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84 (84/94)


  • 〈 84화 〉84

    *

    수현과 연희는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와 가볍게 서로에게 기대 있었다. 연희는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강력한 소환명령을 받고 집으로 내려가기로 했기에, 방학 동안은 일주일의 절반 가량은 본가에서 지내게 되었다. 마치 페르세포네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방학을 싫어하게 될 줄은 또 몰랐네.”

    수현이 약간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현의 어깨에 기대 있던 연희는 그의 말을 듣고는 동의한다는 느낌으로 작게 웃었다. 둘은 약간 몸을 들썩이면서도 서로에게 붙어있었다.

    “크흠, 자기가 나 없는 동안 내 베개 훔쳐가도··· 모른 척 해줄게.”

    연희가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오전의 해프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연희야··· 양심은 어디에 놓고 다니는 거야? 저 트렁크에  베개 들어있지 않나?”


    수현이 연희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연희의 자취방에서 쓰던 자신의 베개는 오늘부터는 지방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수현은 몰래 베개를 넣다가 들키고는 얼굴을 붉히던 연희의 모습이 다시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전부터도 그녀가 자신의 베개를 평소에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다. 며칠 연희의 자취방에 가지 않다가 가면, 자신의 베개는 연희의 향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치···”

    연희는 어깨로 수현을 작게 툭 치기만 했다. 장단 좀 맞춰 달라는 의미였다.


    “뭐··· 그럼, 어쨌든 난 네가 허락한 거다? 다음에 다른 소리하면 큰 일 날 줄 알아.”

    수현이 연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제야 연희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키득거렸다. 마치, 너도 이제 변태 공범이라는 듯한 웃음이었다.

    “아! 근데··· 그걸로 이상한 짓까진 하면 안 돼? 알았지?”

    연희가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이 수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수현의 입이 벌어졌다. 천사 같은 얼굴에서 이런 말까지 나오도록 만든 게 자신인  같아 약간의 죄책감도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야···. 진짜···”

    수현이 말을 잃고 주변을 살며시 살폈다. 연희가 작게 웃었다. 그들은 조금 더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에 다가가자 이미 버스는 시동이 걸린 채로 떨리고 있었다.

    “음, 목요일에 올라오는 거지?”

    수현이 알면서도 괜한 아쉬움에 물었다. 그는 연희의 손을 작게 만지작거렸다.


    “응. 근데, 이번엔 1박 밖에 못해···”


    연희도 이미 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둘은 가볍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가서 연락하고. 매일··· 전화하자.”

    수현이 연희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는 출발 준비를 완전히 마치고 있었다. 결국 수현은 연희를 떨어뜨렸다.


    “가 봐. 버스 출발하겠다.”

    수현이 연희에게 말했다.


    “응··· 다음 주부터는 그래도 길게 올라 올 수 있으니까···”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하듯이 말했다.

    둘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버스 기사는 연희의 미모에 놀라면서도 마지막 승객이 올라탄 것을 떠올리고는 문을 급히 닫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수현과 연희는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었다.


    *


    수현과 연희는 하루하루를 견우와 직녀처럼 지냈다. 둘은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렸고, 다행히도 그날은 금방 왔다.

    연희는 기대를 안고 버스 의자에서 들썩였다. 버스가 주차를 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살짝 고개를 돌려  창밖에 수현의 모습이 빼꼼히 스쳐 보였다. 얼핏 보인 옷태만으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완전히 정차를 하자, 연희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들이 그녀의 뒤태를 제대로 구경할 새도 없이 그녀는 빠르게 문 밖으로 튀어나갔다.


    “자기야!”


    수현이 환한 얼굴로 자신에게 뛰어들  나오는 연희를 재빠르게 받아 들었다. 운동을 한 보람이 있었다. 둘은 마주보며 밝게 웃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몇 년은 못 본 듯이 달려드는 모습이 좋았다. 전혀 유난스럽다고 생각 되지 않았다. 둘 모두 스스로에게 신기해 하는 부분이었다.

