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25 (25/94)



〈 25화 〉25

*


수현은  휴일이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것이 무의미한 고3의 교사답게 출근을 했다.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이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얼마 되지 않았어도 얼마 전의 행적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는 차분하게 수업을 했고,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누군가가 갑자기 난입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안녕.”


소향은 부스스하던 모습이 아니라 적당히 꾸민  안 꾸민 듯한 운동복 차림으로 내려와 그에게 인사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는 아니었다. 여긴 그녀의 집이기도 했고, 식당이었기에 물을 마시거나 무언가 먹으려면 들러야만 하는 곳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닭가슴살과 야채류, 그리고 과일 종류를 꺼내더니 식탁에 놓았다. 수업이 끊기고 수현과 소현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저희 20분 정도만  하면 끝나는데, 기다렸다 드시면 안 될까요?”


수현이 소현보다 먼저 말했다. 또 자매 싸움에 끼고 싶진 않았다.

“너희도 과일 먹어.”

소향은 친절하게도  종류 과일을 실제로 그들에게 밀어주고는 옆쪽으로 앉았다.

“언니...”

소현이 부글거리는 얼굴로 소향을 불렀다.

“소현아. 이것까지만 마무리하자. 오늘 어차피 조금 일찍 끝내려고 했어. 시험 때 변수다 생각하고 집중하자.”

수현이 냉큼 말했다. 소현이 잠시 소향을 노려보다가 문제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향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소현과 수현이 공부를 하는 동안에 정말 ‘잘 먹었다.’

수현의 설명이 끝나자, 소향은 식욕이 별로 없었는지 샐러드는 반을 남기고, 과일은 대부분을 남기고 치웠다. 의외로 손수 치웠다는 게 놀라웠다. 그녀는 밖으로 쌩하고 나가버렸다.


수현과 소현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쟤가 진짜 미쳤나봐요...”

소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현은 차마 동의하지는 못하고 책을 챙겼다.

“그럼 가볼게. 복습 잘 하고.”


수현이 소현에게 가벼운 미소로 말했다.


“네. 내일은 엄마 있으니까, 쟤도 못 저럴 거예요.”

소현이 걱정말라는 듯이 말했다.


“응...그래. 내일 보자.”


수현은 떨떠름하게 웃고는 말했다. 현관문이 닫히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지랄일지 궁금했다. 어째 느낌이 좋지 않았다.


수현은 대문을 열고 나서다 멈칫했다. 외제 대형 SUV옆에 있던 소향이 불쑥 그의 앞에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 가?”

소향은 생글거리며 말했다. 꽤나 남자를 홀릴 법한 미소였다.


“네. 어디 가시는  아니었어요?”


수현이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응. 운동가지.”


소향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근데 왜 아직 여기 있으세요?”

수현이 물었다.

“너 나오는  보려고.”

소향이 간단히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수현이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냥, 둘이 진짜 딱 사제관계인가 싶어서?”


소향이 말했다.


“후-. 그래서 결론은요?”

수현이 피곤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은 맞는  같네.”

소향이 좀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후, 그럼  거죠?”

수현이 그녀를 지나치며 말했다.

“같이 말동무나 하고 가자.”

소향이 수현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요?”

수현이 조금 짜증스럽게 물었다. 소향은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그...그냥 심심하니까... 너도 어차피 가면서 할 것도 없잖아.”


소향은 잠깐 말을 절다가 얼른 원래의 말투로 돌아와 말했다.

“그냥 가도  것 많~아요.”


수현이 말했다.

“그러지 말구, 나 저기 사거리 복싱체육관까지만 같이 가주라. 심심하단 말야.”


소향이 전략을 바꿨는지 약간 애교스럽게 말했다.


“복싱 체육관?”


수현이 순간 흥미를 보였다가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렸다.

“응.  의외지? 보여줄까?”

소향이 그의 관심을 끌 요소를 찾은 것이 즐거웠는지 재잘거리며 자세를 취했다. 수현이 그 모습을 픽 비웃었다.

“뭐, 뭐야.”

소향이 약간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제대로 된 자세가 하나도 없는데 보여주기는... 다닌지 이주는 됐어요?”

수현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하자, 소향이 처음에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짓다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오, 어떻게 알았어? 나 딱 2주 넘었는데.”

소향은 그의 옆으로 붙으며 물어왔다.

“딱 그래보여서요.  여기서 버스 타요. 그럼 가세요.”


수현은 냉정하게 말하며 정류소에 섰다.


“야, 같이  가자니까... 이렇게 예쁜 여자가 너랑 걸어주는 게 흔할 것 같아?”

소향이 네 분수를 알라는 듯이 말했다. 수현은 또 비웃었다. 댁보다  예쁜 여자가 애교도 부려주고, 손도 잡아주면서 같이 걸어준다.

“저 저기 오는 버스 탑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수현은 사거리를 돌아오는 버스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손을 들었다.

“야! 진짜 가?”

소향이 진짜로 당황한 듯 외쳤다.


“네. 그럼 가짜로 가요?”

수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피곤한 여자였다. 버스가 멈춰 서고 수현이 올라탔다.

“아가씨, 안 타는 거요?”


버스기사가 물었다. 소향은 수현이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대답 없이 휙 돌아섰다. 버스는 출발했고, 수현은 씩씩거리는 듯한 뒷모습의 소향을 힐끔보고는 작게 웃었다.

