그의 어머니는 일단 넘어가겠다는 듯이 말했다.
“네. 일단 이것부터 보시면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수현은 HTS를 켜고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그의 어머니는 인상을 찡그리고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이게 뭐야? 너 주식 같은 거 하니? 돈 날렸어?”
그의 어머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히스테리를 부리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 말했다.
“네. 근데 아래 보세요.”
수현은 예상한 그대로 나오는 반응에 얼른 말했다.
“뭐?”
여전히 날카로운 목소리가튀어나왔다.
“아래 숫자요. 제가 몇 달 동안 번돈이에요.”
수현은 사무적인 말투를 유지하며 말했다.
“무슨 소릴...?”
그의 어머니는 화가 폭발하기 직전의 표정으로 멈춰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이게 뭐니? 시...십칠억?”
그의 어머니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시 HTS창을 바라보았다.
“네. 십칠억. 제가 번 돈이에요. 2월부터 지금까지. 한 6개월 걸렸죠.”
수현은 만족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절로 비릿한 비웃음이 지어졌다.
“이...이게 무슨! 진짜 돈이야?”
“네.”
그의 어머니는 입을 떡 벌릴 뿐 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드리고싶은 부탁이 있어요.”
수현이 본론을 꺼냈다.
“무,무슨 부탁?”
“저법인 설립을 하나 하고 싶은데, 아직 법적으로 미성년자라 혼자 설립할 수가 없어요. 어머니 동의가 필요해요.”
수현은 재빠르게 말했다.
“법인은 왜? 주식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것도 있고, 사업 하나 해보고 싶어서요.”
“사업?”
그의 어머니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사업. 내내 준비한 아이템이 있어요. 프랜차이즈로 낼 건데,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법인설립이 필요해요.”
수현이 강하게 주장했다.
“사업을... 하겠다고?”
“네. 성공할만한 아이템이에요.”
수현의 말이 끝나고 잠시 집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사업은... 성공하기 어려운 거야. 너희 아빠를 봐라...”
그의 어머니는 무언가 짓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제 수익 보셨잖아요. 전 타고난 능력이 있어요. 전 아빠랑도 어머니랑도 달라요.”
수현은 더 강하게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 단호함과 박력에 기가 눌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부모를 무시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결과를 가져온 아들이었다.
“... 무슨 사업인지 물어봐도 되니?”
그의 어머니가 저자세로 물었다.
“동전 노래방이라고, 노래방인데 한 두 명 정도가 들어가서 노래하는 곳이에요. 원래도 비슷한 게 오락실에는 있는데, 이게 꽤 붐벼요. 대학가 근처랑 술집 많은 곳이면 괜찮은 아이템이에요. 신촌이랑 홍대나 건대 쪽은 둘 다 있는 곳이니까 상당히 좋죠.”
수현은 반대는 거절한다는 말투로 날카롭게 말했다. 절대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그는 지금이 파상공세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자신의 향기 능력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그게... 돈이 될까?”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미심쩍게 말했다.
“네. 돼요. 제가 낸 수익도 다 남들은 안 될 것 같다고 하는 곳에 투자해서 대박 터뜨린 것들이에요.”
수현은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하...”
그의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들이 아들 같지가 않았다. 원래도 머리가 좋은 것은 알았지만, 이건 그녀의 예상 범주 밖이었다.
최근의 아들이 조금 지나칠 정도로 대단하긴 했다. 제일 힘들어하던 영어도 턱하니 높은 점수를 받아오고, 학점은 최근에 보니 올 에이쁠.거기다 과외를 해서 자기 알아서 돈을 쓰고 다니니, 어디 가서 자랑하긴 딱 좋았다.
하지만, 이건... 자신이 평생 모아온 돈보다도 큰돈을 그 모든 것들을 해내면서도 만들어 오고, 그걸로무슨 사업을 한다고 하니... 무슨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조금 생각을 해보자... 사업은 그렇게 쉬운게 아냐.”
그녀는 뭔가 거대해진 것 같은 아들의 존재감에 한 발 물러섰다.
“지금 확답해주세요. 더 생각하셔봐야 선택에는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는 더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실 텐데, 전 확신하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사업 망해도 전 수억 원이 이미 있고, 이거 금방 다시 수십억으로 불릴 자신도 있어요.”
수현은 공격적으로 나섰다. 거의고지가 보이는 듯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약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표정을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십칠억이라는 무게가 그녀에게 너무 크게 다가왔다. 반 년 만에 만든 돈이라고 했다. 돈에 평생을 목메며 살아왔던 그녀에게는 가장 강력한 한 방이었다.
