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77 (77/94)



〈 77화 〉77

수현은 25일에 저점을 찍고 오르기 시작한 STX의 주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수현이 그린 대략적인 그래프는 7월초에 10억 근처까지는 자본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했다. 게다가 지난 22일에는 그의 예상대로 비트코인의 피자데이가 있었다.

슬슬 비트코인 매입을 하고, 제대로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와꾸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흠...”

수현이 공책을 두들기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노래방 부스 가격이나, 부동산 가격이야 발로 뛰면 알 수 있는 것들이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에게 당면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이, 다른 하나는 디자인이었다.

이 중에도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이였다. 사업을 하려면 미성년자이기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특히 수현은 법인을 설립해서 프렌차이즈화 하고, 나아가 자신의 사업에 지주회사로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금이 모이면 공격적으로 여러 아이템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는 어머니를 어떻게 구워삶아야 가능할까 잠시 생각했다.

“역시...하나지. 이번에 10억을 넘겨야 되겠는데...”

어머니는 결과를 중시한다. 압도적인 투자 결과를 가져다주면 의외로 쉽게 허락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최근 그가 자주 집을 비우거나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아무 말이 없는 것은 얼마 전에 치른 중간고사의 성적과 토익성적 덕이었다.

어머니가 그를 불러 제대로 공부는 하냐고 잔소리를 시작하려 했을 때, 그가 내민 성적을 보고는 입을 다물어 버린 사람이니까.

좋은 결과만 있다면 과정에는 전혀 터치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문제는 7월에 해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 머리를 쥐었다. 디자인...대충 그림은 나오는데, 이걸 표현하는  어려웠다.

“아... 나도 디자인 관련 수업이나 하나 들을 걸 그랬나...”

수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펜을 내렸다.

“자기야, 뭐해?”

연희가 수현의 앞자리에 앉으며 물어왔다. 흰티에 청바지를 입었는데, 어찌 그리 예쁜지.

“음, 사업 구상 중?”

수현이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사업?”

연희가 눈이 동그랗게 되어 물었다.

“응. 이번에 투자한 게  되면... 자본금 삼아서 사업 좀 해보려고.”

“연애 사업 이런  아니고 진짜 사업?”

연희가 진지한 수현의 말에 진심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아무래도 간단한 농담인 줄 알았던  같다.

“내 연애 사업은 지금 아주 성공적인데 구상할 게 뭐가 있어.”

수현이 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진짜야? 무슨 사업 하려고? 정해둔 건 있어?”

연희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물어왔다.

“응. 코인노래방.”

“코인...노래방?”

연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사실 너랑 처음 오락실 갔을 때, 그 생각이 들었어. 일반 노래방은 시간제잖아. 방도 크고... 그러다보니 혼자나 둘이서 가긴 약간 부담스럽고. 근데 오락실에 있는 동전 노래방은 접근성이 높아 보이더라고. 그걸 아예 따로 만들어서 대학가나 번화가에 두면, 연인이나 복학생, 직장인들이 잠깐 들러서 놀만 할  같았어.”

수현이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연희가 약간 입을 벌리고 그의 말을 들었다.

“왜? 별로일 것 같아?”

수현이 말이 없는 연희를 보며 물었다.

“...아니... 그냥 거기 가서 그런 생각 했다는 게 놀라워서.  그냥 노느라 바빴는데...”

연희가 대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 좀 멋져?”

수현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응. 대단해.”

“사업은 어때 보여?”

“잘은 모르지만... 일단 듣기에는 괜찮을 것 같은데.”

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하나 문제가 있어.”

“뭔데?”

“난 프렌차이즈로 해서 전국에 쭉 깔고 싶거든.”

“프...렌차이즈?”

“응. 그냥 한 두 개만 해서는 수익이 별로 안 나오잖아. 그래서 프렌차이즈화 하려고 하거든. 근데 프렌차이즈를 하려면 초반부터 컨셉을 잡아야 할  같더라구.”

수현의 말에 연희는 다시 입을 벌렸다.

“우리 연희 턱 빠지겠네.”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하루 이틀 생각한 게 아니구나.”

연희가 놀라움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응. 나 나름 진지해.”

수현이 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음, 그래서 문제는 뭔데?”

연희가 정신을 다시 잡고 물었다.

“디자인을 못 하겠어.”

“디자인?”

“응. 컨셉은 잡았는데, 막상 디자인을 하려니까 어렵네...  머릿속에서 나오질 않는 느낌이야.”

“내부 시설이나 로고 같은 거 말하는 거야?”

“응. 나도 디자인 관련된 수업이나 좀 들어볼  그랬나봐.”

“음... 내가 도와줄까?”

“네가?”

“응. 나 그림도  그려!”

연희가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 내가 말해주는 느낌대로  번 생각해볼 수 있어?”

수현이 냉큼 물었다.

“음, 일단 말해봐.”

