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59 (59/94)



〈 59화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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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되자 1학년생들은 두 파로 나뉘었다. 그래도 공부를 하는 쪽과 올해는 놀겠다는 쪽. 수현은  다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현은 양해를 구하고 과외는 시험기간 전 주에 4일을 나가고, 대신 시험 주에는 나가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수현이 소현의 집으로 가고 있을 때, 그의 옆으로 누군가가 슥 다가왔다. 수현이 한숨을 내쉬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안녕?”

소향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수현이 어정쩡하게 인사를 했다.

“나 변신을 좀 해봤는데, 어때?”

소향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염색한 흑발을 들어보였다. 흰 피부와 대조되어 섹시한 이미지가 한층 돋보였다.

“잘 어울리시네요.”

수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그게 다야?”

“그럼요?”

“뭐, 됐어.”

소향은 가볍게 대꾸했다. 그녀는 최근에 그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많아졌다.

“다음 주가 시험기간이라고?”

소향이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네. 그래서 이번 주는 4일 나와요.”

수현이 간단히 말해주었다.

“와! 짱 좋다.”

소향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수현은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여기 커피.”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수현이 받아들고 마시며 말했다.

“그럼 언제  와? 내일?”

“네.”

“그럼 내일도 커피 사줄게.”

“네...”

“커피는 근데 아메리카노 말고 뭐 좋아해? 매일 제일 기본적인 것만사긴 했는데... 궁금해.”

소향은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메리카노 제일 많이 먹어요.”

수현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 나도! 제일 깔끔하지?”

이런 식의 대화가 최근엔 많았다. 이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면, 이젠 너를 알아가고, 공통점을 찾겠다는 듯한...

수현은 그 의도를 알 것만 같아서  골치가 아팠다.

“누나.”

수현이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그녀를 불렀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녀는 먼저 달려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현이 한숨을 쉬며  뒤를 따랐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나쁘게 지낼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에 적당히 받아준 것이었는데, 이제는 더 단호하게 대처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솔직히 관심이 없는 쪽에서는 피곤했다.




특히 한 번도 거절 당해본 적 없다는 저 특유의 자신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

수현과 연희는 오전 수업에 헐레벌떡 뛰어 도착했다. 2호선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둘 모두 역에 늦게도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아. 아슬아슬했다.”

연희가 교단을 보고는, 아직 출석 전인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우린 어차피 출석 마지막쯤이라 여유 있는데 너무 뛰었다.”

수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기는 끝이라 그렇지. 난 그 정도는 아니거든!”

연희가 억울하다는 듯이 발끈하며 작게 속삭였다.

“대신 뒤에서부터 부르면내가1번이잖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몰라?”

수현이 연희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이마에 땀으로 살짝 붙은 머리카락이 섹시해보였다.

“으휴...말은...”

“김연희.”

“아, 네!”

연희가 출석에서 두 번 불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출석을 부를 이유가 없었다.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든 강의실에 들어오면서 바로 알게 된다.

얼마후, 출석부를 갈무리하며 조교가 강의실을 나갔다. 출석부  마지막 번호인 수현은 부르지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희가 햄버거면 수현은 콜라 같은 존재였다. 조교는 3주차부터는 둘을 동시에 확인하고 출석 체크를 했다. 그러니 항상 먼저인 연희가 불리고 수현은 불리지도 않았다.

“진짜... 난 김연희 때문에 이름도 못 불려보네... 너무 슬프다...”

수현이 괜히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흥. 딴 여자한테 불려서 뭐하려고? 응?”

연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음, 김연희 질투 보려고?”

수현이 큭큭거렸다.

“흥. 웃기시네!”

연희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 칠판을 바라보았다.

잠시  들어온 교수가 ppt를 켰다. 수현은 시선은 칠판에 두면서 슬금슬금 연희의 왼손을 잡으려 오른손을 움직였다. 연희가 충분히 알아챌 만큼의 움직임이었다.

연희가 피식 웃고는 수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수현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가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지 그들의 옆자리 학생만이 부들거리는 손을 쥐었다.

지루한 수업들이 끝나고 수현과 연희는 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기에 도서관 주변은 이미 붐비고 있었다. 거기에는 후드를 푹 눌러쓴 사람들이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기도 했다.

“저런 사람들을 이길  있을까...”

