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45 (45/94)



〈 45화 〉45

*

남자는 영업방해로 경찰이 출동한 후 사라졌다. 결국 인사팀장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다음주까지 알바비를 넣어준다고 하고는 일은 관두도록 했다.

“...그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어.”

연희가 카페에서 핫초코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좀 더 주의해야 돼... 정 알바 하고 싶으면, 사람 상대  하는 걸로 알아보자.”

수현이 연희의 옆자리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응... 이런 적이 번도 없어서 별 생각이 없었어...”

연희가 중얼거리며 수현의 어깨에 기댔다.

“없었어? 아!”

수현이 갸우뚱하다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우리 아빠랑 동생 모르는 사람... 동네에 있었겠어? 사촌 오빠들 중에도 운동하는 사람 있고...”

연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벽이 지나치게 높았다.

“나도 유명해져야겠다... 아예 전국, 아니 월드로 유명해져서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해야겠어.”

수현이 연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연희가 작게 웃었다. 조금 힘이 빠진 웃음이었지만, 그래도 웃는 걸 보니 조금 상태가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수현은 연희의 상태가 나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택시로 그녀를 태워다준 후 일산으로 향했다. 돈이 제법 많이 깨졌지만, 그래도 연희를 그냥 보내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없었다.

수현은 과외가 끝난  연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잠이 들어있을까 싶었는데, 금방 연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자나 싶었는데, 안 잤구나?”

수현이 졸음기가 전혀 없는 목소리를 듣고는 말했다.

-당연하지. 자기 전화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연희가 이렇게 중요한 것을 자신이 놓치겠냐는 듯이 단호히 말했다.

“피곤한 하루였으니까...”

-내가 피곤할 게 뭐 있다고... 이제 백수인데...-

연희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알바 같은 거 하고는 싶어?”

수현이 물었다.

-응. 뭐 많이 벌 필요는 없어도... 여윳돈 있으면 좋잖아. 이런 저런 경험쌓아보는 것도 좋고.-

연희가 막힘없이 말했다.

“흠... 그럼 일단은 좀 쉬면서 뭐하면 좋을지 같이 생각해보자.”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나도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어. 자기 말처럼 사람 상대하는 건 이런 문제도 있으니까...-

연희가 수긍하며 조심성 없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러자. 지금은 뭐하고 있었어? 오랜만에 태평하게 쉬는 날인데.”

수현이 분위기를 환기 시키며 말했다.

-그냥 오랜만에 기분  겸 쇼핑몰 둘러봤어. 몇 개는 주문했고...-

연희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천상 여자였다.

쇼핑...몰?

수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보세요?-

“아, 응. 갑자기 뭐가 생각   말  해서... 뭐 샀는데? 옷?”

수현이 얼른 반응했다.

-응. 이제 봄이니까, 봄  좀 샀어.-

연희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며 말했다.

“원피스? 나폴 나폴?”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자기 취향이야?-

연희가 작게 킥킥거리며 말했다.

“난 김연희가 입으면 그게  취향이지.”

수현이 말했다. 연희가 느끼하다며 꺅꺅거렸다.

-자기 집까지 걸어가는 거지?-

“응. 너랑 통화할 때는.”

수현이 가볍게 대답했다.

-이젠 안 그래도 되겠네.-

연희가 말했다.

“왜?”

-나 이제 늦게 끝나는 일 없잖아.-

연희의 말 끝에 약간의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가끔 이렇게 통화하면 걷는 거지 뭐. 나 운동도 되고 좋아.”

수현이 가볍게 말했다.

-자기 피곤하잖아.-

연희가 약간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자는 시간은 똑같아. 들어가서 무산소 운동 좀 덜 하고 자는 거라.”

수현이 걱정 말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헬스 매니아들이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말이지만...

-그럼 다행이구...-

연희만 괜찮으면 되는 일이었다. 원래 등빨이 적당히 있는 편인 수현도 딱히 벌크업을 크게 가져가는 것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우리 연희는 남자친구 걱정이 많아서 큰일이야.”

수현이 킬킬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누구보다 더 할까? 여자친구 직장상사한테까지 가서 따지던 사람도 있는데.-

연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모르겠는데... 그게 누구지?”

수현이 모르는 척을 했다.

-너요. 너.-

연희가 콕집어 말했다.

“기억이 없는데요? 어떤 남자랑 착각하신 거예요?”

수현이 말하자 연희가 깔깔거렸다. 둘은 잠시 그런 장난을 쳤다.

“나 집 다 왔다.”

수현이 집 근처의 정자에 앉아 말했다.

-응... 들어가...-

연희가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내일은 오후에 좀 진득하게 놀자.”

수현이 아쉬움을 달래며 말했다.

-응. 그러고 보니까, 이제 자기도 화요일 목요일은 쉬지?-

연희가 조금 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도 더 늘리지는 않으려고.”

수현이 말했다.

-응. 그럼, 내일 보자! 잘자구!-

연희가 조금 더 발랄하게 말했다.

“응. 잘자. 쪽.”

-응! 쪽!-

둘은 가볍게 핸드폰 너머로 입을 맞추고 전화를 종료했다. 수현은 크게 기지개를 켜고 정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며 문득 떠올랐던 것을 다시 떠올렸다.