*

소향은 분에 못 이겨 헤비백을 몇  치다가 제 풀에 지쳐 주저앉았다. 주말 개방으로 나온 몇몇 남자들이 그녀를 힐끔 봤지만, 말을 거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아이씨!”

소향이 결국 얼마 하지도 않은 운동을 접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남자들의 눈이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과외 교사라고  남자애는 좀 독특한 느낌이었다. 남자들은 자신을 보면 눈부터 돌아가고 봤다. 첫날에도, 그 뒤에도 그는 소향을 귀찮다는 느낌으로 대했다.


“게인가...”

소향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럼 간단히 이해가 되었다. 소향은 현관문을 열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문을 닫았다. 그녀가 발소리를 내며 2층으로 올라가자, 거기에는 소현이 화가 단단히  표정으로 소향을 쏘아보고 있었다. 소향은 잠시 움찔했다.


“넌 또 왜?”

소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언니, 나랑 얘기 좀 해.”

소현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소향은 헛웃음이 터졌다.

“무슨 얘기?”

소향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쌤이랑 무슨 얘기 했어?”

소현이 물었다.


“뭐? 아, 과외?”

소향이 잠시 당황했다.


“어떻게 봤어? 몰래 사모하는 쌤 뒷모습이라도 지켜봤냐?”

소향이 빈정거리며 물었다. 소현은 말이 없었다. 대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기 시작했다.

“뭐, 뭔데... 진짜야?”

소향이 약간 당황하며 물었다.


“나쁜 년. 넌 진짜 나쁜 년이야.”

소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소향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얻으면서, 다시금 수현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와,  궁금해지긴 하네... 뭐,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대단할 건 없어 보이는데...”

소향이 중얼거렸다. 소현이 자신에게 대들었을 때, 그리고  이후의 상태를 보며 소향은 분명 수현이 그 열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내 남자엔 관심도 없어보이던 동생이 갑자기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뜻밖이었지만, 갑자기 눈을 뜨기도 하는 법이니까.

하긴, 스펙으로 보면, 소현 취향에는 맞을 수도 있었다. 외모야 적당히 준수한 편이고, 과외 한다는 것을 보니, 머리도 제법 좋을 것이다. 스마트한 취향이라면...


소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남자도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운동도 좀 하나? 등빨도 나빠 보이진 않았는데...”


소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아까 자세 지적하던 것이나, 옷 핏을 보면 운동도 나름대로  하는  같았다. 더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


“응. 그럼, 모레나 보겠네...”


수현이 아쉬움을 가득 담아 말했다.

-응... 우리 아빠  번 정하면  바꾸거든.-

연희도 아쉬움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쩔  없지. 아버지 서운하시지 않게 너무 아쉬운 티 내지는 말구. 우린 모레 보면 되니까.”

수현이 혹시나 싶어 말했다.


-응. 아빠랑 가는 것도 좋긴 해. 그냥 자기 못 보는 게 아쉬운 거지...-

연희가 걱정 말라는 듯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때 편하긴 하겠다. 어머니도 오시는 거지?”

수현이 물었다.

-응. 아마도. 사실, 이번에 아빠한테 나 혼 좀 날거야...-


연희가 약간 뜨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왜?”

수현이 놀라서 물었다. 혹시 자신과 사귀는 걸 들켜서 반대라도 하셨나 생각이 든 것이다.


-나, 사실은 서울대도  줄 알고 너무 좋아서 빨리  얻겠다고, 부동산에 맡긴 거였거든... 여자 전용에 2호선이면 혹시 연대 되도 괜찮고, 치안 괜찮고, 내부도 나쁘지 않고, 역에서 걸어서 15분 안쪽이고. 다 맞긴 했지... 근데, 위치가 좀 위험해 보이긴 하잖아.-


연희가 민망한 목소리로 사실을 고했다.

-구해졌다고 당일  엄마 졸라서 짐까지 좀 싸들고 왔는데, 거기인 거야. 솔직히  밤에는 네가 매일 데려다 주기도 하고, 나쁘진 않은데...그래도 아빠는 좀 싫어하실 것 같아.-


연희가 덧붙여 말했다.


“에휴, 참... 이번에  들키는 거구나?”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응. 뭐, 애교  부려야지. 울 아빠  그거에 약하거든.-

연희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건 누구에게라도 먹힐 것이다.

“알았어. 그럼, 내일은 혼나고 모레는 내가 위로해줄게.”

수현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근데, 우리 진짜 오티 안 가도 되는 거겠지? 나 주말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왕따 되는  아냐?-

연희는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오티에 대해 다시 걱정하며 말했다.

“걱정마. 새터만 잘 가면 된다고 했어. 그리고 왕따 되면 우리끼리 놀면 되지. 난 더 좋네.”


수현이 확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음, 뭐 그렇긴 한데... 으... 드디어 뭔가 시작되는구나 싶으니까 설렌다!-


연희는 약간 흥분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모레 너 볼 수 있는 게 제일 설레.”

수현이 말했다.


-야아!-

연희가 부끄럽게 소리쳤다.

“알았어. 그럼  자고. 모레 보자. 쪽!”


수현이 웃으며 말했다.

“...응... 자기도 잘 자. 쪽!”


연희가 부끄러운 목소리로 마주 인사했다.

수현은 통화가 종료된 뜨듯한 핸드폰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는 찬 공기를 마셨다가 내뱉으며 일어났다. 아쉽지만, 내일은 운동이나 열심히 해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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