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61 (61/94)



〈 61화 〉61

*

“하아암!”

수현이 몸의 근육들을 풀어주며 하품을 하고 옆 자리를 슬쩍 보았다. 연희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원래 공부할 때 이런 경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최근 무리를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거기다 가디건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연희의 이마에 약간 땀이 맺혀 있었다. 하긴, 오래된 건물이라 리모델링 전 까지는 온도 조절이 잘  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운 수준이었다.

“연희야.”

수현이 작게 연희를 부르자 그녀는 약간 어깨를 떨고는 눈을 떴다.

“잠깐 나갔다 오자.”

수현이 다시 한 번 속삭이자, 연희가 머리를 감싸고 조금 흔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약간은 답답한 도서관을 나와 서늘한 밤공기를 마셨다. 잠이 확 달아날만한 온도 차이에 연희의 눈이 다시 생기를 찾았다.

“잠이 진짜 확 달아난다.”

연희는 작게 몸을 떨고는 수현에게 팔짱을 단단하게 껴왔다.

“안 추우면 조금 걸을까? 잠도  겸?”

“응. 좋아.”

연희는 의외로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천천히 그녀를 에스코트하듯 움직였다.중도 주변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지만, 주변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인기척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희는 특별한 말없이 조금 더 수현에게 붙어왔다. 수현도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조금 더 어둑한 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그렇게 말없이 분위기를 즐기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잠깐... 쉬다 갈까?”

인기척 없이 조용하고 조명도 어둑한 곳에 도달하자 수현이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응...”

그들은 엠티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현이 연희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담에 기대앉았다.

“흠, 좋다.”

둘은 잠시 그 고즈넉함을 즐겼다.

“자기는 여기 어떻게 알았대?”

연희가 수현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커뮤니티에야간에 위험한 곳 찾아보니까 나오던데? 위험하면 어둡고 사람 없는 곳이잖아. 딱 이지.”

수현이 당당하게 말했다.

“진짜... 변태야.”

연희가 작게 눈을흘겼다.

“내가 뭘? 그러는  내가 어디 데려가는 줄 알고 따라왔어? 응? 겁도 없이.”

수현이 괜히 타박하듯이 말했다.

“음, 자기를 믿으니까?”

“여기 위험한 곳이라니까? 아가씨가 너무 순진한 것 같은데?”

수현이 가볍게 미소지으며 연희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연희는 몸을 살짝 틀어 그와 눈을 맞추었다. 흐린 가로등 빛에도 맑게 빛나는 미소가 수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연희는 수현의 머리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불편한 자세였지만, 그들은 서로의 입술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하아-.

키스가 조금 길어지고, 수현을 끌어안고 싶어진 연희가 입술을 떼고 몸을 부드럽게 돌려 자세를 고쳤다.

이제는 앉은 수현을 연희가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연희는 일어나려는 수현의 어깨를 살며시 밀고 그의  볼을 감싸고 다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입맞춤은 그 자세로 오랜 시간 이어졌다.

야외에서의 키스 치고는 꽤나 격한 입맞춤이었다. 그들은 각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그런 키스를 이어나갔다.

하아-.

둘의 입이 떨어지고, 그들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하아-. 누가 위험하다고? 응? 순진한 총각?”

연희가 가볍게 놀리듯이 말했다.  모습을 올려다보던 수현이 입가를 슬쩍 쓸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연희가 움찔하며 살짝 고개를 뒤로 물렸다.

“네가.”

수현이 끈적한 눈빛으로 연희를 내려다보며 급하게 말하고는 다시 입을 맞춰왔다. 연희는 작게 웃으며 그를 껴안았다. 꽤 격한 입맞춤이었다.

“푸하-. 진짜...  번을안 져주네...아주 짐승이야!”

“누가 먼저 시작했지?”

“난 아닌데?”

그들은 입을 떼며 서로를 타박했다. 하지만 둘 모두 표정은 아주 제법이라는 듯이 칭찬하는 얼굴이었다. 서로의 달뜬 얼굴을 보며 그들은 피식 웃었다.

“흐... 연희야. 오늘은... 공부 이만하면 안 될까?”

수현이 욕망어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연희는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잠시 입술을 깨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아,  돼. 내일 오전 시험이잖아.”

연희는 자신의 욕망을 참으며 말했다.

수현이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이랑 연희는 사정이 달랐다.

“진짜 나 칭찬해줘야 돼.”

“나중에?”

“응. 지금 말고.”

