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80 (80/94)


  • 〈 80화 〉80

    수현은 기존에 만나던 시간에 비해 이르게 도착해 연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수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개찰구를 바라보았다. 월요일의 아침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약간 미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기야!”

    연희가 계단을 오르자마자 수현을 발견하고는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수현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수현도 가볍게 손을 들어 연희에게 인사를 건넸다. 개찰구에서 재빠르게 나온 연희가 가벼운 걸음으로 수현에게 다가왔다.


    “음··· 뒤에  있어?”


    연희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약간 기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이 개찰구에서 나오는데도 움직임 없이  손을 뒤로 넘기고 있는 모습은 평소와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수현이 작게 소리 내서 웃었다.

    “아주 명탐정이야···여기.”


    수현이 뒤로 숨겼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기엔 분홍색 장미꽃 한 송이가 약간의 안개꽃과 함께 예쁘게 포장 되어 있었다. 연희는 환한 얼굴로 작게 감탄했다.

    “어···근데 오늘 무슨 날은 아니지···?”

    연희는 기쁘면서도 혹시 자신이 놓친 무언가가 있는지 걱정하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수현은 그 모습이 꽤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놀리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손을 살짝 거두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모습을 보고는 불안한 얼굴이 된 연희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수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연희가 주인 몰래 사고를 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자, 웃음을 참던 수현이 결국 소리를 내서 웃었다.


    “장난이야... 아무 날도 아니야··· 그냥, 본격적인 시험기간에 앞서서 기분 좋게 한 주 시작하라고 주는 선물이야.”


    수현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꽃을 슬쩍 내밀었다. 연희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슬쩍 그를 째려보며 꽃을 받아 들었다. 살짝 향을 맡은 연희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하여튼... 곱게 좀 주지!  놀려!"

    그러면서도 연희는 약간 약이 올랐는지 한 마디를 했다. 수현이 약간 미안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 미소에 연희가 완전히 녹아내린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결국 연희가 기쁜 표정으로 맑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수현은 꽃을 품에 살며시 안은 연희의 모습이 아침부터 뿌듯하게 예뻤다. 특히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어울려  화사하게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한참 일찍 일어났지만, 그만한 보답이 되는 모습이었다.

    “들어줄까?”


    수현은 손을 내밀며 물었다. 아침 꽃 선물의 단점이라면 그걸 조심스럽게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에겐 그걸 들어줄 옵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흥! 꽃은 꽃끼리 있어야지. 내가 들거야.”

    연희가 절대 그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수현이 그 자뻑이 귀엽다는 듯이 웃자, 연희도 배시시 마주 웃었다. 연희가 냉큼 팔짱을 끼며 수현을 끌었다. 수현도 저항 없이 선선히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근데 이번엔 분홍 장미네?”

    연희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응··· 저번 꽃다발  때 보니까, 눈이 계속 분홍장미 쪽을 계속 힐끔거리던데? 약간 아쉽다는 얼굴이었어.”


    수현이 전에 어머님  까지 챙겨 꽃다발  개를 주었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엔 그냥 감동이어서 둘 다 계속 보는가 싶었는데, 어째 표정이 분홍장미 쪽이 조금 더 끌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희가 살짝 혀를 빼물고 웃었다.

    “티···났어?”

    “약간?”


    수현이 약간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연희는 민망하지만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웃었다.

    “뭐, 나도 분홍장미가  부드러운 색감이라 좋더라구···”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금  솔직히 말하면, 분홍 장미의 분위기가 연희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기에 마음에  것이었다.

    “그치? 약간 파스텔 톤이라 보들보들한 느낌이 있지! 음, 그리고 내가 찾아보니까 꽃말 중에 행복한 사랑도 있더라. 딱 우리 같지 않아?”

    연희가 뭔가 취향이 통해서 좋다는 듯이 행복하게 웃으며 말했다.

    "딱 우리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희는 참기 힘든 감정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재빨리 주변 눈치를 보더니 수현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입술을 뗀 연희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수현의 얼굴에도 만족스런 미소가 차올랐다. 그들은 이제 꽤나 따가워지기 시작한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이동했다.

    연희는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 따라 더 많은 시선을 끌었다. 말 그대로 금상첨화를 현실에 그대로 표현한 모습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교수님들에게도 눈에 띄어서 이런저런 질문의 타켓이 되었다는 것이다.

    “음, 좋아요. 우리 꽃 같은 커플이 대답도 잘 해주었으니, 조금 일찍 끝내기로 하죠. 그럼 다음주 시험까지 다들 잘 마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랍니다. 한 학기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백발이 멋진 노교수는 흐뭇하게 말하고는 가볍게 손뼉을 치며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은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기지개를 켜고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수현이 꽃을 대신 들어주려고 손을 뻗었다.

    “어딜! 남자친구가 준 내꺼거든!”

    연희가 냉큼 손을 쳐내며 말했다. 수현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수현은 스터디룸에 둘러 앉은 아이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야··· 나 과외 했을 때 시간당 과외비가 얼마였는지 알아?”