연희가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후드를 눌러 쓴 채 레드불을 하나씩 쥐고 걷는 남자 무리를 보며 약간 질린 듯이 말했다.

“저 사람들은 딱 봐도 공대 복학생이네. 저쪽은 쪽지 시험  주 마다 있고 그러더라. 우리랑 겹치는 건 거의 없을 걸?”

수현의 짬밥 레이더에 의하면 백프로였다.

“헐, 어떻게 알아?”

연희가 듣고보니 맞는 것 같다는 듯이 수현을 바라보았다.

“어? 아, 친구네 형이 공대생인데,  저러더라고. 그리고 남자만 우글우글 하잖아.”

수현이 얼른 말을 지어냈다.

“아...그러고 보니 그러네.”

연희가 금세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신입생 중에 너 만큼 공부 열심히 한 애들은 손에 꼽을 걸?”

수현이 연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정말 그녀는 시험기간에 충실한 1학년이었다.

“내가 뭘... 자기랑 맨날 놀았는데.”

연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수현과의 공부 시간은 데이트이자 학습 시간으로도 효율적이었다.

“뭐야아. 좋았잖아. 나만 좋았어?”

수현이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긴 했지만!”

연희도 웃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당연히 좋았다. 1석 2조가 딱 맞는 데이트였으니까.

“흠, 들어가자.  오늘만 하면 다음 주까지 과외 없으니까, 모레부턴 네가 원하던 밤샘공부 해보자.”

수현이 연희의 버킷리스트를 떠올리며 말했다. 모범생다운 버킷리스트였다. 시험기간에 남자친구와 도서관 밤샘 공부 데이트라니...

“밤샘 기대 된다! 자기는?”

반쯤 강요하는 말투였다. 연희의 눈빛이 그렇지 않아도 그렇다고 말하라는 듯이 빛났다. 수현은 그 노골적인 시선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누구랑 밤새 안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되기 시작했어.”

수현의 말에 연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누, 누가 그렇게 해준대?  공부만 할 거 거든!”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연희는 이미 무언가 알콩달콩한 상상을 하는 것 같았다. 수현은  상상이 뭘지 조금 고민했다. 자신이야, 시험이 문제가 아니고 연희의 판타지 만족이 문제였으니까. 과해도 문제, 약해도 문제였다.

“그래. 알았어. 진.짜. 공부만 하자. 나 과외쌤 빙의해서 올게.”

수현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씨...놀려...”

연희가 작게 눈을 흘겼다. 정말 그러면 실망한다는 표정이었다.

“자! 시간도 없는데, 이제 들어가자.”

수현이 아쉽지만, 정말 시간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맞다. 오늘 자기 일찍 가야한다고 했지.”

수현의 말에 연희가 아쉽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응. 다음  한 주 쉬니까, 보충  해주기로 해서. 오늘은 나 혼자 갈게. 넌 공부마저 하다가 가.”

수현도 아쉽다는 말투로 연희의 어깨를 작게 다독여 주며 말했다.

“흐음, 근데...자기 큰일이다. 나, 이렇게 예뻐서... 자기 없다고 다른 남자들이 막 번호 물어보면서 달라붙으면 어떻게 하지? 응?”

연희가 예쁜 척을 하며 손을 볼에 대고 말했다. 예쁜 척이라면 예전에는 오그라들어서 싫어하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남자친구 앞에서 스스럼없이 하곤 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항상 귀엽다, 예쁘다는 표현을 주구장창 해준 결과였다.

수현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아직까진 연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음, 연희야... 전공 책이 왜 두꺼운지 알아? 응? 사실 이게 다른 용도가 있어요. 이런 거.”

그 귀여움에 수현이 조금  연희를 끌어안고는 책을 내려치는 동작을 하며 말했다.

“야아! 그럼 큰일 나!”

연희가 그의 가슴팍을 살짝 치며 웃었다.

“법적으로 흉기는 아니래.”

수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진짜?"

연희가 거짓말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며 웃었다.

“몰라. 여튼 일단 치고 생각하자."


수현이 진지한 표정을 연기하며 말했다. 연희가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 면회  줄 거지?”

연희가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그들은 실없는 농담을 조금  하다가 카드를 찍고 들어갔다. 수현은 자신의 인생에서 이렇게 꽃이 날리는 시험기간이 있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는 결국 공부보다는 옆자리 여자친구의 얼굴에 집중하다가 과외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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