둘이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

시험이 마지막 날의 전  밤.

“하...”

수현이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는 거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공부가 어렵다거나 잠을 깨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수현에게는 연희와 거의 하루 종일 붙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제일 심각한 문제였다. 똘망한 눈으로 책을 보며 공부하는 그녀의 모습에 차마 은근슬쩍 손을  수도 없었고, 한참 그렇게 공부를 하고 피곤한 눈으로 골골대며 안겨오는데 그걸 빌미로 옷에 손을 넣을 수도 없었다.

“그래... 하루만.”

수현은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대충 소매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고 화장실을 나왔다.

물론, 억지로  괴상한 능력까지 써가며 연희를 침대에 눕히려면야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중간고사는 그녀에게는 나름 중요한 사안이기도 했고.

“자기야, 여기.”

먼저 화장실에서 나와 있던 연희가 이온음료 하나를 수현에게 건넸다.

“고마워.”

“으휴, 세수 했으면 물기 좀 잘 닦지! 아직 밤에는 쌀쌀한데!”

연희는 소매를 당겨 그의 얼굴에 묻은 물기를 두드려 닦으며 가볍게 그를 타박했다.

“하하. 이게 좀 더 시원해...”

수현의 말에 연희는 그의 볼을 감싸고 눈을 찡긋거리더니,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손을 잡아왔다.

그녀의 행동이 기분 좋긴 했지만, 문제는 때때로 20살의 몸은 생각보다도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수현은 슬쩍 볼록해지려는 바지를 반대편 손으로 재빠르게 정리하고는 그녀의 걸음에 보조를 맞췄다. 그들은 잠시 도서관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확실히 밤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내일이면 그래도 시험 끝이네?”

연희가 홀가분하다는 듯이 말하곤 슬쩍 의자에 앉으며 그를 당겼다.

“그러네... 너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 우리 연희, 얼굴이 반쪽이 됐네.”

수현도 연희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후드 안으로 손을 넣어 연희의 조그만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뭐야? 그 말은 지금 내 얼굴이 엉망이란 소리야? 응?”

연희가 장난스럽게 수현의 양 볼을 잡아 늘리며 말했다.

“이허 아 놔?”

수현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연희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푸하하하! 귀여워! 아, 어떡하지!”

연희가 수현의 볼을 조금 더 이리저리 늘리며 장난을 쳤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런 기분을 느꼈다.

“쓰읍. 여히야, 나 이헤 치 흐르 거 가튼데.”

수현이 살짝 고개를 피하려 하며 어눌하게 말했다. 연희가 다시 깔깔대며 웃더니 그의 볼을 놓아주었다.

수현의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리는 것이 연희의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연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리곤 그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수현은 저항 없이 고개를 내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최근의 키스 중에는 제법 길고 농도 짙은 키스가 이어졌다.

“후-.”

수현이 먼저 얼굴을 뒤로 빼며 숨을 내뱉었다. 여기서  하면 무슨 방법으로든 그녀를  밖의 버뮤다로 끌고 가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흐음-.”

연희도 약간은 부족한 기분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수현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수현이  고개를 뒤로 물렸는지 알고 있었다.

여기서  진도를  나가는 건 순전히 자신 때문이었다. 아예 끝까지 진도를 빼면 모를까, 여기서  욕심을 채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자신도 더 했다가는 참지 못할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갈...까?”

수현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연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희에게 손을 뻗었다. 그들은 가볍게 손을 잡고 다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다.

도서관의 자리로 돌아온 연희는 약간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금세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수현은 대충 무언가를 끄적이는 척을 하다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둘은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다가 도서관을 나섰다. 둘은 택시를 타고 연희의 자취방까지 갔다.

“안 데려다 줘도 된다니까...”

연희가 미안함에 수현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안심이  되니까 그러는 거야.”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치...”

둘은 잠시 서로를 껴안았다.

“오늘은 키스 금지야.”

수현이 미리 경고했다.

“왜애...”

“자취방이 코앞이고, 초승달...이긴 한데, 어쨌든 위험해.”

수현이 작게 농담을 속삭였다.

“내일...”

연희가 더 작게 중얼거렸다.

“응... 넌 죽었어.”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연희도 작게 들썩이며 웃었다.

“가볼게...”

수현이 진득한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응... 조심히 가.”

연희가 수현을 조금 더 토닥이다가 살며시 놓아주었다.

“내일 봐. 모닝콜 해줄까?”

“너무 좋지.”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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