    수현이 살짝 인상을 쓰고 말했다.


    “아, 새끼야···좀 도와주라··· 이대로 가면 우리 엄마 성적표 보고 쓰러지신다. 학고는 안 된다 진짜···”

    병훈이 필기 없이 깔끔한 책을 펴고 말했다.

    “야···근데 넌 오늘  샀냐? 이 새낀 좀 심한데···”

    민형이 슬쩍 병훈의 책을 보고는 말했다.

    “아, 쫌!”

    병훈이 땡깡 부리듯 외쳤다.


    “그래, 자기야. 애들  봐주면 자기도 공부 되고 좋을 거야.”


    연희가 수현을 달래듯 토닥이며 말했다. 그녀는 오히려 그룹 스터디 느낌이 들어서 꽤 재미있다는 얼굴을 했다.

    “수현아! 부탁 좀 할게~!”

    소영이 약간 애교부리듯 말하자, 민형이 작게 인상을 쓰고 그녀를 툭쳤다. 수현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연희를 어떤 느낌으로 보는지 대충 알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부 1학년의 원론 수준 경제학이야 수현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열심히 노는 쪽을 택했던  아이들에게는 깜깜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말은 그룹 스터디이지만, 사실상 그룹 과외가 되어버린 이 모임은 한 사람이 모두를 끌고 가는 느낌으로 진행 되었다. 수현에게  하나 좋은 것은 간식만큼은 4명의 물주들이  없이 공급해준다는 것이었다.

    “아으으으! 야,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한참 벼락치기 중이던 와중에 수현이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의 선언에 다들 하품을 길게 하고 커피를 들이키며 펜을 놓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머리를 굴리니 다들 피로가 금방 오긴 하는 것 같았다. 수현이 연희에게 살짝 눈짓을 하며 일어났다. 그가 문을 열고 나서자 연희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를 따라 나섰다. 안의 다른 사람들도 별 말 없이 의자에 기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으하! 그래도 아직 밤공기는 안 답답하고 괜찮다!”

    연희가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가 내쉬며 말했다. 말투가 꽤나 즐거운 느낌이었다. 수현이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연희야, 난··· 공부하면서 웃는  보는  가끔은 좀 무섭다?”


    수현이 화단 연석에 올라 조심스럽게 걷는 연희의 옆으로 가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연희가 맑게 웃으며 수현을 바라보았다.


    “왜? 자기는 별로야? 난 막, 진짜 대학생 같아서 뭔가 재미있는데··· 저런 공간에 모여서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연희가 화단에서 내려와 수현의 손을 잡고 작게 흔들며 말했다.

    “서로 알려준다고?”


    수현이 확실하냐는 듯이 반문하자, 연희가 작게 킥킥거렸다.

    하긴,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은 좀 과외에 가깝긴 했다.

    “음, 어쨌든 간에! 뭔가 둘러앉아서 밤샘 공부하고 이러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

    연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수현은 이해는 잘 가지 않아도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계사 준비를 하며 그룹스터디에 찌들었던 자신과는 다르게 연희는 진짜 신입생이었다.


    둘은 잠시 걷다가 벤치에 앉아 서로에게 기댔다.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편하고 자연스러운 동작들이었다.


    “연희야.”


    수현이 낮게 연희를 불렀다. 연희가 특히나 좋아하는 톤이었다.


    “응?”


    연희는 그 목소리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시간 참 빠른 것 같지 않아? 벌써 여름인 게 ···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그땐 엄청 추웠잖아.”


    수현이 연희의 손을 작게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연희도 짧게 웃고는 하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그러네. 벌써 그렇게 됐네. 자기 처음 입은 코트도 기억나는데··· 이젠 반팔이고.”


    연희가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잠시 그때를 기억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때는  정도로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었다.

    “우왓!”

    수현이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소리를 질렀다.


    “응?  그래?”

    연희도 조금 놀라 수현의 팔을 잡고 물었다.

    “아니...그냥, 나방이··· 하하.”


    수현이 민망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러고도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연희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보면 또 뼛속까지 도시 사람이었다.

    “으휴, 무드 좀 잡을까 했더니···”

    연희가 작게 타박을 하며 일어났다. 하긴 여름이라 벌레가 꼬일 때이긴 했다. 수현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일어나 그녀의 곁에 섰다. 그들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스터디룸은 대관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오래 자리를 비워 둘 수 없기도 했다.


    연희는 그래도 조금 아쉬웠는지, 슬쩍 주변 눈치를 보다가 수현을 그늘진 건물 뒤로 살며시 끌었다. 이제는 이런 곳들을 찾아내는 쪽으로는 둘이 합이 아주 잘 맞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짧지만 조금 진한 입맞춤을 하고는 마주 웃었다. 약간 짜릿한 맛도 있었다.


    “끝나고··· 데려다 줄게.”


    수현이 다시 양지로 나와 길을 걸으며 작게 속삭였다.

    “데려다 주면 막차 없을 텐데?”

    연희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한테 다~ 계획이 있거든.”


    수현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연희도 그의 말을 듣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런 쪽에서도 합이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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