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5 (35/94)


  • 〈 35화 〉35

    3월 2일.


    드디어 개강 날이 찾아오고, 사람들이 학교 정문 건너의 신호등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 새내기들은 표정만으로도 쉽게 찾아낼  있었다. 유일하게 설렘을 담고 즐거운 얼굴들. 고학번들은 그들을 때론 귀엽다는 듯, 때론 시끄럽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자기야, 우리 첫 수업이 백야관 맞지?”

    연희가 설레는 얼굴로 확인차 수현에게 물었다.

    “응. 맞아. 시간 넉넉하니까 천천히 가도 돼.”

    수현이 그런 연희를 작게 진정시키며 말했다.

    “다음 오후 수업 때는 셔틀도 한 번 타보자.”


    연희가 뭐든 즐겁다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후 수업에는 셔틀 타보자.”


    수현이 가볍게 동의했다.

    연희는 무언가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함께 걷는 쪽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수현도 버스 멀미가 좀 있었고, 연희와 걷는 시간을 좋아했으므로 사실 그들이 버스를 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름대로 둘이 취향이 잘 맞았던 것이다. 그래도 연희는 해 볼 수 있는 것은 한 번씩은 해보고 싶은 듯했다.

    “선배들은 첫날 수업에서 진도 나가면  튀라더라?”

    연희가 신호를 건너며 말했다.

    “아무래도 좀 빡센 교수님이긴 하겠지. 근데 오늘  그래도 교양인데... 전공도 아니고.”

    수현이 설마라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우리도 튈까?”


    연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바로 튀자.”

    수현이 동의하자 연희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티없이 맑은 웃음이 좋았다. 둘은 걸어가면서 한동안 신입생다운 주제로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아, 자기 오늘 점심 약속 기억하지?”

    연희가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당연하지. 미현 누나랑 점심 먹는 거? 친구랑 같이 나온다며.”


    수현이 말했다, 미현은  회장 누나였다.

    “응. 근데, 우리 일찍 끝나면 뭐하고 있지?”


    연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미현 누나도 일찍 끝나지 않을까? 그럼 좀 일찍 만나도 되고, 아니면 우리끼리 뭐 학교 안에 카페도 있고 하던데, 들어가 있자.”


    수현이 간단하게 말했다. 연희가 그럼 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말하는 동안 도착한 건물에 들어섰다. 수현 덕에 연희는 헤매지 않고 강의실을 바로 찾아들어갈 수 있었다. 둘은 어딜 가나 시선을 받았지만, 그들은 익숙한 일처럼 둘만의 이야기를 했다.


    수업은 예상대로 출석과 간단한 소개만을 하고 끝이 났다. 연희는 우르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한 기분을 느낀 듯 했다.


    “우와, 뭔가 이제 진짜 제대로 대학생 된 기분이다.”


    연희는 약간 꿈에서  듯이 말했다. 수현이 그 모습이 귀여워 그녀를  더 당겨 안았다.


    “누나는 뭐래?”


    수현이 물었다.

    “언니는 다음시간이 첫 시간이라네. 우리 잠깐 걷다가 카페 들어가 있을까?”

    연희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그러자. 날도 그렇게  춥고.”

    수현이 연희를 이끌며 말했다. 한적한 학교를 걷는 것과 활기가 있는 학교를 걷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둘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백야로를 걸었다.


    “뭔가 저번이랑 또 다른 기분이다.”


    연희가 수현을 보며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그렇지? 그 땐 조용했는데, 지금은 막 시끌시끌하니까.”

    “응. 진짜 캠퍼스커플  기분이 들어!”


    연희가 즐겁게 말했다. 수현도  말에 동의했다. 무언가 돌아온 기분도 또다시 느껴졌고. 둘은 예상보다 조금  길게 돌기로 하고, 아예 경영관까지 걸음을 옮겼다. 이번의 바람은 거칠지 않았다. 둘은 즐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왜 힐 신었어?”


    수현이 연희에게 물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잘 신는 편은 아니었다.

    “음, 첫날이니까 뭔가 예뻐 보이고 싶기도 했고.”

    연희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했고?”


    수현이 되물었다.

    “음, 하나는 안 말해줄래!”


    연희가 약간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수현이 작게 눈을 흘겼지만, 연희는 눈을 피했다.

    “나  돌아가지 말라고?”

    수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연희가 살짝 빨갛게  귀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꽤나 강도가 강했다. 수현이  소리를 내면서도 웃었다.


    “알면서 물어보는 게 더 나빠.”


    연희가 작게 눈을 흘기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수현이 얼른 그녀의 팔을 잡아 옆으로 당겼다. 연희는 가볍게 옆구리에 안착했다.

    “그래서  한 번도 안 돌아갔잖아. 뭐, 그게  때문은 아니지만.”


    수현이 얼른 연희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연희가 피식웃었다.

    “그래서 봐주는 거야.”

    연희가 수현의 어깨에 살짝 기대며 말했다. 둘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경영관에 도착했다. 이리저리 기념사진을 찍은 그들은 잘나온 사진을 골라 각자의 배경화면을 새로 고쳤다.


