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65 (65/94)



〈 65화 〉65

*

수현과 연희는 아쉬움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번은 100일이 겹쳐서 더 아쉬운 날이었다.

“그래도 일요일에 올라오면 백일은 같이 보내는 거잖아.”

수현이 아쉬워하는 연희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

연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다음주에는 여행가잖아.”

수현이 그녀의 어리광을 피우는 듯한 광경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응... 기대 중이야.”

“나도 엄청 기대중이야...이제  봐. 저번처럼 늦게 탄다 또...”

수현이 연희를 살짝 떨어뜨리며 말했다.


“응. 가볼게. 오늘 복싱가지?”

연희가 살며시 떨어지며 물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쉬움이 담긴 손길로 괜히 수현의 옷매무새를 정돈하듯 손을 토닥였다.

“응. 가볍게 뒷풀이 하면 술 한 잔 것 같아. 금방 들어갈게.”

“너무 먹지 말고. 여자 조심하고.”

연희가 수현의 옷매무새를 마저 정리해주며 말했다.

“당연하지. 너도... 아빠랑 나 말곤 남자는 다 뭐다?”

수현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연희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응. 아버님 나와계시겠지?”

수현이 확인을 받아야겠다는 듯 물었다.

“걱정 마... 지금부터나와있을지도 몰라...”

둘은 그런 농담을 조금 더 주고받았다.

“갈게! 자기도 조심히 가!”

연희가 버스에 반쯤 올라타며 말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연희가 마지막 손님이었던 듯, 바로 문이 닫혔다.

 연희를 태운 버스가 떠나고, 수현은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신촌으로 돌아가는 길이 영 옆구리가 허전했다.

*

수현이 몸을 풀며 탈의실에서 나오자, 강민과 병훈이 반갑게 다가왔다. 빙글거리는 얼굴이 딱 놀리려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혼자냐?”

강민이 수현에게 잽을 하듯이  건드리며 물었다. 생긴 건 상남자 스타일인데, 하는 짓은 참 촐싹 맞았다.

“그러다 너 심하게 맞는다...나 오늘  보여야 할 사람도 없어.”

수현이 피식 웃으며 경고했다.

“무서운 새키... 연희가 이걸 알아야 하는데...”

강민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알아도 좋다던데?”

수현이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걔도 취향이...어우!”

강민이 괜히 몸서리치는 척을 했다.

“그러다 더 심하게 맞는다? 그나저나 너희 센터 맴버는 어디 갔어?”

수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보이지 않는 민형을 찾고는물었다.

“아, 우리가 무슨 아이돌이냐? 그리고 왜 그새끼가 센터야? 그 새끼 오늘 누구 만나러 간다고 안 나왔어.  중요한 것 같던데, 말은 안 해주더라. 기분 엄청 좋아 보이던데...”

병훈이 몸을 풀며 말했다.

“소영이?”

“걘 반 여자애들 몇 명이랑 놀러가던데? 그리고 소영이면 우리한테 안 말할 이유가 없지...”

강민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소영인 미팅?”

수현이 킥킥거리며 물었다.

“그 소리했다가 걔한테 잽 씨게 맞았다...”

병훈이 배를 만지며 말했다. 수현이 웃었다.

그렇게 잡담을 하며 몸풀기를 마치고 그들은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갔다. 이젠 그래도 다들 제법 기본 자세는 나왔다. 물론, 인원도 꽤 줄어있었다. 여전히 붐비기는 했지만.


강민은 운동신경은 조금 떨어져도 체력이 좋아서 나름 가르치는 맛이 있었다. 수현은 연희가 없으므로 오늘은 강민 조지기를 시작했다.

“으아! 이 악마새끼!”

강민이 이를 악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외쳤다.


“어허, 체력이 남아도네... 쨉!”

수현이 그 모습에 오히려 도발을 하며 외쳤다.

“으아!”

강민이 마치 수현을 때리기라도 할  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어깨 힘 빼고! 소개팅 나왔냐? 원투! 빨리!”

수현의 말에 강민이 거의 침을 흘려가며 주먹을 뻗었다. 병훈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웃지마! 다음은 너다!”

수현이 외치자 병훈의 얼굴이 사색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모습을 보며 웃었다.

몇 번 둘을 번갈아 봐준 수현은 오늘도 미팅에 나서는 두 명을 먼저 샤워실로 보냈다. 둘은 운동을  시킬까봐 잽싸게 샤워실로 도망가듯 사라졌다.

그러고나서 수현은 개인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어차피 샤워실은 한참 후에나  것이었다.

“수현아, 2라운드만 가볍게 매스나 스파링 할까?”

역시 남아서 개인 운동을 조금 더 진행하던 석경이 물었다.

“좋죠!”

수현은 환영하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아래서 백날 샌드백을 쳐봐야 실력은 많이 늘지 않는다.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의 스파링이 중요했다.

“다음 라운드 바로?”

“넵! 강도는 50프로?”

수현이 장비를 챙기며 물었다.

“에이, 좀만 더 쓰자!”

