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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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벚꽃이 피는 것을 보며 확실히 중간고사가 다가온 것을 느꼈다.
목요일의 늦은 점심을 먹은 수현과 연희는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쳐 놓았다. 물론 둘 말고도 불청객 몇 명이 끼어 있었다.
“야, 늬들은 이미 망한 거 아니냐?”
수현이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쭈, 야, 친구 좀 가르쳐주는 게 그렇게 귀찮냐?”
강민이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보다 지 여친이랑 오순도순 있는 거 방해받아서 싫은 걸 걸?”
민형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연희의 얼굴이 붉어졌고, 소영이 킥킥거렸다.
“아오, 좀...”
강민이 중얼거렸다.
“아휴, 수현 형님, 노여움 푸시고 좀만 도와주십쇼.”
병훈은 세치혀를 놀렸다.
“김병훈... 이새끼...”
강민이 배신감에 병훈을 노려봤다.
“그래... 나 아니면 누가 너흴 구제하겠냐.”
수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 근데... 너도 놀만큼 논 것 같은데 왜 다 아냐...”
강민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만큼 먹진 않았거든...”
수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야... 어쨌든 좀만 도와줘라... 나 학점은 그래도 잘 받아둬야 돼.”
민형도 굴복하고 말했다. 하긴, 그는 로스쿨을 가야 했다. 학점을 잘 받지 못하면... 큰일이었다.
“그래, 자기야. 나도 같이 하니까, 놓친 부분도 알아가고 좋은 것 같아.”
연희가 수현을 살살 달랬다.
“저녁은 사겠지?”
“어휴 여기 커피도 저희가 사죠.”
수현이 피식 웃으며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질문 공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기 좋아하는 놈들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 하던 놈들이었다. 할 줄도 아는 놈들이고.
그들은 한동안 공부에 매달렸다. 수현은 중간에 질문이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슬쩍 화장실을 핑계로 일어났다.
그는 최근 나온 핸드폰용 HTS를 이용해 STX의 종가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떨어질 것 같다고 4월 만기 콜에 투자를 했으면 큰일 날 뻔했기 때문이다.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다가 잠시 반등이 있었다. 아마 오래 가지는 않을 테지만.
수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것도 꽤나 피 말리는 일이었다. 미래를 아니까 하는 일이지,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잘 맞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가... 뭐든 그런가...”
하긴 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회계사 때도 그렇고... 수험 생활도 피 말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수현은 손을 씻고 조금 편한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수현과 연희는 저녁을 먹은 후에도 아이들과 공부를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연희가 뿌듯한 표정으로 수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음, 뭔가 엄청 알차게 보낸 기분이다.”
“오랜만에 공부하니까, 이것도 재미있나보네.”
수현이 약간 놀리듯 말했다.
“응, 뭐... 그런 것 같아. 근데, 자기는 진짜 경제나, 회계 이런 쪽으로 가야 하나봐. 틈틈이 했다곤 해도... 완전 프로야.”
연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수현은 몰래 쓴 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
수현이 연희를 토닥이며 말했다. 둘은 소곤거리며 미래의 이야기를 했다.
어둑한 밤길을 걸어 올라간 둘은 건물 담벼락의 어두운 그늘에 섰다.
“조금만 참아...”
연희가 미안한 듯 토닥이며 말했다.
“뭘 미안해 해... 많이 아프면 연락하고. 핫 팩 하고 자고. 알았지?”
수현이 연희를 토닥이며 말했다.
“하나도 안 아파. 자기 만나면서 완전 신기하다니까.”
연희가 수현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수현이 말 없이 연희의 등을 토닥였다.
“음, 이대로 자면 최고일 것 같긴 한데...”
연희가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며 말했다.
“그래줄까?”
수현이 진심으로 말했다.
“됐어요. 아무리 그래도 나 그렇게 양심 없지는 않거든. 그리고... 나도 자기 옆에 있으면 참기 힘들기도 하고.”
연희가 부끄럽게 뒷말을 덧붙였다. 수현이 작게 웃으며 연희를 토닥였다. 둘은 천천히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달콤한 입맞춤이 꽤나 오래 이어졌다. 아쉬움이 담긴 만큼의 시간이었다.
“가볼게...”
“응. 차 놓치겠다.”
연희가 수현을 살짝 밀었다. 둘은 아쉬움을 담아 손을 흔들었다. 서로의 모습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
수현과 연희는 일요일은 쉬는 날답게 쉬자는 핑계로 벚꽃 놀이를 계획했다.
