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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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목요일.
수현은 연희가 올라오는 시간보다 이르게 터미널에 도착해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하...”
수현이 긴장한 한숨을 내쉬면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계속 보면 더 떨릴 것 같아서 오는 동안에는 HTS를 켜보지 않았던 그였다.
수현은 시간을 확인해 장 마감시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HTS를 켰다.
지난 2일간의 평균은 알고 있었기에 분명 큰돈이 들어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떨리는 손은 어쩔 수 없었다.
목요일의 종가는 19,950원이었다. 수현은 생각보다 더 오른 가격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3일 종가 평균은 19,800원. 행사가 18.500원과는 1300원 차이이고, 콜옵션 한 개당 수익은 260원이었다. 20원에 매입을 했으니, 13배로 불어난 것이다.
1억2천만원을 넣었으니, 15억 6천만 원이었다. 거기에 STX주식에 넣은 1억 5천만 원은 24퍼센트 가량 올라서 1억8천만 원이 넘었다.
17억 원이 넘는 돈이 그의 주머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수현은 잠시 멍하니 입을 벌리고 HTS를 바라보았다.
“미친...”
수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웃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은 그는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백화점 앞을 뛰며 소리를 내서 웃었다. 사람들이 그를 힐끗 힐끗 보았지만, 수현에게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으하하하하!”
수현이 터미널 앞에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면서도 크게 웃었다.
“아!”
수현은 무언가 떠오른 듯 시간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꽃다발을 하나 준비해서 다시 터미널로 향했다. 향긋한 꽃향기가 그의 기분을 조금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는 잠시 앉아서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얼마 후 시간을 확인한 수현이 꽃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연희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시간에 맞춰 연희를 태운 버스가 들어왔다.
수현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열린 버스 문에서 튀어나오는 연희를 꽉 안았다.
“뭐야, 또 꽃 나온 거야?”
연희가 기분 좋게 웃으며 꽃을 받아들었다.
“좀 식상해?”
“아니, 이러면 나 항상 기대할 것 같아서.”
연희가 얼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항상 가져올게. 꽃 종류만 바꿔야지. 그럼 식상하지도 않겠지?”
수현이 어떠냐는 듯이 연희를 바라보았다.
“완전 기대 된다!”
연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희야. 그리고... 나 조금 있다가 보여줄 거 하나 있어. 이건 더 기대해도 좋아.”
수현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말했다.
“뭐지? 엄청 궁금해지는데...”
“음, 밥은 먹었지?”
수현이 조금만 기다리라는 눈짓을 하며 물었다.
“응. 그럼, 우리 저번 거기 또 가자. 민형이 친한 형네 가게. 나 거기 마카롱 먹고 싶어서 혼났어.”
연희가 얼른 목적지를 말했다.
“그래! 가자. 오늘 거기 음식 다 먹어도 돼!”
수현이 즐겁게 연희의 손을 잡았다. 연희는 유난히 높은 수현의 텐션에 갸웃하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수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카페에 들어서자 사장은 그들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바로 알아보시네요!”
연희가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이 동네에서도 둘은 엄청 튀는 커플이에요.”
사장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하며 웃었다. 수현과 연희가 얼굴을 붉히며 감사인사를 했다.
둘은 진열대의 디저트들을 보기 시작했다.
“음, 케이크 추천해주실 만한 것 있을까요? 마카롱은 저거랑 저거는 픽이고요!”
수현이 케이크와 마카롱 쪽을 둘러보며 물었다.
“음, 저번엔 당근케이크 안 먹어봤죠? 그럼 당근케이크 한 번 먹어볼래요? 그리고...”
수현과 연희는 당근케이크에 마카롱 몇 개를 더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서비스가 추가 되어 나온 양은 꽤 많았다.
“마카롱은 남으면 싸줄게요.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요.”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디저트 배는 따로 거든요!”
연희가 즐겁게 말했다. 사장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블을 떠났다.
“아, 맞다! 말해줄 거 있다며! 뭔데 그렇게 자기 오늘 텐션 높은지 오면서 계속 궁금했어.”
연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포크를 들다가 얼른 물어왔다.
“아, 맞다. 잠만 기다려 봐.”
수현이 핸드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연희가 궁금한 얼굴로 케이크를 한입 먹었다.
“와, 맛있다! 자기도 먹어봐.”
연희가 오물거리며 케이크를 떠서 수현에게 주었다. 수현이 얼른 받아먹고는 연희에게 옆으로 오라는 눈짓을 했다.
“으흠, 뭔데 그러실까...”
연희가 약간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가왔다.
“이거 봐.”
수현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뭐...어?”
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지 점점 눈이 커졌다.
“시...십억? 이...이게 뭐야?”
연희가 단위를 다시 세고는 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번 돈?”
“말도 안 돼...”
연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진짜야.”
“...자기 천재야?”
연희가 진심으로 물었다.
“그런가?”
“반년도 안 걸려서 몇 백배 이익인 거잖아... 펀드매니저들도 이렇겐 못하잖아.”
“그쪽은 단위가 커서 그런 것도 있지.”
수현이 괜히 헛기침을 살짝하며 말했다.
“어쨌든... 와...”
“이걸로 전에 말했던 사업 시작하려고.”
수현이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는 연희에게 케이크를 먹여주며 말했다. 연희는 반사적으로 오물거리며 받아먹었다. 수현이 그 귀여움에 피식 웃었다.
“자기를 보면... 내가 너무 작아질 때가 있어...”