석경이 수현의 등을 툭치며 말했다.

“연희 없을 때는 이거 이상 안 하기로 했거든요... 대신 바디는 풀 파워로?”


수현이 조금 더 강화시킨 제안을 했다.

“크하하하! 그래 콜!”

석경이 귀엽다는 듯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비를 착용하고 올라간 둘은 링 아래와는 다른 눈빛으로 진지하게 스파링에 임했다.


둘은 링위에서 꽤나 어그래시브한 성향의 파이터들답게 상당히 많은 주먹 공방을 이어나갔다. 둘의 실력은 호각이었다. 개인운동을 진행 하던 이들이나, 샤워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이 그들을 구경했다.

삐삐-. 삐삐-.

“마지막 30초!”

혜정이 둘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수현과 석경은 쏟아 붓듯이 마지막 주먹을 교환했다. 경기 종료 공이 울리고 둘은 가볍게 글러브터치를 하고 링에 기댔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헤드기어를 벗겨주었다.

둘 모두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근육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좋았다.

둘은 잠시 숨을 돌리고, 서로에게 간단한 피드백을 해주며 링에서 내려왔다.

“후-. 죽겠다... 수현아,  한잔 할까?”

석경이 젖은 머리를 넘기며 물었다.

“좋죠. 시간 되는 사람끼리 모여서 가죠.”

수현이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케이! 들어가자. 이제 좀 비었겠다.”

석경이 기분좋게 외치며 손짓을 했다. 둘은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연희는  내려갔대?”

석경이 땀에 젖은 옷을 벗어던지며 물었다.

“안 그래도 방금 문자왔네요. 저 답장 좀 하고 들어갈게요.”

“오냐~.”

석경이 가볍게 웃으며 먼저 샤워실로 들어갔다.

수현이 열어본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연희가 터미널에서 아버지를 억지로 잡고 찍은 듯한 사진이 와있었다. 아무래도  남자친구에게 보낸다며 찍는 것이 조금 어색하신  같았다.

-ㅋㅋㅋㅋ아빠가 자기 선물 보고 만족한 것 같아! 센스 좋아! ㅎㅎㅎ-

-진짜? ㅎㅎㅎ 아버님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ㅎㅎㅎ-

연희 어머님이 들고 가신 꽃다발로 인해 그녀의 가족들은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날이후 한동안연희 아버지는 외간남자한테 꽃 받으니까 좋냐고 어머님께 툴툴거리셨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어버이날을 맞아 두 분 모두 작은 선물을 보내드렸다. 어차피 꽃다발도 선물했는데, 어버이날을 안 챙기는 쪽이 더 이상한  같아서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고 괜찮은 것으로 골랐는데, 성공적인 것 같았다.

-ㅋㅋㅋㅋ 우리 아빠 예전 꺼 아예 버리셨어! ㅋㅋㅋㅋ-

-ㅎㅎㅎㅎ이제 마음이 좀 놓이네. 나 점수 좀 딴 것 같아?-

-ㅋㅋㅋㅋ천하의 나쁜 놈에서 그럭저럭 나쁜 놈 정도   같아 ㅋㅋㅋㅋ-

-ㅋㅋㅋ뭐 일단 만족!ㅋㅋㅋㅋ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ㅎㅎ집 가는 중이야?-

-ㅎㅎㅎ응! 아빠랑 차 안. 아빠가 핸드폰만 본다고 화낸다ㅋㅋㅋ-

-아! 그럼 빨리 꺼. 점수 딴 거 다 잃겠다ㅎㅎㅎ-

-ㅎㅎ응! 자기는 체육관이지?-

-응. 이제 뒷풀이 가려고 탈의실. 나도 사진 찍어서 보내줄까? ㅎㅎㅎ-

-변태! 끝나면 전화해!-

-알았어. 있다가 봐.-


수현은 핸드폰을 넣어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애들 지금 치킨집에 있다네. 너랑 나랑, 여자애들 두 명만  데려가면 된대.”

먼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던 석경이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 수현을 향해 말했다.

“저번에 거기요?”

“응. 여자애들은더 시간 걸릴 것 같으니까 나가있자. 어우 습하다.”

석경이 인상을 쓰고 말했다.

“넵.”

수현은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 옷을 입었다. 그는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민형에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보면 연락  해주라.-

“뭐지...”

수현이 약간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 연희 무슨 일 있대?”

수현의 표정을 거울로 확인한 석경이 물었다.

“아... 아뇨. 민형인데,.. 부재중 전화가 와있네요... 전화 좀 달라고... 근데  느낌이...”

수현이 고개를 저으며말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나 머리 다 말렸으니까 전화 먼저 해봐. 어디 간다더니.. 일이   풀렸나?”

석경이 드라이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날도 더운데, 아래 내려가 계세요. 따라 가겠습니다.”

“오냐~.”

석경이 나가고 수현이 머리를 말리기 전에 민형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신호는 금방 꺼지고, 뒤로 음악 소리와 술에 취한 듯한 민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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