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1
*
그렇게 에프엠이 끝나갈 때쯤 그들은 휴게소에 들렀다. 2호차에서 수현과 연희가 천천히 내려 기지개를 켰다.
“음, 맛있는 냄새 난다.”
연희가 수현의 팔을 붙잡고 발랄하게 말했다.
“그러네. 배고파진다. 화장실 들렀다가 먹으러 가자.”
수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연희가 즐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화장실로 가기 전에 음식들을 쭉 확인하며 갔다. 침이 고여 힘든 시간을 버티고 둘은 먹을 메뉴를 선정한 후 화장실에 도착했다.
“어?”
연희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수현의 팔을 꽉 붙잡았다. 수현이 앞을 바라보자 거기엔 민형이 서있었다. 그도 이쪽을 발견 했는지, 잠시 멈칫했다. 수현이 슬쩍 고개로 다가오라는 뜻을 보였다. 민형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연희가 더 수현의 팔을 꽉 잡았다.
“안녕?”
민형이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냐?”
수현이 답을 했다. 연희가 수현의 눈치를 슬쩍 봤다.
“응... 저번엔 고마웠다.”
민형이 말하고는 연희 쪽을 바라보았다.
“그 땐 미안했다... 내가... 술 마시면 좀 욱해서...”
민형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 어.... 괜찮아...”
연희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러나 여전히 좀 경계하는 몸짓으로 사과를 받았다.
“그... 진짜 미안.”
민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한 번 말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난 됐고, 내 여친은 아직 너 좀 무서운 것 같으니까, 이제 가라.”
수현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머리를 까딱였다.
“사귀는구나...”
민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덕이라곤 안 할게.”
수현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간다.”
민형이 딱히 더 할 말이 없는지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생각보다 정상이네...”
연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수현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도대체 이미지가 어땠는데?”
수현이 물었다.
“음, 처음부터 허세도 심하고 그래서... 무섭기도 하고... 술 마셔서 그런 건지...좀...”
연희가 애매하게 말했다.
“뭐 그것도 있고, 연희,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겠지.”
수현이 연희를 토닥이며 말했다.
“잘 보이고 싶은데 그래?”
연희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냥, 자랑한 거지. 자기가 이렇다! 대단하다고 보여주려고. 아직 어려서 그렇지 뭐.”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긴 아니고?”
연희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수현의 허리를 찔렀다.
“난 꼬셨으니까, 성공했잖아. 그럼 어린이 아닌 거지.”
수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참내. 이것도 허세 아닌가?”
연희가 말했다.
“아니지. 김연희를 얻은 남자의 자신감이지.”
수현이 말하자 연희가 웃었다.
“화장실이나 가자. 어휴, 엄청 놀랐네.”
연희가 수현을 남자화장실 쪽으로 밀며 말했다. 둘은 잠시 갈라져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볼일을 마치고 나온 둘은 바로 식사를 하러가진 않았다.
“여기 예쁜데, 사진 하나만 찍자. 어차피 지금 줄 길거야.”
수현이 제안했고, 연희가 가볍게 수긍하며 따라갔다. 이미 몇몇 사람이 모여 풍경을 배경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찍어주고, 셀카를 찍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었다.
“연희야..."
수현이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연희를 불렀다.
"응? 왜? 뭐 잘 못 찍혔어?"
연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진짜... 다 예쁘다.”
수현이 표정을 풀며 역시라는 표정으로 칭찬했다. 연희가 기쁨과 약간의 부끄러움으로 웃었다.
“아... 진짜! 진지하게그러지 말라고! 근데... 자기도 다 멋있게 나왔는데? 어째 점점 더 멋져지는 것 같아...”
연희가 그를 슬쩍 밀며 말했다. 그리고 그 쪽은 본의 아니게 대형 트럭 사이였다. 수현이 피식 웃었고, 연희가 응큼한 눈빛을 하고 냉큼 한 발 따라 들어왔다. 둘은 길지도, 짧지도 않게 만족스러운 입맞춤을 했다.
“언제부터 봐둔 거야?”
수현이 기특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모르겠는데? 그냥 밀었는데, 거기였던 거야.”
연희는 모르는 척 하며 트럭 사이를 먼저 빠져 나갔다. 수현이 따라 붙으며 손을 잡아 자신의 패딩 안으로 넣었다. 둘은 마주 보며 빙구같이 웃어버렸다.
*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동안 달려 2박3일 새터 일정이 진행 될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자 분주해진 임원들에 의해 신입생들은 반별로 그리고 그 안에서도 조별로 나뉘어 모이기 시작했다. 조는 이름순이었으므로, 수현과 연희는 반 내부에서는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어이 황수현이. 아쉽게 됐네.”
같은 조가 된 소영이 그를 툭 치며 말했다.
“눈물 흐르는 거 안 보이냐? 놀리지마라.”
수현이 농담을 받았다.
“야, 그래도 내가 밀어줘서 잘 된 거면, 너희 나한테 잘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소영이 수현을 쿡 찌르며 말했다. 하기야 맞는 말이었다.
“고맙다. 다음에 연희랑 같이 밥 살게.”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선히 수긍했다.
“은인으로 모시고 비싼 거 사. 알았어?”
