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6
B.Bridge
수현은 주변의 왕왕 거리는 슈퍼카 소리를 들으며 고급스럽게 반짝이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대한민국 젊은 부자들의 놀이터인 이곳에 과잠 하나 덩그러니 입고 온 수현에게 시선이 쏠렸다. 옷 좀 보라며 비웃는 돈 많은 남자의 시선도, 생긴 건 귀엽다며 가볍게 놀리는 헐벗은 여자의 시선도 별로 달갑지 않았다.
“후-.”
수현이작게 한숨을 내쉬고 계단을 올랐다. 다들 명품 혹은 그걸 정교하게 따라한 짭을 걸치고 있다 보니, 오히려 수현이 그들 사이에서 튀었다. 계단을 오르다 멈춘 수현이 민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차림으로는 말도 하기 전에 쫓겨날 것 같았다.
“크하하하! 뭐야, 저거 훈장이야?”
멀리서 그의 과잠을 보며 큭큭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어려 보이는데, 저땐 그럴 수 있지. 귀엽네.”
여자가 수현을 위아래로 평가하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미친...홍대나 가던지...흐하하하!”
무시하려고 해도... 솔직히 기분이 점점 다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왔냐?
이미 취기가 올라있는 듯한 민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나 과잠이라 아예 입뺀일 것 같은데...”
-뭐? 아...크크크... 좀만 기다려봐.
민형이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수현이 계단 중간 쯤에 섰다. 그를 비웃으며 지나쳐 올라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수현이 살짝 인상을 쓰고 기다리자, 곧 문에서 정장을 입은 덩치 큰 사람이 달리듯 나왔다.
“김민형 고객님 일행 되십니까?”
남자는 곧장 수현을 향해 다가와 정중하게 물었다.
“네.”
수현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함이?”
“황수현이요.”
“확인 감사합니다. 들어가시죠.”
남자는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며 수현을 안내했다. 주변의 시선이 더 이상하게 변했다. 어쩌면 이게 더 대단해보일 것이다. 전화 한 통에 거지차림을 하고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수현은 조금 기분이 풀렸다. 속물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런 상황에서 항상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은 본 적이 없었다.
수현이 들어간 내부의 풍경은 말 그대로 화려했다. 조명부터 의자까지 모두 고급스러웠다. 예전에 가봤던 홍대의 클럽 같은 곳과는 사람도,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그는 작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은 1층을 가로질러 걸었다.
주변엔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과 깔끔하게 빼입은 남자들이 제법 많이 들어차있었다. 그들은 그런 분위기에 혼자 붕 떠있는 수현을 힐끔거렸다. 어떤 여자들은 그를 진득하게 위아래로 스캔하며 웃기도 했다.
수현 또한 당당하게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가 그런 시선들에 짜증은 나도 주눅이 들지 않은 이유는, 1년 안에 저들의 시선을 부러움으로 바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은 그를 유리로 둘러싸인 룸 아닌 룸으로 안내했다. 안에서 민형이 꽤나 초췌한 얼굴로 웃으며 술잔을 들어보였다. 직원이 인사를 하고 돌아가자, 수현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병신새끼... 내가 너 때문에 별 경험을 다 한다.”
수현이 욕부터 하며 과잠을 벗어 다른 의자에 던졌다.
“흐흐흐. 전화하길 잘 했다. 야, 그냥 들어왔으면 내 이름 말하기도 전에 빠꾸 먹었겠는데...”
딱 20살 티가 나는 맨투맨 코디에 민형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코디는 괜찮았는데, 장소랑은 맞지 않았다.
“목소리 다 죽어가길래... 바라도 간 줄 알았더니... 클럽엘 와 있네. 거기다 혼자 양주가....3병? 미친 새끼...”
“새끼. 클럽 아니고... 라운지 바.”
“거기나 여기나 어차피 헌팅 하러 온 사람들인 건 다 똑같아 보이는데 뭐. 읏차! 야, 술이나 따라봐.”
수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민형이 실실 웃더니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짠부터 해.”
수현이 잔을 들고 말했다. 민형이 술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둘은 동시에 원샷을 하고 잔을 내렸다.
“크으-. 야... 개쓰다.”
수현이 인상을 찌푸리고 안주를 집어먹었다. 술도 안주도 맛은 그저 그랬다.
“흐흐흐. 이게 양주다, 새꺄.”
“그래, 돈 많아서 존나 좋겠다. 이거 다 얼마냐. 맛은 우리 연희가 만든 도시락 반도 안 되는데.”
수현이 안주를 목구멍으로 넘기고 말했다.
“크하하하! 미친 새끼! 진짜!”
민형은 한참을 그렇게 웃어댔다. 진짜 웃기다기보다는 억지로 웃어대는 느낌이었다. 수현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 잔씩 잔을 채웠다. 민형은 그렇게 정신을 놓은 듯 웃어대다 고개를 푹 숙였다. 수현은 말 없이 차분하게 민형의 말을 기다렸다.