피팅모델... 연희보다 예쁜 피팅모델이 있나? 연희 정도면 외모만으로도 분명 메리트가 있는 모델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피팅모델을 지원하는지, 피팅모델은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를 그는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수현은그에 대해 연희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파트로 들어갔다.

*

그리고 피팅 모델의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게되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삼촌은 아니신거구나?”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작은 외할아버지 아들이니까... 근데, 우리끼린 그냥 친근하게 그렇게 불러.”

수현이 가볍게 정리했다. 연희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다시 한 번 끄덕이고는 수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흠, 괜히 긴장되네...”

연희가 정말로 약간 긴장한 말투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우리 세대랑 더 가까우신 분이고... 일하는 쪽도 젊다보니까 삼촌이랑 사촌형 중간 느낌이라고 보면 돼.”

수현이 연희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어쨌든 자기 가족 만나는 거니까... 나 오늘  단아하게 입고 왔는데. 어때?”

연희가 수현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며느리 프리 패스룩이야.”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도 코디 센스는 상당히 좋은 연희였다. 요즘은 화장법도 옅게 잘하고 다녔으니, 나무랄 곳이 없었다.

“음, 여기에 노란 스카프를 둘렀으면?”

연희가 물었다.

“예쁘겠지?”

수현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으... 자기한테 물어보는 게 내 잘못이야...”

연희가 다시 수현의 옆으로 붙으며 말했다.

“왜... 다 예뻐서 예쁘다는 건데...”

수현이 연희를 감싸며 말했다. 연희의 미모를 망가뜨릴 방법을 찾기가 더 어려워보였다.

“좋긴 하지만, 자긴 객관적이지가 않아!”

연희가 수현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괜찮아... 연희 네가 객관적으로 예뻐서 다 예뻐.”

수현이 답장하듯 연희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하여튼... 말은 잘해...  진짜 공주병 생기면 다 자기 탓인 걸로 알아?”

연희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툴툴댔다.

“응. 그래도 좋지 뭐. 여기서... 일로 가야 했나...”

수현이 길을 잠시 멈추고 양쪽 길을 보며 말했다.

“잠깐만...”

수현이 말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네, 삼촌... 여기 지에스 편의점 보이고.... 사거린데... 아, 여기서 기다려요? 차요? 레인지로버요? 알죠. 4885요? 네. 알겠습니다.”

수현은 간단히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셔?”

연희가 얼른 물었다.

“응. 조금만 기다리자. 어디 좋은 곳 데려가주시려나보다.”

수현이 씩 웃으며 연희의 손을 잡았다.

“헐, 나 때문에 무리하시는  아니지?”

“오는  보면 그 생각 안 들걸? 삼촌 부자야. 고기 썰러 갈 것 같은데 와인도 시켜 달라고 할까?”

수현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연희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렇게 그들이 장난치고 있을 때, 신호등에 걸린 레인지로버 대가 작게 경적을 울렸다.

“저 차다.”

수현이 손을 들며 말했다. 연희가 약간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그들의 앞에 서자, 연희를 뒷좌석에 태운 수현은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야, 수현이 삼촌이 3월 내내 연락 기다린 알아?”

커플의 인사를 받은 수현의삼촌은 짓굿게 말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만나서 반가워요. 수현이 삼촌 이정현이라고 해요. 수현이 말대로 진짜 예쁘네.  방금 놀라서 차사고 날 뻔 했잖아요.”

정현은 넉살을 떨며 말했다. 연희가 얼굴을 붉히며 감사인사를 했다.

“진짜 빈말이 아니고... 내가 보자마자 이번 광고 모델로 생각이 들었다니까?”

정현이 우회전을 준비하며 말했다.

“삼촌... 작업 거는 것 같아요...”

수현이 약간 날카롭게 말했다. 정현이 호탕하게 웃었다.

“야, 삼촌이 아직 노총각이라지만, 상도덕이 있지! 누나한테 죽을 일 있냐?”

정현은 수현을 툭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둘 다 오늘은 오후 일정 없는  맞지?”

정현이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 저희 지금부터 월요일까지 쭉 쉬어요.”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표 잘짰네! 삼촌이 좋은  예약해뒀다. 고기 썰자.  일찍 연락 줬으면  좋은 곳도 예약했을 텐데... 짜식이... 이틀 전에...”

정현이 다시 수현을 툭치며 말했다. 연희가 그 모습이 정겨워 보여 웃었다.

“전 그냥 근처에서 먹을 줄 알았죠...”

수현이 대답했다.

“야... 그래도 조카가 여자친구를 데려온다는데, 삼촌이 자존심이 있지...  그래요?”

정현이 뒤를 보며 물었다.연희가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조금 달려서 한 호텔에 도착했다. 바로 호텔앞에 주차를 마친 정현의 차에서  명이 내렸다. 수현과 연희는 약간 긴장한 채로 정현의 뒤를 따랐다. 정현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웠다.수현은 그 당당함과 자연스러움이 부러웠다.

수현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 화요일에 연희와 나눴던 피팅 모델에 대한 의견과, 삼촌의 광고 모델 제의를 떠올렸다. 아주 빈말은 아닌 것 같았기에 잘만하면 무언가  연결이 될 것 같았다. 그것도 믿을만한 사람을 통해서. 수현은 연희에게 가볍게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지었다. 연희가 그 미소에 조금 긴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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