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64 (64/94)



〈 64화 〉64

*

수현과 연희는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나른한 오전을 침대에서 함께 즐겼다.


“음, 일어나기 귀찮다.”

연희가 수현의 품에  파고들며 말했다.


“나도...”

수현도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외만 없었으면 내내 이러고 있었을 텐데...”

수현이 연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지금 몇 시야?”

연희가 달콤한 남자친구의 체취에 취한 채로 물었다.


“...11시...30분.”


“와... 벌써?”

둘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진 않았다.


“배고프긴 한데...”


연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응...”

“일어나기는 싫고...”


“응...”


“누가 번쩍 안아서 욕실로 데려가 주면 좋겠다...”


연희가 수현을 토닥이며 말했다. 수현이 작게 터진 웃음을 지어보이며 연희에게 눈을 맞췄다.

“지금?”


“음... 십분만 있다가.”
연희가 나른하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난 지금 가고 싶은데...”

“음... 안 돼요...”


“지금...”

수현이 연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연희가 간지러움에 몸을 움츠리며 웃었다.


“지금.”


“알았어! 가자!”

재차 속삭이는 수현에게 연희는 졌다는 듯이 말했다. 둘은 작게 킬킬거렸다.

*


수현과 연희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일산으로 향했다. 둘은 이제는 아주 당연한 듯이 자주 가던 길을 따라 강아지산책을 함께 했다.

토토도 이제는 아주 친근하게 연희를 반겼고, 안겼다. 그녀도 이제 토토가 편할  있도록 안는 법을 알았다.


둘은 길게 산책을 끝내고, 가벼운 저녁식사 후 카페에 앉았다. 오랜만에 둘은 달콤한 음료를 시켜 앞에 두었다.


“음, 자기야.”


“응?”

“...그 여자는 요즘 안 마주치는  맞지?”

연희가 자제했음에도 뾰족해진 말투는 어쩔 수 없었다.

“응... 내가 아예 대놓고 부모님한테 말할 줄은 몰랐나봐. 부모님들도 본인편 안 들어준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지, 충격이  큰가 봐. 그 뒤로 나타나지도 않네.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지.”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솔직히... 꽤 큰돈이고, 아이가 고3이라... 나도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좀 그래...”


연희가 수현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피했다.

“미안... 나도 솔직히 소현이가 고3만 아니었으면, 그만뒀을 거야...”

“...응... 알아...”


수현의 사과에 연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2등급 안정권에 들어간 아이. 연희도, 수현도 차마 고3을 내치지는 못했다.


“만약에  비슷한 일 있으면, 그때는 확실하게 끝낼게.”

수현이 연희를 달래며 말했다. 연희가 수현에게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이자, 연희도 가벼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친구 여기로 오라고 하면 되겠다.”

“응? 아니야. 너 역까지는 데려다 줘야지.”


수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네요. 늦은 시간도 아니고.”


“그래도...”


“돈 아깝잖아. 우리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시간 맞춰서 일어나면 되지...”


연희가 수현의 손으로 장난을 치며 말했다.


“...그럼 시간 딱 맞춰오라고 해야겠다.”

수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연희가 됐다며 웃었다.


“나 한 30분 전에 일어날게. 미리 과외 준비도 좀 해야지.”


“흠... 연희학생... 제가 뭐 준비하고 가르치던가요?”

수현이 잘난 체하며 말했다. 연희가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지! 전 날에 막 엄청 준비했는지 어떻게 알아?”

연희가 시험기간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수현의 말에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가벼운 이야기가 오가고, 연희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일어나 봐야겠다.”

“응...”


둘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담겼다.


“내일 보면 되지...”

“내일 모레 내려가잖아...”

연희와 수현은 아쉽게도 100일 기념일을 한 주 늦췄다. 토요일은 어버이날이었고, 일요일이 백일이었다. 연희의 아버지는 어버이날에 설마 딸이 집에 없지는 않을까 연락을 하셨다.

“생각해보니까,  내려가는 거 되게 아쉬워하는 거 알면, 아빠가 많이 서운해 하겠다...”


연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수현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아, 쌤...”

약간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수현과 연희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어... 버, 벌써 왔어?”

수현이 얼른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아직 시간이 30분 가까이 남아있었다.

“아, 예... 좀 일찍 나와서...”


소현이 우물거리듯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연희에게 꽂혀있었다.

“어, 아, 이쪽은 쌤 여자친구. 인사해.”


 여자가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 그럼 나 이제 일어나 볼게.”

연희가 조금 허둥지둥하며 일어났다.

“아, 어... 안 데려다 줘도 진짜 괜찮겠어?”


“응. 괜찮아. 그럼 공부 열심히 해요!”

연희가 가방을 들며 말했다. 수현이 얼른 일어났다.


“아래까지만 데려다 줄게. 소현아 잠깐만 내려갔다가 올게. 뭐 마실래? 오늘은 쌤이 살게.”