    “다치겠다. 천천히 나오지 뭘 그렇게 뛰어서 나와.”


    수현이 기분 좋게 웃으면서도 걱정이 들어 잔소리를 했다.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던 게 누군데?”

    연희는 네 탓도 있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수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응. 눈빛으로 그러던데. 아니었어?”

    연희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수현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헤헤. 꽃 내꺼야?”

    연희가 만족스럽게 웃고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몰래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래도 등 뒤에 숨겼다가 주려고 했는데, 연희를 품으로 받는 바람에 그녀에게 꽃이 보이고 말았다.


    “그럼, 당연하지. 받아줄 거지?”

    수현이 알면서도 앙큼하게 묻는 연희를 품에서 살짝 떨어뜨리고는 꽃을 건네며 말했다. 연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냉큼 받아 들어 가볍게 품에 안았다. 수현이 예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연희가 만족스럽게 웃고는 수현의 손을 잡았다.

    “가자! 시간이 없다구!”


    연희는 수현의 손을 잡아당기며 밝게 말했다. 주위를 밝히는 웃음이었다.

    “연희야, 점심은 먹었어? 배  고파?”

    수현이 연희의 손을 슬쩍 끌어 걸음을 늦추면서 물었다.


    “오다가 휴게소에서 대충!”

    연희가 수현의 손을 잡고 조금 템포를 낮춰 수현의 옆으로 오며 말했다.

    “그럼 서래마을에 괜찮은 카페 있다던데 가서 좀 놀다가 저녁 먹자.”


    수현이 어떠냐는 듯이 연희를 보며 물었다.


    “응! 좋아!”


    연희가 뭐든 좋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후덥지근한 길을 천천히 걸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절로 나는 날씨였다.

    “으··· 덥다. 서울이 확실히 더 더운 것 같아.”


    연희는 살짝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보기엔 여전히 뽀송뽀송한 피부였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서늘한 고향과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꽃 대신 손선풍기를   그랬나···”


    수현이 살짝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는 슬쩍 손을 뻗어 연희의 손에 들려 있던 꽃을 대신 들어주려 했다. 연희가 얼른 꽃을 옆쪽으로 비키며 수현을 째려봤다.


    “뭐야, 줬다 뺐기 있어?”


    연희가 절대  된다는 얼굴로 경고하듯 말했다.


    “그리고, 뭐··· 좀 덥긴해도 서울 온 느낌 들어서 나쁘진 않아. 막 차 소리도 그렇고. 매연도 매력 있는데?”

    연희가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수현도 그 말에 픽하고 웃었다.


    “뭐, 그래도 조금 있다가 손선풍기는 하나 사자. 머리 덥겠다.”

    수현이 연희의 옆 머리를 살짝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연희도 그건 거절 하지 않았다. 둘은 조금 더 걸음을 옮겨 서래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작은 조각 케이크 두 개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 그들은 잠깐 올랐던 열을 식히며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음, 일단 분위기는 합격!”

    연희가 테이블에 팔을 올려 턱에 꽃받침을 하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맛도 괜찮을 거야.”


    수현이 습관적으로 연희의 앞머리를 가볍게 정리해주며 장담하듯 말했다. 연희도 당연한 듯 남자친구의 손길을 받아들이다가 약간 고개를 갸웃했다.


    “되게 장담하는 말투네? 설마···”


    연희는 괜히 놀라는 척을 하며 고개를 뒤로 빼고 말했다. 다른 여자와 왔었냐는 듯한 행동이었다. 수현이  모습을 보며 작게 웃고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연희가 배시시 웃으며 다시 얼굴을 가까이 댔다. 수현이 다시 슬쩍 흐트러졌던 연희의 머리를 정리했다.


    “입맛 까탈스런 여기 주민이 추천해줬거든.”


    수현이 이제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입맛 까탈스런 여기 주민?”