“야... 저기 봐라....”
민형이 고개를 들고 유리 밖을 보며 말했다. 수현이 슬쩍 고개를 돌려 라운지를 바라보았다. 작은 칵테일 한 잔씩을 들고 괜찮은 남자가 찾아와 주길 기다리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을 꼬시기 위해 다가가는 남자들, 테이블에서 벌써 키스를 하는 남녀들이 보였다.
“존나... 웃기지 않냐?”
민형이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는 다시 잔을 들었다. 수현도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치고 다시 술을 들이켰다.
“난... 이해가 안 되더라...”
민형이 잔을 내리고 수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현이 인상을 쓰고 연어를 입에 우겨넣으며 무슨 소리냐는 듯이 민형을 보았다.
“뭐가. 저 사람들?”
“아니. 너.”
“나?”
“어... 너.”
민형은 그 말을 하며 소파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고개만 끄덕거리며 풀린 눈으로 수현을 응시했다.
“야. 안주나 좀 먹어.”
수현이 민형에게 접시 하나를 밀며 말했다. 민형이 고개를 저었다.
"됐다."
“아님 과일이라도 먹어 새꺄.”
수현이 과일 접시를 밀며 말했다. 저대로 술만 달리다가는 금방 꽐라의 길로 들어설 것 같았다.
“흐...됐어.”
“거...야, 내가 다 먹는다? 내일 안주 값 달라고만 해라. 쳐 맞을 줄 알어.”
수현이 과일 한 입 물어 먹으며 말했다. 과일 맛도 평범했다.
“흐흐흐. 너 법무법인 태양 실세가 누군진 알고 하는 말이지?”
“내 친구 아버진데. 왜, 문제 있냐?”
수현이 과일을 마저 입에 넣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민형이 잠시 말을 멈췄다. 얼마 전 삼인방과 같이 술을 한 잔 하다가 나온 말 중에 하나였다. k&J태양 법무법인. 한국 최고의 법무법인. 창업주 멤버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현 실세. 형이 차기 실세로 내정된 집안... 솔직히 놀랐다.
“...야.”
“엉.”
“바로 와줘서 고맙다.”
민형이 뜬금없이말했다. 술에 취해서 인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어려운 것인지는 몰라도 민형의 말은 주변만 뱅뱅 돌았다.
“야, 네가 술 사는 건데 뭔 고맙다까지 나와. 설마 이거 반띵 하자고 부른 건 아니지?”
“크하하하! 미친 새끼...”
“야, 나 아직은 돈 없다.”
민형이 다시 낄낄거렸다. 그가 다시 위스키 병을 들어올렸다.
“야. 그거 말고 저거 먹어보자. 저 번쩍이는 거.”
수현이 아르망디를 가리키며 말했다. 민형은 꼭 취하기로 마음을 먹은 듯이 도수 높은 술만 먹고 있었다. 수현은 먹일 거면 이 중에 도수가 제일 낮을 걸 먹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크흐흐흐. 그러지 뭐.”
샴페인이 잔에 채워지자, 수현은 보글거리는 기포를 보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적당히 맛은 괜찮았다. 제값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야. 이런 데는 내년쯤에 오자. 뭔 허세로라도 더치 하자는 소리가 안 나오네.”
수현이 잔을 놓으며 분위기를 조금 편하게 만들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흐흐흐. 미친...내년엔 돈 생기냐?”
민형이 잔을 든 채로 킬킬거리며 웃었다.
“기다려 봐, 새꺄. 야. 근데,,,솔직히 내가 먹어보니까소주에 삼겹살이 훨 낫다. 담엔 걍 소삼으로 해.”
그들은 잠시 그렇게헛소리를 하며 술을 마셨다.
“...야. 애정도... 종류가 그렇게 다양할까...”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취기가 오르자, 민형이 유리 너머로 헌팅 성공 후 테이블에 앉자마자 키스를 하는 남녀를 보면서 물었다. 지난 엠티때 물었던 것과 내용이 비슷했다.
“...소영이... 얘긴 아닌 것 같고. 오늘 누구 만난다더니... 그것 때문에 그러냐?”
수현이 조심스럽게 머리를 굴리며 물었다. 저번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민형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병훈이랑 강민이가 그러던데? 너 싱글벙글해서 어디 간다고 일찍 집 갔다고.”
“그 새끼들은 생긴 거랑 다르게 입이 싸...”
“뭔데, 말 해봐... 그만 빙빙 돌고.”
수현의 말에 민형이 슬쩍 시선을 돌리더니, 조금 더 마셔야 말을 할 수 있겠다는 듯이 자신의 잔에 독한 위스키를 따랐다. 수현도 잔을 내밀어 받았다. 둘은 동시에 스트레이트로 마시고는 잔을 내렸다.
“오늘... 한 16년만에... 엄마를 만났어...”
민형이 잠시 인상을 쓴 채로 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수현은 조금 놀랐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16년?”
