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41 (41/94)


  • 〈 41화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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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분 쉬는 시간 공이 치고, 수현과 선수는 가볍게 글러브를 맞대었다. 선수는 가볍게  모션을 주었다. 수현이 일부러 길게 뒤로 백스텝을 밟아 빠졌다.

    선수가 작게 웃으며 왼손 잽에 이은 바디잽을 넣었다. 수현이 다시 한 번 크게 스텝을 밟아 도망쳤다. 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수현을 몰았다. 나름대로 자세가 나쁘지 않았다. 긴장하고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좀 키워 볼 맛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는 빠르게 스텝을 밟아 수현을 링에 붙였다. 수현을 일부러 사이드스텝을 밟지 않고 링에 등을 댔다. 여기서는 맞아줘야 진짜 애송이다웠다.

    선수가 적당한 강도로 수현의 바디를 양손 연타로 때렸다. 수현은 확실히 그가 자신을 봐주며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매서움에 이를 악물었다. 선수는 계속하지 않고 그대로 뒤로 빠졌다.

    수현은 가드를 내리지 않고 다가갔다. 선수는 애송이가 꽤 마음에 들었다. 경험부족인 사람들은 갑자기 저렇게 맞게 되면 몸을 웅크리거나 더 도망가게 된다. 바로 다시 다가오는 패기는 드물었다. 긴장으로 어깨는 굳어있었지만, 그 정도면 괜찮았다.

    수현은 상대가 자신을 애송이로 보면서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망신은 주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2분 동안 느꼈다.

    “아, 상당히 잘 버팁니다. 일반인이 선수 앞에서  라운드 내내 이렇게 버티면서 어그레시브한 사람은 정말 드물거든요. 이거 잘못하면 저희가 아이폰을 드리겠는데요?”

    사회자가 수현을 띄워주며 말했다. 누가봐도 수현은 애송이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박수가 나왔다. 바디를 여러 차례 허용하고도 어그레시브한 경기 운영을 계속하는 사람은 확실히 수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30초쯤 남았을 때, 선수는 마음을 놓았고, 수현이 노린 그 시점이 되었을 때였다.

    선수가 다시 빠르게 수현을 링으로 몰아넣으며 여유 있게 바디를 치려할 때였다. 수현이 사이드 스텝으로 빠지며 뒷손으로 강하게 스트레이트를 먹이고, 다시 선수의 머리에 원투를 꽂아 넣었다. 실제 경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수의 방심이었다.

    선수가 휘청였다. 수현이 이를 악물고 다시 주먹을 뻗으려 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심판이 얼른 수현을 막아섰다. 이런 곳에서 머리에 데미지가 쌓이면 안 되는 선수였다.

    경기가 종료 되었다. 수현이 진짜 긴장감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선수는 진짜선수였다. 그는 바로 가드를 하며 몸을 피했다. 심판이 그대로 놔뒀다면 다운 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 네, 이러면... 어... 다운이라고 봐야겠...죠?”

    사회자가 뜨악한 표정으로 말을 절었다. 아마 그가 생각하는 그림에는 이런 상황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일반인과 선수의 기량 차이는 더 잘 느끼게 되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뒤에서 3분이 끝나는 공이 울렸다. 수현이 연희를 향해 씩 웃어 보이다 멈칫했다. 아무래도 혼이 좀   같은 분위기였다.

    ‘너무맞았나...’

    수현이 속으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희 입장에서는 남자친구가 2분 동안 거의 두드려 맞는 것만  것이었다.

    “일부러 못하는  한 건 아니지?”

    선수가 뭔가 찝찝한 얼굴로 악수를 청하며 물어왔다.

    “좀 굳은 게 풀린 것도 있고... 마지막은 조금 운이긴 했습니다.”

    수현이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받고는 최대한 예의 있게 말했다. 나름 좋은 이미지를 심었는데 나빠질 필요는 없었다.

    “하...내가 쪽팔려서...”

    선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어쨌든 아이폰 축하한다. 나도 없는데...”

    선수가 수현을 툭치며 말했다. 뒷끝이 있는 타입은 아닌 듯 했다.

    “감사합니다.”

    수현이 고개를 숙이고 내려왔다. 뒤에서는 복싱부로 보이는 일부 무리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수현이 내려오는 걸 보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저기... 그, 사실 지금 당장은 아이폰이 2대가 없거든요?”

    얼굴이 기억나는 부원 한 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해왔다. 수현은 잠시 이름을 기억해 내려다 실패했다.

    “네... 그럼 어떡하죠?”

    수현이 여전히 약간 화가  듯한 연희 쪽을 힐끔 보며 물었다.

    “어... 저희 회장 형한테 일단 문자 넣었으니까... 두어시간만 시간 주실래요?”

    “네. 그럼...일단, 점심 먹고 오겠습니다.”

    수현은 수긍하며 말했다. 사실, 2대 다 없을 확률이 높았다.