연희가 자신의 가방에서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들며 말했다.

“아, 이름은 뭘로 할지 정했어?”

“응.”

“아, 진짜? 뭔데?”

“희스타 코인노래방.”

수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희스타? 근데 희는 뭐야?”

연희가 갸웃하며 말했다.

“연희의 희. 기쁠 희지?”

“...응.”

“이 사업을 김연희에게 바칩니다.”

수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진짜  이름에서 따온 거야?”

“응. 김연희가 나의 스타잖아. 희도 기쁠 희 한자로 쓰려고.”

“와...뭔가  감동인데?”

“이제 알겠지? 사업 구상하는데도 김연희 생각을 한다니까?”

수현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희도  미소에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선수 같기도 하고...”

연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전 그냥 김연희 전문가입니다.”

수현이 간단히 말했고, 연희가 다시 웃었다.

“좋아...  이름이 걸린다는데, 나도 좀 도움을 주지!”

연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돈은... 후불로 드리겠습니다.”

“흠, 믿어보겠어요.”

둘은 그렇게 잠시 컨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음... 그러면  컨셉을 좀 달리하는  어떨까? 부스형으로 들어가는 곳이랑, 룸형으로 들어가는 곳이랑.”

연희가 진지하게 물었다.

“음, 난 컨셉은 비슷하게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근데 여대 근처에는  블링하게 가는 것도 좋긴 할 것 같고.”

“응. 내 생각이 그거야. 룸형은 연인이나 여자들끼리 자주 올  같아서.”

“근데 컨셉을 달리하면 비용적으로도 그렇고 프렌차이즈라는 메리트가 떨어질 것 같아서.”

“아... 그렇긴 하네.”

“음,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이제 촬영 가야지.”

수현이 시간을 보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응. 오늘은 스튜디오래.”

“천천히 걸어가면 딱 맞겠다.”

“응. 나 화장 어때?”

연희가 가볍게 화장을 체크하고 물었다.

“최고지.”

“묻는 내가 바보지.”

연희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면서도 괜히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대답은 똑같을 걸?”

수현이 사실을 말했다.

“으휴... 가자!”

연희가 기분 좋게 수현에게 팔짱을 꼈다.

*

수현은 어색한 모습으로 등을 곧게 펴고 가만히 서있었다. 옆에서 연희가 작게 큭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희는 수현의 어깨에 손을 사뿐히 올리고 조금 몸을 붙여왔다.

“자기, 왜 이렇게 굳었어.”

연희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수현에게 속삭였다.

“...내가 뭘...”

수현은 눈만 돌려 힐끗 연희를 보며 말했다. 연희가 다시 피식 웃었다.  순간 수현의 등 뒤로 사진 찍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 방금 표정 진짜 좋았어요! 역시 진짜 남자친구라 그런지 느낌이 아주 자연스럽네.”

사진사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좀 더 디테일하게 사진을 확인했다.

“하-.”

수현이 한숨을 쉬고 몸에서 힘을 뺐다. 연희가 잘했다는 듯이 수현의 등을 토닥였다.

“아니... 무슨 여자 쇼핑몰에서 여자 옷 사진을 찍는데, 남자가 필요해요...”

수현이 사장에게 다가가며 투덜거렸다. 사장은 그의 투덜거림에도 사진이 잘나온 것에 만족하면서 웃었다.

“수현씨가 생각보다 등빨이 괜찮네...수현씨, 나중에 혹시 우리 회사에서 남성용 라인 나오면 페이 괜찮게 해줄 테니까 계약합시다!”

사장은 수현의 말은 무시하며 자기 할 말만 하고 약간 놀리듯 엄지를 세웠다.

“됐습니다... 카메라만 보면 표정관리가 안 되는데... 이제 끝난 거죠?”

수현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푹신한 의자에 대충 앉았다. 사장과 연희가 피식 웃었다.

“연희씨는 다음 거 갈아입고 와주세요!”

사진사가 외치자 연희는 수현에게 작게 윙크를 날려주고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사장은 귀엽다는 듯이 연희를 보고 웃으며 수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약간 혼이 빠진 듯한 수현의 모습에 사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저번에 나한테 그랬잖아요? 사업은 타이밍이니, 이슈가 중요하니... 그래서 사이트 광고랑 메인에 띄울 사진은 좀 더 이슈 끌만  느낌으로 찍어보려고 구상중이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뒷모습만 나오는데 뭘 그렇게 지쳤어요?”

대표는 전과는 다르게 축 쳐진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네. 사업 참  하십니다...”

수현은 대충 흘려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씨가 의외로 섹시한 컨셉도 잘 소화해서 사진들은 다 좋은데, 여기서 뭐를 선택해야할지 그게 고민이네...”

