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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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는 조장을 맡은 헌내기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술게임은 먹으면서 배우는 것이라며 달리는 모습이 젊은 피들다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새내기들뿐만 아니라 헌내기들에서도 시체들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다. 초록색 술병은 끊임없이 나와서 복도의 벽을 타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야, 막겜 하고, 다른 방 가자!”
시체방이 거의 다 채워졌을 때쯤 조장을 맡은 09학번이 외쳤다.
“쉬어가는 타임으로 간단하게 이미지 게임!”
“음, 제일 여자한테 인기 많을 것 같은 남자!”
술을 마신 여자 동기가 입가를 대충 훔치며 말했다.
“지는 안 먹겠다고!”
남자들 몇 명이 볼멘소리를 냈다.
“아 빨리! 하나, 둘, 셋!”
여자 동기는 모른다는 듯이 외쳤고, 사람들이 각자 손으로 사람을 지목했다.
“오, 남자랑 여자 갈리는 것 봐.”
여자 선배 한 명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뭐야, 강민이 아니야?”
남자애 한 명이 말했다. 강민은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흐리멍텅한 눈으로 누구야? 누구 먹어? 빨리 먹어.를 시전하고 있었다.
“야, 얜 갔는데...”
동률이었던 수현과 강민이었다.
“아...그럼 좋은 생각이 있지!”
조장 선배가 소주 병을 들고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악마의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자, 남자들! 올해 우리 학교에서 남자들 젤 많이 울릴 여학우는 누구인가?”
조장 선배가 유쾌하게 외쳤다. 다들 그 의미를 알아채고는 한 사람의 이름을 외치며 일어났다.
“그녀가 선택하게 하자! 이의 있나?”
"없습니다!"
남자들이 소리질렀다.
기세를 몰아 조장이 성화 봉송이라도 하듯 술병을 들고 문을 나서며 '선택해!'를 외쳤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 유쾌하게 ‘선택해!’를 외치며 조장을 따라나갔다.
수현이 한숨을 쉬며 뒤를 따라 일어났다. 강민이 벽에 기댄 채로 수현을 향해 엄지를 올리고는 윙크를 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수현이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는, 그에게 이불을 적당히 덮어주고 방을 나섰다. 수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제일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2조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오오오!”
수현이 입장하자 이미 이야기가 된 건지 연희가 부끄러움과 취기로 붉어진 채 서 있었다.
“아, 이렇게 예쁜 여친을 기다리게 하고 말야! 자, 연희야, 네가 선택해! 우리 과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는 누구?”
연희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어? 생각해보니까, 연희가 선택한 사람이랑 둘이 러브샷을 하면 되겠네?”
2조 조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연희는 이미 벌주에 걸린 와중인 것 같았다. 모든 인원이 환호했다.
“아, 러~브~샷! 러~브~샷!”
2조 조원들과 수현의 조원들이 방이 떠나라 외쳤다.
“아, 몇 단계?!”
수현네 조장이 외쳤다.
“4단계?”
09 한 명이 말했다. 분위기가 살짝 굳었다. 2조 조장이 그의 머리를 밀었다.
“새꺄, 신입생 새터에서...”
2조 조장이 수현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넌 좀따 병신샷이다. 일단, 2단계 가자!”
2조 조장이 분위기를 살리며 외쳤다.
“아, 2단계! 2단계!”
사람들이 다시 기세를 몰아 외쳤다.
“자, 자, 아직 몰라요. 연희는 아직 선택 전입니다. 자, 과연 우리 연희의 선택은?”
2조 조장이 킥킥대며 말했다. 빠져 나갈 구멍은 없었다. 파리스의 선택도 이렇지는 않았다.
“수...수현이요.”
연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환호가 터져 나왔다. 1조방에서도 그들의 환호를 듣고 결국 살아남은 인원들이 찾아왔다.
두 조장은 뭘 하는 지 킬킬 거리며 뒤를 돌아 술을 따랐다.
“자, 그럼 벌주 말아갑니다~. 쿵짝짝 쿵짝짝 따라리라다리~.”
그들은 짠하고 뒤를 돌았다.
“하나는 크~은 잔, 하나는 작은 소주잔. 원래 우리 연희가 크~은 잔 걸렸었거든?”
2조 조장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자, 흑기사 가나요?”
“가겠지! 1호 커플인데!”
사람들이 놀리며 킥킥거렸다.
“당연히 흑기사 갑니다.”
수현이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그는 제법 술게임을 잘 피했기에,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 어린이들이랑 짬이 달랐다. 싱싱한 하드웨어에 10년의 소프트웨어였다.
“오! 역시 남자다!”
환호가 나왔다.
“아냐, 내가 먹을게, 자기야!”
연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뭐야, 뭐야. 자기 뭐야.”
사람들이 놀리며 웅성거렸다.
“아 갑자기 4단계마렵다!”
사람들의 야유가 심해졌다. 수현이 씩 웃으며 큰 컵을 받았다.
“괜찮아. 나 별로 안 먹었어.”