“이... 이걸 계속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는 한 발 더 물러섰다. 수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고지에 올랐고 깃발만 꽂으면 되는 순간이었다. 주식투자에 학을 떼던 사람이 주식투자를 계속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이건 수현을 자신의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이레귤러라는 것을 인정한 말이었다.
“당연히 계속 할 거예요. 그저 사업도 하고 싶은 거죠. 하게 해주세요.”
수현은 더 당당하게 나갔다. 공기가그의 어머니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강한 압박에 저항하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내가 뭘 해주면 되는 거니?”
결국 그녀는 억지로 말하듯 입을 뗐다.
“그냥 제가적어오는 것들에 도장만 찍어주시면 돼요.”
수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감사합니다.”
“다른 건... 없고?”
기가 질린 듯한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네.”
수현은 간단하게 말했다. 이걸로 협상은 싱겁게, 하지만 그의 예상과 거의 동일하게 끝이 났다. 역시 돈에 취약한 사람은 돈으로 컨트롤 되기 마련이었다.
수현은 여전히 약간 멍한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소리 없는 기쁨을 외치며 덩실거렸다.
“우리 토토 형이 간식 줄까요?”
수현은 서럽을 열고 강아지용 간식을 꺼내며 말했다. 토토는 저게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을 거두고 살갑게 다가왔다. 간식에 취약한 강아지는 간식으로 컨트롤되기 마련이었다.
수현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본질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간식을 주었다.
*
수현은 바로 다음날부터 법인설립을 위해 뛰어다녔다. 대충 이론은 알았지만, 실무는 몰랐기에 그는 과감히 전문가를 썼다. 어설프게 한 두 푼 아끼려고 혼자 발로 뛰는 것보다 전문가를 대동하고 옆에서 방법을 지켜보는 게 더 효율이 좋다.
발기설립으로 소규모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미성년자이기에 귀찮은 것들이 부가적으로 필요했다.
정관은 일부러 사업 범위를 넓게 썼다. 수현은 이 회사를 자신의 여러 사업의 지주회사처럼 만들 생각이 있었다.
그 뒤로는 신촌부터 시작해서 상가를 알아보러 다녔다. 신촌은 확실하게 아는 곳이었고, 홍대도 자주 다닌 곳이라 지리적인 부분에서는 소비자 입장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건대 쪽이 조금 문제였는데, 그에게는 건대에 헌팅을 매주 다니는 절친한 친구 둘이 있었다. 그는 네이버 지도를 펼치고그들에게 상세한 상권분석을 들을 수 있었다. 술 한 번 사는 것으로 수현은 귀중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야, 근데 너 진짜사업해?”
강민이 술잔을 내리며 말했다.
“왜? 신기하냐?”
“널 보면 우리가 넘 애새끼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우린 놀러 다니기만 했는데, 뭔 갑자기 사업을 한다고 하고... 자본금은 주식으로 만들었다고?”
강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성공한 것 같다며.”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설레발은 안 친다.”
강민이 전적을 생각하며 말했다.
“야, 이 새끼 이거 발전 했는데?”
민형이 약간 놀랍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얘도 이제 경험치가 쌓였지.”
수현이 킬킬거리며 아이들에게 술을 돌렸다.
“야, 그나저나 너네 여친들은 뭐하러 갔다냐?”
병훈이 안주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반 여자애들끼리 모여서 논다고 했으니 여기 어디 있을 걸?”
민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 준코래.”
수현이 핸드폰을 들고 가볍게 말했다.
“다행이네. 엄한 놈들 마주칠일 없어서.”
민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룸으로 벌주 달라고들어오는 놈들 있을 걸?”
병훈이 아직 순진한 놈들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 그딴 것도 있어?”
민형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같이 다니면서 우리도 벌주로 딴 테이블 많이 가지 않았냐?”
강민이 안주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룸도 그런 짓 한다고?”
민형이 조금 불안한 얼굴로 말하자 앞의 둘이 킬킬거렸다.
“내 생각엔 이소영, 김연희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일부러라도?”
강민이 속을 긁는 소리를 했다.
“야, 우리도 준코 가자.”
민형이 갑자기 일어나며 말했다. 나머지가 뭔 개소리를 하나 싶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옆 방 가서 우리가 들어가자.”
민형이 재촉하듯 말했다.
“미친... 너 인마, 그거 의처증이야!”
병훈이크게 웃어대며 말했다.
“... 그럴까?”
수현이 말하자, 병훈과 강민이 휴지를 집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