    연희가 가볍게 물으면서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피식 웃은 수현이 재빨리 입을 살짝 맞추고 떨어졌다. 연희가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응. 민형이 결국 본가 나왔잖아. 여기 주민 된지 2주째 됐지.”


    수현이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결국 시험이 끝나고 민형은 형이 살던 빌라로 독립을 했다. 사실, 수현은 어제 저녁에 민형의 첫 자동차 시승을 같이 하고 그 집에서 자고 나온 길이었다.


    “아, 정말? 어떻게 허락 받았나 보네! 그나저나 2주면 아직 길도 잘 모르는 거 아냐?”


    연희가 가볍게 놀라며 말하다가 조금 의심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 너한테 별 다섯 개 못 받으면 나랑 스파링 3라운드 뛰기로 했어. 그러니까 민형이 목숨은 오늘 너한테 달린 거지.”

    수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연희가 깔깔거리며 크게 웃었다. 조금 카페를 울릴 정도였지만, 그 미모 덕에 나쁜 눈초리는 없었다.

    “흠, 흠. 오늘  어깨가 좀 무겁네.”

    연희는 웃음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공정하게 평가해.”

    수현도 웃으며 말했다. 그때쯤 음식들이 나왔다. 수현이 자기 몫의 커피를 가져가고 나머지는 밀어주며 한 번 맛보라는 눈짓을 했다. 연희는 작게 웃고는 가볍게 포크를 들었다.

    “음, 근데··· 요즘 민형이도 복싱 좀 잘 해지지 않았나?”

    연희가 약간 놀리듯 물었다.


    “··· 설마··· 지금  걱정하는 거야?”


    수현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이었다. 연희가 다시 크게 웃었다. 수현이 여전히 가는 눈을 풀지 않고 연희를 바라보았다.


    “우리 자기 삐졌어요오?”

    연희가 킥킥거리며 물었다.

    “흥! 설마··· 난 항상 자신 있으니까.”

    수현이 느긋한 표정으로 바꾸며 말했다. 수현은 어서 먹어보라는  손짓을 했다. 연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케이크까지 맛을 보았다.

    “그래서 점수는요?”


    수현이 테이블에 기대며 물었다.

    “음···.”

    연희가 슬쩍 수현을 바라보며 뜸을 들였다. 수현은 가만히 기다렸다.


    “별 다섯 개입니다!”


    연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수현이 되묻자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크를 포크로 떠서 수현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수현이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연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때? 맛있지? 민형이가 입맛이 확실히 까다롭긴 한가보다.  맛있는데?”

    연희가 포크를 여전히 든 채로 말했다. 그녀가 수현의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아주 신중한 척 맛만 음미하며 말을 하지 않았고 뜸을 들였다. 연희는 장난기 어린 눈동자로 수현을 보더니 포크에 작게 입맞춤을 했다.

    “간접키스!”

    연희가 작게 윙크하며 말했다. 수현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음··· 맛있네.”


    결국 수현이 케이크를 삼키고는 인정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내가 민형이 살렸네?”

    연희가 뿌듯한 웃음을 지으며 어쩐지 뒤쪽을 보며 말했다.

    “별 다섯 개니까, 5라운드.”

    수현이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뭐가 5라운드야. 나쁜 새끼야. 이거  사기꾼이네···”

    수현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현이 작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연희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김연희 오랜만이다?”

    민형이 수현의  쪽으로 앉으며 말했다.

    “뭐야··· 넌 왜 여기 왔어?”

    수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명백히 저리 사라지라는 표현이었지만, 민형은 무시하며 수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뺐어 마셨다.

    “아, 미친 놈이!”


    수현이 민형에게 외쳤다.

    “야, 들었냐? 네 남친 욕하는 거? 네 앞에선 한 번도  했지?”

    민형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연희에게 말했다. 수현의 인상은  찌푸려졌고, 연희와 민형의 얼굴에만 미소가 번졌다.

    “응. 생각보다 섹시한데?”

