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79 (79/94)



〈 79화 〉79

수현과 민형은 소주 두 병에 오뎅탕을 하나 시켰다. 소주가 먼저 나오자 민형이 병을 따고 수현의 잔을 채웠다. 병을 건네 받은 수현이 민형의 잔을 채우자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원샷을 했다.

“크-. 역시 시험기간에 마시는 술이 최고지.”

민형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미친··· 학점 복구 한다던 새끼 어디 갔냐.”


수현도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둘은 잠시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오뎅탕이 나오길 기다렸다.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오뎅탕 나왔습니다!”

오뎅탕이 금세 나오고 불을 올리자 곧바로 끓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잔씩을 더 주고 받고는 국물을 안주로 먹었다. 그러고도 그들은 가벼운 주제들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 소주가 3병이 비워지고 취기가 적당히 오른 상태가 되자 수현이 슬쩍 민형의 눈치를 보았다.

“···그래서 오늘 왜 술이 땡겼는데.”

수현이 숟가락을 내리고 말했다.


“그냥··· 뭐.”

민형이 애매하게 말하며 오뎅탕을 국자로 의미 없이 저었다. 수현이 잠시 민형의 말을 기다렸다.

“하···시발···”

민형이 괜히 한숨을  번 내쉬었다.

“뭔데?”


수현이 4병째 소주를 돌려 따며 물었다.


“형 결혼식 때...이후로 소영이랑 영 안 좋다···”


민형이 씁쓸하게 말하며 잔을 내밀었다.


“어떻길래?”


수현이 잔을 채우며 묻고는 병을 건넸다.

“저번에 형도 한 번 만난 적 있고 해서··· 불렀거든. 근데, 그 이후로 좀··· 애가  피해.”

민형이 수현의 잔을 채우고 병을 내리며 말했다. 수현이 약간 눈을 찡그렸다.


“···집안 차이 같은 걸 느꼈나?”

“약간 그런 것도 있는  같고··· 그날 우리 가족 분위기가  그지 같았거든···”

민형이 잔을 들어보이자 수현이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둘은 냉큼 술을 들이키고는  숨을 내뱉었다.


“크-. 그건 또 왜?”


수현이 안주를 한 입 먹고 물었다.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더라고. 다행히 하객 거의 없을 때라 아빠가 돈 좀 준건지 돌려보내긴 했는데... 다들 좀 영 분위기가 그랬지. 거기다 내가 형한테만 말하고 아빠한테는 소영이 말 안 하고 데려갔거든. 형이 알아서 말 할  알고. 근데 형도 정신 없던 건지 뭐... 그래서 그런지 좀 아빠가 소영이한테 냉랭했다고 해야하나 그랬지···”

민형이 한탄하듯 말했다. 수현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민형의 마음이 어떤진 알겠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성급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 그래서 오늘도 따로 공부한 거냐?”

수현은 속마음을 말하진 않고 물었다. 민형이 본인도 그 부분을  후회하는 것 같았기에  들쑤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민형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말은 해봤어?”

“그냥 대충··· 근데  그러다 싸우고···”

민형은 술도 안 마셨는데 쓰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머니 이야기는  했구만.”


수현이 알만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히려 무언가 숨기려고 하다보니 핀트가 엇나가 싸웠을 수 있다. 그냥 좀 이해해주면 안되냐 같은 소리를 하면 오히려 서운함이 폭발한다.

“그건...말하기 좀 그렇더라··· 좀 쪽팔리고.”

민형이 웅얼대듯 말했다.


“이건···내가 뭐라고 조언하기 좀 그렇네···”

수현이 애매하게 말했다. 민형도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다시 술을 들이켰다.


“야, 그래도··· 소영이 너 걱정하는 것 같더라. 너랑 본다고 얘기하니까 저녁 잘 챙겨 먹이라고 하던데.”


민형이 작게 입맛을 다시며 잔을 만지작거렸다.

“뭐, 너희 사이를 내가  모르니까··· 그리고 내가 네 입장은 아니니 뭐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연인 관계에서 힘든 것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


수현이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넌 하냐?”

민형이 고개를 들어 되물었다.

“··· 나도 안 하긴  것 같네···”


수현이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중얼거렸다.