수현이 연희에게 작게 윙크를 했다. 본 몇 사람이 야유를 더 했다.
연희의 걱정스런 표정과 함께 러브샷은 시작되었다. 둘은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오...그림이 나와서 그런지 좀... 야, 생각보다 보기 좋다...”
누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둘의 러브샷이 끝나자 다시 환호가 나왔다. 첫째날의 가장 큰 이슈가 이렇게 끝났다.
그들은 둘러 앉아 다시 술게임과 이야기꽃으로 시간을 보내며 새벽을 보냈다. 초록색 줄은 복도 벽을 꽉 채우고도 넘치기 시작했다. 수현이 큰 이벤트를 끝내고 보니, 의외로 민형도 살아남아 잘 놀고 있었다. 저번과는 다르게 병훈의 옆에서 잘 즐기고 있는 모습이 다행이었다. 병훈만의 특유의 친화력 덕분인 것 같았다.
1반과 2반이, 그리고 3반까지 합쳐질 때쯤, 수현과 연희는 이동 중에 슬쩍 자리를 이탈해서 계단으로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취하고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다.
둘은 조용히 옥상 근처 계단에서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멀리서 무어라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자기는 괜찮아?”
연희가 고양이가 주인에게 몸을 붙이고 가르릉 대듯 몸을 부비며 물었다.
“나야 멀쩡하지... 넌 괜찮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수현이 약간 걱정이 되어 연희를 팔로 당겨 안으며 말했다. 연희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그의 품으로 기댔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귀여웠다. 수현은 연희의 머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윽, 나 머리 안 감았는데...”
연희가 몸을 빼내려 하며 말했다.
“냄새 좋으니까 걱정마. 내가 싫어서 했겠어? 빼지 말고, 좀만 더 있자.”
수현이 단단하게 연희를 안으며 말했다. 그제야 연희가 다시 수현의 품에 들어왔다.
“흐음... 우리 자기 품이 최고다. 아주 포근~하다.”
연희가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수현에게 달라붙어 말했다.
“심하게 먹이는 사람은 없고?”
수현이 연희를 토닥이며 물었다.
“응... 그냥 약간 짓궂은 정도고 다들 괜찮아. 솔직히 아까 자기가 먹은 술도 자기 먹이려고 일부러 더 가득 채운 거야...”
연희가 그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하긴, 너무 꽉 채우긴 했더라.”
일반 종이컵에 거의 소주로만 채운 소맥은 커플샷을 하러 목에 두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득이었다. 확실히 수현이라도 버겁긴 했다.
“좀 흘리기라도 하지.”
연희가 수현의 허벅지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네 옷 젖으면 누구 좋으라고? 절대 안 되지.”
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연희가 피식 웃었다.
“음, 자기 내가 칭찬 해줄까?”
연희가 약간 짓궂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응. 나 그게 제일 고픈 것 같아.”
수현은 튕기지 않고 말했다. 튕기기에는 그에게 너무 강렬한 유혹이었다. 연희가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수현의 양 볼을 손으로 살포시 감쌌다.
“잘생겼어.”
연희가 진심이라는 표정으로 말하고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수현은 만족스럽게 그 적극적인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남들에게 보일 수도 있는 장소 치고는 꽤나 진득하고 야한 입맞춤이었다. 특히, 이런 단체생활에서는 절대 걸리면 안 될 그런 모습.
하지만, 둘은 개의치 않고 진득한 키스를 이어갔다. 마치 공간에 둘만 있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의 입술을 갈구했다.
“하아-.”
떨어진 입술에서 조금은 야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둘의 시선에는 약간의 갈무리 하지 못한 욕망이 있었다. 둘은 거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상대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돌아가야지.”
수현이 억지로 말했다. 충분히 길어진 시간이었다. 어쩌면 눈치 챈 사람이 몇 있을 수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술자리 참석보다는 한 명 또는 둘 다 시체방에 있는 게 나을 것이다.
“응...근데 가기 싫다...”
연희가 일어나기 싫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말했다. 수현도 그 말에 동의했기에 잠시 연희를 토닥이기만 했다.
“...먼저 가. 난 좀...진정시키고 들어갈게.”
수현은 연희를 조금 더 토닥이며 말했다.
연희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녀도 단단해진 수현을 느꼈다. 사실, 그녀 또한 스스로 젖어들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최근에는 더 잘 젖어드는 스스로가 놀라웠다.
“내가 오히려 더 괴롭게 했나?”
연희가 약간의 죄책감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반 쯤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아니. 어차피 너 보면 난 항상 이래.”
수현이 반 진심으로 말했다.
“변태...”
연희가 그를 툭 밀쳤다.
“그래도 좋아해줄 거지?”
수현이 작게 애교를 피우며 연희를 안았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붉혔다. 둘은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가 연희부터 내려갔다. 그녀는 내려가기 직전 가볍게 수현의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수현은 조금 더 자리에 앉아 계단에 있는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스름한 새벽하늘도 상쾌하게 보였다. 잠은 어차피 오래 자지 못할 것 같았다. 나름대로의 일정이 있긴 할 테니까.
수현은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