    연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번엔 수현의 얼굴이 펴지고, 민형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 씨.  안 좋아···”


    민형이 내뱉듯이 말하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 진짜 왜 왔어. 너도 여친 보러 간다며.”

    수현이 민형을 툭 치며 말했다.

    “아, 새끼··· 너희들 이렇게만 처 먹을 것 같아서 구제해주러 왔구만.”

    민형이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곧바로 민형의 뒤로 사장이 나타나 그들의 테이블에 마카롱을 올려주었다.

    “반가워요. 민형이 친구분들이었구나··· 알았으면 서비스 드리는 건데··· 다음에 오면 서비스 많이 줄 테니까  와요. 아, 잠시만요.”


    사장이 가볍게 웃으며 말하다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카운터로 급히 갔다.


    “야, 먹어 봐. 저 형이 자긴 제빵이 좋다고 집이랑  끊다시피 살면서 만든 거다. 내가 디저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먹어.”

    민형이 마카롱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현과 연희는 조심스럽게 마카롱을  입씩 먹고는 작게 감탄했다. 민형이 뿌듯하게 웃었다.

    “이런데 은혜도 모르고 5라운드? 배은망덕한 새끼···”


    민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근데 이거 때문에 왔다고?”

    수현이 여전히 이해가  간다는 듯 말했다.


    “아니··· 내가 미쳤냐? 소영이 보러 가는데 저번에 이거 잘 먹더라고··· 가면서 먹으려고 포장하러 왔는데, 와보니까 너희가 있던 거지.”

    민형이 옆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비닐백을 들며 말했다.


    “민형이,  어디 놀러 가?”

    연희가 민형을 향해 물었다.

    “응···  뽑은 기념 겸···해서. 멀리는 좀 힘들고, 인천으로 가깝게.”

    민형이 슬쩍 시계를 보고는 일어나며 말했다.

    “나 간다. 다음에 소영이랑 같이 해서 보자.”


    민형이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러자! 아, 이거 고마워!”

    연희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운전 조심하고.”

    수현도 손을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그는 혼자 벌써 마카롱을  먹은 뒤였다.

    “야, 내가 고딩때 아빠랑  차를 몇 번 훔쳐 탔는데... 걱정마라. 간다!”

    민형은 자신감 넘치게 말하고는 비닐봉지를 살살 흔들며 문으로 걸어나갔다.

    “저 시키 저거··· 그걸 자랑이라고···”


    수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연희가 픽 웃었다.


    “음,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 별 반 개 더 줘도 되겠는데?”


    연희는 마카롱을 들고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뭐, 그럼 기특하니까 반만 때리지 뭐.”


    수현이 가볍게 말했다. 둘은 결국 마주 보고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들은 즐겁고 평범하게 데이트를 이어갔다. 다행히 민형의 추천은 모두 별 다섯 개가 확실한 곳들이었기에 그들의 데이트에 오점은 없었다.

    “음! 좋다아!”


    연희가 밤거리를 걸으며 말했다. 날씨는 끈적끈적한 것이 전형적인 한국의 여름이었지만, 그녀만은 그걸 다 피해간 듯이 상쾌한 목소리였다.


    “오늘 다 괜찮았지?”


    수현이 연희의 손에 깍지를  단단하게 고정하며 말했다.

    “응! 꽃부터 저녁까지 최고!”


    연희가 술이 들어가 알딸딸한 기분에 조금 높은 톤으로 외쳤다. 수현이 그녀의 표현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연희가 슬쩍 붙어오며 배시시 웃었다.

    “하루 마무리는··· 내 남친 잘생긴 얼굴로 하고 싶은데···”


    연희가 작게 속삭였다. 수현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이지만, 전혀 저렴해 보이지 않는 연희의 표현들은 참 귀엽기도 웃기기도 했다.

    “그것도 풀코스로 준비 되어있죠.”

    수현이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둘은 조금 더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걸음이 절로 통통 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