“병신··· 너도 말만 잘하네···”

“뭐 새꺄. 뚫린 입이니까 일단 뱉고 보는 거지. 술이나 더 마셔.”

수현이 변명하듯 말하고는 잔을 들었다. 둘은 한  씩을 더 들이켰다. 그때 그들을 향해 미팅에서 고배를 마신 두 남자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불만이 쌓인 표정이었다. 약간 침울해 질 뻔 했던 수현과 민형의 분위기가 조금 살아났다.

“야, 오늘은  어땠길래 상태가 그러냐···”


수현이 피식 웃으며 얼굴 앞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씨바. 술이나 줘봐.”


강민이 투덜거리며 손짓을 했다. 그들은 잔을 채우고 곧바로 털어 넣고는 씩씩거렸다.


“와···.통금 있다더니, 요 옆 건물 들어가는 거 방금 봤다. 존나 후다닥 튀더라.”


병훈이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리며 말했다. 수현과 민형이 웃음을 터뜨리자 강민과 병훈이 욕을 내뱉었다. 그들의 주제는 이번 미팅이 어떻게 진행되어 어떻게 망했는지에 대한 강민과 병훈의 한탄으로 채워졌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들은 아주 괜찮았는데, 같이 갔던 두 놈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술은 분노한 2명이 더 참가하자 빠르게 비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술이 거하게 취할 때쯤, 갑자기 민형이 벌떡 일어났다.


“야, 다들 술병 조심해라!”

병훈이가 킬킬거리며 외쳤다.

“아, 씨바! 이제 안 한다고! ··· 개새끼들··· 나 우리 여보한테 갈 거야. 새끼들아!”


민형이 꼬인 발음으로 중얼거리더니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저 새끼 방금 뭐라고 했냐?”

강민이 술이 깬다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씨발···.”

병훈이 나가는 민형의 뒤를 보며 욕을 내뱉었다. 수현이 만취한 민형을 따라 나가보니, 민형이 복도끝에서 여보 소리를 하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소영인 것 같았다. 상태가 괜찮아보여서 수현은 슬쩍 화장실을 들렀다. 볼 일을 마치고 나오자, 마침 민형이 전화를 끊고 술집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야,  우리 소영이 보러 간다.”

민형이 뒤따라 들어온 수현과 테이블에 있던 둘에게 꼬인 발음으로 말하고는 가방을 챙겼다. 다들 반쯤은 어이가 없어서, 반쯤은 웃겨서 욕을 하며 그를 배웅했다. 민형도 작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어이가 없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보다가 픽 웃고는 다시 술을  잔씩 돌렸다. 그 때, 강민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생각 없이 핸드폰을 본 강민의 얼굴이 급속도로 환하게 변했다.


“뭔데 그러냐?”


병훈이 인상을 살짝 쓰며 소주잔을 내리고 물었다.


“야, 아까 걔들이 같이 먹자는데?”

강민이 흥분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뭐?”


병훈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물었다.


“옆 건물 들어간 애들! 우리 둘은 괜찮았다고 다른 애들 없으면 같이 먹재! 여자애들끼리 먹고 있대, 지금!”


강민이 말도 끝내지 않고 신이 나서 짐을 싸며 말했다. 믿기지 않지만, 아까  명의 한탄은 꽤나 객관적이었던  같았다.


“···간다고?”


이번엔 수현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민형의 행동도 예상 밖이었지만 이 상황은 더 예상 밖이었다.

“그럼 같이 가려고?”

병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그게 아니라···”

“그럼 우리가 너랑 먹게 생겼냐?”


“그건 아니지···”


“야, 돈은 담에 줄게. 간다!”

둘은  말만 남긴 채로 후다닥 문을 열고 사라졌다. 수현은 처음 겪는 상황에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다.

“와···의리 좋네···”

수현은 두세 잔쯤 남은 소주가 아까워서 입맛을 다시고 자작을 했다.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

“크-. 어이가 없네···”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유는  수 없지만, 갑자기 낙방을 거듭하고 혼자 한강 근처에 앉아 소주를 병나발 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근데 의외로 그 기억을 떠올려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저 추억처럼 느껴졌다. 수현은 자신의 상처도 많이 아물었다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수현은 한 잔을  따랐다. 찰랑 거리는 잔을 바라보니 문득 연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자신감과 여유의 바탕이 되어준 것은 다름아닌 연희였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자신에게 안정감을 크게 주는 요소가 아니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비트코인을 보며 그렇게 조급하게 군 이유는 오히려 미래를 알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수현은 그를 부르는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네?”