    “아, 네! 천천히 드시고 오세요!”

    부원은 영업용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수현은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반납하고 얼른 연희에게 다가갔다.

    “연희야.”

    수현이 작게 웃음을 지으며 연희를 불렀다.

    “... 누가 그렇게 많이 맞으래.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알아?”

    연희가 실눈을 뜨고 수현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하....”

    수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세게 맞은 건 아닌데...”

    수현이 뒷말을 흐렸다. 자기라도 여자친구가 그렇게 맞는  보면 참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으휴, 내가 하라고 했으니...더 뭐라고도 못하겠고...”

    연희가 미안해하는 수현을 보자 표정을 조금 풀며 자리에서일어났다.

    “여기 많이 맞은  같았는데...”

    연희가 걱정 반 탐색 반으로 수현의 배와 갈비뼈 주변을 만졌다. 사실 멍은 분명 들었겠지만, 경기 직후라 당장은 아프지 않았다.

    “괜찮아. 이벤트 경기라 살살 쳐주시더라. 역시 선수는 달라.”

    수현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연희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를 안았다.

    “너 맞을 때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허세 부리지 말라니까...  진짜 안 들어...”

    연희가 중얼거렸다.

    “미안... 그래도 아이폰 타왔는데...”

    수현이 연희를 토닥이며 말했다.

    “누가 그렇게 맞고 가져오래. 멋있게 올라가자마자 딱  대 때리고 가져오랬지.”

    연희가 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수현이 연희를 토닥였다.

    “연희야, 나 배고파.”

    수현이 약간 애교부리듯 말했다.

    “배고프겠지! 그렇게 뛰어다녔는데. 가자. 밥 먹자!”

    연희가 수현의가슴을 찰싹 때리고는 말했다. 수현은 그녀의 기분이 풀린 것을 알고 싱글거리며 연희의 손을 잡았다. 연희는 마지못해 준다는 듯이 손을 주고는 수현의 옆으로 붙었다. 시선들은 그들을 따라왔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고 밥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근데 진짜 약국 안 들러도 괜찮겠어? 멍은 좀 들었을 것 같은데...”

    연희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걱정스레 물었다. 수현은 슬슬 아파오는 것을 느꼈지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멍이야 좀 들어도 빠지는 거였다. 멍 빼주는 약이야 나중에 사면 된다.

    “지금은 냉찜질이 아예 나을 걸?”

    “일단 연고는 사자.”

    연희는 그를 학교 앞 약국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수현도 결국 그걸막지는 않았다.

    약국에서 냉온찜질이 가능한 팩까지 두  사서 나온 그들은 다시 학교로 향했다.

    “좀 있다가 발라줄 거야?”

    수현이 은근슬쩍 물었다.

    “흥, 자기가 다쳐놓곤 내가 왜?”

    연희가말하면서도 약이  봉투는 자신이 들고 있었다.

    “왜애-.”

    수현이 가볍게 앵기자 연희가 피식 웃었다.

    “오늘 하는  봐서.”

    연희가 수현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수현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다시 복싱부에 도착했을 때는 아까는 보지 못했던, 수현은 아는 사람들이 나타나 있었다. 수현이 복싱부에 들어간 것은 나중 일이라,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장석경과 임혜정. 복싱부를 중앙동아리로 처음 올려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낭패어린 얼굴을 하고 있다가 수현과 연희를 보고는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장석경은 약간 떨리는 손으로  개의 박스를 그들에게 건네며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걸 드리긴 하는데, 가입은 해주셔야 합니다. 그... 아직 신입생이시라,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상도덕이라는 게...”

    석경은 간절하게 말했다.

    “연희야...”

    수현이 연희 쪽을 바라보았다.

    “들어가자... 이거 받고 휙 사라지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아까 자기 마지막에 멋있기는 했어... 그냥 전에 너무 맞는  같아서 좀 그랬던 거지.”

    연희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그런 일 거의 없습니다. 보통 쉐도우나, 메스 복싱 정도로 하고, 스파링도 강도는 그렇게 세게 많이 안 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운동 효과는 진짜 보장합니다.”

    석경이 연희의 마음이 바뀔까, 재빨리 장사꾼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뒤의 부원들이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하나만 더. 염치없지만, 여기서 입부서 좀 받아줄 수 있을까?”

    혜정이 그들에게 다가와 간절하게 말했다. 수현이 말 뜻을 알아듣고 피식 웃었다.

    “한  시간이면 돼요.”

    석경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선배님도 말 편하게 하세요. 일단, 저희 둘 입부서부터 쓰고 앉겠습니다.”

    수현이 연희의 어깨를 감싸며 석경을 향해 말했다. 혜정이 얼른 종이 두 장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선수의 잽만큼이나 빠른 손놀림이었다.


    수현과 연희가 각자  장씩 받아들고 입부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혜정이 석경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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