“우와! 길 되게 예쁘다!”
연희가 벚꽃이 가득 핀 여의도 길가를 보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팔을 활짝 벌렸다.
“연희야, 저쪽부터 시작해서, 사진부터 찍으면서 돌자. 엄청 예쁘겠다.”
“응? 아! 그러자!”
수현이 연희의 손을 살짝 잡아당기자 연희가 통통 튀는 걸음으로 먼저 발걸음을 떼며 좋아했다. 수현도 연희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는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이르게 나온 탓이라 아직 약간 쌀쌀했지만, 대신 아직 사람도 조금 적은 편이었다. 수현은 연희를 세워두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연희는 아름다운 풍경에서도 유독 더 아름답게 빛났다. 말 그대로 모델이 좋았다.
“어때? 잘 나왔어?”
수현이 흐뭇하게 웃으며 엄지를 들어보이자, 연희가 기분 좋게 웃으며 뛰어와 물었다.
“당연하지. 모델이 김연희인데. 못 나온 컷이 진짜 단 하나도 없다. 저장 공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연희가 그의 주접에 크게 웃었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자기도 가서 서 봐! 내가 찍어줄게!”
그렇게 수현과 연희는 포토 스팟이라는 곳들에서 서로를 찍어주고, 함께 커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람이 몰리기 전에 사진부터 해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선남선녀는 사진 촬영 부탁을 거부당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폴라로이드까지 사용해서 찍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이라면,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매우 탐나는 피사체였기에 모델료까지 제시하며 따라 붙는 사람도 있었다는 점이다.
“후아! 일찍 찍기를 잘 한 것 같아. 그새 사람들 엄청 많아졌다.”
연희가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좀 걷다가 제일 예쁜 곳 찾아서 돗자리 펴자.”
수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응. 오늘은 바람 안 불어서 다행이다. 날도 좋고.”
연희가 잽싸게 손을 잡으며 붙어왔다.
“그러게. 꽃도 생각보다 많이 폈고.”
둘은 천천히 길을 걸었다. 수현은 이른 벚꽃놀이가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파가 늘고 있긴 하지만, 피크를 찍을 때에 비하면 천천히 걸어도 통행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풍경에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행복해 하는 서로의 모습에 취하기도 했다.
“어? 자기야. 우리 저거 한 번 해보자!”
연희가 커다란 천막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가리키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응? 아, 캐리커쳐?”
“응! 비싸려나?”
“물어나 보지 뭐. 가보자.”
화가는 그들이 다가오자 눈을 잠시 동그랗게 떴다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생각보다 조금 비싼 느낌이었지만,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의 준비가 끝나고, 수현과 연희는 잠시 어색하게 앉아서 웃는 얼굴을 했다. 둘 모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많이 받아본 사람들이지만, 그림에 담기위해 관찰 된다는 것이 은근히 긴장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둘은 서로의 어색한 얼굴을 마주하고는 동시에 긴장이 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의 경직된 얼굴이 재미있었다.
그 순간을 본 화가는 방금 아주 좋은 느낌이었다면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화가의 손길은 거침없이 호쾌했다. 수현과 연희가 저렇게 빨리 하는데 잘 나올까 걱정 어린 표정이 될 만큼 거침이 없었다. 화가는 그런 어린 커플이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걱정 말아요. 모델들이 워낙 예뻐서 이상하게 그리기도 힘드네요.”
들킨 게 부끄럽다는 듯이 표정이 변하는 커플들을 보며 화가는 다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자! 다 됐어요. 어때요?”
화가가 자신 있게 그림을 그들에게 보였다.
“우와! 엄청 예뻐요!”
연희가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나듯이 웃었다. 주변이 다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화가는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남자친구의 표정을 보며 작게 웃어버렸다. 말 그대로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진짜 둘 보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냥 한 명 분만 받을 테니까, 가다가 솜사탕이라도 사먹어요!”
수현과 연희는 괜찮다고 했지만, 화가는 이모가 줬다고 생각하라며 거절했다. 결국 둘은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조심스레 그림을 가방에 넣었다.
“우리 후식은 정해졌네?”
연희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희가 손을 내밀었고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잡았다. 둘은 찜해둔 자리로 이동해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좋다아! 하늘도 맑고, 바람도 없고, 내 남친은 잘생겼고! 여기가 천국인가 봐!”