“어···저기···”


예쁘장한 여자 알바생이 그에게 다가와 약간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제가 계산할 거예요··· 아니다. 지금 나갈게요.”

수현이 한 명씩 사라진 자신의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게 입장에서는 튀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아니···그게···”

알바생이 말을 더듬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나가려고 한 거라!”


수현이 밝게 웃어주며 가방을 챙겼다. 알바생은 수현이 가방에 뻗은 왼손을 보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한발짝 비켜주었다. 수현은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계산을 빠르게 마쳤다. 갑자기 연희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는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왁자지껄한 신촌 거리를 헤치며 재빨리 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신호음이 짧게 이어지고 연희의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 받을  있어?”

수현이 연희의 목소리에 조금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 자기구나···잠시만!

연희는 작게 말하고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부스럭거렸다. 수현은 조금 더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금 인적이 적은 쪽으로 이동해 연희를 기다렸다.

-응! 이제 말해도 돼!


연희가 조금 작긴 하지만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고 있었어?”

수현이 약간 머뭇거리며 물었다. 생각해보니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긴 했다.

-아니··· 근데 사촌 동생이 자고 있어서··· 지금은 거실 베란다라 괜찮아!


연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갑자기 목소리 듣고 싶어서···”


수현이 약간 변명하듯 말했다.


-헤헤. 나도 사실 할까 말까 고민 했는데···

연희가 미안할 것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까는 뭐야···”

-음, 자기가 먼저 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


연희는 부끄럽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렸다. 수현도 그녀의 말에 작게 웃음을 흘렸다.

“나 그럼 잘 한 거야?”


수현이 뿌듯하게 말하자 연희가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큭큭거리며 웃었다.

-···응. 참 잘했어요! 자기··· 술 많이 마셨구나?


연희가 여전히 웃음기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조금···? 티 많이 나? 거기까지 알콜향이 전달이 되나?”

수현이 약간 민망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연희가 작게 웃었다. 수현도 그녀의 표정이 상상이 가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음, 그런 것보다는··· 자기는  특유의 술 마시고 가끔 하는 애교 톤이 있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연희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만 아는 수현의 또 다른 모습이기에 더 즐거운 부분이었다. 수현은 그녀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자신은 잘 모르는 부분이었다.


-민형이랑 공부한다더니··· 둘이 술 마신 거야?

“아니···강민이랑 병훈이도···”


-참내···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좀만 풀어두면 놀러 다니기 바빠 아주···

연희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조금 타박하듯 말했다. 수현이 그녀의 타박에 작게 웃고는 방금 그들과 있었던 일을 압축해서 설명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완전히 수현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의리 없는 친구들의 만행으로 종국에는 먹튀 의심까지 받았다는 것이었다. 연희는 킥킥거리며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여기저기서 다 버림 받으니 그제야 날 찾았다는 거네?

연희도 자신의 남자친구만큼이나 왜곡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약간 화내는 톤으로 말했다.

“아니지··· 온 세상이  버려도! 김연희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거지!

수현이 약간 취한 발음으로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연희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말은 잘해··· 물에 빠져도 분명 입만 동동  거야.

“그럼 네가 인공호흡해주면 되겠다.”

수현이 약간 능글맞게 대답하자 연희가 징그럽다는 듯이 웃었다.


“뭐야··· 안 해줘?”


수현의 말에 연희가 다시 웃었다. 둘은 그런 쓸데없는 말을 주고 받거나 오늘 있었던 일을 주고 받으며 통화를 이어나갔다. 연희의 동생도 일단은 시합준비가 잘 끝난 것 같다고 해서, 둘의 이야기는 꽤나 화기애애했다.


-자기···이제 차 타야 되는  아냐?


“응···버스타면 돼."

-이제 타러 가... 너무 늦겠다.

“응.”


-도착하면 문자 주고!


“알겠어. 그럼··· 잘 자.”

-응. 자기는 조심히 들어가.

-응.

둘은 작게 웃고는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수화기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꽤나 만족스러운 하루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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