“16년... 사실 말이 16년이지 기억도 거의 안나. 그래서... 좋다고 나갔지...”
민형은 다시 쓰게 웃더니 잔을 채웠다.
“미친놈아. 천천히 마셔.”
수현이 민형을 말리며 말했다.
“흐흐흐. 나 또 지랄하면 책임지고 막아줘라?”
“미친 새끼. 그럴라고 나 불렀냐?”
“조금은? 크흐흐흐.”
민형은 말을 마치고 다시 술을 마셨다. 눈이 거의 풀려있었다.
“야. 내가 드라마 볼 필요가 없는 현실 얘기 하나 해줄까?”
민형이 잔을 내리고 다시 소파 깊숙이 몸을 묻으며 말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형이 조금은 두서없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수현은 추임새나 가벼운 건배제의를 제외하면 거의 민형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민형은 그의 가족사를 천천히 늘어놓았다.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의 맞바람.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어머니와의 생이별.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겨우 마련된 만남. 그리고 거기서 겪게 된 어머니에 대한 실망.
“난 씨발! 이해가 안가... 아빠는...엄마를 사랑했대... 우리를 사랑한대... 그때 그건... 그냥 육체적인 관계들이었대... 하하하하! 이게 무슨 개소린데! 시발! 이걸 내가 이해해야 돼? 형은... 이해했대... 이게.. 이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야?”
민형은 온더락잔에 얼음 없이 채운 위스키를 반쯤 들이켰다.
“흐흐흐. 엄마는... 엄마는... 지금 존나 행복한 가봐... 돈 부족한 것만 빼면...! 지금 남편이랑 통화하면서 그러더라... 나 보는 건 소름 돋고 싫은데, 조금만 구슬리면... 나 이용해서 아빠한테 돈 좀 왕창 뜯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그쪽 애들 유학도 보낼 수 있다고 .... 으흐흐흐흐. 시발...좆같더라...”
수현도 쓰게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식을 자식이 아니라 기대를 이뤄줄 자신의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사람.
“난 시발...어째야 하는 거냐? 날 사랑한다는 아빠를 이해해 주면 되냐? 아니면, 날 사랑하지도 않는 엄마한테 이용이라도 당해줘야 하냐?”
민형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작게 울면서 중얼거렸다.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민형은 방황하는 청소년보다도 불안해보였다.
“그냥... 천천히 네가 편해지는 쪽을 찾아. 당장 뭘 할 필요는 없어. 대신 하나만 조언하자면, 어머니한테 애정을 갈구하면서 헌신하진 마. 그래봐야 그 사람 마음... 안 돌아 와.”
수현이 조용히 말했다. 의외로 미디어에서 과장되게 만든 환상이 부모의 사랑이었다. 방법이 잘못된 사랑 정도가 미디어의 최대치였지만, 슬프게도 정말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는 부모들도 많았다.
“정말... 안 돌아올까... 그래도, 그래도 엄마잖아...”
“글쎄...근데 난 본 적 없어.”
수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민형이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넌 잘못 없어. 그러니까...네가 아프게 될 짓은... 하지 마라.”
수현이 조금 더 말을 덧붙였다. 민형의 울음이 길게 이어졌다. 수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답은 없고, 단지 당사자의 선택만이 있는 문제는 골치가 아팠다. 수현이 온더락잔 두 개에 모두 얼음을 채우고 남은 위스키를 나눠 따랐다. 그는 말없이 민형에게 잔을 건넸다.
“야. 너희 집 주소만 말해둬. 데려다 줄 테니까. 오늘은 존나 마셔라, 새꺄. 죽지만 마.”
“흐흐흐. 시발.... 너도 오늘은 대가리 조심해라....”
둘은 별 말 없이 술을 주고받았다.
*
술자리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민형이 얼마 안가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민형의 처리로 고민을 하며 샴페인을 홀짝이고 있을 때, 민형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형이었다. 수현이 전화를 받고 상황 설명을 하자, 금방 오겠다며 전화가 끊겼다. 수현은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민형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아! 저 답답한 새끼! 진짜!”
민형의 형, 주형이 그들을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검사라던데...그가 타고 온 차는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였다. 그는 수현을 도와 민형을 뒷자리에 던지 듯 태웠다. 얼굴에 화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후-. 너도 타. 데려다 줄게.”
주형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전 그냥 가까운 역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집이 어딘데?”
“일산입니다.”
수현의 말에 주형이 약간 애매하게 눈을 뜨더니 시계를 보았다. 주형도 잘 아는 동네였다.
“지금 차 없지 않아?”
“... 사실, 강남 처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수현은 담백하게 말했다.
“...에이씨... 너도 그냥 자고 가. 통금 있어?”
“설마요.”
“타.”
주형은 민형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수현도 차에 올랐다. 자연흡기 시절의 콰트로포르테를 이렇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차는 곧바로 멋진 배기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 차 안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배기음만이 울렸다. 그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방배동의 고급주택단지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