    “오늘 자기도  주고 왔으면서...”


    연희가 괜히 사진을 보며 남은 앙금을 털어냈다. 수현이 크게 웃으며 연희를 당겨 안았다.


    *


    “와, 진짜 그림이네...”

    미현의 옆에 있던 그녀의 친구 혜지가 수현과 연희가 내려오는 것을 보며 말했다.


    “너 진짜 이상한 짓 하면 죽어.”


    미현이 단단히 경고하며 말했다.


    “아, 안 해! 옆에를 봐라. 내가 한다고 되겠냐?”

    혜지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미현도 그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솔직히 여친이라는 여자애 보고 내가 접긴 했는데, 완전 내 취향이다...”


    혜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 내가  사진을 보여줬는지 후회 중이다...”


    미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나도 여행 말고 새터를 갔어야 했는데!”

    혜지가 괜히 땅을 툭 차며 말했다.


    “넌 대신 이태리 오빠들 보고 왔잖아.”


    미현이 말했다.

    “거기라고  오빠냐? 저런 오빠는 거기도 없어.”

    혜지가 수현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시 말하는데, 이상한 짓  거면 지금 가.”


    미현이 다시 말했다.


    “아, 진짜 밥값만 낸다고. 너도 비싼 음식 먹으면 좋잖아. 와, 진짜 기대하던 동아리 선배 스타일이다... 왜 선배 중에는 한 명도 없었을까?”

    혜지는 한탄하듯 말했다.

    “후배라도 있는게 행운인거야, 멍청아.”

    미현이 말했다.


    “아니, 근데 왜 김태희, 한가인 같은 애가  옆이냐고. 우리 학교 이번에 무슨 얼굴 전형 생겼나?”

    혜지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야, 그래도 저 둘이니까 불만 없는 거 아니겠냐?  진짜 엄한 짓 하지마?”

    미현은 다시 한  경고하고는 손을 들었다. 수현과 연희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밝게 웃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혜지가 알 수 없는 한숨을 흘렸다.


    *


    “안녕히 가세요.”


    수현과 연희가 인사를 하자, 미현이 조금 미안한 얼굴로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취한 혜지를 부축하며 길을 건너갔다.

    “흠...”


    연희가 조금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 뒤를 바라보았다. 수현이 그녀의 손을 슬쩍 잡았다.


    “잘 참았어.”


    수현이 연희를 바라보며 약간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예민한 거 아니지?”

    연희가 약간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응. 미현 누나도 미안해 했잖아.”

    수현이 연희를 조금 끌어당겨 토닥이며 말했다.


    “씨...저런 게 제일 싫어. 막 대놓고 하면 뭐라고 하기라도 하겠는데, 은근슬쩍.”

    연희가 드물게 화를 내며 말했다. 수현도 동감했다. 선배라는 타이틀 때문에 딱 거절하기도 애매한 그런 호의를 가장한 은근함들. 특히 친해진 선배의 친구라는 타이틀까지 있다 보니, 음식이 좋았음에도 참 불편하기만 한 자리였다.

    “우리 그냥 이런 자리 나오지 말자. 불편하다. 그냥 우리끼리 먹고 말지.”


    수현이 연희를 다독이며 말했다. 연희는 약간 깨문 입술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입술 깨물지 마. 예쁜 입술 망가지겠다.”


    수현이 엄지로 연희의 아랫입술을 살며시 건들며 말했다.


    “그걸로는 안 돌아가져.”


    연희가 불퉁하게 말했다. 가벼운 스킨십이 필요한 때였다.

    수현이  웃고는 주변을 살폈다. 마침 골목은 사람이 안 보였다. 그는 가볍게 연희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연희가 수현을 끌어당겨 다시  번 입을 맞췄다. 둘이 눈을 맞추고 씩 웃었다.

    “치, 그래도 눈치 없는 멍청이처럼 헤헤 거리지 않아서 기분 푸는 거야...”


    연희가 수현을 보면서 말했다.


    “난 절대, 결단코, 단  번도, 어디에서도 김연희 앞에서 말고는 헤헤거리지 않지.”

    수현이 당당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연희는 피식 웃어버렸다.

    “뭐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런 것 같아서 믿어보겠어.”


    연희의 말에 수현이 웃었다. 둘은 서로의 기분이 풀렸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가벼운 발걸음을 뗐다.

    둘의 오후수업은 달랐다. 몇 과목을 제외하고, 회계나 경제 관련으로 깔아버린 수현의 시간표를 그대로 따라오는 것은 아무래도 연희 쪽에서 무리였다. 둘은 적당히 시간을 맞춘 정도에서 몇 과목만 통일 하는 선에서 시간표를 짰다. 그리고 연희는 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는 듯 했다. 아무래도 옷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았다.

    “끝나면 문자해!”


    서문을 들어선 후 삼성관으로 향하며 연희가 손을 흔들었다.

    “응. 일찍 끝나면 아까 봤던 카페 한  가보자.”

    수현이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응! 빨리 가! 늦겠다!”

    연희가 외쳤다. 수현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가 올라가는 것을 본 수현은 외솔관까지 가기 위해 발을 빠르게 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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