“어,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그래. 금방 갔다가 올게. 조금만 기다려.”


소현이 여전히 연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연희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현은 수현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기운 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일찍 오지 말걸...


“너무 예쁘잖아...”

소현이 작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

연희는 무언가 찝찝한 표정으로 자취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 눈빛...

소현의 눈빛이 뭔가 마음에 걸렸다. 무언가 상처받은 듯한 그 눈빛.


연희가 괜히 땅을 툭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리 한숨이 길어...”


담배를 들고 나온 현아가 연희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언니...”

연희가 민망한 표정으로 현아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남자친구가 속 썩였어?”


현아가 농담처럼 물었다.

“...아뇨... 아니, 어쩌면...네.”


연희가 작게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아뇨는 뭐고 네는 뭐야?”


현아가 문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빼며 물었다.

“음... 남친 문제긴 한데, 남자친구 잘못은 아닌  같아서요.”

연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남자친구 좋다는 여자가 따라다녀?”


현아는 의외로 한 번에 핵심을 짚었다. 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네?”


현아가 놀리듯 물었다.

“네...”


“그냥, 감이지. 그럴만 해보이기도 했고.”


현아가 픽 웃으며 말했다.


“감...이요?”

연희가 계속 찝찝했던 감정을 생각하며 약간 표정을 찡그렸다.


“그래서 불안하니?”

현아가 여전히 담배에 불은 붙이지 않은 채로 말했다.


“네...실은...”


연희는 약간 주저하면서도 귀담아주는 현아의 눈치를 보며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오늘 본 소현의 이야기까지.

“흠... 인기쟁이들 끼리 사귀면  다 그걸로 고생이구나.”


현아는 빙글거리며 말했다.

“연희야. 내가 얘기 하나 해줄까?”

현아는 연희에게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얘기요?”
“응. 별로 재미있는 얘기는 아니고...”


현아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일 하는 지는 대충 알지?”

현아는 씁쓸하게 말했다. 연희는 뭐라 대답하기 애매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바닥에 있다 보면 별의별 인간들을 다 보거든... 내가 떳떳한 인간은 아니지만, 내가 봐도 심한 새끼들  많아...”

현아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딱 한 번, 참 대단한 사람이 있었어. 첫 남자도 마지막 남자도 기억 안 나는데, 그 사람만은 기억에 남아.”


현아는 결국 양해를 구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현아는 연희 쪽으로 바람이 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편하게 담배를 길게 빨아들었다.

“여기 말고, 청담동에 있었을 때야. 무슨 접대 때문에 온 사람이었지... 처음엔 별 생각 없었어. 근데, 방에  들어가니까, 이 남자가 그러대. 벗을 필요 없다고. 그래서 난 입고하는 취향인가 했지. 근데 자기는 안 하겠다는 거야...”


현아가 다시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자기는 영업직이라 의사들 접대는 해도, 섹스는 안한대. 아내한테 약속했다고. 그래서 내가 물었지. 아니, 여기까지 들어오는  그럼 마누라가 아냐고. 안대. 그래서 다시 물었지. 그걸 마누라가 믿어주냐고.”

현아는 한 템포를 쉬고 연희를 바라보았다.


“근데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현아가 반쯤은 비웃듯이 물었다. 연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결혼을 왜 하냐고 그러더라. 자긴 그런 믿음조차 없으면서 결혼 하는 게 이해가 오히려 안 된대. 웃기지? 지가 접대하는 사람들도  가정 있는 사람들인데...”


현아가 씁쓸하게 말했다.

“내가 그래도 거기서 하나 건진  있다면... 어쨌든  사람은 진짜 안 했다는 거야.”


현아가 맛이 없어졌다는 듯이 담배를 비벼 껐다.


“내가 왜 이런 말 해주는지 알아?”

“아뇨...”

연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너희가 너무 예뻐 보여서. 난 그런 기억이 없지만... 네 남자친구, 너 데려다 주고 내려가는 길에 몇 번  적 있어. 항상 웃고 있더라. 아니? 그거 쉬운 일 아니야. 근데, 항상 즐거워하더라.”


“그랬...어요?”


“응. 뒤에서도 그러는 사람이면, 믿어줘 봐. 그냥  말이 하고 싶었어...”

현아가 괜히 땅을 두어번 찼다.


“생리 중이라 그런가  소릴 다했네... 네 표정이 영 아니어서... 웃어. 이 언니가 가끔 너희 보면서 웃고 하거든. 풋풋해서.”

“저, 저희 봤어요?”

연희가 놀라서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그럼 어쩌니... 너희 퇴근시간이  출근시간인 걸. 요 앞에서 연애하는데, 내가 튀어 나가자니 그렇고...”

현아가 붉어질 대로 붉어진 연희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들어가. 얼굴 펴고. 난  대 더 태워야겠다. 이거 왜 버렸지...”


현아가 손을 저으며 아예 등을 돌렸다. 연희는 당혹감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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