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89
두 커플은 열심히 공을 던져가며 서로를 힐끗 거렸다.
“자기야! 더 빨리!”
연희가 옆의 점수판을 확인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여보! 나이스!”
몰입하느라 본인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민형이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연희가 순간 삐끗했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잘못 던진 공은 수현의 공까지 막아 튕겨내었다. 점수 차이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연희야!”
수현이 안타깝게 외쳤다.
“자기, 방금 들었어?”
연희가 허탈하게 말했다.
“전부터 저랬어! 저것들 순 내숭이야!”
수현이 연희의 물음에 공을 정신없이 던지며 말했다. 연희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삐-!
경기가 끝나고 네명이 숨을 몰아쉬며 점수를 체크했다.
“와! 이겼다!”
소영이 팔을 번쩍 들며 민형을 안았다. 민형도 활짝 웃으며 소영을 마주 안았다.
“미안...”
연희가 삐끗했던 순간을 자책하며 말했다. 수현이 괜찮다는 듯이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다음거로 승부 갈리는 거다?”
수현이 민형을 노려보며 말했다.
“덤벼. 캬, 난 황수현이 겜을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네!”
민형이 정말로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동차 운전 게임에서 수현은 민형에게 아쉽게 졌다. 다행히 연희가 소영을 압도해서 팀으로는 이겼지만, 수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에는 충분했다.
“총게임은 꼭 이기자!”
연희가 분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수현과 연희가 파이팅을 외치자, 민형과 소영이 승자의 웃음을 보였다.
“아... 내가 꼭 이긴다!”
수현이 민형의 비릿한 웃음에 열정을 불태우며 말했다.
“그러시던지. 가자. 여자끼리, 남자끼리 한 판 씩만 붙는 거다?”
민형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오...콜! 다시 하기, 땡깡 부리기 그런 거 없다?”
“당연하지.”
네 명은 빠르게 총 게임 앞에 섰다. 여자부터 시작한 게임은 막상막하로 진행되다가 결국 연희의 승리로 끝났다. 농구의 실수를 만회한 그녀는 수현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야, 황수현 이거 까지 지면 오늘 굴욕의 날이죠?”
민형이 도발을 해왔다.
“총도 안 들어본 게...”
수현이 돈을 투입하며 말했다.
“넌 뭐 쏴봤냐? 어차피 우리 둘다 미필 아님?”
민형이 피식 웃었다.
“드루와!”
수현이 총을 까딱였다.
게임이 시작되고, 여자친구들을 치어리더 삼아, 두 남자는 열정적으로 총을 놀렸다.
“아 씨, 김민형 그만 죽지?”
“네 쪽은 적 왤케 잘 죽어? 게임기 이상한데?”
두 남자는 서로를 헐뜯으며 게임을 진행했다.
“안 돼!”
연희가 안타깝게 외쳤고 수현의 화면에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민형 또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야, 이정도면 비긴거지.”
수현이 잽싸게 말했다.
“추하다, 수현아.”
민형이 여유롭게 총을 내리며 말했다.
“연희야, 봤지? 솔직히 동시에 아니었어?”
수현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기야... 아니었어.”
연희가 수현을 토닥이며 말했다. 민형과 소영이 여유있게 웃었다.
“황수현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 하죠?”
민형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 오늘 굴욕적이다...”
수현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말했다.
“어차피 1대1 동점이니까, 한 판 더 해야지.”
연희가 얼른 말해왔다.
“황수현 재도전? 아님 김연희가 덤빌래?”
민형이 총을 들고 까딱였다.
“드루와. 내가 이긴다!”
수현이 불타는 눈으로 말했다. 민형이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경기도... 결국 민형의 승리로 끝나며 수현은 다시 한 번 굴욕을 겪었다.
축 늘어져버린 수현을 보며 연희가 피식 웃고는 그에게 팔짱을 껴왔다.
“괜찮아. 다음 주에 민형이 링에 올리면 돼. 게임 좀 지면 뭐 어때. 실전으로 이기면 되지!”
연희가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김연희... 황수현한테 안 좋은 거 전염됐네...”
민형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고, 소영이 작게 야유를 했다.
“풀 스파링으로 할까?”
수현이 냉큼 말했다.
“무슨 풀 스파링이야? 양심 없냐?”
민형이 외쳤다.
“야, 일단 오늘의 만찬을 만끽해라. 가자. 영화 시간도 다 되어간다.”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와, 이거 순 양아치 커플이네...”
민형이 툴툴대며 뒤를 따랐다.
“연희야, 너를 내가 악마한테 맡겼구나...”
소영이 연희를 안으며 회개하라는 듯이 말했다. 연희가 픽 웃었다.
*
두 커플은 영화 시청을 끝내고 즐겁게 나와 저녁은 생략하고 가까운 바(bar)로 향했다. 점심부터 카페, 영화관까지 먹은 것들이 많아서 다들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술은 내가 산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눈이 동그래진 연희를 보며 민형이 말했다.
“티났어?”