연희가 돗자리에 앉아 팔을 벌리고 즐겁게 말했다.
“난 너만 있으면 바람 불고, 먹구름 껴도 좋아.”
수현이 장난스레 웃으며 속삭였다.
“야아! 진짜!”
“진짜?”
“너무 좋아. 근데 밥은 좀 있다가 먹어야겠다.”
연희가 윗배를 쓸어내리며 웃었다. 발언이 느끼했다는 뜻이다. 수현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수현은 혹시 모를 바람에 대비해 귀퉁이마다 돌을 얹었다.
“자기야, 이리와. 이거 하고 싶다며.”
연희가 귀퉁이에 돌을 다 얹고 가볍게 손을 터는 수현을 바라보며 자신의 허벅지를 토닥였다.
“흐흠. 흠. 나 변태 같지는 않았지?”
“뭐 어때, 나만 좋으면 되잖아.”
연희가 무릎 담요를 잘 덮고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허벅지를 토닥였다. 수현이 씩 웃음을 짓고는 얼른 머리를 뉘었다.
연희가 작게 웃으며 천천히 수현의 머리를 쓸었다.
“흐음. 좋다.”
수현이 만족스러운 콧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말했다.
“좋아?”
“응. 이제 죽어도 좋아.”
수현의 대답에 연희가 깔깔대며 웃었다. 그들은 한동안 그 자세로 자신들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눴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불어와 가끔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그림 같았다.
둘은 도시락을 먹고 강과 벚꽃을 바라보며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아주 느긋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흠, 일어날까? 사람도 너무 많아지는 것 같다.”
수현이 꽉 들어차기 시작한 잔디를 보며 말했다. 첫날이긴 해도 주말이라 그런지 확실히 인파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제는 아예 돗자리 눈치를 보는 수준이었다.
“응. 그러자! 오늘 주말이라 그런지 계속 오나봐.”
연희가 말을 마치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가다가 솜사탕! 잊지 않았지?”
수현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들은 마주 웃고는 짐을 챙겨 일어났다.
수현은 연희의 바람대로 커다란 솜사탕을 하나 샀다. 연희의 눈이 여간 초롱초롱한 게 아니었다.
“흐흠, 연희야.”
“응? 근데, 이거 진짜 맛있는데, 자기 진짜 안 먹어?”
연희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수현은 순식간에 몰려온 충동을 참느라 한 박자를 쉬었다. 여긴 욕망을 풀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천천히 먹어.”
“응? 왜? 남겨줘?”
“응. 좀 있다가 먹을 거야.”
“에이, 지금 같이 먹자! 내가 줄게. 아!”
연희가 순진한 눈으로 솜사탕을 수현의 입가에 주억거렸다. 침을 꼴깍 삼킨 수현이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잠깐, 이리 와봐.”
수현이 연희를 조금 강하게 끌었다. 연희는 동그란 눈으로 그를 따라 걷다가 눈을 빛냈다.
어쩌면 저리도 으슥하고 사람 없는 곳을 금방 찾아내는지. 연희가 그의 의도를 눈치 채고는 몰래 미소 지었다.
관리사무소 같은 건물의 옆쪽으로는 약간 으슥하니 사람도 없고 시야도 가려진 곳이 있었다. 수현이 돌아보자 연희가 야릇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여튼! 그걸 못 참아? 으이구!”
“...싫어?”
“표정 연기는... 내가... 솜사탕 먹여줄까?”
연희는 수현의 애원하는 듯한 표정 연기를 보곤, 솜사탕을 조금 집어 들어 입가에 대고 유혹하듯 말했다.
수현은 대답대신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연희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입을 살며시 벌렸다. 곧바로 의미 그대로의 달콤한 키스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솜사탕 같이 달콤하고 부드럽던 키스의 농도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연희는 솜사탕을 떨어뜨리고 수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느 누구도 그 점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흐음-!”
길어졌던 키스를 마치고 입술을 떼며 연희가 장난스런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이런 것도 짜릿하네.”
연희는 개구지게 말하고는 다시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둘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아... 아깝다.”
연희가 땅에 떨어진 반쯤 남은 솜사탕을 보며 말했다.
“아... 하나 더 사줄까?”
“됐어요! 더 달콤한 거 먹었더니, 배부르네!”
쪽.
연희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한 번 수현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그의 손을 끌었다. 수현도 만족스런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