소영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래. 고기 살게. 그나저나 민형이랑 연희랑 같은 조라 괜찮을지 모르겠네.”
수현이 2조 쪽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인원 확인 중이었다.
“아, 맞다! 김민형 우리 반이지! 아, 그러네. 같은 조네... 그래도 김병훈이 중간에 있어서 다행이다. 쟤가 좀 분위기 메이커잖아.”
소영이 2조 쪽을 보며 말했다. 수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 확인이 끝난 1반 1조부터 짐을 풀고 강당으로 모인 그들은 형식적인 이런 저런 행사들을 진행했다.
사실, 뭐 새터든 MT든 대학교의 진짜는 항상 ‘밤’아니던가.
몇 가지 금방 기억에 사라질 프로그램들이 끝나고 그들은 저녁식사를 위해 줄을 섰다. 다행히 반 별로 진행하는 식사는 그렇게 빡빡하지 않아서, 수현은 연희 쪽으로 다가가 슬쩍 함께 줄에 섰다. 그 정도는 알고도 다들 눈감아주는 편이었다.
수현과 연희는 병훈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셋은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정쩡하게 민형이 다가왔다.
“여기 자리 있냐?”
민형이 말했다. 수현이 옆의 연희를 돌아봤다.
“없어. 앉아도 돼.”
연희가 민형을 보며 말했다.
“뭐야, 너 왜 혼자야.”
수현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 그냥... 그 새끼랑 사이 틀어지고 나머지 둘도 그 쪽으로 붙고...”
민형이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서 아는 얼굴이 우리냐?”
수현이 밥을 한 술 뜨며 말했다.
“그래. 비웃냐?”
민형이 투덜대며 말했다.
“잘 왔다고.”
수현이 슬쩍 웃어주었다.
민형이 연희에게 다시 한 번 사과 했고, 병훈이 적당히 분위기를 살리며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졌다. 수현은 병훈을 대단하다는 듯이 슬쩍 보았다.
“야, 오늘도 그러면 안 말린다? 빵 들어갈 생각해라.”
수현이 적당히 풀린 분위기를 느끼고 말했다.
“그럼 좀 나아질라나...”
민형이 씁쓸하게 말했다.
“야, 안 할 생각을 해. 창창한 20살에 빵 들어갈 생각을 해? 술 먹고 뭔가 화가 올라온다 싶음 형 불러라. 특별히 막아줄게.”
수현이 말했다.
“네 머리부터 조심해라.”
민형이 툴툴거렸다.
“연희랑 잘 된 거에 네 덕도 좀 있으니까 한 대는 어떻게 참아볼게.”
수현이 말했다. 연희가 수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다 먹었음 나가면 안 되냐?”
민형이 속이 안 좋다는 듯 말했다.
“지가 와 놓고는 이제 우리 보고 나가래...”
수현이 마저 먹으라는 고갯짓을 했다. 민형이 식사를 마치고 네 명은 밖으로 함께 나왔다.
“야, 우린 한 바퀴 돌고 간다. 둘이 놀아라.”
수현이 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민형과 병훈은 작게 야유했다.
“늦지나 마라. 좀 있으면 모일 시간이다.”
민형이 말했다.
“한 바퀴만 돌고 금방 올 거야.”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희를 이끌었다. 연희가조금 있다가 보자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수현과 연희는 숙소를 크게 돌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그들 말고도 산책하는 인원들이 있었다. 주변은 산과 들이었기에 갈 곳이 딱히 없었다.
“너무 아쉽다. 조까지 같았으면 딱이었는데...”
연희가 잡은 손을 깍지로 바꾸며 말했다.
“그러면 딱 좋았는데... 술도 같이 시작할 수 있고... 그래도 아마 몇 시간 있으면 살아남은인원끼리 반 별로 모일 거야. 죽지 말고 살아 남아있어. 알았지?”
수현이 주변을 슬쩍 보고 연희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응. 자기도 죽지 말고. 누가 흑기사 해달라고해도 싫다고 해. 알았지?”
연희가 경고하듯 말했다. 수현이 작게 웃었다.
“이미 너랑 나 다 봤는데, 그렇게굴면 그 쪽도 좋은 소린 못 들을 걸? 걱정 마.”
수현이 연희를 토닥였다. 둘은 화단을 지나 빛이없는 어두운 숲 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들어가도 금세 새까만 어둠이었다.
“누가 이렇게 막 따라오래.”
수현이 자그맣게 속삭였다.
“맛있는 거 준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연희가 더 작게 속삭였다. 둘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달빛에 눈빛이반짝였다. 둘은 눈을 감고 천천히 입을 맞췄다. 저녁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런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두 남녀는 조금 길고 진하게 입을 맞추고 떨어뜨렸다.
“이틀만 잘 버텨봐.”
연희가 입술을 떼고 앙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어두우니까. 나 지금 얼굴 엄청 빨갛게 됐을 걸?”
연희가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럽다는목소리로대답했다. 수현이 큭큭거리며 연희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볼이 뜨듯했다.
“그런 것 같다.”
수현이 양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리 가야 되는 거 아냐? 시간 거의 다 됐을 것 같은데...”
연희가 말했다. 수현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수현이 조심스레 연희의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거의 다 들어간 듯 했다. 그들도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같은 층 다른 방으로 들어가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