연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이런 남자 꼼짝 못하게 잡은 게 더 대단하지 않아?”
수현이 연희를 껴안으며 말했다.
“진짜 놀라서 말도 안 나온다.”
연희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다 말해. 사줄게.”
“진짜 다 말해야겠다...”
“응. 집도 하나 해줄까?”
수현이 킬킬거리며 물었다. 연희가 피식 웃으며 그의 옆구리를 쿨 찔렀다.
“일단 이거 먹자.”
수현이 다시 케이크를 한 입 떠서 연희에게 주며 말했다. 둘은 서로에게 디저트를 먹여주며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잘 가요! 다음엔 새로 개발 중인 디저트 줄 테니까 또 와요.”
사장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수현과 연희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근데, 이런 거 막 보여주고 그래도 되는 거야?”
연희가 수현을 콕콕찌르며 말했다.
“딱 한 사람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너 빼고 아무도 몰라.”
수현이 연희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말했다.
“가족들도?”
“더 모르게 해야지. 나 하는 거 알았으면 집에서 쫓겨났을 걸?”
수현이 몸을 떠는 척을 하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알려야 하지 않을까? 단위도 너무 크고.”
연희가 약간 걱정스럽게 말했다.
“응. 사업 시작하려면 어차피 보호자 동의도 필요하니까... 곧 알려야지. 아마 이 정도 벌었다고 하면 어머니도 그냥 하게 둘 걸?”
수현이 약간 착잡하게 말했다.
“음, 하여튼 재능이라는 건 진짜 대단하구나...”
연희가 상황을 이해하기보단 현상을 인정하겠다는 말투로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어때? 좀 반했어?”
수현이 장난스럽게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원래도 반해 있었는데? 난 근데 아직도 얼떨떨해. 차라리 이 꽃이 더 심쿵이었어.”
연희가 살짝 한숨을 쉬며 꽃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건 더 기분 좋네.”
수현이 맑게 웃었다.
수현과 연희는 간단한 쇼핑을 하고 영화관 데이트를 했다. 미국식 유머가 섞인 빵빵 터지는 액션영화는 가볍게 보기 괜찮은 영화였다.
“음, 가끔 이런 영화도 좋더라. 스트레스 풀리는 느낌이야.”
연희가 가볍게 수현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다행이다. 종종 터지는 것도 보자. 음, 시간이 이러니... 저녁이라기엔 뭐하고... 이자카야에서 술이랑 간단하게 먹을까?”
수현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응. 그러자. 많이 먹지는 말구. 내일 촬영인데... 부으면 안 돼!”
연희가 볼을 잡으며 귀엽게 말했다.
“오후인데 뭐... 그리고... 좀 있다가 열심히 운동할 거 아닌가?”
수현이 짓궂게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변태!”
연희가 수현을 밀며 외쳤다. 눈이 마주친 둘은 작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서래마을의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자카야로 들어섰다.
이자카야에서 간단한 안주거리에 시원한 맥주를 시킨 둘은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며칠 떨어져 지내다가 만나니 새로운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물론 전화로 들은 이야기를 재탕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어쨌든 즐거웠다.
“아, 근데 자기 사업한다고 했잖아.”
연희가 막 생각났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응. 전에 말한 코인 노래방?”
“응. 그거.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연희가 수현에게 꼬치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음... 일단 일요일에 너 보내고 어머니부터 설득하려고. 어차피 그게 안 되면 다 불가능하잖아.”
수현이 맥주를 벌컥 들이키고 말했다. 나이라는 벽이 생각보다 참 답답했다. 그는 연희가 준 안주를 괜히 강하게 씹어 먹었다.
“음, 계속 주식투자 할 생각은 없어? 자기 재능 있는 것 같은데...”
연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해야지. 근데, 사업도 좀 하고 싶어서. 투자만 하는 건... 일단 내 돈 같지가 않더라.”
“왜?”
연희가 어리둥절하게 물어왔다.
“그냥... 숫자놀음 같다고 해야 하나... 막 몇 억이 버튼 한 번으로 움직이는데, 별로 감흥이 없더라구.”
수현이 약간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아...”
연희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주 부터는 바쁘겠네?”
연희가 약간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렇겠지? 어머니 설득만 되면 일단 바로 법인 설립부터 시작 하려고. 너무 걱정하진 마. 너 올라오면 놀 시간은 빼둘게.”
수현이 작게 웃으며 연희의 손을 잡았다.
“아쉬워 하는 거 들켰어? 헤헤. 음, 어쨌든 뭔가 신기하다... 법인이니... 그런 거...무슨 책에서나 나오는 말 같았는데.”
연희가 꿈처럼 말했다.
“우리 경영학과잖아. 너도 금방 익숙해질 걸?”
수현이 연희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런가?”
연희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일단 내가 옆에 있잖아. 뭐, 사모님 소리 듣게 해줄게.”
수현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희가 피식 웃었다.
“내 나이에 사모님은 좀 그렇지 않아?”
연희가 약간 징그럽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 올드해보이나?”
“응.”
둘은 마주보며 키득거렸다.
"그럼... 실장님?"
수현이 장난스레 말하자 연희가 피식 웃었다.
"나 낙하산이야?"
"뭐, 사장 마음 아니겠어? 그리고 이런 미모의 실장님이 있으면 직원들 사기도 충전되고 좋을 걸?"
수현이 뻔뻔하게 말했다. 연희가 기분은 좋다는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