사장이 연희를 칭찬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수현의 표정이 좀 뿌듯해지는 걸 보며 사장은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팬이 자기 아이돌 칭찬을 들은 것 같은, 혹은 아빠가 딸 칭찬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크흠.... 연희야  잘 어울리죠...  어울리는 옷이 없어서 문제지...”

수현이 자세를 고쳐 앉고 말했다. 사장은 어지간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먹어요. 목말라 보이는데.”

사장이 테이블 위에 놔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현이  모금 마시자 연희가  옷을 입고 나왔다. 수현이 속 안에서부터 스며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예쁘다는 표정을 지어주자, 연희도 밝게 웃어주었다. 연희는 곧바로 사진사의 요구에 응하며 포즈를 잡았다.

“...수현씨는 신기하네...”

사장은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다가 약간의 시샘을 담아 말했다.

“뭐가요?”

수현은 연희의 모습에 눈을 고정하고 건성으로 물었다.

“저 많은 옷, 갈아입고 나올 때 마다 하나하나 그렇게 반응해주는  쉽지 않은데... 지루한 기색도 없이 그러는 거 보면...”

대표가 팔짱을 끼고 연희 쪽을 보며 말했다.

“...그냥 진짜 다 좋아서 나오는 건데 힘들  뭐가 있어요.”

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대표는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연희씨는 좋겠네!”

대표는 말을 마치고 다시 사진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확실히 이렇게 보면 자신이 본 예쁘다는 연예인들을 포함해도 한 손에 꼽는 미모기는 했다. 특히 남자들 쪽에서 더 인기가 많을 타입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살짝 저어 잡생각을 털어내고 컵셉 설명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옷의 촬영이 끝나자 수현이 슬슬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연희도 인사를 하고 탈의실로 걸음을 옮기려  때였다. 사진사가 수현과 연희를 동시에 불렀다.

“둘이 지금 입고 있는  코디도 잘 어울리는데, 사진 한 장 찍어줄까요? 따로 쓰는 거 아니고... 그냥 찍어드리고 싶어서요.”

사진사가 어떠냐는  물었다. 연희와 수현이 눈을 맞췄다. 둘은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이 얼른 자신의 새끼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연희에게 끼워주었다. 사진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은 한 장이 아니라 몇 번 포즈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사가 조금 흥분한 듯 더 요구했기 때문이다.

“약간 색감 보정 정도만 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음, 다음 주에 오면 보여드릴게요.”

생각보다 조금 길어진 커플촬영이 끝나고 사진사는 만족스럽게 수현과 연희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커플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수현과 연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촬영지를 나섰다.

“으으으! 뻐근하다!”

연희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좀... 주물러줄까? 내가 진짜 근육 잘 풀어주는데.”

수현이 연희의 어깨를 나긋하게 감싸며 은근하게 말했다. 연희가 참 시도때도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으이그! 아주 기회만 있으면 만지고 싶어서!”

연희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타박하듯 말했다.

“그리고 넌 그럴 때 마다 좋으면서 튕기고?”

수현도 지지 않고 짓궂게 말했다. 연희가 작게 소리내 웃었다.

“헤헤. 그게 연애의 기술이래! 우리 자기는 아직 어려서  모르는구나?”

연희가 코를 찡긋거리며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렇다는 듯이 말했다. 수현이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었다. 연희도 킥킥거리며 수현의 허리에 팔을 둘러왔다. 그들은 잠시 그렇게 걸었다.

“음, 엠티 후발대 몇 시라고 했지?”

연희가 수현에게 물었다.

“아직  남았어. 뭐 좀 먹을래? 점심도 안 먹었잖아.”

수현이 슬쩍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심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어도, 몇 시간 동안 여러 포즈를 바꿔가며 취하는 것도 의외로 상당히 지치는 일이었다.

“아니, 아까  거 먹었더니 괜찮아. 자기 배고파?”

연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푸라푸치노를 휘핑까지 가득 올려 먹었더니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나도 괜찮아. 그럼 어디서 좀 쉬다가 갈까?”

수현이 주변 카페를 확인하며 물었다.

“음, 난...저기서?”

수현이 담담하게 카페들을 둘러보자, 연희가 슬쩍 개구진 표정으로 멀리 보이는 모텔 간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수현이 어딜 말하나 시선을 옮겼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연희야... 어떻게 기회만 있으면 방으로 들어가자고 해...”

수현이 좀 전의 대화가 생각이 나서 말했다. 연희가 음흉하게 킥킥 거렸다.

“자기도 항상 좋으면서 튕기더라? 응?”

연희가 수현의 옆구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수현이 그 말에 킥킥거렸다.

“내 여자친구가 그러던데...뭐라더라? 그게 연애의 기술이라나?”

수현도 능청스런 얼굴로 연희에게 대꾸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곤 장난에 성공한 어린 아이들처럼 킥킥거렸다. 그들은 결국 작은 카페에 들어가 서로의 몸에 바짝 기댄 채로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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