연희가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나도 양심이 있지... 전부 얻어먹고 이것 까지 엔빵이면... 진짜 링 올라가야지.”
민형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넷은 간단한 안주거리에 독특한 칵테일들을 한 잔 씩 시켰다.
“덕분에 좋은 곳 또 알아간다?”
수현이 민형에게 말하며 간단한 주전부리를 먼저 먹었다.
“좋긴...”
민형이 중얼거리며 주전부리를 집었다.
“예쁘다. 확실히 강남은 강남인가 봐.”
연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내가 이런 곳 올 줄은 몰랐지. 남친은 좀 잘 둔 듯?”
소영이 킬킬거리며 민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너희도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희만 매일 깨 쏟아질 줄 알고?”
소영이 어둠에 가렸지만, 붉어진 티가 나는 민형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갑자기 여기에 병훈이랑 강민이 부르면 어떨까 궁금해졌어.”
연희가 개구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머지들이 그 말에 크게 웃었다. 두 명의 표정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부르고 싶네.”
수현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은 연락도 안 받을 걸?”
민형이 고개를 저었다.
“또 건대 갔지?”
수현이 알만하다는 듯이 말했다.
“걔들 집이야. 거기.”
민형의 한숨 섞인 말에 다들 웃었다.
술이 나오고 넷은 가볍게 잔을 부딪혔다. 장소는 고급스러운 곳이었지만, 그들의 주제는 나이다운 주제들이었다. 학점 이야기, 2학기 이야기 같은 것들. 아직 꽤나 밝고 순진한 주제들이었다.
“아, 맞다. 둘이 얼마 전에 일본 다녀왔지? 어땠어?”
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소영이 눈을 빛냈다.
“자유여행 되게 좋은 것 같더라. 다음에 또 가고 싶었어.”
연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 진짜? 우리도 이번에 가는데, 너희 어디로 다녀왔다고 했지?”
소영이 얼른 물었다.
“우리 오사카! 너희는?”
연희가 반갑게 말했다.
“아! 아쉽다. 우린 도쿄. 정보 좀 얻어 보려고 했더니!”
소영이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안주를 하나 먹었다.
“근데 친절하긴 되게 친절했는데, 영어는 의외로 되게 못하더라.”
두 여자가 그렇게 여행으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두 남자는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제 가야 되지?”
민형이 시계를 확인하고 물었다.
“응. 슬슬 가야지.”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여자가 아쉬움에 탄식했다.
“다음 주엔 올라오면 꼭 연락 주는 거다?”
밖으로 나온 소영이 연희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연희가 걱정말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라! 차는 내일 가지러오고!”
수현이 민형과 소영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차피 집이 코앞이다. 걸어갈 거야.”
민형이 걱정도 팔자라는 표정으로 수현을 향해 말했다.
“그래. 담에 봐.”
넷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커플끼리 등을 돌려 걸었다.
“자기야, 어쩌지? 다음 주는 하루 빼야겠는데?”
연희가 웃으며 수현을 콕 찔렀다.
“벌써 가슴이 아파온다.”
수현이 가슴을 쥐며 슬픈 표정을 만들어보였다. 연희가 만족스런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에 맞춰 수현도 밝게 웃었다.
둘은 손을 잡고 통통 튀듯 걸음을 옮겼다.
*
일요일.
수현은 연희를 배웅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느 때와 달리 수현은 긴장한 얼굴로 지하철의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법인 설립에 관해 어머니의 허락을 얻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물론, 이대로라면 투자로도 분명 막대한 돈을 벌 수 있긴 했다. 당장 구입한 3만 비트코인(2010년 7월만 해도 비트코인의 가격은 1만 비트코인에 6십만원이 안 되던 시절.)도 시간만 지나면 수천억이 되는 돈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그는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일단, 자신으로 미래가 얼마나 바뀔지 몰랐다. 나비효과라는 것도 분명 있으니까...
그러니까 사업은 일종의 보험이었다. 소비자의 니즈까지 변하진 않으니까.
또한 투자로만 돈을 번다면 스스로가 돈에 대한 감각을 잃을 것 같았다. 돈의 무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걸 잊을 것 같았다. 돈에 짓눌린 삶도 싫지만, 그걸 가볍게 보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알아보니 선물옵션계좌는 보호자 동의가 있더라도, 만20세 미만의 미성년자 명의로는 개설이 아예 불가능했다.
수현이 제대로 된 파생상품 투자를 하려면 어차피 법인을 설립하고 법인 명의로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다가오는 11월 11일 옵션쇼크를 대비해서라도 법인 설립은 필수였다.
“후... 막상 또 말하려니 괜히 긴장되네.”
어머니가 17억이라는 돈에 얼마나 충격을 먹느냐에 따라 일이 많이 수월해질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자신이 아는 어머니라면 분명 자신이 해낸 결과를 보고 분명 허락을 해주긴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다.
수현은 괜히 HTS를 켜서 자신의 재산을 바라보았다. 든든한 숫자가 화면을 채웠다. 수현은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